전편 :  (문학, 삽화) 우리집 브닐라 -1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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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브닐라는 울음을 그쳤고, 서러움에 터져나온 나의 눈물 또한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이제 좀 괜찮아?”

 

녀석이 콧물을 흘쩍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색하고 싶진 않았지만,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인공적으로 제조되었다 한들 여자애는 여자애다. 저렇게 서럽게 우는 꼴을 보고 마음이 편할래야 편할 수가 없다.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나처럼 마음 약한 놈이 도리어 비정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한들 그런 정신 나간 곳에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던져 넣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에 가득 찬 매캐한 냄새와 난장판이 된 부엌이 망막에 다이렉트로 꽂혀 들어온다. 안 그래도 그을음에 기름기로 엉망인데, 거기에 더해 소화기 분말까지 도처에 널려 있으니 도저히 말로 옮길 수 없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추가로, 조작 실수 때문에 소파와 커튼에까지 잔뜩 묻어버린 소화분말이 눈에 띄었다. 아, 이거 일이 늘었네. 

 

“그, 일단 저기부터 좀 치워볼까?”

 

이 상황에선 저 난장판을 조금이나마 수습하는 게 우선이겠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조리대가 나를 반긴다. 따흐흑, 이 쌔끈한 부얶에 투자했던 게 얼마였던가. 

 

나는 비닐 장갑을 끼고 손에 집히는 것부터 쓰레기 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내가 조리대를 정리하는 동안, 브닐라에게는 바닥에 널린 분말과 찌꺼기를 치우라고 일러두었다. 

 

진공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좀 메이드다운 꼴이 나오는 것 같다. 설마 진공청소기도 고장내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나는 슬쩍슬쩍 브닐라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저 정도는 별 탈 없이 하겠지. 나는 브닐라를 믿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극락왕생하신 후라이팬과 스팸캔까지 쓰레기봉투에 던져넣었을 무렵, 브닐라는 걸레를 가져와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힘껏 걸레질을 하는 게 참 열심히도 하는구나 싶다.

 

그래, 참 열심히다. 

 

굳이 토를 하나 달자면 걸레질하는 자세가 문제라 하겠다.

 

모양새가 말이지, 음...

 

 

 


 

 

“아...브닐라야?” 

 

“부르셨음까?”

 

“그 자세 좀 어떻게 안될까?” 

 

“제 자세 말임까? 혹시 뭔가 문제가 있슴까?”

 

...진짜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건가. 표정을 보니 진짜 자각을 못하고 있는 눈치긴 한데.

 

‘네 치마가 올라가서 궁둥이랑 팬티가 다 보인단다.’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해주려던 순간, 그냥 이대로 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꽤나 좋은 눈요깃감이었거든.

 

이래서 다들 바이오로이드를 하나씩 두려는 구나 싶었다. 다른 게 가성비냐, 이런 게 진짜 가성비지.

 

“암것도 아냐. 계속 하던 거 해.”

 

“예, 알겠씀다!”

 

다시 힘차게 걸레질을 시작하는 브닐라. 그리고 훤히 오픈된 빤쓰와 엉덩이. 나는 숨도 돌릴 겸 잠시 그 절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실로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이 녀석이 방금 전에 저질렀던 짓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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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주방은 –벽면에 남은 약간의 그을음을 제외하면- 말끔해져 있었다. 환기도 하고 향초도 켜보고 별 짓을 다 해서인지 냄새도 아침보단 많이 희미해졌다. 커튼과 소파도 어떻게든 닦아내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주었고. 

 

찌뿌드드한 허리를 펴면서 시계를 봤더니 뭘 했다고 벌써 거의 밤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슬슬 배도 좀 고픈데. 브닐라를 쳐다보니 녀석도 출출한 눈치다.

 

“주인님, 식사 준비해드림까?”

 

아까 그 꼴을 봐 놓고? 안될 말이다.

 

“아니, 어차피 AS 올 때까진 가스레인지 안 쓰려고. 혹시 모르니까.”

 

화구에까지 불이 붙었던 데다 눈에 띄는 손상이 몇 군데 있었으니, 안전을 위해서는 불을 안 쓰는 게 맞겠지.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심까?”

 

흠, 그것도 그러네. 배달을 시키자니 애매하게 늦은 시간이고. 24시간 배달하는 이 근처 야식 가게들은 하나같이 값만 비싸지 퀄리티는 엿 바꿔먹어서 먹고 나면 항상 배탈이 난다. 

 

“오, 냉동 하나 찾았지 말임다! 이거 드시면 되지 말임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제멋대로 냉장고 문을 연 브닐라. 한 건 해냈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냉동 만두를 흔들어보이고 있다. 2+1 행사할 때 사놓고 처박아뒀던 거네.

 

“그런데 그거 익히려면 찜기나 프라이팬 필요하지 않아? 우리 당장은 불 안 쓰기로 했잖아.”

 

“어, 모르심까? 이거 전자렌지로도 되지 말임다!”

 

“그러면 죄다 말라붙어서 맛 없어지잖아.”

 

“무슨 말씀이심까! 제가 냉동은 또 기가 막히게 만들지 말임다. 한번 믿어보십쇼!”

 

이미 오전의 대참사로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펴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괜시리 또 기 죽이기도 그렇고 하니, 한 번만 더 속아주는 셈 칠까.

 

정 그러면 한 번 해보라고 했더니, 브닐라는 넓은 그릇에 만두들을 늘어놓고 그 위에 생수를 약간 흩뿌렸다. 바닥에 물이 살짝 보일 정도가 되자, 녀석은 그릇에 랩을 씌워놓고 전자레인지 조리를 시작했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내가 전자레인지에 만두를 돌렸을 때는 항상 맛대가리 없었으니- 녀석이 꺼내온 결과물은 따뜻하고 촉촉한 게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어떻슴까? 예전에는 냉동식품 찾으면 다들 저한테 맡겼지 말임다!”

 

“이번 건 인정할게. 생각보다 괜찮네.”

 

“히히, 감사하지 말임다. 맛있게 드십쇼, 주인님!”

 

녀석이 어디서 배웠는지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며 활짝 웃어 보인다. 브닐라가 만들어준 (냉동이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녀석이 재잘대는 걸 듣고 있자니, 이전까지 집에서 혼자 있을 적에 느꼈던 고독함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다. 

 

대책 없이 발랄한 녀석의 기운이 내 마음에까지 닿아오는 듯하다. 비록 첫인상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 녀석을 데려온 걸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당장은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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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슬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용케 깨진 그릇 없이 설거지를 끝낸 브닐라가 내 침대를 정돈해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얘 코 엄청나게 골았지. 미리 대비를 해 둬야겠다. 내가 귀마개를 어디다 뒀더라. 요 서랍 어디 있었는데.

 

“어, 그 귀마개는 뭠까? 내일 사격 훈련 나가심까?”

 

...차마 너 때문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내가 잘 때 소음에 조금 민감해서 그래. 별 거 아니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브닐라가 옆에 서서 할 말이라도 있는 양 우물쭈물 댄다. 이번에 또 뭘까-하고 물어보니 녀석이 힘겹게 입술을 달짝인다.

 

“주인님...살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함ㄷ..아니 감사합니다. 전 생산됐을 때부터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서, 맨날 다른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제가 못나서 주인님을 위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어어 얘 또 눈물보 터질라 그런다. 졸려 죽겠는데 왜 이러니.

 

“됐어. 더 이상 얘기하지 마. 그냥 내가 마음이 물러서 그런 것 뿐이야.”

 

브닐라는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풀이 단단히 죽은 듯 어깨도 축 처져있는 게 영 보기가 좋지 않은지라, 잠시 마음 좋은 주인 행세를 해서 기운을 좀 북돋워주기로 했다. 

 

“네가 좀 덤벙대서 그렇지, 내가 보기에 마음씨는 정말 착한 것 같아. 성격도 밝고. 내가 말은 안 했지만 네가 오기 전엔 정말 외로웠거든. 그런데 오늘 같이 있어보니 내가 그동안 인생 헛살았나 싶더라. 말 걸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거, 이게 정말 엄청난 느낌이더라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덧붙였다.

 

“뭣보다, 너, 아까 그랬지. 노력하겠다고. 내가 널 구매한 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집안일이야 익히면 되는 거고, 실수는 앞으로 안 하면 되는 거야. 고작 배움이 늦다는 이유로 널 버리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매일 오늘 같은 일만 벌어진다면 나도 장담은 못하겠다만은.

 

브닐라는 코를 몇 번 훌쩍이더니 눈가를 문지르고 슬쩍 웃어보인다.

 

“헤헤, 역시 주인님은 좋은 분이심다. 제가 봐온 인간님들 중에서 제일 착하신 분인 것 같슴다.”

 

아마도 내 생각엔 다른 인간들이 워낙 말종들이라 그런게 아닐까 싶다만.

 

“피곤하실텐데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지 말임다. 푹 주무십쇼, 주인님.”

 

“그래, 너도 좋은 꿈 꾸고.”

 

브닐라는 내게 미소 지어주며 천천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자, 그럼 귀마개를 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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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diac Actual to Six Shooter, requesting CAS on target area, grid follow: Echo-2-1-0...”

(조디악 액추얼이 식스 슈터에게 전한다. 목표지점에 근접항공지원 바람. 좌표: 에코-2-1-0...)

 

“Uh, Six Shooter to Zodiac Actual, are you sure there aren’t any friendlies down there?”

(어, 식스 슈터가 조디악 액추얼에게. 목표 지점에 아군이 없는 것이 확실한가?)

 

“That’s none of your concern, Six Shooter. You’re cleared hot. I say again, you’re cleared hot.”

(귀측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식스 슈터. 공격 개시하라. 반복한다. 공격 개시하라.) 

 

“Ennemi détecté!”

(적 발견!)

 

“ripostez, ripostez!”

(응사하라, 응사하라!)

 

“Проклятые капиталисты нас толкают!”

(망할 자본가 새끼들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Убей этих шлюх! убей их!”

(저 썅년들 다 죽여! 다 죽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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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야, 브라우니.”

 


 




“넌...꼭 살어.”

 

“살아서...애들 잘 챙기고...나처럼 뺑이만 치지 말고...알았지?”

 

“이젠 네가 왕고야.”

 

또 이 꿈임까, 싫슴다. 이젠 싫슴다.

 

“...드디어 제대네, 난.”

 

눈 감으심 안 됨다! 정신 차리셔야 함다!

 

.....

 

하사님?

 

..하사님?

 

전 이제 어떡하란 말임까...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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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괜찮아? 너 지금-”

 

“흐아아아아!”

 

어우 시밤 깜짝이야.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길래 와봤더니, 이 녀석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서 비명을 지른다.

 

“악몽이라도 꿨어? 나와 보니까 네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길래.”

 

이 녀석 아직도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 잠을 덜 깨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계속해서 자기 손이랑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내 얼굴에 뭐가 묻어서 그런 건 아닐 거고.

 

“...괜찮은 거 맞지?”

 

“아, 그, 어...괘, 괘, 괜찮슴다. 아무 일도 아님다.”

 

녀석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자기 양 뺨을 탁탁 두드렸다. 나를 올려다본 브닐라가 갑자기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으아, 혹시 저 주인님보다 늦잠 자버린 검까?”

 

“됐어. 어차피 오늘은 나도 휴일이고, 급한 일 없어.”

 

몇 주 동안 내리 주말 특근에 시달렸더니 오늘 하루 정돈 쉬라더라. 뭔가 계산이 안 맞는 것 같지만 이런 휴일이라도 챙겨야 사람이 살지. 

 

“딱히 할 일도 없고, 가스레인지 AS는 내일이나 온다니까 집안에 있어봐야 의미도 없겠네. 오늘은 동네 지리도 익힐 겸 밖으로 나갈까? 식사도 바깥에서 해결하고.”

 

그 말에 확 밝아지는 브닐라의 얼굴.

 

“정말임까? 저도 인간님들 가게에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슴다!” 

 

“당연하지. 오늘은 근처에 가볼만한 곳은 전부 소개해 줄게. 일단 머리부터 감고-”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또 스팸전화인가 했더니 회사에서 온 전화다. 그것도 과장이네.

 

“어 과장님, 저 오늘 휴일인데-”

 

“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여기 지금 인터넷도 안되고 팩스 전화, 다 막혔어.”

 

....어 시밤 이러면 안 되는데

 

“휴일이고 나발이고 지금 업무 다 정지됐으니까 빨랑 튀어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탁 끊겨버렸다. 브닐라도 통화를 틀었는지 실망한 눈빛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뭐,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네. 안타깝지만 오늘은 집에서 청소라도-”

 

어 잠깐.

 

문득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브닐라를 집에 남겨두고 혼자 갔다간.....어제의 참사를 되풀이할 순 없지. 이 녀석의 절망적인 가사능력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집안에 혼자 둬선 안 될 것 같다.

 

마침 우리 회사는 업무 보조 격으로 비서 바이오로이드들을 대동하고 출근하는 게 가능하다. 이참에 바깥 구경도 시켜줄 겸, 바로 옆에 두고 바보짓 못하게 감시나 해야겠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 직장이 바이오로이드 출입 가능하거든? 어때, 주인님 일하는 곳 한번 견학해볼래?”

 

“당근임다! 전 좋지 말임다!”

 

다시 눈을 반짝이며 화색이 되는 브닐라의 얼굴. 알기 쉬워서 좋구만.

 

부랴부랴 세수하고 옷도 걸쳐 입고 가방도 챙겼다. 브닐라도 날 따라하고 싶은 건지 길다란 가방을 하나 챙겨들고 내 뒤를 따랐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얘를 집에 혼자 두는 것보단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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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 둘러보는 브닐라였다. 폐허가 아닌, 멀쩡한 번화가를 이렇게 가까이서 둘러보는 건 처음이라나. 

 

그런 녀석을 배려해서 천천히 갈까 했지만, 부장에게서 쌍욕이 섞인 재촉이 들어오자 그럴 새도 없이 뛰기 바빴다.

 

 


 

 

하필 전철도 연착이다. 이거 뭐 됐는데. 바이오로이드를 구할 게 아니라 자가용을 한 대 뽑았어야 했나. 

 

이윽고 도착한 열차는 이미 만원. 심기가 불편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을 겨우겨우 비집고 들어갔다. 대개 바이오로이드들은 전용칸에 수용되기 때문에 인간들과 같은 칸에서 부대낄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직접 몸을 맞대고 있다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서 계속 눌려있으려니 이게 느낌이 참.....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세 개 역 거리이니 얼른 도착하길 바래야지. 

 

...내 가랑이는 가방으로 슬쩍 가렸다. 

 

그 와중에 브닐라 이녀석, 군용은 군용이라는 건지 전철 급정거 때문에 발생한 인간 파도에도 꼼짝을 안한다. 덕분에 압사는 면했다. 

 

“우으...갑갑하지 말임다...수송 컨테이너도 이것보단 나았슴다.”

 

울상을 짓고 칭얼대는 브닐라. 오늘의 열차 상황이 평소보단 나은 편이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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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내달린 끝에 회사에 도착했다.

 

재빨리 직원 카드를 찍고 브닐라의 손을 잡아 끌었다. 마침 엘리베이터도 여기 왔겠다, 재빨리 달려가려던 참에 경비용 펍헤드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잠시 정지하시게! 그 가방을 열어보아도 되겠는가?”

 

내 가방 말인가, 하고 펍헤드를 보고 있으려니 녀석의 카메라가 향한 곳은 브닐라의 길다란 가방이다.

 

펍헤드가 호출했는지 어느새 경비원이 다가와서 브닐라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

 

“....”

 

“사내 규칙은 총포 및 도검류의 반입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네!”

 

경비원은 벙 찐 얼굴을 하고 브닐라의 총을 들고 있었다.

 

번쩍번쩍한 흑철색의 쇳덩이와 나무 쪼가리. 고전적이면서도 위협적인 모습이다.

 

“...경호 목적이래도 이런 거 여기 갖고 오심 안되는데...”

 

“어엇, 그러면 주인님을 어떻게 지킴까? 군인은 개인화기를 항시 지참해야하지 말임다!”

 

“브닐라...얘가 어제 막 도착해서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이건 경비실에 맡겨놓고 나갈 때 찾아가도 될까요?”

 

“아, 네, 뭐....그렇게 하세요.” 

 

떨떠름한 얼굴로 브닐라의 총을 가방에 집어넣고 떠나는 경비원과 펍헤드. 브닐라는 아쉬운 듯 계속 그쪽을 돌아본다. “개인화기는 남한테 맡기는 거 아니지 말임다.”라고 쫑알대면서.

 

그리고 그 소동이 벌어지던 와중에 엘리베이터는 이미 저 멀리 올라가버렸다. 다시 내려오려면 한참 걸리겠네.

 

오늘도 참 험난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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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화가 왔읍니다


3화 삽화도 준비되어 있고, 시간 날 때 글만 마저 쓰면 되겠네요.


비교적 단순한 그림이랑 시간 조금 더 들인 그림을 섞어서 삽화 양을 늘려보았습니당


많은 피드백과 의견 부탁드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스 출첵도 잊지 마셔요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