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회고록(1) / (2) / (3) /(4) / (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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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하늘이 죽고 검붉은 하늘이 바로 서고 있었다. 별 대신 새빨간 눈을 부라리며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철덩어리들이 건물과 사람들로 음표를 만들어 악보를 채워 넣었다. 모든 이들이 사방으로 비명을 질렀고 건물을 제 육중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뿌연 먼지들을 토해냈다. 절망이라고 해도 좋을, 연옥이라고 불러야 할 지옥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당황한 제 형을 제치고 담벼락으로 성큼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꿈이길 바랬지만 그렇기에는 세상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어쩌면 타락한 인간들에게 내리는 천지신명의 벌이라고도 여겼다. 그래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했다. 이대로 사그라들면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사모해 마지 않는 금란. 그 작은 나비를.


그는 자연스럽게 제 아비에게 달려가 옷매무새를 여미고 작은 패물 상자안의 패물들을 모두 쏟아내고 주변의 약을 모조리 우겨 넣고는, 쭈글거리는 그의 아비의 손에 올려 놓았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자신의 형제의 팔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아버지를 부탁드립니다.”


“뭐?”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화원 뒷편의 헬리포트로 가십시오. 적어도 절벽으로 둘러 쌓인 곳이라면 저 무뢰한들이 한 번에 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거 미친새끼 아냐? 그래. 그러면 너는?”


그의 형제는 어리둥절한, 당황스러움을 채 지우지 못한 눈빛과 함께 말을 내 뱉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제 목숨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이 판국에 이 멍청한 인간은 희생하려고 팔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것이 형제의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이복(異腹)형제라지만, 가족은 가족이었다. 망나니라 불리는 이였지만 그럼에도 장자(長子)였다. 그렇기에 가문과 가족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의 형제는 그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야. 어짜피 여기는 도구년들이 막아. 그러니까...”


“그건 아니됩니다.”


“왜? 하. 미치겠네. 너 설마 그 도구년 기다리냐? 가족이랑 가문 다 버려두고?”


“형님.”


지옥을 방불케하는 밖과는 대조되는, 지나치게 차분한 어조였다. 그는 다른 한 손을 그의 손에 살포시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는 행해야 합니다. 그녀들은 명(命)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필시, 쉬이 무너질것이 분명 하겠지요.”


“그게 하필 너야? 왜! 다른 친가놈 하나 적당하게 붙잡아놓으면 되는거잖아!”


그는 입으로 자신이 다른 이들의 목을 베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이미 더러워진 손이었다. 위선자라고 칭해도 좋았다. 하나를 위해서 모두를 희생시켰다. 사랑 하나로 가문을 베어냈다. 어쩌면 이것은 아집이었다. 더 이상 돌아갈 이유가 없는 가문을 위해 희생한다. 적어도 자신을 낳아준 아비와 형제를 위해. 자신이 벤 이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아이러니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아우의 마지막 청(請)입니다.”


“하. 씨발. 진짜...!”


그의 형제는 우악스럽게 아비의 손에 올려 있던 상자를 뺏어 그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아버지 업고 달려야 하니까, 그거 니가 가져와. 알았냐? 살아서 와라. 그 도구년이 대신 오면 그 년 목부터 칠테니까.”


파괴적인 상냥함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그는 일평생 조금이나마 느꼈던 형제의 정이라는 것을 새겨넣었다. 그제서야 그는 형제의 팔목을 놓고 그의 아비를 향해 바로 섰다.


“아버지.”


그의 아비는 오랫만에 보는 광경이라는 듯 둘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앞에 설 때 즈음, 나지막히 말했다.


“아들아. 이제 봄은 오지 않는다. 긴 겨울만이 있을 뿐이지.”


“그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허나, 네 도구가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는구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행할 뿐이고, 그 아이도 감정에 따를 뿐입니다. 그것이 천지신명께서 정해준 운명이라면, 따라야 하겠지요.”


“그래.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 보거라.”


그의 몸이 웅크려졌다. 무릎이 굽혀지고 손이 포개어졌다. 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야 멈춘 이마가 손등과 맞닿을 때 쯔음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소자, 하직 인사 올리나이다. 먼저 눈을 감는 이 불효자를 용서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옥체 강녕하시옵서서.”


“되었다. 내가 무얼 더 듣겠느냐. 어서 업거라. 가자꾸나. 이미 밖에 있는 이들은, 차남에게 맡기면 되느니라.”


늙고 노쇠했지만 총기 있는 눈빛의 남자가 그의 형제에 등에 업혔다. 그제서야 고개를 든 그는 아비의 눈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슬픈 눈동자였다. 그것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타계했을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자신을 떠났을 때.


급박하게 달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는 눈에서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집어 품에 안았다. 살아야했다. 그리고 죽어야했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그는 거의 열려 있는 문으로 걸어나갔다. 여전히 붉은 연기와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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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모진 나날들이었사옵니다. 감옥 안에는 모든 것들이 시렸지요. 허나, 가장 시린 것은 소첩의 비루한 마음이었사옵니다. 연모하는 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감정이 채 끊어지지 않아 쓰라렸사옵니다.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아 식음을 전폐하는 나날이 늘어감에도 슬픔은 눈처럼 소복히 쌓여갔사옵니다. 


그럼에도 소첩은 돌아가면 아니되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꿈. 일장춘몽이요, 한단지몽이라 여겨야 했사옵니다. 만들어진 나비는 그저 장난감일 뿐이라고 여겨야 했사옵니다.


후회도 많이 내 뱉었지요. 마지막 한 마디를 내 뱉지 않았다면, 소첩만 힘들 것을. 끊어내지 못한 미련 하나에 이리도 서글프다면 처음부터 행복을 꿈꾸지 말 것을. 달콤한 꿀타래에 엮인 듯 녹아 사라질 것을. 그저, 도구로 살 것을.


모든 것이 야속했사옵니다. 유일하게 소첩을 내려봐주는 휘영청 밝은 달빛마저도. 하지만 어느 날이었사옵니다. 보지도 못한 이들의 비명이 들려왔사옵니다.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천지가 굉음을 내고 비명을 질렀고, 별과 달이 수놓아야 할 푸른 남빛의 하늘이 붉음으로 메워졌사옵니다. 네. 주인님. 철충이었사옵니다. 그 간악하고 자비 없는 철의 짐승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악스러운 무뢰배들이었지요.


그럼에도 소첩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사옵니다. 그저 감옥에 갇혀 반항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둘 하나의 도구였을 뿐. 그럼에도 천지신명께서는 소첩을 버리시지는 않았사옵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리리스 언니는 제 검을 감옥 안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사옵니다.


“가져가. 그리고 네 갈 길 가렴.”


“이게 무슨...?”


“너도 눈치는 채고 있지 않니?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내가 무얼 위해 너에게 검을 쥐어 줬는지.”


“언니.”


“이제는 네 맘 가는대로 해. 모든 것을 내 팽겨치고 도망치는 것도 방법 이야. 지금 주인님들이 너 같은 애 하나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하시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다른 선택을 원한다면 잘 들어.”


허나,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소첩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사옵니다. 제 감정을 잊지 못하고 끊어내지 못하는 미련덩어리 나비는 다시 향을 찾아 가기 마련이었사옵니다.


“본가에는 둘 째 도련님께서 남으셨단다. 나는 첫 째 도련님에게 주변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이곳에 좀 더 남아 있어야 해. 하지만 넌 아니지. 한 번도 명 받아본적 없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조금 궁금해졌어.”


“참으로 짖궃으십니다. 이미 답을 알고 계시는데, 어찌 저를 이리도 놀리십니까?”


“이해하렴. 원래 성격이 이렇잖니. 나 S거든.”


“애석한 일이옵니다.”


답은 정해져 있었사옵니다.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검으로 태어나 나비가 되어버린 이는, 돌아가야만 했사옵니다. 살아 남아 나으리를 지키는 것. 대지에 누워 홍천(紅天)을 바라보더라도 옆에 누워 바라보아야 했기에. 주인님. 모든 이들은 목적을 가진다면 해야할 일은 명확해지는 법이었사옵니다. 그 때 소첩은 누구보다 확고하게 행하였다고 자부하옵니다.


제 검이 검풍을 만들어내, 잘려나간 감옥의 문이 잘려나가 으스러질때, 소첩은 채집통에서 풀려난 한 마리의 나비였사옵니다. 드디어 나으리께 돌아갈 수 있다는 격정과 안위에 대한 걱정. 그렇기에 가야만 했사옵니다.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래. 뭐, 주인님의 명이니 따라야지. 어느쪽이지는 말 하지 않을게. 알려주면 재미 없잖아?”


“... 그것 또한 은혜로 받아들이겠사옵니다.”


“됐어. 어서 가. 쉬지 않고 달려가면 두 시간정도 될라나?”


그 순간, 소첩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음박질 쳤사옵니다. 끊어 내지 못한 이를 찾기 위해. 그리고 끊어지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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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이 영 안 써져서 폐관수련 좀 하다 이거 씀. 일도 많았고 심신이 지쳐서 그른가? 아님 말고


예전이랑 지금이랑 문체 조금씩 바뀌는게 보이긴하네


긍정적인건지 부정적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쪽이라고 생각함 예전보단 읽기 편하니까


어쨌든 읽어줘서 고맙다. 연말 잘 보내길 바람


여기는 눈 왜 안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