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마츠시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놀라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숨을 내쉬고 들이키는 공기 사이에는 짙은 물냄새가 났다. 물에서 무슨 냄새가 나겠는가. 정확히는 오래 고여있는 물이 점점 썩어가며 나는 악취에 가까웠다.

 눈을 뜬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멘트로 된 거대한 기둥들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은 보이지 않고 그저 끝없이 펼쳐진 시멘트로 된 천장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 웅장한 신전같이 보이면서도 미학따위 남겨둘 자리 없이 삭막한 구조물이었다.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양식을 들어보았는가. 폭력적인이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야만적이었고 공격적인 모습의 건축물은 지나친 기능에의 추구는 가만히 서있을 뿐임에도 사람을 위협할 수 있고 공포를 안겨다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마츠시타는 이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먼 옛날, 홍수를 막기 위해 지은 거대 배수장치였다. 도쿄 외곽 도심부가 빗물에 가라앉지 못하게 빠르게 빗물을 강과 바다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든 거대한 배수로였다.

 수도권외곽 방수로. 마츠시타는 어렴풋이 그런 이름을 들은 것 같았다. 그보다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명칭은 이것이었다. 지하 파르테논. 누구도 기리지 않는 신전은 그저 지하속에 머물며 비가 자신을 적시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이 조압수조에게 있어서 마츠시타는 그저 귀찮은 불청객에 불과하겠지. 천장에서 빛나야할 불의 대부분은 꺼져 있었고 마츠시타의 주변에 몇개의 전등만 눈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어 마츠시타의 눈을 괴롭히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굳이 몸을 흔들지 않았다. 팔을 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의자에 묶여있었다. 그녀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과 손가락과 발 뿐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마츠시타, 정신 차렸어? 죽은 줄 알았어!”

 토모의 말이 메아리와 함께 들려오자 마츠시타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마츠시타의 맞은편에 토모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걱정한다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동시에 마츠시타를 보고 반갑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죽은 사람의 몸에 이렇게 줄을 감아두겠어? 걱정하지마. 나는 멀쩡하니까.”

 이제 멀쩡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지만. 토모에게 진정하라 말했지만 마츠시타는 전혀 진정할 수 없었다. 자신을 잡아온 사람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마츠시타 자신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란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마츠시타가 일반인이라 해도 그녀를 잡아온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한두번 해본 것이 아니라는듯, 자연스럽게 그녀를 이곳으로 잡아왔다.

 토모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마츠시타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명의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대화. 그녀는 분명 그 단어를 사용했다. 그 대화라는 말에 이런 뒷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키리시마 이치카.”

 마츠시타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반면 키리시마는 반갑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마츠시타에게 다가왔다.

 “쥰, 일어났어요?”

 “키리시마 의원, 이게 당신이 말하는 대화라는 건가요? 지하 배수로에 사람을 묶어두고 협박하는 거요?”

 마츠시타는 화가 났다는 듯, 묶인 몸을 뒤척이며 외쳤다. 그녀의 말에 키리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제가 원한 게 아니에요. 이 자리를 만든 건 제가 아니에요.”

 키리시마는 턱으로 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대한 기둥앞에 서있는 남자의 얼굴, 마츠시타는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대화는 제가 만들어낸 거에요. 마츠시타, 이건 마츠시타에게도, 제게도 마지막 기회에요.”

 “뭐가 마지막 기회죠?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무릎 꿇고 빌라는 기회? 제 대답은 그때도 지금도 똑같아요. 저는 기자에요. 진실을 보고 외면할 수 없어요.”

 마츠시타의 말을 들은 키리시마는 안쓰럽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면 진실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그것에 목숨을 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저들은 쥰을 죽일 거에요! 날아다니는 파리를 죽이듯, 모기를 죽이듯 아무것도 아닌양 죽일 거에요! 쥰이 저들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쥰은 죽을 거에요. 그러면 목숨을 거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당신이 할 말인가요? 키리시마 의원, 당신이 만들어낸 법때문에, 그 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고서 하는 말이에요? 그들의 목숨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나요? 그들의 죽음에 의미가 있었나요?”

 마츠시타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기자인 마츠시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답을 알 날은 세상에 덴세츠 사이언스가 존재하는 이상 밝혀질 리도 없겠지.

 그러나 사람들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마츠시타의 눈앞에서, 마츠시타가 아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저 돈 때문에. 그저 바이오로이드로 돈을 벌기 위해. 그 욕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알아요.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하지만 필요한 희생이었어요. 쥰은 왜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아나요?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에요. 변화가 불러오는 희생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왜 해수면이 상승했을 때 이 나라 정부가 아무것도 못했는지 아나요? 기업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고 정부는 만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를 책임지기 싫었던 거에요. 그 결과는 우리는 모두 알아요. 공장들은 여전히 해변에 있었고 모두 바닷물에 가라앉고 말았어요. 그저 변화와 그에 따르는 희생이 두렵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탓이었죠.”

 재난의 앞에서 이 나라 정부는 무력했다.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도쿄만이라도 구한 것이 최선이었다고 자기위안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장소가 왜 버려진 곳이 되었는지 아시나요? 한때 이곳은 일본 건축의 상징이었어요. 수도권의 홍수를 막기 위해 이 어마어마한 시설을 지었죠. 그리고 효과적이었어요. 이 시설로 수많은 홍수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도 결국 한때였어요. 때는 20년 전이었죠. 해수면 상승으로 도쿄만이 닫히고 그럼에도 도쿄만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던 시기였어요. 바다의 수위가 올라갔지만 비는 오는 법이었죠. 이 수로가 다시 홍수를 막을 것이다. 그런 기대가 있었겠죠. 그러나 몇몇 직원은 알았어요. 도쿄만의 수위가 올라갔다는 것은 이 배수로가 연결된 에도강의 수위 역시 올라간다는 것을요. 그들은 반대했죠. 만일 이 수로를 개방하면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요. 그러나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어요. 왜인지 알아요? 홍수가 나면 일어날 피해가 두려웠던 거에요. 그리고 수로를 개방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역류가 일어났죠.”

 마츠시타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사이타마 대홍수.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홍수를 막기 위해 지어진 이 시설 때문이었다. 그 홍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는가.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게 그 사건은 마치 트라우마와도 같았다.

 “그 후 이 배수로는 실패작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폐쇄되었죠. 세금의 낭비, 재산의 낭비, 목숨의 낭비가 아닐 수 없었죠. 진짜로 잘못한 사람들은 있는데 이 애꿎은 예술품만 버려졌으니요.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결정권자는 현실감을 가져서는 안되는 법이에요. 왜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현실이 남지 않는 줄 알아요? 현실을 보게 되면 아무 선택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어느 것이 다수를 위한 이득이 될 수 있는지 결정해야 해요. 지나치게 현실을 본다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게 되어요.”

 “그래서 작은 희생에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묻어버리는건가요? 현실에 빠지지 않게 경계하는 게 아니라 그런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거에요. 현실을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없어요.”

 “쥰,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지난 20년간의 자살율이 어땠는지 아시나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요? 이 나라에는 부흥이 필요해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악화된다는 거에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앎에도 작은 희생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말란 건가요? 그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앞으로도 죽어갈 거에요. 이게 현실이에요. 쥰, 이 나라는 이대로면 끝날 거에요. 이 나라는 가라앉고 있어요. 모두를 살릴 수 없어요. 남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 희생을 치뤄야 할 때가 있어요. 모든 일에는 희생은 필수불가결이에요.”

 “그건 토오노도 마찬가지인가요?”

 세토 토오노. 키리시마 이치카의 보좌관이었고 마츠시타 쥰의 남자친구였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그의 죽음이었다. 세토 토오노의 죽음으로 마츠시타는 키리시마가 덴세츠 사이언스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더이상 키리시마를 친구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토오노군,”

 키리시마는 작은 눈물을 흘리며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는 죽어서는 안될 사람이었어요. 그래요. 그 희생의 당사자, 주변인이 되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지 알아요. 하지만 토오노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순 없어요. 토오노군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죽게 할 순 없어요.”

 마츠시타는 화가 났다. 토오노의 죽음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 마츠시타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항상 궁금했어요. 토오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요. 키리시마 의원, 당신과 일하는 토오노가 왜 죽었는지, 덴세츠 사이언스의 일을 하는 그가 왜 죽었어야 하는지요. 이제 알겠어요. 덴세츠가 죽길 바란 건 토오노가 아니었어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절 죽이려 했던 거에요. 키리시마 의원, 당신이 당시에 추진하고 있던 법안이 유출되지 않게 저를 죽여 입막음을 하려 했던 거라고요. 알겠어요? 당신이나 나나 같은 존재에요.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방해된다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라고요. 당신이 이 나라를 부흥시킬 것이라 주장하는 회사는 그런 회사에요. 그런 회사가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한 존재라 생각하나요?”

 “그럼 대안이 있어요? 덴세츠 사이언스 말고 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회사가 있어요? 없어요. 전부 과거의 유산을 안고 천천히 엔화속에 빠져들고 있는 구세대의 기업들 뿐이라고요. 가진 것이라고는 한물간 특허와 자기자본유지나 가능한 부동산뿐인 회사들이요. 그래요. 이건 악마에게 버스의 핸들을 맡기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악마는 버스에서 유일하게 차를 몰줄 아는 사람인 거에요. 그리고 그 악마도 결국은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랄 거고요. 제발, 쥰. 이건 마지막 기회에요. 제발. 이 기회를 헛되이 쓰지 마요. 난 쥰이 죽는걸 바라지 않아요. 쥰과 나는 같이 일할 수 있어요. 예전과 같이 말이에요. 그때로 돌아가는 거에요. 쥰은 비리를 파헤치고 저는 그걸 돕는 거에요.”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현재를 잊고 아무것도 아닌양 과거처럼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과거를 잊자고 하는 사람은 자기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을 마츠시타는 들어줄 수 없었다.

 “쥰. 그냥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덴세츠 사이언스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되는 일이에요. 그리고 쥰은 다른 기삿거리를 찾으면 돼요. 겨우 그뿐인 일이라고요. 쥰, 제발. 이건 쥰의 목숨이 달린 일이에요.”

 키리시마 의원은 애걸하듯 마츠시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마츠시타는 고개를 돌려 거대한 기둥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지하 파르테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키리시마가 말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갔다. 잠시간의 일이었다. 마츠시타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