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당일.


일정대로 이벤트를 위해 안정화가 이루어진 섬에 상륙한 오르카 호 대원들의 머리 위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을 부린 것처럼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을 본 그녀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 앞에 눈이 서서히 쌓이자 대원들의 표정에 장난기가 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식별 없는 눈싸움이 시작됐다.


즐겁게 놀고 있는 대원들을 패널로 흐뭇하게 바라본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사령관실에서 빠져나가 지금 이 광경을 만들어낸 공로자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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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이틀 전.


일과시간이 끝난 후인 17시부터 18시까지 짤막하게 들려오는 오렌지의 라디오는 오르카의 명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아마 오렌지 특유의 입담이 대원들의 코드와 서로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하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끝낼 시각이 다가오자 오렌지는 적절하게 사연을 끊어 마무리할 준비를 마쳤다.



「지금까지 오렌지에이드의 라디오, 오르카 라이브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마무리는 일기예보! 어디보자,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에? 이거 진짜…?」



마치 산타클로스는 원래 없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아이들처럼, 오렌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녀의 반응에 대원들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늘부터 크리스마스 다음 날까지 눈이 내리지 않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네요. 아쉽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다음에 기대해야겠어요…」



그 뒤로 오렌지가 아쉬움을 토하며 마무리 멘트로 라디오를 마쳤으나 방송을 듣고 있던 대원들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눈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폭탄 발언에 대부분의 이들이 탄식했고 소수의 인원이 마음속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샐러맨더! 날씨 내기 내가 이겼으니 어서 참치캔을 내놓으시지!"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이런 거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항상 승리를 해왔던 샐러맨더는 하이에나한테 걸려 패배할 위기에 직면했는가 하면



"히잉 이번에는 꼭 님프 언니를 본뜬 눈사람을 만들려고 했는데…"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알비스. 남겨둔 초코바 하나 줄 테니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알비스를 님프가 남은 초코바로 달래고 있었으며



'나이스! 이번 크리스마스엔 반드시 짱박혀서 스팸 까먹을 겁니다!'



지난번 세인트 오르카 때 못했던 일을 하리라 마음먹은 어떤 대원의 염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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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원들이 술렁이고 있을 무렵에 사령관은 닥터와 만나 상담하고 있었다.



"닥터,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야?"


"맞아 오빠. 이번에는 아쉽게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야."



닥터의 확답에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내린다는 전제하에 기획한 이벤트들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군 사령관이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닥터가 사령관을 향해 슬쩍 운을 뗐다.



"하지만 낙담하긴 아직 일러. 오빠가 단 두 명만 설득하면 눈을 내리는 연출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



닥터의 말에 사령관이 벼락 맞은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두 명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야?"



그녀를 덮칠듯한 사령관의 기세에 닥터가 놀란 것처럼 몸을 움찔했으나 이내 헛기침 소리를 내곤 사령관의 질문에 답했다.



"하나는 레아 언니고 다른 하나는…티타니아 언니야."



닥터가 무슨 의도로 그 둘의 이름을 말했는지 알아챈 사령관이 '아' 하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둘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아챈 사령관이었으나, 레아라면 모를까 아직까지도 날이 서 있는 티타니아가 순순히 힘을 빌려줄지는 미지수였다.



"그것도 그런데 과연 레아와 같이 행동해줄지…"


"무려 날씨를 바꾸는 건데 그 정도는 노력해야지. 안 그래?"



하지만 닥터의 말마따나 없는 눈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그 둘의 협력이 필수.


닥터의 조언을 들은 사령관은 그녀한테 고맙다는 말을 남긴 후 먼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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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을 되뇌며 오랜만에 예복을 갖춰 입은 사령관은 레아가 머무르는 숙소로 향했다.


'레아'라고 쓰인 팻말을 확인한 사령관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레아, 나야. 안에 있어?"


"주, 주인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느긋한 사령관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안에서 들려오는 레아의 대답엔 다급함이 느껴졌다.


우당탕탕! 쨍그랑!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소음이 서서히 멎자 문이 스르륵 열리며 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레아의 모습에 사령관의 시선이 슬며시 시선을 방 안으로 향했다.


그곳엔 무언가를 급히 치운듯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사령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레아가 뾰로통한 얼굴로 사령관을 흘겨보았다.



"너무해요, 주인님. 오신다고 미리 말씀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부탁이 있어서. 다음에는 꼭 미리 말할게."


"…일단 들어와 주세요."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동그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령관과 레아와 마주 보고 앉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근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사령관은 사족을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떤 경위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은 레아가 알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티타니아의 의사는요?"


"티타니아를 설득할 방법은 따로 생각해놨어. 어떻게 생각해?"


"그럼 충분히 가능해요. 물 한 방울 없는 내륙 한가운데라면 모를까, 사방이 물로 가득 찬 바다니까요."


"그러면 잘 부탁해, 레아."


"…잠시만요."



사령관이 일어나려 하자 레아가 그의 두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티타니아가 협력을 거부해도 그녀를, 제 동생을 심하게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물론이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쪽!


레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사령관의 기습 애정표현에 레아의 볼이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고개를 푹 숙인 레아를 뒤로한 채 사령관은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레아는 두 손으로 붉은 볼을 감싼 채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하읏…고작 키스 하나로 이런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입히다니 반칙이에요,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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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티타니아는 자신의 눈앞에 놓여 있는 봉투 더미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봉투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시선이 가 있었다.


종이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나눌 대화가 있으니 봉투 안에 있는 옷을 반드시 입고 2층 0구역에 위치한 키르케가 운영하는 바(bar)로 찾아올 것. by 사령관'


"…이런 거 필요 없는데."



마음 같아선 봉투째로 얼려버려 산산이 조각내고 싶은 그녀였으나 사령관의 명령으로 인해 거부권은 없는 상태. 


사령관을 향한 증오의 불길이 한층 더 거세졌음을 느낀 티타니아는 혀를 차며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들을 탁자 위에 쏟았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듯한 검은 광택의 파티 드레스와 미니햇 그리고 하이힐 한 쌍, 목도리 같은 길쭉한 털 뭉치, 가죽으로 만들어진 숄더백, 사파이어 목걸이까지.


평범한 바이오로이드라면 사령관의 선물에 기뻐하겠지만 티타니아한테는 그저 귀찮은 옷 갈아입기에 불과했다.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든 옷을 갈아입은 티타니아는 방에서 나와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 갔다.


티타니아와 마주한 몇몇 대원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그녀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고개를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쯧 이런 거에 의미가 있을 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령관이 초대한 곳에 도착한 티타니아는 문 앞에 걸려 있는 'CLOSE' 팻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려던 그때, 닫힌 문이 열리며 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입고 와줬네. 고마워, 티타니아."


"…"


"음, 일단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래? 표면상으로는 오늘 휴업이니까."



사령관의 제안에 티타니아는 말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처럼 한창 손님이 올 저녁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의 인기척이라곤 사령관 하나뿐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자리로 티타니아를 데려간 사령관이 어서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은 티타니아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와인병들과 와인잔을 무시한 채 사령관한테 질문을 던졌다.



"용건이나 말해. 여왕을 부른 이유가 뭐야?"


"그냥 서로 대화 좀 하자고 부른 거야."


"난 농담을 싫어해. 그리고 그게 진심이라면… 고작 그런 이유로 여왕을 부른 거야?"



순식간에 내려간 주변 기온과 가시 돋친 티타니아의 대답에 사령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농담은 상황을 봐가면서 하는 사람이야, 티타니아. 너랑은 정말로 진지하게 대화하려고 부른 거고."


"…그래. 적어도 네 눈빛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네."


"그리고 서로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해선…"



말끝을 흐린 사령관은 와인 하나를 골라 봉인된 뚜껑을 땄다.



"술이 제격이지."



그러곤 서로의 와인잔에 조심스럽게 와인을 따랐다.


건배를 위해 와인잔을 집은 사령관이 티타니아 쪽으로 잔을 살짝 내밀었으나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유리잔의 절반 정도를 채운 붉은 빛의 와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령관이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와인 마셔본 적 있어?"


"아니."


"미리 말했으면 알려줬을 텐데. 일단 잔을 집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알려준 사령관의 노력에 보답하듯 티타니아는 능숙하게 와인잔을 집어 사령관 쪽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 또한 살짝 잔을 내밀었다.


짠-


서로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둘은 동시에 와인잔을 입에 가져갔다.


눈을 감고 와인 맛을 음미한 사령관은 흔쾌히 이런 것을 내준 키르케한테 감사했다.


와인에 대한 소감을 묻기 위해 눈을 뜬 사령관은 티타니아의 와인잔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원샷한 거야?"


"…맛있어."


"급하게 마시면 취할 거야."


"신경 꺼."



결국 티타니아의 무절제한 음주로 인해 와인병은 어느샌가 네 병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맛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그녀가 와인을 잔에 따를 때마다 연거푸 들이켰기 때문이다.


마신 양이 제법 되다 보니 어느샌가 그녀의 볼에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딸꾹."


"저기, 티타니아 씨? 이제 그만…"


"이거 더 줘. 맛있단 말이야!"



탕! 탕!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주먹을 내려치는 티타니아의 모습에 사령관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사령관은 티타니아와 이야기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티타니아. 네가 이곳에서 깨어난 지 한 달 좀 넘었지?"


"…이제서야 신경 써주는 거야? 가증스럽긴."



기분이 상한 듯 고개를 홱 돌리는, 평소에 보이던 모습과 비교되는 귀여운 반응에 사령관이 속으로 웃었다.


오늘이 끝나고 다음 날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엔 모자람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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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달그락 달그락.


식기가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에 티타니아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났다.


누군가 있음을 느낀 티타니아가 곧 시체처럼 상반신을 일으켰고 소음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평소와는 다른 낯선 두통이 그녀한테 엄습해옴으로써 무산됐다.


찌릿!



"윽…아파…"



티타니아가 웅크리고 있는 사이, 그녀가 깨어난 것을 알아챘는지 사령관이 양손에 컵을 든 채로 나타났다.


예상외 인물의 등장에 티타니아가 경계태세를 취했다.



"니가 왜 여기…윽."


"일단 이거 좀 마셔.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될 테니까."



사령관이 내민 컵을 본 티타니아는 순간 갈등이 일어났지만, 얌전히 두 손으로 사령관이 내민 컵을 받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컵 안에는 꿀물이 담겨 있었다.


본능적으로 꿀물을 들이켠 티타니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과 메스꺼움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사령관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보인 호의를 발로 걷어찰 정도로 호감이 없던 것은 아니었기에, 티타니아는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꺼냈다.



"…고마, 워."


"다음부터는 적당히 마셔. 어제 일은 기억나?"


"그래, 모두 기억하고 있어… 레아와 함께 합을 맞춰달라는 거지?"


"응. 하지만 난 강요하고 싶지 않아.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페어리 애들. 특히 레아하고는 만나고 싶지 않아."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하고 사령관이 단념하려던 그때, 티타니아가 뒷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네 부탁이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줄게."


"…! 정말 고마워, 티타니아!"



살았다는 표정으로 티타니아를 소리 나게 껴안고 그녀의 하늘색 머리카락에 볼을 비비자, 갑작스럽게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온기에 티타니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 이거 놔!"



티타니아는 바동거리며 자신을 끌어안은 사령관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사령관은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몸을 빙글빙글 돌리기까지 했다.


결국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티타니아는 사령관의 품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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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난관이라 여겼던 티타니아를 설득한 이후부터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티타니아의 힘이 너무 세서 온도를 적당히 낮춰 구름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난관이긴 했으나, 약 다섯 시간 넘게 합을 맞춘 끝에 그 둘은 눈구름 만드는 것을 성공했다.


그리고 대망의 크리스마스 당일.


둘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눈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노력한 여왕을 위해 사령관은 미리 준비해둔 조그마한 상자 한 개를 들고 출격 포트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천천히 날아오고 있는 페어리 둘을 사령관은 웃는 표정으로 맞이했다.


동시에 포트에 착륙하자 사령관이 먼저 말을 건넸다.



"둘 다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주인님."


"여왕은 먼저 들어갈게."


"…잠깐만!"



이 자리에서 먼저 떠나려는 티타니아를 제지한 사령관이 귓속말로 본론을 전했다.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티타니아의 앞에 선 사령관은 숨기고 있던 상자를 꺼내 열었다.


검은 상자 안에는 반지가 하나 껴 있었는데 반지의 옆면에 작은 글씨로 '티타니아'가 새겨져 있었다.


그걸 본 레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머' 소리를 연달아 냈고 티타니아는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사령관을 째려보고 있었다.


티타니아의 반응에 사령관이 헛웃음을 지었다.



"조금 늦었다고는 생각하지만 받아줄래?"


"축하해요, 티타니아."



상자에서 반지를 꺼낸 사령관이 티타니아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미지의 감정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티타니아가 머리를 숙인 채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째서 여왕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 같은 실패작한테?"



문득 지난 밤 사령관이 한 이야기가 티타니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아직도 행복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시선을 느낀 티타니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마주하고, 마침내 항복 선언을 했다.



"…그래. 내가 졌어. 여왕의 패배야. 전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여왕을 행복하게 만들어봐."



그런 티타니아의 시선을, 사령관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그녀의 주변을 허락한 여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열게 되리라.


그렇게 해프닝이 일단락되자 헛기침을 두세 번 내뱉은 사령관이 둘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오늘 밤, 둘 다 내가 전에 선물해준 옷을 입고 비밀의 방에 와줬으면 해. 알겠지?"


"…어머 주인님도 참! 알겠어요."


"…? 알았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레아가 쑥스럽다는 듯이 답했고, 티타니아는 별다른 생각 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무사히 보낸 오르카 호 대원들이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오르카 END-




번외편



"아니 분명 눈이 안 내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이 오는 게 어디 있슴까!"


"브라우니. 불평할 시간에 어서 눈 치우세요. 연대장님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나요?"


"크윽! 하얀 쓰레기를 내리게 하는 하늘도 참 무심하지 말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원망하며 브라우니는 눈앞에 쌓여있는 것들을 치워나갔다.



………



"역시 하늘은 내 편인가 보네. 안 그래 하이에나?"


"아이 씨! 뭐 이딴 경우가 다 있어! 난 인정 못 해! 폭탄 맛 좀 봐라!"


"어? 너 그거 진짜 폭ㅌ…!"



펑!



………



"님프 언니, 눈사람 완성했어!"


"와, 알비스 잘 만들어… 잠깐 왜 이렇게 배가 나왔어요?!"


"그치만 님프 언니 살ㅉ…앗! 내 눈사람!"



퍽! 소리와 함께 님프를 닮은 눈사람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눈사람을 처리한 님프가 저 멀리 도망가고 있는 알비스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에요, 알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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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에 티타니아 서브스토리 나왔길래 썼음. 여왕님 애껴요.

p.s 이 오류는 전술교본 문제임, 사용자 컴 문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