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커피를 즐겨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주에 3번 이상은 까페를 이용한다.

집에서 작업할때 생기는 게으름이란 녀석을 쫒아내기 위해 밖으로 나가 꾸역꾸역 타이핑을 치는 것이 생업인지라, 앉을 의자와 노트북을 놓을 테이블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고, 이에 부합하는 장소가 바로 까페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느새 방문한 까페수만 해도 수십여곳에 날 알아보는 단골집까지 생겼고, 이런 일상에서의 소소한 만남들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날 일도, 날 알아볼 이도 없을만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옮겨졌다.

그렇게해서 오늘 도착하게 된 곳은 오르카 특별시 빨통도 크군에 위치한 까페 호라이즌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기분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까페에 입장하자 인사를 맡은 점원은 나를 향해,

"평일 이 시간에 까페?? 백수♡ 허접♡"

이라는 말과 함께 묘한 눈웃음을 치며 비웃었고, 이런 대접에 기분이 상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서야 눈치 빠른 점원 중 한명이 대신 사과를 하며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실수를 했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점원 한명으로 가게 전체를 판단하는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치졸한 방법이라 생각한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한 뒤 최대한 햇빛이 비추지 않는 으슥한 자리를 골라 노트북을 펼쳤다.

뭔가를 쓰긴 해야하지만 생각이 나지않아 고민하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방금전 사과했던 직원이 찾아와 물었다.

"손님, 오늘은 내린 커피가 괜찮게 나왔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문도 안한채 자리나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쪽팔림과 함께 놀라웠던건 바로 점원의 질문이었는데, 주문을 해야한단 말을 직접적으로 말해 창피를 주려는 것이 아닌, 메뉴추천을 해줌과 동시에 주문을 해야 한단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한 잔 부탁할게요"

그렇게 정중한 배려를 받은 나는 입구에서 당했던 모욕적인 일에 대한 생각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하염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어느새 타이핑을 치고있었다.

'서비스란 무엇인가'

제목은 정해졌고, 이야기의 시작은 방금전 겪은 일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

이야기에 살을 붙여가며 몰입하고 있을 즈음, 테이블 옆에 조심스럽게 커피가 담긴 잔 하나와 영수증이 놓였다.

작업에 몰입중인 날 방해하기 싫었던 점원의 사소한 배려에 또 한번 감동한 나는 직원이 추천해 준 커피를 한모금 마셨고, 그 한모금과 함께 모든 것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분명, 커피의 향과 맛을 가지고 있지만 위화감이 잔뜩 드는 맛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티백......이런 커피는 듣도보도 못한 메뉴였고, 있어서도 안될 커피라고 생각한 나는 조용히 점원을 불러 말했다.

"아무래도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점원은 놀라며 주문서를 확인했고, 그녀는 주문서와 영수증을 번갈아보더니 제대로 나간게 맞다고 이야기했다.

"아니....이런 커피가 세상에 어딨습니까. 제가 다녀본 까페만 몇군데인데 내린 커피가 이럴리가 없습니다'

"네??? 아...오해하셨구나. 이건 네리커피에요"

생소한 이름이었다. 처음 설명할때 제대로 듣지 못한 내 무지함에 다시 한번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이와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네리커피란게 뭔지 알려주실수나요?"

"그럼녀~바로 알려드릴게요"

귀여운 목소리로 카운터로 달려간 그녀는 카운터에 서있던 양갈래 머리를 한 점원 한명을 데려왔고 직접 네리커피란 메뉴가 무엇인지 시연을 보여주겠다며 장비를 가져왔다.

"흠흠....먼저 로스팅한 원두를 이렇게....."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이 입고있던 팬티를 벗은 뒤 삼각대에 올려 거름망으로 이용했고 이제서야 이 찝찝한 맛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걸 커피라고 파는겁니까 지금!!!사장님 불러오세요!!"

이건....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식문화에 큰 관심은 없는 편이지만 이 행위는 그것들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한 나는 언성을 높였고, 잠시 뒤 사장이라 불리는 자가 내 앞에 나타났을때, 내 머리는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무슨 문제있으신가용?"

정상적인 대화가 통할리가 없어보이는 천박한 복장과 달리 침착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질감을 배로 증가시켰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단 생각에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저런......저희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네용....이걸 어찌해야 좋을지"

"그냥 제대로 된 커피로....한잔 부탁드립니다"


그냥 나가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기회를 줘보고 싶었던 나는 사장에게 말했고 그런 기대는 당연하게도 보기좋게 배신당했다.

"그러길래 메뉴얼대로 하라고 했잖아용! 먼저 원두를 입에 넣고 곱게 씹어....."


입에 원두를 한웅큼 집어넣고 입으로 갈고 있는 사장을 보자마자 난 노트북을 챙길 생각도 못한채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왔고, 습작들이 가득 들어간 노트북이 아깝긴 했지만 연식이 꽤 오래되었으니 어차피 바꿀거였단 정신승리를 하며 12개월 할부로 새 노트북을 구입했다.

그 일이 있고 벌써 2달이 지났다. 용기를 내 노트북을 찾으로 다시 가봐야하나란 생각이 들다가도 광기에 젖은 커피 한잔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쉽사리 옮겨지지않는다.

현재는 휴업중인 오르카 특별시 빨통도 크군에 위치한 까페 호라이즌은 실존하고 있는 곳이었을까?? 단순히 업무에 찌든 나머지 망상이 현실처럼 느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의 그 커피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