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의 전설이 있다는거.. 알고 있어?

***


"이걸로 오늘의 업무는 종료되었어요. 폐하."


아무런 말도 없이 무언가를 두드리던 소리만이 가득한 함장실에서 아르망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가뭄의 단비처럼 아르망의 작지만 꿀 같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업무에 집중하던 사령관은

그대로 바닥을 밀어 의자와 자신을 뒤로 뺀 채 양 팔을 하늘로 높게 들어 올렸다.


"으으... 으으으으..."


"수고많으셨어요. 폐하."


굳어버린 팔을 높게 하늘로 들어올리면서 기지개를 펴고 있던 중 아르망이 미소를 보이면서 사령관에게 접근했다.

아르망이 오자 사령관 또한 미소로 화답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말을 꺼냈다.


"아르망도 오늘 수고 했어. 다른 애들은 전부 휴가인데 아르망만 고생이었네."


"그건 아니에요. 저는 폐하를 보좌하며 페하와 함께 하기 위해서 태어난 몸. 언제나 폐하의 곁에 있는 것이.. 제.."


일어서서 내려다 보았을 때는 역시나 작아보이지만 

어깨와 가슴을 편 채로 당당하게 서서 말하는 아르망을 본 사령관은

말하고 있는 아르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폐.. 폐하?!"


"그래도 쉴 때는 쉬어야지. 제대로 쉬지 못해서 아르망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 그래도 괜찮아요. 전 항상 폐하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했"


"그러다 정말로 아프면 내 곁에 있지 못할 거 아니야?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둬."


그 말을 하면서 사령관은 아르망의 머리 위에 올린 손을 양 옆으로 움직이면서 아르망을 쓰다듬었다.

사령관의 다정한 말과 컴패니언과 히루메를 쓰다듬었던 경험으로 머리 쓰다듬 마스터가 된 그의 손길을 받으면서

아르망은 행복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다.


"에헤헤.. 폐하..."


기분이 너무 좋았는지 항상 진지했던 아르망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이상한 효과음 비슷한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의 아르망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사령관은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아르망을 쓰다듬었고

그 둘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서서 쓰다듬고 쓰다듬당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았다.


계속 쓰다듬을 당하다 겨우 제정신을 차린 아르망은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사령관의 손목을 잡았다.

생각없이 손만을 움직이다 아르망의 터치에 제정신을 차린 사령관은 드디어 초점이 맞춰졌는지 아르망을 바라보았고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아르망이 먼저 말을 꺼냈다.


"폐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지요."


"...오늘? 어.. 그게.."


아르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령관은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 그게.. 그러니까..'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질문을 던진 아르망이 직접 입을 열었다.


"폐하. 오늘은 동지입니다.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라고도 하죠."


"아! 그래 동지! 기억날 듯 말듯 했었는데 말이야 하하.."


"...아무튼 폐하. '동지'에 관련되어 있는 한 가지 전설을 알고 계신가요?"


"전설?"


"예 폐하.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설은 팥죽을.."


아르망이 동지에 관련되어 있는 전설을 사령관에게 소개하려고 할 때, 갑작스럽게 함장실의 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아르망은 하던 말을 멈추고 말 없이 사령관을 바라보았고 사령관이 문을 열라는 말을 하자마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사령관! 지금 한가.. 해?"


문을 열어 준 사령관을 향해 말을 꺼내면서 하르페이아가 함장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얇은 책이 아닌 조금 두꺼워 보이는 책을 들고 왔었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지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업무 전부 끝났으니까.. 시간은 한가하지? 그런데 오늘 무슨 일이야?"


"아..! 그..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해서 말이야.. 아하하하.."


조금 부끄러운지 하르페이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시선을 돌렸고 사령관이 방금 아르망에게 들은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연 그때, 아르망이 사령관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폐하께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다.. 궁금해하시는 '그 전설'에 관한 내용도 모르시는 눈치입니다."


"그.. 그래..? 그렇구나아~ 아하하... 하하..."


아르망의 말을 듣자 하르페이아는 다시 멋쩍은 듯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무언가 아르망과 하르페이아는 잘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오늘이 동지라는 사실도 그리고 아르망이 말하려다만 전설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는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의 이야기에 참여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녀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지금 나만 모르는 것 같은데 있잖아.. 나도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예 폐하. 다시 말하겠습니다만 동지의 전설은.."


"미안한데.. 이건 내가 사령관에게 얘기해도.. 괜찮을까?"


또 다시 아르망이 입을 열어 설명하려는 그때 문을 두드린 것처럼 이번에도 하르페이아가 아르망을 방해하며 말을 끊어 먹었다.

하지만 문을 두드렸을 때와는 다르게 하르페이아는 자신의 손에 든 책을 말없이 아르망에게 가리켰고 그런 모습을 본 아르망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사령관은 다시 소외되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말하는 그 전설이니.. 그건 도대체 뭐라는거야..? 나도 슬슬 궁금하니까 말해주면 안될까?"


결국 너무나도 궁금한 사령관은 다시 입을 열어 그녀들에게 말했지만, 눈 앞에 있는 아르망과 하르페이아는 그의 말을 못 들었는지

서로를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갑작스럽게 아르망이 하르페이아의 앞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저기..?"


"..저도 오늘만을 기다려왔어요..! 지금 순간은 그 누구도 양보 할 수 없어요! 저도 폐하께..! 읏..! 폐.. 폐하께에..."


"나.. 나에게? 나에게 뭘 그러는거야 아르망?! 얼굴은 왜 빨개진거고..?!"


"사령관. 저 쪽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말 해줄게. 동지에 관한 전설은 말이야.."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몸에 팥죽을 묻히고 정을 나누는 것. 이게.. 동지의 전설이야 사령관."




..하르페이아가 아주 당당하게 입 밖으로 전설을 말하자 아르망은 더욱 얼굴이 붉어진 채 바닥만을 바라보았고

사령관은.. 마치 돌이 되버어버린 것처럼 가만히 입을 벌린 채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조용한 지금의 상태에서 하르페이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옛날에 어느 한 부부가 살고 있었어. 그 부부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동지에 팥죽을 문 밖으로 뿌릴 수도 없을 정도였어. 하지만, 그 팥죽을 뿌리지 않으면 나쁜 귀신들이 집에 몰려와 나쁜 기운을 만들어 액운을 부르고 잔병을 치르게 만드니까 어쩔 수 없이 귀신들을 막는 팥죽을 서로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대."


"...그것까지 이해는 했는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정을 나누면서..?"


"으.. 응.. 원래는 팥죽을 문 밖으로 뿌리면서 귀신들을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방어막과 비슷한 역할을 해야 했는데 서로의 몸에 바르니까 귀신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된 거야. 그러니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을 나눔으로서 좋은 기운을 만들어내서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일종의 방어막을 만드는 것을 한게.."


"..그게 동지 전설이야?"


"앞으로 조금 더 있어. 아무튼 서로의 몸에 팥죽을 바르고 정을 나눈 그 이후로 그 부부는 잔병도 치르지 않았고.. 액운도 없었다고 하고.. 그 부부는 서로 금술이 좋게 싸우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지니까 그것이 전설이 되어버린거야."


"그리고 그걸 나에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야 당연히.. 사령관과.. 그 전설을 시험해보고 싶으니까..?"


그 말을 하고 난 뒤 하르페이아는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하르페이아가 이곳으로 와 동지 전설을 말한 이유를 알게 된 사령관은 그녀를 보고 다른 말 없이 한숨을 쉬었지만..

이 함장실에 있는 다른 한 명에게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내게 이 전설을 말해주려고 했던 아르망도.. 하르페이아와 같은 의견이라고 보면.. 되겠지..?"


조금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령관이 말을 하자 구석에서 얼굴을 붉힌 채 부끄러워 하고 있던 

아르망은 흠칫 놀라며 사령관을 말없이 흘겨보았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는 듯 했으나..


"네.. 폐하.. 저도.. 폐하와 그 전설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입을 열어 사령관에게 대답했다.


"...그럼 너희들은 그 전설이 나와 너희들에게 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얘기를 꺼낸거지?"


"네.. 폐하."


"하지만 이 전설에는 한가지 중요한게 있지 않았어?"


"중요한.. 거라뇨?"



"팥죽이 없잖아. 이곳에는."


사령관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아주 당연한 말을 꺼냈다.

이곳에 있는 것 뿐이라곤 사령관이 평소에 사용하는 물건이나 가구나 침구 그리고 옷.

다른게 있다면 하르페이아와 아르망의 존재였겠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팥죽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저녁을 많이 지난 새벽 시간이야. 오후 11시. 나는 오늘 저녁을 먹지 않았으니까 팥죽의 존재도 몰랐고

오르카의 잔반은 조리 시간 이내에 처리되는 시스템이라 지금 남은 팥죽은 없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은 팥죽이 없는 이유를 눈 앞에 있는 그녀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르페이아와 아르망은 웃고 있었다. 마치 경주견이 달리는 것을 보고 있는 치타처럼..

그리고 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의문을 한번에 풀 수 있다는 것처럼 아주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르페..? 아르망..? 왜 웃고 있는거야?"


"흐흐.. 사령관. 이 전설만을 기다려 온 내가 팥죽을 준비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거야?"


"후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폐하와의 지금 이 시간만을 기다려온 제가 준비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하르페이아는 자신이 가져 온 책을, 아르망 또한 항상 소지하고 다니던 책을 열어 사령관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책에는...


"폐하의 업무가 늦게 끝나는 것은 부관인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모를까봐.. 나는 이 책에 구멍을 파서 팥죽을 몰래 가져왔다는 말씀!"


하르페이아와 아르망의 책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안쪽에는 비닐로 밀봉되어 있는 팥죽이..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령관. 팥죽이 없다는 변명은 할 수 없어."


"그리고 폐하. 저는.. 폐하와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 함께 이 전설을!"

"시험해 주세요! 폐하!"


그 말을 하며 하르페이아와 아르망은 서로가 가진 책을 사령관에게 더욱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리고 책이 가까워지면서 눈 앞에 있는 두개의 팥죽이 존재감을 더욱 과시하고 있었다.


이제... 사령관에게 더 이상 피할 길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