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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랜만이야.”

 에릭 발렌타인은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펍의 나뭇바닥은 에릭이 밟자 끼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에릭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펍은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잔을 들고 외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술에 반쯤 취한 사람이 바에 머리를 반쯤 파묻고 옆사람에게 큰소리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펍은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술집이 조용할 리가 없었다. 낡고 허름한 펍의 벽에는 그 소란스러움이 항상 배여있었다. 아무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에 조차 귀에서는 밤새 떠들던 사람들의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였다.

 그와중 다행히 에릭의 말은 펍의 주인인 조지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미 손님과 몇번을 잔을 맞부딫혔을 지 모를 그의 양 뺨은 흰 수염 속에서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에릭이 들어오고 있는 문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 맙소사, 에릭 발렌타인! 한동안 안와서 죽은줄 알았잖아.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죽긴 뭘 죽어. 일이 바빠서 몇달동안 못왔을 뿐이잖아. 스타우트로 줘. 맨날 마시던 걸로.”

 에릭은 씩 웃으며 스툴에 앉았다. 얼마만에 오는 킹 조지인가. 이제는 향수를 느낄 정도였다. 고작 네달에 지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가게에 오던 단골이 한동안 얼굴을 안비춘 건 두가지 이유야. 병원에 입원했거나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하게 되었거나. 그러면 무슨 사연인지 들어볼까? 대체 어떤 일을 해결하고 왔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가게에 못오게 된 건데.”

 잔을 꺼내 맥주를 따르며 조지가 물었다. 에릭은 손을 내밀어 바 한쪽에 쌓인 코스터 하나를 꺼내 바닥에 세워 돌리며 그간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한 아기를 찾고 있었어. 안타깝지만 해결은 커녕 일만 더 커졌지.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몇몇 사람을 찾아가고 몇몇 장소만 찾아가면 결국은 찾기 마련이야. 중요한 건 누구와 어디를 찾아야 할 지 알아야 한다는 거지.”

 미안하다. 역시나 간단하게 끝날 말은 아니었다.

 “한 아기, 정확히는 그 아기를 데리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였어. 그 바이오로이드를 찾으면 되는 일이 이렇게까지 길게 늘어진 거야. 일을 너무 얕본 거였지.”

 에릭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 세 기의 바이오로이드가 에릭의 뒤를 따라 펍으로 들어왔다. 아자젤, 바닐라 A1, 펜리르였다.

 “국왕 조지 폐하, 오랜만입니다.”

 아자젤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들어왔고,

 “왕이라고요? 여기 펍 아닌가요? 왜 왕이 있는 거죠? 제가 아는 조지 7세 폐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요.”

 바닐라 A1은 꺼림직하다는 표정으로 조지를 보며 들어왔다.

 “왕? 여기 왕도 오는 데야? 왕 만날 수 있는 거야?”

 펜리르까지 저마다 한마디씩 하더니 에릭의 옆에 나란히 앉았고 한창을 이야기하던 에릭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렸다.

 “조지 폐하, 제게는 에일 한 파인트 하사해 주실 수 있겠사옵나이까?”

 아자젤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왕을 만나는 신하와 같은 손동작을 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지는 피식 웃었다.

 “그만둬. 그런 농담을 하는 건 저기서 축구보는 남정네들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그 옆에 앉은 분들은 뭐 드릴까.”

 바닐라 A1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은 게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저는 가벼운 밀크티로 부탁드립니다. 잎은 뭐든 상관 없습니다.”

 “밀크티? 그런 거 주문할 거면 다른 가게 알아봐. 여긴 펍이야. 술집이라고. 있는 건 맥주들 뿐이지만. 어떤거? 추천해줄까?”

 조지의 말에 바닐라 A1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바에 늘어선 맥주탭의 상표를 보더니 그것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숫자 적힌 맥주로 주세요.”

 “좋은 선택이야. 조금만 기다려. 마지막으로 빨간머리, 그쪽은?”

 펜리르는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고기가 먹고 싶어! 고기줘!”

 “맥주는 필요없고 고기. 알았어. 좀 많이 기다리고 있어. 여기 피쉬 앤 칩스 하나!”

 생선이 고기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겠지만 펜리르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잠깐 이야기가 샜군. 여기 아일랜드산 스타우트.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지가 에릭의 앞에 거품이 피어오르는 흑맥주잔을 내려놓자 에릭은 그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그가 기대하던 맛이 입안에 퍼져갔다.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쩌겠는가. 맛있는 것이란 언제나 몸에 좋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 이 맛이었지. 4달동안 헛짓만 했어. 내가 찾는 건 바이오로이드였지. 그것도 눈에 잘 띄는 은발의 바이오로이드. 저 옆에 앉은 펜리르 보여? 수백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거야. 저런 개성 강한 바이오로이드는 남들의 시선을 빼앗기 마련이지. 게다가 손에 꼽을 만큼 생산된 희귀 기종이야. 마을 탐문하고 몇 사람에게 물어보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가리킬 거라 생각했던 거야. 실수였어. 4달동안 덴버러와 콘월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뒤져도 찾을 수 없었어.”

 “산속에 들어가 죽기라도 한 거야? 덴버러면 무슨 산이 있었지? 그리고 여기 에일. 스핏파이어. 맞지?”

 조지는 에릭에게 물으며 아자젤에게 에일이 담긴 잔을 건네주었다.

 “아직도 왜 불을 뱉는다는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맥주가 취향에 맞더군요. 그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자젤은 고개를 숙이며 잔을 받은 뒤 한모금 마셨다. 그것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 얼굴을 오랜만에 본 에릭은 조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진 않았어. 지도에 없는 마을에 있었지. 집없는 놈들이 집을 짓고 살던 곳이었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누군가가 그 바이오로이드를 데리고 가버렸던 거야. 그 놈을 찾아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거야. 여기도 단순히 술 한잔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지.”

 “언제 네가 여기에 술만 먹으러 온 적이 있어? 그러고서는 돈은 술값만 내려고 하지. 평소에 하던 의미없는 대화를 할까? 아니면 바로 결론으로 넘어갈까.”

 에릭은 바 위에 지폐를 올렸다. 100파운드 지폐 묶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조지는 그 돈을 받아들었다.

 “그래. 이거야. 항상 아 이번에는 공짜로 해달라니 다음번에 더 챙겨주겠다니 하고서는 어차피 이렇게 주머니에 다 준비되어있는 거잖아. 그래서, 알고 싶은게 뭔데?”

 “이터니티. 그 이름의 바이오로이드를 찾고 있어. 삼안산업의 육아용 바이오로이드지. 아기를 데리고 있고 그 바이오로이드를 런던으로 데려온 남자는 갱단에 속한 갱단원이고. 짐작이 가는 거 있어?”

 에릭의 말을 들은 조지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바를 손으로 내려쳤다.

 “씨발, 에릭, 그 아기의 성이 브래드버리는 아니겠지.”

 “그래. 그 브래드버리. 한동안 뉴스를 달궜던 덴버러 백작의 아들이야. 아직도 실종상태고 덴버러 백작의 유산은 아직도 상속되지 못했지. 덤으로 옆의 바닐라와 펜리르는 덴버러 백작가의 소유고. 들은 거 있어?”

 조지는 그 말에 휴 하고 숨을 뱉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라면 이 일에서 손을 뗄 거야. 너같은 일반인이 끼어들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잖아. 대체 돈을 얼마나 받길래 그러는 거야.”

 “200만.”

 “그럼 할만도 하네. 다만 그만큼의 위험성도 클 거야. 런던에는 소문이 쫙 돌았어. 바이오로이드와 아기를 찾는다고.”

 소문? 에릭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은 아무 소문도 내지 않았다. 콘스탄챠 S1이 자신을 고용하고 다른 곳을 통해 아기를 찾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런던에 살고 있는 덴버러 백작의 사촌, 골드윈? 그 작자는 이미 죽었어. 잠깐, 어떻게 죽었지? 누구에게 죽임 당한 건가?”

 너무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에릭은 자신의 정보력이 너무 늦다는 것을 한탄했다.

 “중요한 건 누가 찾냐는 거야. 맥칼리스터. 그 갱단에서 소문을 냈어. 이터니티와 아이를 발견하면 자신들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정확히는 맥칼리스터 갱단이 아닌 그들의 소유였지만 법적으로나 문서상으로나 아무 관련도 없는 유령회사들이지만.

 “씨발, 맥칼리스터?”

 에릭은 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조지는 세번째 잔을 따르고는 바닐라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크로넨버그. 기억하기 힘든 이름이라도 숫자라 부르면 그 회사에서 싫어할 거야.”

 하지만 모두가 이름은 몰라도 숫자는 기억하는 맥주였다. 어쩌면 크로넨버그보다 숫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에릭에게 돌아온 조지는 팔을 벌려 에릭을 위협하며 외쳤다.

 “맥칼리스터! 그래. 그 이름이야. 앞에 정관사 The가 붙을 맥칼리스터지. 네 경쟁자는 모리어티 교수와 같은 신사가 아냐. 런던 암흑계의 거물이지. 단순히 탐정이 상대할 수 있는 악역이 아니야. 아기를 찾는다 해도 너는 수많은 갱단과 싸워야 해. 함부로 길거리에서 이터니티와 아기를 찾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조지의 말에 에릭은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대답을 한 것은 에릭이 아닌 펜리르였다.

 “갱단? 아무리 강해도 블랙 리리스보단 약할 거야! 우리는 블랙 리리스와 싸워서 이겼어!”

 싸우지 않았지만. 간신히 블랙 리리스에게서 벗어났을 뿐이었지만. 그 바이오로이드 하나와 싸워 겨우 그 집시를 구해냈던 에릭이지만 갱단을 상대로는 그런 요행을 바랄 수도 없었다.

 “블랙 리리스? 그 바이오로이드? 맥칼리스터라면 몇기고 샀을 걸.”

 조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맥칼리스터 갱단에서 블랙 리리스를 데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 돈으로 훨씬 더 효율적인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를 수십기는 사는게 나을 테니까. 물론 맥칼리스터에게 고성능의 고가 바이오로이드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라면 없던 일로 하고 결국 못찾았다고 말할 거야.”

 “그럴 수도 없어. 착수금을 벌써 반이나 써버렸다고. 숙식으로 나간 돈만 해도 장난 아니었어. 저 바이오로이드를 데리고 다니면 돈이 얼마나 깨지는데. 물론 사적으로 쓴 것도 많긴 하지만. 그 돈을 다시 돌려주라고? 나보고 거지가 되란 거야. 그리고 요즘 시대에 거지가 되란 건 죽으란 소리고.”

 에릭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겨우 갱단이 얽혔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200만 파운드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그 돈을 얻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왜 맥칼리스터가 움직이냐는 거야. 맥칼리스터가 아기를 확보한다 해도 그들이 받을 돈은 현상금 밖에 되지 않을 거야. 만 파운드? 겨우 그 돈 때문에 맥칼리스터가 움직여? 그정도 되는 갱단이 움직인다는 건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야. 덴버러 백작가의 부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는 누군가가 갱단의 뒤에 있어.”

 “벨아이아님이요.”

 바닐라 A1의 말이었다. 그것의 말에 바의 모두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벨아이아님이 있어요. 돌아가신 주인님의 동생분이에요. 먼 옛날에 집을 떠나 소식이 없던 분이에요. 만일 작은 주인님께서 돌아가신다면 벨아이아님이 유산을 상속받을 수가 있을지도 몰라요.”

 바닐라 A1을 데려온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콘스탄챠 S1이라면 말해주지 않을 정보를 바닐라 A1은 말해줄 수 있었으니까. 콘스탄챠 S1이 에릭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알지 못했으니까.

 “벨아이아? 들어본 거 같은데.”

 에릭은 빠르게 인터넷으로 벨아이아를 검색해보았다. 검색엔진은 한 사람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의 직위를 본 에릭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블랙리버. 맥칼리스터는 애들 장난으로 보이는 인물이군.”

 블랙리버의 이사가 갱단을 부리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들은지 오래된 소식이지만 바에 앉은 에릭에게는 그것보다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이 여자가 덴버러 백작의 섭정 노릇을 할 것도 아니고 단순히 불쌍한 조카를 구해주기 위해 갱단을 부를 이유도 없겠지. 이 벨아이아라는 여자, 아기를 죽일 생각인 거야. 그리고 자신이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거지.”

 에릭은 빠르게 낸 자신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조지는 주방에서 접시를 하나 받아오더니 펜리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인 피쉬 앤 칩스.”

 “피쉬 앤 칩스! 듣던대로 맛 없어!”

 감자튀김과 생선튀김을 문 펜리르의 말이었다.

 “런던에서 맛있는 음식은 없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랑 먹어서는 안될 음식만 있을 뿐이지. 다들 그렇게 혀가 마비되어서 사는 곳이야. 소금 맛도 못느끼는 날이 온다고. 그래서 에릭, 정보를 듣길 잘한 거야?”

 조지는 에릭 앞에 서서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본 에릭은 맥주를 다시 마셨다. 잔을 내려놓은 에릭은 조지에게 말했다.

 “그냥 피클이나 줘. 이야기는 끝났으니 술에 집중해야지. 어쩌겠어. 결국 이게 내 일인걸. 불청객이 자꾸 끼어들고 있지만 말야.”

 에릭은 여러 생각을 했고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된다면 그가 의존할 누군가를 이 일에 끌고 들어오면 되는 것이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라 무언가라 부르는게 어법상 맞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