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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x년

철충과의 전쟁 도중, 그리고 휩노스 병의 마수가 인류에게 손을 뻗어나가기 시작할 때.

세상을 감싼 붉은 파도가 잠잠해지고, 여기저기서 들리던 파열음이 사라지고 잠잠한 이 곳.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마지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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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여기도 글렀구만."

하늘이 열리고, 이 세상을 단죄하기 위해 철의 사자가 내려와 모든 것을 불태우고 부쉈던, 언젠가 밤에도 태양이 내려앉은듯이 광채를 밝혔던 거대한 도시. 지금은 수림이 무성해져버린 빌딩의 숲을 헤짚어 다니고 있다.

우리 인류는 이런 콘크리트의 무덤에서 서로를 헐뜯고 빼앗고 다투며 보다 더 많고 높은 파이조각을 위해 달려왔던거겠지. 하지만 그런 투기장조차 인간이 사라지고나서 푸른 원주민들의 마을이 되었다. 우리끼리의 경쟁의 끝은 결국 식물의 번식경쟁을 통해 보다 더 높은 건물, 보다 더 많은 햇빛을 위해 여기저기에서 푸릇푸릇 자라나고 있었다.

한 때는 인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뒤로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수단이었던 편의점의 가판대의 썩어버린 빵들을 혀를 차며 밖으로 집어던지고, 계산대의 아래에서 갑자기 쏟아져내린 폭우를 피할 겸 쉬고 있다.

생명은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죽이고 그것을 탐하여 살아야하는 존재. 나조차도 그 굴레에선 벗어날 수 없었기에, 남아있는 식료품을 위해 오늘도 위험을 무릅쓰고 도심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몰려살았기에 그만큼의 비품이 남았던 것과, 반대로 말하면 촘촘한 빌딩숲 사이에서 갑자기 맞부딪힐 철충들을 피해야하는 점이다.

철충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남아돌던 부품들을 이용하여 만든 이 머리띠는, 나의 뇌파의 방출 및 인식을 억제하기에 고위등급의 철충들이 갑자기 종적을 감춘 지금 이 상황에선 최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다. 그 대신일까 이 늙어버린 몸으로는 빗속을 걷기엔 무릎이 너무 쑤셨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진척이란 것이었다.

"다음에는 재료를 모아서 외골격을 만들어야겠어. 하루하루가 내 몸 같지도 않고, 조금 더 기동성이 필요해보여."

푸념하듯 한숨쉬며 혼잣말을 하고선, 허리춤의 힙색에서 구형MP3를 꺼내 노래를 틀었다. 스피커의 잡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1970년대의 재즈. 친구들은 촌스럽다고 그랬지만 그런 평가를 해줄 녀석들은 모두 날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맞춰서 피아노 소리에 긴장을 풀고,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끓였다.

나에게 세상이 망해도 남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인스턴트 제품일 것이다. 뜯은 커피봉투의 뒷면을 확인하니 유통기한 2243년까지라니 얼마나 대단한가.  아마 나보다도 더 오래 세상에 남아서 뒤의 누군가에게 전해져줄 수 있을 수준으로 길다. 턱 하나분 더 길어진 턱수염을 정돈하고 잘 섞인 커피를 한 잔 들이키자 당분이 전신을 두드리며 깨운다. 늙은이에게 필요한건 사랑이 아니라 그만큼 달달한 당분이었던걸까.

2032년. 정부의 개였던 나는 오리진더스트의 첫 피험자 단체의 일원이었으며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었다. 205X년 바이오로이드 T-1. 개체명 "고블린"의 폭동 당시 AGS군대와 함께 싸웠으며, 그 후에도 O.D(오리진더스트 략)의 영향과 함께 의학의 발달. 그리고 나의 진급과 함께 전역하지 않고 여러 전쟁에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던 나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쓸쓸한 노후를 보내던 중, 그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옛날에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바에 가서 지미랑 같이 뉴스보면서 위스키 한 잔 하던게 생각나는군. 이젠 내가 그 위치에 앉아있지만 말이야. 하하!"

명예도 있었고, 돈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 복이 없던 나는 은퇴의 순간까지도 결혼하지 못했고, 그런 적적함을 달래주던 동네친구이자 바의 마스터. 짐 엘랑은 폭격에 의해 가게와 함께 나보다 먼저 세상을 등졌다.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비명소리와 파열음, 폭발음이 3중주를 연주할 때 나는 내 집 지하의 방공호로 대피했고, 뉴스 및 피난방송을 들으며 나는 나의 삶의 마지막을 준비해왔다.

그렇게 커피를 몇 모금 마시며 노래를 듣던 도중, 빗소리와 다른 소리가 들려 마시던 커피잔을 창가에 내려놓고 귀를 기울였다.

철벅철벅. 쿵쿵.

무언가가 달리는 소리. 도시에 살던 고양이나 들개의 달리는 것보다 무거운 소리.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앞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 무거운 육중한 소리.

"쯧. 세상은 망하고도 이 늙은이를 가만히 냅두지를 못하네."

갖고있던 내 오래된 애인. 불법개조한 돌격소총을 장전하고 침착하게 자세를 낮추어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200미터 밖에서 보이는 두 개체를 확인했다. 한 쪽은 늘 보던 철충의 말단. [나이트 칙]. 그리고 그런 것에 쫓기는 것은 바이오로이드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는 주황색 머리에 하얀 옷을 입고있었고, 상체만한 총을 안아들고 달렸지만, 빗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그녀를 철충은 자비심없는 흉측한 총구를 드리밀었다.

나는 멀리서 그녀가 다치지 않게 위협사격했다. 역시 저 육중한 육체에 몇 발 맞췄다고 행동정지를 바라는건 요행이었으나, 나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쪽이다, 고물덩어리!"

그것은 나와 그녀를 한번씩 고개를 돌려서 보고는 날 향해 발포하며 달려왔다. 방금 마신 커피로 인해 정신이 말끔해진 나는 볼을 스치는 총알에 급히 몸을 돌려 편의점이 있던 블록에서 멀찍한 골목 사이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 곳은 경차 하나 들어올만한 골목이었다. 저 녀석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팔목의 그래플링 후크를 3층을 향해 쏘았고, 내 몸은 고정된 갈고리를 향해 위로 올리는 도중 몸을 흔들어 반동으로 2층의 베란다의 유리를 부수고 들어간 나를 간발의 차로 따라온 철충은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고...삭신이야... 이 짓도 오래 해먹진 못하겠네."

여기저기 유리파편에 긁혀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키며, 베란다 난간으로 고개를 약간 내밀자, 경계하며 주위를 확인하는 철충이 있었다. 생각보다도 좁았던 그 곳은 그 것이 움직일 수는 있었으나, 몸을 편하게 돌리진 못했다는 점을 인지한 나는, 백팩에서 점착사제폭탄을 가동시키고 저 육중한 몸뚱이와 내가 수직으로 만날 수 있을 때 까지 기달렸다.

한 때는 같은 전선에서 사선을 왕래한 기종이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던 AGS는 외계의 침공으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버린 작금의 사태에, 허탈하면서도 차라리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던 좀비바이러스가 아니었단 점에서 안심을 주었다. 아무래도 같은 형태에게 총을 쏘는건 군인이었던 때로도 충분하니까.

철충이 내 아래에 도착한 순간, 난간을 뛰어넘어 저 거대한 동그란 몸체에 폭탄을 붙이며 낙법으로 그것의 뒤를 향하게 굴렀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안녕. 나의 옛 전우여. 그리고 나의 지금 적이여."

있지도 않는 폼을 잡고 난 편의점으로 달려갔고, 나의 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폭발과 함께 비구름도 개어갔다.

폭풍(爆風)으로 엉망이 된 내 머리를 정돈하며,  짐의 일부를 두었던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앉아있던 곳에 햇빛이 비쳐주고, 그 햇빛을 등진 바이오로이드 소녀는 내가 마시던 커피와 MP3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나를 쳐다보았다. 비취색의 눈빛에 주황색의 단정한 머리칼. 하얀 군용 제복을 입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폭발로 인한 이명으로 귓속이 멍멍해서 그녀가 하는 말을 듣진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상기된 홍조와 붉은 입술의 형태로 추론되는 이야기로는...

"...네요!!"

아. 조금씩 청력이 돌아온다. 그렇게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조금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서 꼼지락 거리다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 듣는거 촌스럽다구요!!"

언제부터였을까. 사람의 목소리란 것이 그리웠던 때가.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늘 마시던 인스턴트 커피와는 다르고, MP3의 잡음으로 가득차있던 거미줄친 내 고막에 거대한 충격을 주기엔 너무나도 충분한 것이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손이 떨려 들고있던 총을 떨구고 말았다.

그녀는 총이 떨어지는걸 보자마자 다가와서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내 눈을 마주보고 그저 환하게 웃었다. 먹구름 사이의 햇살 비추는 내가 서 있는 이 곳 도시 한 가운데에서, 같이 서있는 그녀의 찬란한 해바라기와 같은 미소를 보자 내 삶의 마지막을 같이 해줄 존재를 찾았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흙탕물로 엉망이 된 그녀의 얼굴을 허리를 숙여 닦아주며 이야기했다.

"욘석아. 이 이쁜 얼굴 상한다. 총도 새로 봐줘야겠네."

이 것은. 불량품이자 소모품인 그녀와, 중고이자 고물인 나의 마지막 생존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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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 써봅니다.

위에 적은대로 설정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태까지 단편만 써봐서 조금 길게 써보고 싶어서 한번 도전해봤습니다.

제목은 첫번째 대량생산 상품?이라고 번역으로 나오던데, 라오의 주인공은 마지막 인간의 시작이니까, 대비되게 첫번째 인간의 마지막을 끄적여보고 싶었습니다.

엔딩까지의 이야기를 봐주시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