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치아키는 혼자였다. 이것은 하루종인 그를 관찰한 토모의 결론이었다. 단순히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가 별로 없는 조용한 사람이다. 그런 차원의 말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학생과 같은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 같았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가 없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이 교실의 그 누군가, 그 무엇과도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치아키를 부르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마치 교실의 모두가 그가 없기를 바라는 듯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가 이 자리에 없다는 듯, 그러나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는 듯. 이것을 이지메라 불러야 할까. 괴롭힘이라는 의미의 말을 사용하기에는 치아키는 이 상황에 불만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는 반긴다는 듯, 하루종일 창밖만을 보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보는 것일까. 토모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하루종일 그녀의 곁에는 사람이 떠나지 않았다. 반의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고 토모는 그 기대를 맞춰줘야 했으니까.

 토모는 순식간에 교실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미모, 목소리,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관심이 되었다. 선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읽을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토모를 지목했다.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모든 선생의 첫마디는 같았다.

 “그러면 오늘 전학온 전학생양, 이것 한번 읽어보겠어요?”

 토모는 하루동안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 그녀가 한자를 잘못 읽거나 아예 다른 한자로 읽은 건 한두번이 아니었다. 선생은 웃으며 매 문장마다 교정을 해주었다. 몇몇은 일본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틀릴 리가 없는 한자였지만 토모에게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외국에서 살다 왔으니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며 넘어갔다. 그녀의 외모는 모든 것을 납득시켰다. 아마 토모가 길거리에 나가서 내일은 해가 서쪽에 뜰 것이라 외친다면 몇은 실제로 그녀의 말을 믿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상대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미모란 그런 장점이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었다.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모두가 토모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했다. 그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했다.

 토모는 치아키를 볼 시간이 없었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녀는 그들에게 답해줘야 했으니까. 토모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남들의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자유를 주려 하지 않았다.

 “토모쨩, 오늘 어디 갈 데 있어? 같이 카페라도 가지 않을래?”

 즈루. 토모는 그녀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입에 편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 치...”

 치아키. 라고 할뻔한 토모는 입을 막았다. 치아키와 그녀의 관계가 남들에게 알려져서는 안되었으니까. 하교길에 그의 경호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토모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생각해냈고 그대로 말했다.

 “치킨을 먹어야 해! 오늘은 집에서 치킨을 먹는 날이야!”

 아무도 토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즈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토모에게 되물었다.

 “오늘 저녁에 가족과 약속이 있다는 거지? 하긴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으니 가족 식사가 중요하긴 해. 그럼 우리랑은 다음에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즈루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토모와 인사를 하며 교실을 떠났다. 다른 학생들고 하나둘 집이나 다른 곳을 향해 떠났다. 토모는 가방을 싸며 치아키를 보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인사를 받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토모는 치아키가 교실을 떠나자 그를 따라갔다. 치아키는 그가 따라오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고 토모는 치아키의 주변과 그를 신경쓰며 그를 따라갔다.

 치아키의 집은 학교에서 멀었지만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었지만 집에서 학교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치아키의 집에서는 롯폰기와 토라노몬의 고층빌딩들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집은 그리 크지 않은 2층 집이었지만 아마도 이 집의 가격은 왠만한 곳의 빌딩을 사고도 남을 정도의 가격이겠지.

 하지만 치아키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토모는 직감적으로 치아키가 걷는 길이 자신의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딘가를 들리는 것인다. 토모는 의심을 가지고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토모가 따라오는 것을 치아키가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 수도, 모를 수도 있었다. 치아키는 토모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았고 토모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토모가 알 지 못하는 곳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토모는 치아키가 왜 이런 곳으로 들어오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경계를 했다. 이런 곳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주택으로 가득찬 동네였지만 아무도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법이었다.

 “어이, 거기.”

 전자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었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하늘로 전자담배 연기를 흩날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양아치.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하겠지. 그들은 인상을 쓰며 길을 걸어가던 치아키를 불렀다.

 “돈 좀 있냐?”

 그들은 앞뒤없이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들 중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치아키에게 다가왔다. 비니모자를 깊이 눌러쓴 양아치는 인상을 썼을 눈썹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가 치아키의 몸에 손을 대기 전에 토모가 달려나갔다.

 “소노마에다!”

 토모는 소리를 외치며 달려갔다. 그들에게 총과 칼은 보이지 않았다. 토모는 발로 거하게 치아키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발로 차고는 놀라며 일어나는 양아치들을 하나하나 땅바닥에 눕혔다. 그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는데는 몇초가 걸리지 않았다.

 “타누키사키님, 괜찮으신가요?”

 모든 양아치를 물리친 토모는 치아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순간, 토모는 하루중 처음으로 치아키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뭐하는 거야.”

 치아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워준 토모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지갑을 꺼내 몇장의 만엔 지폐를 꺼냈다.

 “이런 양아치들은 그냥 이렇게 돈을 주고 꺼지라고 하면 되는 법이야. 힘을 쓸 필요도 없어. 저들이 나를 죽이기나 하겠어? 너는 내게 필요없는 존재야.”

 필요없는 존재. 그 말을 들은 토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슴속 무언가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발에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토모는 치아키의 경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이 토모의 유일한 존재 이유였다. 토모가 필요없다는 것, 그것은 토모는 이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시간에 들어오지마. 너와 내가 같이 하교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인다면 무슨 소리를 듣겠어. 나는 아무도 필요없어. 이 세상은 결국 이걸로 돌아가는 거야. 이것만 많으면 충분해.”

 토모에게 지폐를 보여준 치아키는 그 지폐를 쓰러진 양아치들을 향해 던졌다. 하늘을 팔락거리며 날아간 지폐는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타누키사키님, 제 임무는 타누키사키님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교길에 제가 타누키사키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무슨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 늙은이의 망상일 뿐이야. 누가 나같은 사람의 목숨을 노리겠어. 아무리 이 세상이 맛이 갔다 해도 나같은 사람을 건들겠어? 이건 내 명령이야. 앞으로 내가 집에 간 다음 한시간 뒤에 돌아와. 그리고 학교든 어디서든 날 부르지도 말을 걸지도 마. 난 네가 없길 바라지만 그 망할 늙은이가 너를 산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는 없으니.”

 토모는 싫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지만 그녀는 치아키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토모의 모습을 보면서 치아키는 그녀의 옆을 혀를 차며 지나갔다.

 “너도 똑같은 놈들이야. 내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때문에 내게 오는 놈들.”

 토모는 치아키의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분했다. 치아키를 지키고 싶었지만 치아키는 자신에게 지키지 말라 명하고 있었다.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하는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토모, 작은 주인님께 이것을 전해주세요.”

 에이븐의 말이었다. 블랙리버의 가정용 바이오로이드였다. 블랙리버에서 실패라 말할 정도로 적게 팔린 바이오로이드였지만 삼안 산업에 반감이 많은 일본에서만은 이상하게 많이 팔린 바이오로이드였고 그중 타누키사키 요시히로도 있었다. 말끔한 검은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는 저녁을 먹다 만 토모에게 이쁘게 잘린 사과가 가지런히 놓인 접시를 건네었다.

 “아직 저녁 먹는 중이야. 이것만 먹고 전해줄게.”

 포크로 샐러드를 찍은 토모의 말이었다. 그 말에 에이븐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작은 주인님은 제 말을 전혀 듣지 않으셔서요. 큰 주인님께서 계셨다면 직접 전해주셨지만 오늘은 늦으시는 바람에 전해드릴 사람이 없어서요. 토모, 잠깐 부탁드릴게요.”

 에이븐의 부탁에 토모는 잠시 생각하더니 포크를 내려놓았다. 접시를 받아든 토모는 웃으며 말했다.

 “맡겨둬! 이 토모가 못하는 일은 없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토모는 걱정하며 치아키가 있는 2층 방으로 올라갔다. 토모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노크하지마’라 적힌 문을 두드렸다.

 “타누키사키님.”

 문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토모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토모는 또다시 문을 두드리려 했지만 그녀의 손은 허공을 두드렸다. 문이 열린 것이다.

 “뭐야.”

 치아키는 퉁명스럽게 토모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과를 가져왔어요.”

 “사과따윈 필요없어. 필요없는 걸 왜 자꾸 챙겨주는 거야.”

 토모가 든 접시를 낚아챈 치아키는 문을 쾅 닫았다. 그 소리로 토모의 앞머리가 날릴 정도였다. 토모는 닫힌 문을 보았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이 있었던 1층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