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AGS의 눈동자... 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광학 센서? 어쨌건 두 쌍의 안광이 내게 모였다. 불꽃이 터지는 듯한 특유의 이펙트를 패널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알프레드와, 녹빛으로 빛나는 광시야 카메라를 내게 향하고 있는 페레그리누스. 안면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쇳덩이들일텐데도, 한심함이라는 감정이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해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슬슬 페레그리누스의 분위기가 처음 날 만나고 시험해보려고 했던 그때랑 비슷해지고 있었으니까.


"아, 아니... 들어 봐."

"사령관님... 이젠 바이오로이드들은 숱하게 안아봐서 질리신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애초에 조짐은 있었군요. 셀주크 양이 어떤 짓을 당했는지 생각하면..."

"이 미친 자식... 애초에 이럴 속셈으로 우리 누님을 꼬신 거냐? 그 꼬맹이까지 앞세워서 누님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아니,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그 에바라는 바이오로이드가 접촉해 온 것부터..."

"야, 야, 그만! 알프레드! 그런 거 아니야! 셀주크는 자기가 원해서 홀로그램 생성기랑 감정 모듈 증설 시켜준 거라고! 그, 그리고 페레그리누스는..."

"뭐, 알고 있었지만요."

"그냥 해본 소리야. 그래도 좀 많이 역겹긴 해."


뭔가 한 단락은 넘겼지만, 이미 바닥에 떨어진 내 인식은 그대로였다. 나는 조금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


"야, 그... 나 그런 거 아닌 거 알잖아! 그냥... 그냥 그 뭐냐... 궁금해하는 것도 안 돼?!"

"관점에 따라서는 충분히 궁금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발상이 그것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많이 소름끼치는군요."

"거... 생각 없이 내뱉었다고 해도 말이지... 그냥 생각만 하고 있지 그랬냐? 음... 당분간 친구라고 안 불러도 되지?"

"아니, 니들도 생각해 봐!"


정말 미칠 듯이 서운했다. 그래도 날 이해해주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감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내 입에서 진심어린 호소가 흘러나왔다.


"진짜로 안 궁금해? 아니, 애초에 외장을 왜 저렇게 뽑은 건데? 저... 요철이랑 곡선은 엄밀히 말하면 아무런 기술적인 기능도 없잖아! 그리고 그... 그 거기는 하필 왜 빛나고 있는 거야? 그냥... 누구나 그런 호기심 정도는 가져볼 수 있잖아? 궁금해 미치겠는데 어떡하라고!"

"음... 사령관님의 심박수 수치가 그런 쪽으로 상승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진심에서 우러난 학술적인 호기심이라는 것은 알겠군요."

"나는 의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던 간에 그런 궁금증 별로 듣고 싶지 않았는데. 애초에 왜 우리한테... 아니, 그나마 우리라서 말할 수 있었던 건가?"

"그래! 너희들이 아니면 이런 정신나간 소리 어디가서 못 한다고!"

"정신나갔다는 건 자각하고 있네."


이상한 성욕을 의심하던 알프레드는 조금은 누그러진 어투였지만, 페레그리누스는 여전히 신랄했다.


"원래 과학이건 공학이건, 발전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랍니다. 너무 그렇게 새싹을 짓밟진 말아주세요! 사령관 님도 순수하게 학술적인 목적으로 제시한 화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아... 누님이 너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데... 니가 내 앞에서 그런 말이나 하고 있으면, 그런 누님을 보는 내 기분이 어떨지 알겠어?"

"...그래, 그래. 나 쓰레기야. 나 쓰레기라고 치자. 근데 진짜 진심으로, 우리끼리 까놓고 얘기해 보자."


끝도 없을 쿠사리에 지친 내가 둘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더없이 진지해진 내 어투에 신경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로 안 궁금해?"

"..."

"..."

"솔직히 궁금하지?"


말이 없어진 둘. 살살 구슬리는 내 목소리에 둘의 구동음이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공학자로서의 제 소견을 듣고 싶으십니까?"

"...부탁해."

"제가 직접 비파괴 검사를 실시한 적은 없지만, 공간 자체는 그런 기능을 하는 부품이 들어가기엔 충분합니다. 인공적으로 그런 기관을 조성한다면, 소재는 실리콘이나 젤라틴질이 적절하겠지요. 저희에게 있어서 감각 뉴런이라고 할 수 있는 압전 센서들을 적절히 분포시킨다면, 실제 인체처럼 신호들을 피드백할 수 있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겁니다. 문제는 그 유기체에 노드와 회로를 연동하고 저희의 두뇌라고 할 수 있을 AI 코어에 접목시키는 기술력인데..."


알프레드가 말끝을 흐렸다. 어느새 페레그리누스도 몸을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이 새끼... 방금 전까지 그렇게 나를 쓰레기 취급하더니...


"...오르카 호에는 이미 수준 높은 생체 회로 기술이 상용화되어 있지 않습니까?"

"...!!!"

"흠흠, 어디까지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다~ 뭐, 이런 말이지요. 언제나 이런 쪽에서의 의견 표명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보수적으로 해야 하니까 저는 단정까진 짓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그런 기능을 추가한다면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니까 확실히 결론지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나도, 제로는 아니라고 해 둘게."

"...!!!!!"


휘둥그레진 내 눈을 페레그리누스가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님이 좀 눈에 띄게 안절부절해하고 있었거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말이야. 뭔가 우리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 분명한 거 같아. 100년 가까이 봐왔으니까 아무리 서로의 의중을 숨기려고 해도 대충은 알 수 있거든. 정확히 누님이 나나 너에게 숨기고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그리고, 이건 누님한테는 비밀인데..."

"뭔데?"

"진짜 말하지 마라? 이거 누님이 알았다가는 나 죽어."

"아, 알잖아. 말해봐."

"...내가 보기엔, 지금 누님은 너 하나만을 위해 그런 기능을 추가할 정도로 충분한 호감도야."

"...!!!"

"자식아, 그러니까 잘 하라고. 이딴 시덥잖은 소리나 하고 있으면, 그런 너를 그렇게나 신경쓰는 우리 누님이 얼마나 불쌍하냐?"


신랄하게 깠을 때랑 다르게, 페레그리누스는 탐탁찮으면서도 자상하게 덕담을 해주고 있었다. 마치 딸을 맡기는 아버지처럼...


가슴이 훈훈해지는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시원치 않게 답답했다.


"그... 조언 고맙고, 이 타이밍에 하필 이런 부탁 하느라 미안한데..."

"...안 듣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내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가 넌지시 물어봐줄 수 있냐?"

"미친 새끼..."

"오오~ 확실히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요! 본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확실히 명안이군요!"


페레그리누스의 안광이 다시 경멸로 싸늘해졌다.


"너 대체 뭘 들었냐? 그리고... 우리 누님 AI 꽤 섬세하다고? 그 에이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등한 인공지능일수록 자신을 인간과 닮게 인식하는 거 알지? 에이다는 자신을 여성형으로 여기고 있잖아. 누님도 스스로를 엄연한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그런데 거기다가 대놓고 성희롱을 하라고?"

"아니! 누가 대놓고 '보지 있어요?'라고 물어보래? 그냥... 좀 어떻게 잘 돌려서 뭐 새로운 파츠 증설했냐는 식으로 살살 캐물어볼 수 있잖아."

"누구 냉동 치킨 만들 일 있냐? 때려죽여도 안할 거니까 그리 알아! 하여간... 발상 하고는..."

"아, 제발! AI 코어만 남으면 내가 사령관 권한으로 다시 복구해줄 수 있으니까! 나 진짜 궁금해서 잠 못자다가 미치는 꼴 보고싶어?"

"우리 누님이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할 것 같아? 베링 해협에서 넘어온 AGS들이 블랙박스도 안 남은 거 못 들었지?"


티격태격하던 와중에, 알프레드가 대뜸 끼어들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아, 혹시 외장 변경 했을 때에... 아자즈 씨에게 품의서 받으셨습니까?"

"..."

"..."


그 생각을 못했네.


"야, 지금 업무용 패널 있지?"


페레그리누스는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며 내게 물었다.


"아니, 뺏겼는데... 아니아니, 너 사람 쓰레기로 만들더니 이 자식이...!"

"한심한 녀석... 나는 자주 누님이랑 출격하니까 파트너의 스펙에 어떤 변화가 있는 지 알 의무가 있잖아? 흠흠, 어쨌건 그리고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내가 회선 빌려줄 테니까 니 권한으로 접근해 봐."

"아, 사령관 님은 잘 모르실 테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페레그리누스 님. 잠시 링크 연동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어느새 둘이 착착 죽이 잘 맞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 마음으로 날 씹어대던 둘이 괘씸했지만,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했다.


파치익!


불꽃이 한번 튀고, 둘의 몸이 굳었다. 페레그리누스가 기겁해서 외쳤다.


"야...! 깡통! 너 뭐 만졌어!"

"아, 제가 블랙 리버 분들 회선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펙스 쪽은 잘... 왜 그러시죠? 다시 연결하면 되지 않습니까?"

"니가 방금 연결한 그거, 드래곤 슬레이어 촬영용으로 개설한 실시간 양방향 통신 전용 채널이라고!"

"예...?"

"방금 우리 얘기했던 영상 메모리랑 음성 데이터, 다 누님한테로...! 아차, 지금 이것도...!"

"아?"


알프레드와 페레그리누스는 허둥거리면서도 무언가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손 놓고 둘이 난리를 피우는 꼴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이렇게 추웠나?


나는 갑자기 으슬으슬해진 팔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