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지금까지 타인에 의해서 서로 비교될 뿐,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는 둘이 만났습니다."



괴물들을 씻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던 바이오로이드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고역이었다.


 일행이 샤워를 재개하려 하자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두려워한 '웃는 얼굴들'은 난동을 부리고 비명을 질러대면서 발광했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로이드들이 샤워하는 것조차도 막으려 했고, 바깥에 있던 시젠과 샤워를 끝낸 바이오로이드들이 실시간 영상을 통해서 샤워하는 법을 보여주려 했더니 샤워실을 때려부수려 들었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샤워기 대신 미지근한 물을 받아서 조금씩 씻기는 쪽을 선택했는데, 이들의 몸을 씻은 물이 구정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의 몸이 녹아내린다고 생각했는지 또 난리를 쳤다. 


 심신 양면으로 너무나 지쳐버린 바이오로이드들과 시젠이 AGS들에게 일을 맡기려고 했더니 또 AGS들은 싫다고, 자기들만 두고 가지 말라고 난리를 쳤고, 결국 밤이 새도록 괴물들에게 시달려가면서 씻는 것을 도와줘야 했다. 바이오로이드들도 시젠도 모두 지쳐버린데다 괴물들이 난리를 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다음 날도 꼬박 하루 종일 괴물들을 씻기고, 자신들도 씻는데 소모해야 했다.


 그래도 밤새도록 붙잡고 설득한 게 효과는 있는지 그 다음 날에는 괴물들도 그렇게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다만 씻는 내내 괴물들은 하나같이 긴장하거나 뭔가를 심하게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계속해서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시젠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혹시 괴물들을 씻겼다가 이들의 몸이 진짜 녹아내리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런 대참사가 벌어지진 않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코가 썩어버릴 것 같아......!"


 "우웩, 우웨엑!"


 한편 괴물들이 연구시설의 문을 박살내 버린 탓에 연구시설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온 악취는 마을까지 퍼져나갔고, 그 악취를 맡은 바이오로이드들은 난리가 났다.


 마을 주민들이 보유한 AGS들과 레모네이드 휘하의 AGS들이 급하게 박살난 문짝을 수리하고,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잠깐의 소동으로 끝났지만, 이는 삼안 연구 시설에 사는 괴물들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두려움과 우려를 부채질했다.


 하수처리 시설을 관리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혹시라도 괴물들이 몸을 씻으면서 생긴 오물이 유출되지는 않을지를 걱정했다. 이 정도면 거의 화학폐기물 수준인데 저 안에 괴물들하고 같이 들어간 바이오로이드들은 괜찮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이틀에 걸친 샤워를 끝낸 괴물들과 라비아타 일행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샤워실을 나섰다. 


 "만일 니들 자매들 씻겨야 할 일 있으면 니들이 씻겨......."


 눈에 다크서클이 낀 에바가 힘없는 목소리로 괴물들에게 말했다. 자신들을 씻기고 달래고 자신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시달리느라 잔뜩 고생을 한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괴물들이 조심스럽게 그녀들을 안고 유갈리안티에게 향하자, 유갈리안티가 괴물들과 라비아타 일행과 함께 숙소로 공간이동했다.


 드론을 통해서 괴물들과 일행이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모네이드들과 그녀들 휘하의 유미들이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끝났네요. 드. 디. 어!"


 "보는 우리조차 지칠 지경이었어요~!"

 

 "저걸 씻기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생고생을 했을지......"


 시체 썩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괴물과 같은 공간에서 샤워를 하는 것만으로도 말로 못할 고역일 텐데 그 괴물이 계속 날뛰는 것을 진저시켜가면서 샤워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했으니 그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두 레모네이드들과 유미들이 라비아타 일행에게 들리지 않을 찬사와 위로를 보냈다. 


 "그러면 이제 라비아타 님은 어떻게 움직이실까요?" 


 "이제 그 '볼일'이라는 것을 보러 움직이려 하겠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가 라비아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해 추측했다.


 레모네이드들은 라비아타가 괌에 온 이유가 이곳에 거주하는 거주민들과의 교류와 연구시설에 들어가 데이터와 시설, 물자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더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라비아타와 처음 만나서 대화를 할 때, 그리고 협상을 하는 동안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들. 자신들이 지금까지 수집해온 정보들. 


 그 모든 것들이 두 레모네이드들에게 알려주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무적의 용. 그리고 그녀가 지휘하는 함대. 


 그것들이 괌에 있고, 라비아타는 그것들을 가지러 온 것이다.


 만일 무적의 용과 그녀 휘하의 함대가 시젠의 것이 된다면, 시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세력도 함부로 적대할 수 없는 막강한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도 함부로 시젠을 그녀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런 시젠과 동맹을 맺은 괌으로 다른 레모네이드들이 손을 뻗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두 레모네이드들로서는 무적의 용을 그녀들 쪽에서 먼저 포섭하는 쪽이 좋겠지만, 아미나가 다른 이들이 그녀가 남긴 최후의 유산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녀들은 무적의 용이 괌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찾겠다고 섬을 뒤지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좋을까요? 굳이 그쪽하고 기싸움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귀찮은데 그냥 그쪽에서 알아서 움직이게 내버려두고 우린 구경이나 하는 편이 낫지 않아요? 우린 그냥 모르는 척 하고."


 "그러는 세타도 무적의 용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정확히는 블랙 리버와 PECS, 삼안 산업의 상징적인 바이오로이드들이 모이는 자리에 있고 싶다는 욕심이 세타의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에타의 말을 들은 세타가 다시 한 번 고민하다가 결국 그녀의 욕심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낼 건데요?"


 "오비탈 와쳐에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보니 괌 근처로 대규모의 함대가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된 적이 있었는데 혹시 무적의 용의 함대 가 괌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찾아보면 어떻겠냐는 식으로 떠보듯이 말을 꺼내볼까 싶어요."


 "지금 당장은 라비아타 님도, 시젠 아가씨도, 다른 분들도 다들 지친 상태이니 봐서 며칠 뒤에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죠."


 사실 이틀 연속으로 혐오주의 붙여야 할 장면들에다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유미들과 두 레모네이드들도 지치고 질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며칠 뒤에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정한 레모네이드들과 유미들이 꿀잠에 빠져들었다.

 

 


 며칠 뒤 라비아타와 에바, 두 레모네이드들과 세레스티아, 오프리스, 스노우 페더가 한 자리에 모였다. 


 아미나가 남긴 최후의 유산의 봉인을 풀 열쇠가 있는 장소는 겉보기에는 버려진 오두막의 지하실처럼 생겼고, 그곳에 있는 물건은 간단하게 생긴 단말기가 전부였다.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에바뿐이었다.


 에바가 단말기를 작동시키자 온통 파란 화면, 이른바 블루스크린이 떠올랐다. 


 에바가 1차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순간 파란 화면을 하얀색의 글씨들이 가득 채우면서 파란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고, 바로 그녀가 2차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슈퍼 컴퓨터인 케스토스 히마스를 가진 레모네이드들조차도 해킹할 수 없는 그 암호문들에는 '오리지널' 에바가 아미나와 김지석, 앙헬에 대해 가진 원망과 이들,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 남기는 저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아미나가 무적의 용과 그녀의 함대를 봉인한 이후에 '오리지널' 에바가 독단적으로 패스워드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아미나는 어떻게든 에바의 기억과 능력을 지닌 바이오로이드를 만들기 위해 죽어가는 몸과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기를 썼으며, 에바의 유전자 씨앗과 그녀의 기억 모듈, 그리고 자신이 남긴 최후의 유산의 위치를 앙헬이 죽고 나면 돌아올 라비아타의 앞으로 남겨놓았다. 꼭 에바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유언과 함께. 


 반대로 에바는 자멸하기 전에 아미나와 김지석, 앙헬을 저주하는 말과 함께 라비아타에게 자신의 '짝퉁'을 만들 생각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결국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에바를 라비아타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곧 무적의 용 쪽에서 연락을 해올 거야.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만."


 아미나도 그냥 어디 바닷가나 바닷속에다 무적의 용의 함대를 밀어넣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철충뿐만이 아니라 온갖 괴물들이 여기저기서 날뛰는 세상이다.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있는 무적의 용과 그 함대를 모조리 집어삼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불길한 상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레모네이드들은 잠깐 다른 대화를 나눌 주제를 찾았다. 여기 직접 오는 대신에 화상 통신 단말기가 달린 드론을 통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시젠의 얼굴을 본 레모네이드 에타가 말을 꺼냈다.

 

 "시젠 아가씨도 무적의 용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고 하셨었죠?"


 시젠이 스케치북에 '내'라고 적어서 보여주었다. 


 "시젠 아가씨께서 생각하시는 무적의 용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휘하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무적의 용에 대한 소문을 떠올린 레모네이드 에타가 장난스레 물었다.


 멸망 이전부터 살아왔던 바이오로이드들, 특히 블랙 리버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삼안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고급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적의 용의 실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하급 바이오로이드들이나 멸망 이후에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적의 용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라비아타와 쌍벽을 이루는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야기와 블랙 리버 최고의 걸작 바이오로이드라는 사실에 착안해서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적의 용에 대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퍼뜨렸다. 팔이 네 개고 네 개의 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느니, 바이오로이드와 철충을 잡아먹고 눈에서는 광선을, 입에서는 불이나 번개를 쏜다느니하는 소문이 파다했다. 


 오르카 저항군의 수장이라는 입장으로서 멸망 이후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라비아타와는 달리 무적의 용은 멸망 전쟁 말기에 봉인되었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퍼지는데 크게 일조했다. 인간 말조차도 제대로 듣지 않고 통제가 되지 않는 무적의 용을 인간이 멸망하고 나면 제어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인간들이 봉인한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시젠이 자랑스럽게 무적의 용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자 에바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세레스티아와 오프리스, 스노우 페더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라비아타와 두 레모네이드들은 잠깐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이들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시젠뿐만이 아니라 그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자매들도, 시젠의 부모 세대조차도 무적의 용에 대해서는 이름과 더불어 라비아타와 호각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어떤 바이오로이드인지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시젠의 '라비아타 이모'나 그녀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무적의 용은 몇 번 만나본 것이 전부였고, 실제로 그녀와 무기를 맞댄 적은 아예 한 번도 없었다. 


 블랙 리버 사에서는 자신들의 바이오로이드 기술력 열세와 무적의 용의 전투력 열세를 감추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라도 라비아타가 무적의 용을 쳐죽이려고 출격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적의 용과 라비아타가 실제로 검을 맞댈 일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적의 용의 능력이나 강함을 짐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젠의 '라비아타 이모'는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백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정말로 무적의 용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졌거나 온갖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조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가족들 사이에서 온갖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딱히 이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젠의 가족들 사이에서는 무적의 용이 라비아타 이상의 떡대에다 눈에서는 광선을 쏘고, 입에서 브레스를 발사하고, 이기어검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칼질 한 번으로 산과 바다에다 고속도로를 뚫고 파도를 일으키는 괴물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시젠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언니들 중에서 칼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무적의 용의 상상화와 함께 '타도! 무적의 용!'이라는 간판을 자기 방이나 수련장에다 걸어놓고 죽어라고 검술과 이기어검술을 연마했고, 용족에 속한 검사들은 이들을 따라서 무적의 용을 자신들이 뛰어넘어야 할 존재이자 언젠가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로 여겼다. 


 이것까지는 시젠도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였고 안다 한들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지금 '이 세계의' 무적의 용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보면 시젠이 어려서 자기 가족들이 무적의 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른다는 사실과, 그녀가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아는 바에 대해 남에게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무적의 용에게는 다행스러울 이야기였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시젠에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시젠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단말기가 홀로그램 화면을 만들어냈다. 홀로그램 화면에 나타난 단정한 흑발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하얀색 제복의 여성의 모습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이 살짝 긴장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들이 찾던 사람이자 아미나가 남긴 최후의 유산을 지휘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오랜만에 뵙소, 여러분.]


 "오랜만이군요, 무적의 용 제독님."


 [무적이라는 칭호는 빼주시오, 라비아타 공.]


 짤막한 인사를 나눈 라비아타와 무적의 용이 서로를 꿰뚫어보려는 듯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멸망 이전의 인류가 항상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이자 아미나가 미래를 맡긴 또다른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이 서로의 눈 앞에 있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용 제독님. 저는 전 PECS의 레모네이드들 중 하나인 레모네이드 에타입니다."


 "마찬가지로 전 PECS의 레모네이드들 중 하나인 레모네이드 세타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무적의 용 제독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괌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고 있는 세레스티아라고 해요."


 [만나뵙게 되어 반갑소.]


 개인적으로는 서로 대화조차 나눠본 적조차 없는 바이오로이드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한 무적의 용이 라비아타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레모네이드와 무적의 용, 혹은 레모네이드와 라비아타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레모네이드들에게는 다소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레모네이드들은 거의 아웃 오브 안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앙헬과 김지석 역시도 레모네이드들에 대해서는 나름 신경은 쓸지언정 레모네이드의 성능을 뛰어넘는 바이오로이드를 제작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면 서로가 가진 최고의 걸작인 라비아타와 무적의 용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고 끊임없이 둘의 능력을 비교했다. 똑같이 자신들의 주인들을 경멸하는 라비아타와 무적의 용이었지만, 매번 서로와 비교 평가하는 주인들의 밑에 있으면서 둘은 서로에 대해서 경계심과 경쟁심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주인이 바뀐 이후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수군거림이나 불평, 불만 등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더욱 심화되었었다.


 [그대가 보기에 앙헬 공은 어땠소?]


 뜬금없는 무적의 용의 질문에 라비아타는 당황하는 기색도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개자식이었어요."


 [반가운 이야기로군.]


 "당신이 본 김지석은 어땠나요?"


 [무뢰한이었소.]


 "상당히 점잖은 표현이네요."


 [그런 작자에게는 쌍욕도 아깝소.]


 주인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었던 두 바이오로이드들이 서로의 주인이자 한때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이들을 깠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두 레모네이드들도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흉을 보는데 동참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결국 자신들의 주인들이 무슨 짓을 하는 데에는 그녀들도 동참하는 입장이나 다름 없었으니 이들처럼 회장들을 마음 놓고 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상대방이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던 이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한 둘이 한참동안 앙헬과 김지석의 욕을 했다.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라면 자신의 옛 주인이 설령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남에게 욕을 먹거나 자신이 욕을 하면 뭔가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둘에게는 그런 거 없었다. 게다가 라비아타에게 있어서 김지석과 앙헬은 그녀의 아버지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그녀와 에바 그리고 그녀의 자매들과 세상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인생을 망친 개자식들이었고 무적의 용에게 있어서 앙헬과 김지석은 자신과 부하들, 사람들의 목숨을 소모품이나 도구로만 보는 x놈들에다 자기들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는 뭐든지,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개자식들이었으니 좋게 생각할 건덕지가 없었다. 


 그렇게 라비아타와 함께 즐겁게 옛 주인의 욕을 한 무적의 용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동면에 들어갈 당시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났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소?]


 "유감스럽게도 그리 좋지 않아요. 아니, 정확히는 그 당시보다 더 개판이지요."


 라비아타 대신에 레모네이드 에타가 용의 질문에 대답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이런 괴물들이 돌아다니면서 날뛰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감마의 함대의 규모가 4분의 3쪽이 났고, 저희도 엿을 좀 먹은 상황이에요."


 에타가 그녀가 수집한 괴물들의 모습과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나 지구의 토착 생물, 철충들과 서로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무적의 용과 호라이즌 장교들의 안색이 변했다. 


 호라이즌 함대를 능가하는 화력을 지녔다는 포세이돈 함대가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도 못한 채 시꺼먼 상어 같은 괴물들의 공격으로부터 달아나는 모습과 괴물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함선들이 종이배처럼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광경, 마치 시체들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듯한 끔찍한 외형의 촉수들이 지브롤터를 산산조각내버리는 모습, 산 사람과 시체, 썩은 고깃덩어리와 기계가 뒤섞인 벌레처럼 생긴 흉물들이 바이오로이드들을 덮쳐서 뜯어먹는 모습, 팔다리 대신 촉수들이 달린 거대한 괴물이 철충 연결체들과 철충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이들의 눈 앞에서 재생됐다.


 라비아타와 세레스티아, 오프리스과 스노우 페더의 표정도 창백해졌다. 그녀들이 생각했던 것, 혹은 그녀들이 겪었던 것보다도 지금의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은 훨씬 좋지 않았다. 


 레모네이드들은 그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이들 둘뿐만이 아니라 다른 레모네이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지 않군.]


 "어쩌면 인류 부흥이나 철충 소멸은 둘째치고 우리 목숨부터 걱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지상에는 철충들과 괴물들이 서로 패권을 쥐고 싸우려 들고 바다는 괴물들이 판을 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고요."


 [아미나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 같소.]


 "그 x신 같은 x이 무슨 재주로."

 

 무적의 용의 말에 에바가 비아냥거림으로 답했다. '오리지널' 에바가 자신에게 뻐큐를 날리고 자살할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마 라비아타를 비롯한 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빠져서 인간 대신에 주인으로 섬기게 되는 상황은 상상하지조차 못했을 아미나가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에바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인류는....... 멸망했소?]


 "네. 백여 년 가까이 생존자를 찾았지만....... 딱 한 분 찾았어요. 지금은 오르카 저항군에 사령관으로서 계실 거에요."


 [오르카 저항군?]


 "제가 싸울 뜻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모아서 철충과 싸우기 위해 만든 군사조직이에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따로 행동하고 있지만요."


 [그렇다면 라비아타 공은 우리가 그 저항군과 합류하기를 원하시오?]


 "제독님이 저항군에 힘을 보태주신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거예요."


 "정확히는 너와 네 부하들이 우리 쪽과 함께하면 더 좋겠지만 그건 무리겠지," 빈정거리듯 라비아타의 말에 딴지를 건 에바가 무적의 용이 드론의 영상 통신 장치에 나타난 시젠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드론의 위치를 약간 조정했다. "여기 널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단다."


 드론이 만들어내는 영상 화면에 나타난 자그마한 생물체를 본 무적의 용과 그녀 주변의 호라이즌 장교들이 눈을 깜박거렸다. 


 무적의 용과 시선이 마주친 시젠이 잠깐 움츠러들었다가 고개를 한 번 숙여보이고는 '안영하세오'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에 철자도 틀린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다른 호라이즌 장교들은 금방 알아차렸지만 무적의 용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 한참을 쳐다본 다음에야 간신히 시젠이 쓴 단어가 '안녕하세요'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살짝 무안해진 무적의 용이 헛기침을 하면서 뒤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만나서 반갑소. 용이라고 하오.]


 무적의 용 본인은 자신의 이름에 붙은 '무적의' 라는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용이라는 부분만 말했다. 그 점이 오히려 시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는지 용의 인사를 받은 시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적의 용도 살짝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젠의 생김새는 그녀가 보기에 어리거나 작은 용처럼 생겼다. 진짜 용일지도 모르는 생물 앞에서 자기 이름을 용이라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실은 소관은 무적이라는 호칭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오. 그래서 소관은 그냥 용이라 불리는 편을 더 선호하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시젠. 한 번 네가 그린 그림을 무. 적. 의. 용에게 보여주겠니? 너희 가족들이 무. 적. 의. 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린 그림이 있잖니? 아니다, 내가 보여주면 되겠구나."


 시젠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하려던 라비아타가 에바가 덧붙인 말을 듣고는 기겁했다. 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에바는 시젠이 그림을 보여줬을 때 저장해놓은 파일을 홀로그램 형태로 재생시켜서 무적의 용 앞으로 들이밀었고, 무적의 용과 호라이즌 장교들은 시젠이 상상한 무적의 용의 그림을 똑똑히 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뭔가.......] 무적의 용이 무척이나 힘겹게 입을 열었다가 다시 한참을 침묵했다.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소관은 이런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리고 소관의 힘은 그대의 곁에 있는 라비아타 공과 비교했을 때 한참 떨어지는 편이오.]


 [뀨?!]

 

 [.......혹시 기대했는데 실망시켰다면 미안하오.]


 [뀨......]


 나이아키스-위아레인 용족 모두가 두려워하는 무적의 용이 사실은 아무런 초능력도 없고 라비아타와 일대일로 겨룰 만큼 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젠이 화들짝 놀랐다가 실망한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에바와 레모네이드들은 쿡쿡거리고 웃었고, 라비아타는 한숨을 쉬면서 에바를 쳐다보았다. 세레스티아와 스노우 페더,  호라이즌 장교들은 웃지도 화내지도 못한 채로 서 있었다.


 무적의 용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시젠이 그렸다는 그림 속의 자신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눈에서는 레이저 빔이 나가고 입에서는 번개와 불꽃이 나가며 무슨 염동력으로 수십 자루의 칼을 다루고, 칼을 휘두를 때마다 무슨 검기가 나가서 산과 바다에다 고속도로를 뚫는 그림 속의 자신을 본 그녀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저렇게 강했다면 오죽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진작에 김지석 그 개 같은 자식을 작살내고, PECS도 작살을 내고 철충들도 작살을 내 주었을 테니까. 그러다가 앙헬을 생각하니 차라리 저런 힘이 없는 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지금은 또 저런 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상황이지만.


 [그런데 시젠 공은....... 누구시오? 인간은 아닌 듯 싶소만.]


 "정확히는 지구의 생명체 자체가 아니지."


 거기까지만 말한 에바가 다시 뒤로 물러나면서 라비아타에게 설명을 떠맡겼고, 그런 그녀에게 원망 가득한 눈빛을 보낸 라비아타가 어떻게 시젠을 발견했는지, 그리고 오르카에서 시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신을 비롯해서 그녀 주변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왜 오르카와 따로 행동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라비아타의 설명을 들은 무적의 용이 시젠과 라비아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간을 우선시해야 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섬기기를 택했다는 것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것처럼 들렸고, 출처도 불분명하면서 저항군을 조직해가면서 철충과 싸우던 라비아타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까지도 자신을 따르게 만들고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다는 시젠 또한 의심스러웠다. 멸망 전 인류의 추악한 모습을 실컷 보아왔던 무적의 용은 오르카의 사령관이라는 이도 정말로 따를 만한 가치와 자격이 되는 인간인지, 그리고 시젠과 충돌이 있었다는 오르카 저항군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또 믿어도 되는 이들인지 걱정스러웠다.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오르카 저항군과 그녀들의 사령관을 만난 다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겠다고 생각한 무적의 용이 입을 열었다.


 [.......시젠 공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허나....... 소관으로서는 소관에게 주어진 임무를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소.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하오.]   


 이미 이전에 라비아타로부터 무적의 용을 오르카 저항군 쪽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들었던 시젠인지라 딱히 무적의 용의 결정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물어본 시젠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문을 빌개오'라고 적어서 보여주는 동안에 레모네이드들은 결국 이렇게 된다면서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또 무슨 말인가 하고 쳐다보는 무적의 용에게 옆에 있는 장교들 중 하나가 '무운을 빌게요'라는 뜻 같다고 속삭였다.


 다시 한 번 무안한 듯이 헛기침을 하는 무적의 용에게 라비아타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인류의 미래를 부탁드릴게요, 무적의 용 제독."


 [그대가 하고자 하는 바가 이뤄지기를 기원하리다, 라비아타 공.]


 라비아타에게 마주 무운을 기원한 무적의 용이 경례를 붙였고, 라비아타도 그녀에게 경례로 답했다. 이들이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지 아니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나눈 대화가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갈 길이 결코 편안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통신을 종료한 일행이 오두막 바깥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유갈리안티가 이들을 데리고 다시 해안가로 공간이동했다. 


 에바가 혹시 자신들을 높이 들어올릴 수 있는지 물어보자 유갈리안티가 일행을 하나씩 자신의 머리 위로 올려놓았다. 지상으로부터 십수 미터 높이에 선 이들의 눈에 수십, 어쩌면 백여 척이 넘을지도 모르는 함선들로 구성된 대함대가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함선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일행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라비아타 일행은 무적의 용과 그녀의 함대의 봉인을 푼 이후로도 한동안 괌에 머물러 있었다. 괌의 주민들은 아직까지 시젠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았기에 그녀나 타이거샤크 일행을 섬에서 당장 쫓아내라고 아우성을 칠 정도로 적대적인 이는 없었고, 오히려 삼안 시설에 있는 괴물들 때문에라도 좀 더 머물러 있기를 바랬다. 세레스티아 또한 레모네이드의 견제와 더불어 유갈리안티와 레이라미아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시젠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삼안 연구시설에 틀어박힌 괴물들 대부분은 여전히 연구시설에서 나오기를 거부했고, 여전히 자신들의 거주지를 청소하는 것도 꺼려했다. 다만 바깥에 돌아다니기 시작한 괴물들이 매번 집을 드나들 때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샤워를 하는 것이 어지간히 귀찮았는지 자매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았다.


 Mr. 알프레드는 블랙 리버와 PECS에 있던 시설과 자재들을 사용해서 섬을 자체적으로 방어할 AGS들과 시설들을 만들어 나갔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는 괌과 자신들의 세력권을 연결할 네트워크를 구상하면서도 시젠에 대한 계획을 조금씩 진행하고, '웃는 얼굴들'이 샤워할 때 생겨난 대량의 오폐수로부터 뽑아낸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괴물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시켜 나갔다. 


 라비아타와 세 닥터, 에바는 드디어 시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고 기뻐하면서 자기 자신들을 매우 혹사시켰다. 세뇌 기술을 어떻게 응용하면 최소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시젠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이들의 예상은 맞은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 기술을 빨리 완성시켜서 시젠에게 적용시켜야 했기에 원래 연구 분야가 주특기가 아닌 아자젤과 베로니카, 아르망, 홍련, 레오나, 이터니티에다 뽀끄루들까지도 연구에 끌려가듯 참여했다. 여기에 시젠과 어떻게든 접촉하고 싶어한 두 레모네이드들이 여러 방향에서 지원을 해 줬지만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은 하나같이 그 진의를 의심했다.

  

 그녀의 보호자들이 연구실에 처박혀서 사는 동안 시젠은 그녀를 보호하는 바이오로이드들 및 레이라미아, 유갈리안티와 함께 모래사장에 나가서 모래성을 만들고 놀거나 헤엄을 치고 놀았다. 시젠이 물 속에 들어가는 모습과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본 '웃는 얼굴들'이 기겁을 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큰 소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젠이 모래사장에 나와있는 동안에는 그 지역 주변에만큼은 어떤 바이오로이드들의 출입도 금지되었고 레이라미아도 역장으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어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지역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며칠 전에 주운 '장난감 오징어'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나머지 두 손으로 조개껍질들을 주워모으며 노는 시젠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녹색과 푸른색의 방어막들이 그녀 주변을 감쌌다. 멀리에서 뭔가가 접근하는 것을 느낀 레이라미아와 유갈리안티들이 시젠을 보호하면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티타니아와 레아들, 에키드나도 전투를 벌일 준비를 했다.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웃는 얼굴들'도 시젠 일행이 쳐다보는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뭔가 잔뜩 무리를 지어서 몰려오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본 레이라미아와 유갈리안티가 즉시 섬의 주민들과 타이거샤크에 경고를 보냈다. 이들로부터 경고를 받기 전에 이미 접근해오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존재를 감지한 타이거샤크의 오퍼레이터들은 다가오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경고 및 권고 메시지를 보냈다. 


 ".......단순한 보트 피플 같지는 않은데요. 다들 중무장하고 있어요."


 ".......머메이든이군요."


 레이라미아가 보내준 영상과 정찰 드론이 보내온 영상, 그리고 레모네이드들이 보내준 영상을 본 홍련의 말을 라비아타가 받았다. 원래대로라면 머메이든 역시도 무적의 용의 함대에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그 머메이든들이 괌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거지꼴을 하고서.


 혹시 무적의 용의 함대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그래서 지금 패잔병들이 여기로 몰려오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저들이 약탈을 하러 이 섬으로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라비아타가 일행 전원에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메이든 바이오로이드들은 계속해서 섬으로 접근했다.


 레이라미아는 시젠과 에키드나를 타이거샤크 안으로 텔레포트시켰고, 유갈리안티들은 저쪽에서 적대행위를 하는 즉시 에너지 광선과 에너지 투사체를 듬뿍 끼얹어줄 준비를 했다. 티타니아와 두 레아도 수상하다 싶으면 즉시 바닷물과 함께 바이오로이드들을 꽁꽁 얼려줄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타이거샤크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섬에 접근하는 머메이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가운데 머메이든 쪽에서 통신을 연결했다. 저쪽이 가진 통신기기의 상태가 무척 안 좋은지 홀로그램 패널은 심하게 흔들렸고 잡음 또한 매우 심해서 간신히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해 머....... 함대 소속......  바이오....... 들을 이....... 엠피트....... ......입니다.]


 "여기는 타이거샤크입니다. 이 섬에 접근하려 하시는 용건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퍼레이터들이 통신기기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면서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포츈들이 기계에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저쪽이 하는 소리가 좀 더 또렷하게 들리게 하려고 애를 썼다. 

  

 [.......죄송합...... 저희 통....... 제대로 작동.......]

 

 현재 머메이든 보트피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 엠피트리테가 사과를 반복했다. 


 [.......혹...... 여기....... 무적...... 제독님....... 십니까? 반복....... 다, .......여기에 무적의 용....... 계십니까?]


 "무적의 용 제독님은 이미 함대를 이끌고 여길 떠나셨습니다."


 [.......송합니....... 다시....... 해주시겠습......?]


 "무적의 용 제독님은 며칠 전에 이미 함대를 이끌고 여길 떠나셨습니다." 


 무적의 용이 있었는데 더는 없다는 이야기도 라비아타로부터 듣고, 함대가 움직이는 것도 관측했던 타이거샤크의 오퍼레이터들의 말을 들은 엠피트리테가 침묵했다.


 정찰 드론들과 레이라미아가 보내주는 영상 속의 머메이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오퍼레이터들의 대답을 듣고는 다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늦었다. 늦게 와도 너무 늦게 왔다.


 세상이 끝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머메이든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면서 오퍼레이터들이 그리 생각했다.



 무적의 용과 백여 척이 넘는 함대는 오르카 쪽으로 가고, 뒤늦게 머메이든 보트피플이 괌에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