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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들이 이 자리에 론디니움이라는 요새를 만든 이래,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강의 물은 맑은 적이 없었다. 중세시대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똥오.줌들이, 산업혁명시대에는 공장에서 마구잡이로 흘려보낸 오폐수들이, 현대에 다다라서는 이 강을 되돌릴 수 있다는 자만이 흘러들었다.

 물은 빛을 받아 파란색으로 빛나기 마련이었다. 개천도 강도 바다도 푸른색이어야 했다. 그러나 템즈강의 푸른색은 스모그 사이로 가까스로 보이는 하늘의 푸르름일 뿐, 그것의 진짜 색은 그것이 무엇을 품고 있을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탁한 연갈색이었다.

 한때 세계 최강국의 수도이자, 한때는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웠던 곳이자 이제는 아무 중요성도 없는 도시인 런던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강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의 강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름이면 강이 만들어내는 악취는 사람들을 강가로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악취를 뚫고 강가에 서는 사람은 오직 담배를 물고 그 냄새로 악취를 떨쳐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니면 그정도를 감수하고라도 화면속에서만 보아왔던 그 템즈강을 보려 하는 관광객이라던가.

 모두가 가까이하기를 꺼려하는 강이었지만 그 강은 런던의 중심을 지나가고 있었다. 현대도시에 있어서 강이란 교통체증을 만들어냈고 건물을 올릴 수도 없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대도시가 된 시점의 런던의 중심에는 이미 템즈강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와서 시민들에게 템즈강 북쪽, 남쪽 중 하나를 정해 이동하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템즈강의 위에는 수많은 다리가 놓여있었다. 이름도 모습도 다양한 다리들이었다. 아마도 그중 가장 유명한 다리의 이름은 이렇게 되겠지. 런던브릿지. 런던의 이름을 딴 다리의 이름이었다. 런던브릿지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긴 도개교의 양쪽에는 높은 두개의 탑이 성과 같이 솟아있었고 공중에서 연결된 두 탑은 반대쪽으로는 현수를 늘어트리고 있는 복합적인 다리. 이 다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수많은 런던의 상징중 하나였다.

 물론 이 설명은 타워브릿지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브릿지로 착각하는 다리였다. 런던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면 다리중에 가장 화려하고 랜드마크로 불릴만한 모습이라 생각한 것이겠지.

 실제 런던브릿지는 어떠냐고? 그냥 다리였다.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일자형 다리였다. 특별한 장식은 없었고 흔한 다리중 하나였다. 수많은 다리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중에 런던브릿지를 선택하시오.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을 맞출 수 있는 런던시민은 얼마나 될까.

 굳이 런던브릿지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서쪽으로 수백야드만 가면 타워브릿지와 런던탑을 구경할 수 있는데 굳이 이름만 유명하고 아무 특색없는 다리로 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타워브릿지의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치겠지.

 런던브릿지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그러면 관광 가이드 바이오로이드는 수백, 수천번도 넘게 말한 이 말을 할 것이었다.

 여긴 타워브릿지에요. 런던 브릿지는 저쪽을 보면 보이는 별볼일 없는 다리를 말하는 겁니다.

 놀란 관광객의 표정은 덤이었다.

 그래, 이런 이름만 유명하고 모습은 별볼일 없는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에릭 발렌타인. 그는 근처 카페에서 사온 커피잔을 강가에 있는 난간위에 올려두고 자신도 그 난간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를 민다면 그는 뒤로 자빠져 강에 빠지겠다. 아니면 강의 수위가 낮아져 드러난 더러운 흙더미 위에 떨어질지도.

 에릭의 주변에는 세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아자젤, 바닐라 A1, 펜리르. 그와 함께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그것들 역시 에릭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잔을 들고 있었다.

 “왜 맛없는 커피를 구정물맛이 난다고 하는지 아시나요?”

 커피를 몇모금 마신 바닐라 A1의 말이었다. 그것은 불쾌하다는 듯, 커피잔을 찡그린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바닐라 집에서 괴롭힘 당해서 구정물 맛이 뭔지 아는 거야? 돌아가면 바닐라 괴롭힌 자매들 다 혼내줄게!”

 펜리르는 바닐라의 기대와 다른 대답을 했고 바닐라는 당황한 얼굴을 지었다.

 “그, 그게 아니에요! 구정물 맛을 먹어봐야 아는 건가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온갖 더러운게 모인 구정물처럼 에스프레소 머신을 관리를 안해서 원두 찌꺼기가 쌓여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 거에요! 저는 괴롭힘 당하지 않았어요. 일단은요...”

 바닐라는 마음에 걸리는 말을 남겼지만 그 말은 템즈강의 구정물과 같이 흘러갔다.

 “거긴 커피 전문점이지만 커피보다는 홍차가 나아요. 결국 립톤이잖아. 하는 소리도 있지만 최소한 립톤은 공산품의 맛은 보장하거든요. 애초에 우리를 데리고 그 카페에 간 발렌타인님이 잘못하신 거죠. 대체 그 가게가 뭐가 좋다고 가시는 건데요.”

 아자젤은 자신의 홍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설탕의 단맛의 맛의 절반이 넘었지만 그래도 이건 홍차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응? 커피는 이 맛에 먹는게 아냐?”

 에릭의 말에 바닐라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혐오스러운 것을 보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 이 커피의 어디가 맛있다는 거죠? 에릭님은 진짜 제대로 된 커피를 드셔본 적이 없는 건가요? 커피는 절대로 이런 맛이 아니에요. 이런 맛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에요.”

 “하지만 맛의 차이는 별로 없는 걸. 비싼 커피 먹을 바에는 싼 커피를 먹는게 나은 거잖아. 애초에 커피를 즐겨먹는 것도 아니고. 나는 상관없다 보는데.”

 “그런 분들 때문에 이런 수준 이하의 가게들이 성행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더는 못마시겠어요!”

 바닐라는 난간 너머로 커피잔을 던졌다. 강위에 떨어진 커피잔은 강위에 잠시 떠있다가 곧 흙탕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좀 아까운데. 아무리 싸다 하더라도 일단은 돈을 주고 산 음료야. 네 의견은 존중하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날 주지.”

 “구정물맛 나는 커피라면 옆에 잔뜩 있어요. 그거 퍼드시는게 더 맛이 좋을 거에요.”

 바닐라는 템즈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릭은 그 말에 됐다는 듯, 양팔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커피 이야기는 됐고, 아자젤. 지금 몇시지?”

 시계가 없는 발렌타인은 휴대전화를 꺼내는 대신에 아자젤에게 물었다. 아자젤은 자신의 손목에 찬 손목시계를 보고는 대답했다.

 “오후 2시 27분입니다. 약속시간 딱 33분 전입니다.”

 “너무 일찍 왔어. 원래는 정시를 지키는 게 좋은데 말이야.”

 에릭은 바닐라를 보며 말했다. 약속시간은 30분 전에 도착하는게 원칙이라 말하며 에릭이 예정보다 빠르게 나가게 한 그것이었다. 너무 서두른 탓에 예정보다 훨씬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버렸고 카페에서 각자 음료를 사왔음에도 이렇게 시간이 남은 것이었다.

 “약속이란 늦는 것보다 일찍 오는 것이 더 나은 법입니다. 결과란 목표보다 열화되는 법입니다. 더 어려운 결과를 목표로 잡아야 진정으로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일찍 나가야 정시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 에릭님께서 저희 저택을 방문하셨을 때, 약속에 정시보다 늦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뭐, 그건 차가 밀려서 그런 거지. 게다가 덴버러의 도로가 그렇게 안좋을 지는 몰랐고. 게다가 길도 좀 복잡했...”

 “그걸 몰랐다 하더라도 일찍 출발했으면 아무리 그랬다 한들 약속시간 전에 도착했을 겁니다.”

 “바닐라 말 잘했어요. 아, 제 혀로는 당도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여, 부디 발렌타인님을 일찍 나가게 해주소서.”

 아자젤은 불만이었다는 듯 그것의 말에 덧붙였다. 대체 기도는 왜 하는 건데. 에릭은 바닐라를 따라 커피잔을 템즈강으로 던졌다. 마침 커피맛이 질려오던 그였다.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터는 일찍 나가면 되잖아. 대신 너무 일찍은 안되는 거야.”

 “에릭님, 오랜만입니다.”

 에릭이 바이오로이드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중, 한 바이오로이드가 에릭에게 다가왔다. 검은색과 흰색의 메이드복을 입고 머리에는 넓은 챙의 보닛을 쓰고 손에는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든 그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은 콘스탄챠 S1이었다.

 “콘스탄챠. 이른 시간이군요.”

 마침 약속시간에서 정확히 30분 남은 시간이었다.

 “늦는 것보다 이른 것이 나은 법이죠.”

 콘스탼챠 S1의 뒤에는 두기의 하치코와 한기의 오프리스 S11이 서있었다. 그것들은 콘스탄챠 S1을 경호하는 듯, 콘스탄챠 S1의 주위에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콘스 언니!”

 펜리르는 콘스탄챠를 보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다. 마치 주인을 오랜만에 만난 골든 리트리버처럼 환한 웃음을 지은 펜리르였다. 자신의 주위를 부산스럽게 네발로 돌아다니는 펜리르를 콘스탄챠 S1이 쓰다듬자 그것은 귀신같이 멈추어서 바닥에 눕고는 자신의 배를 보여주었다.

 “대체 어디에 갔었던 거에요. 걱정하고 있었잖아요. 안그래도 없어진 자매들이 많아요. 펜리르마저 나쁜 생각을 한 건가 걱정했잖아요. 그래서 에릭님,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제게 할 말이란 대체 무엇이죠?”

 콘스탄챠 S1은 안경을 고쳐쓰며 고개를 들어 에릭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게 말이죠,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요. 아니지, 그래도 세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거 같긴 해요. 첫번째, 그쪽의 블랙 리리스에게 공격받았어요. 그것은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죽일 생각이에요. 두번째, 제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터니티는 갱단이 데리고 있어요.”

 “저희는 시간이 많아요. 에릭님, 처음부터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에릭은 조금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아는 이야기니 이 이야기는 스킵하도록 하자.

 “그렇군요.”

 에릭의 이야기를 들은 콘스탄챠 S1은 에릭과 같이 난간옆에 서있었다. 에릭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콘스탄챠 S1의 얼굴에는 걱정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에릭은 맥칼리스터 갱단의 위험성과 그들이 이터니티를 쫓고 있다고 말했지만 콘스탄챠 S1은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에릭을 바라보았다.

 “맥칼리스터 갱단이에요. 그리고 블랙 리리스, 블랙리버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의 작은 주인을 쫓는 건 일개 개인이 아니라 군대나 다름 없는 존재들이에요. 위험성은 덤으로요. 론 브래드버리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작은 주인님을 찾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죠. 걱정마세요. 에릭님의 말대로 그들은 이 나라의 경찰력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죠. 그건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덴버러 백작가가 보유한 바이오로이드의 수를 아십니까? 저조차 모릅니다. 이 런던에도 수백기가 넘는 바닐라 A1이 있습니다. 이 힘이라면 어떻습니까. 만일 맥칼리스터 갱단이라는 자들이 작은 주인님을 노리고 있다면 작은 주인님을 지키는 것 역시 우리의 마땅한 사명이겠죠. 에릭 님께서는 걱정마시고 작은 주인님을 계속해서 찾아주시면 됩니다. 거리가 다소 소란스러워지겠지만 유탄이 에릭님을 향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맥칼리스터 갱단과 전쟁을 하겠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에릭의 회의적인 질문에 콘스탄챠 S1은 자신있다는 듯 말했다.

 “만일 리리스가 걱정이라면 리리스는 제가 직접 만나 설득해보겠습니다. 결국은 리리스도 자신의 주인이 누가 될 지 이해하게 되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에릭님께서는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다니, 걱정할 것이 산더미였다. 덴버러 백작가와 맥칼리스터 갱단이 전쟁을 벌이면 런던에 대사건이 벌어질 것이었다. 에릭은 그 한가운데에서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블랙 리리스는 덤으로 말이다.

 그리고 진짜 걱정이 있었다. 콘스탄챠 S1이었다.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덴버러 백작에 충성할 뿐이었다. 그가 누군가에 상관없이 말이다. 아무리 휴이 브래드버리 전 덴버러 백작이 악한 사람이었다 한들 콘스탄챠 S1은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것의 관심을 오직 백작가의 유지였다. 어쩌면 죽은 휴이 브래드버리의 복수에 나선 블랙 리리스가 더욱 인간적인 것일지도 모르지.

 “만일 론 브래드버리가 죽는다면. 만일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러나 대비를 해야 하는 일이죠.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콘스탄챠,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에릭의 질문에 콘스탄챠는 아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다음 계승권자인 벨아이아님께서 덴버러 백작위를 물려받도록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