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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아키, 수업 끝나고 카페 갈래?”

 수업이 끝나고 해가 서편으로 지며 교실에 노을이 발을 살짝 들였을 때였다. 토모의 말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치아키는 교실에 가라앉은 불편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반의 전원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모가 왜 치아키에게 말을 걸었는가. 모두의 관심이 토모에게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 직후 들린 소리는 토모에게 고백하기 위해 토모의 그림을 성심성의껏 그리고 그것을 토모에게 주려 계획했던 한 남학생이 충격에 그림을 떨어트려 교실바닥과 부딫힌 소리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생각하고 장래 계획까지 세우느라 밤새 잠을 한숨도 못잔 남학생이었지만 그의 그런 사연을 알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 수많은 생각을 했다. 어째서 토모와 치아키가 가까워지게 된 것인가. 어째서 치아키는 토모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나마 그들의 머릿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가정은 토모의 친화력이 엄청나 치아키와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 뿐이었다.

 치아키와 토모 사이에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은 반에서 오직 치아키와 토모 뿐이었다. 모두의 정적이 이어지는 사이, 치아키는 무겁게, 그것이 익숙치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은 학교에서 하지마.”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힘이 없었다. 이 정적만 아니었어도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 속에 사라졌을 크기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그의 부끄러움을 모두 알아챌 수 있었다.

 “뭐 어때! 치아키, 카페 가자!”

 치아키에 말에 토모는 웃었다. 웃으면서 치아키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으로 치아키를 일으켰다. 치아키는 토모의 힘에 거스를 수 없었다. 치아키는 당황한 얼굴을 지으며 마찬가지로 당황한 반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할 학생들이었다. 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그들의 시선에 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얼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그 노력이 토모에 의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토모, 타누키사키 씨를 내버려둬. 어차피 토모같은 사람과는 어울려주지 않을 거야.”

 유즈루의 말이었다. 그녀는 토모의 손을 잡고 그녀를 자신의 자리로 데려오려 했다. 그러나 토모는 완고했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토모의 팔은 쉽게 잡아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토모는 유즈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즈루쨩, 치아키는 말야, 즈루쨩이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이 아니야. 말이 없어서 그렇지, 치아키의 말을 들으면 다들 치아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 거야!”

 “그래서 어떤 사람인데?”

 유즈루는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토모의 말을 듣고 납득할 리가 없었다.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애초에 논리도 없었다. 감정적으로 와닿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되는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유르주라 그런 말을 듣고 설득될 리가 없었다.

 “치아키는 말야,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이야.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남들에게 말을 하지 않은 건 그저 남과 말해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을...”

 토모의 말을 듣던 치아키는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토모가 유즈루와 말하느라 그에게 신경을 덜 쓴 사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교실을 나섰다.

 “아, 치아키! 기다려!”

 토모는 유즈루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치아키를 따라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던 치아키는 토모가 따라오자 그녀를 돌아보았다.

 “나 때문에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어. 남들을 설득하려 노력할 필요 없어. 토모는 토모답게 학교생활을 하면 돼. 나는 원래 있던 대로 계속 살 테니까.”

 “그럴 수 없어. 치아키는 좋은 사람이야. 처음에는 내게 나쁘게 대했지만 치아키의 본성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그걸 다른 친구들도 알아야해. 치아키. 치아키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어. 친구를 사귈 수 있어.”

 토모는 말했다. 그동안 자신이 교실에서 느껴왔던 것을 말했다. 치아키가 여전히 반에서 겉도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서있는 곳으로 치아키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치아키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너무 급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치아키는 너무 오래 혼자로 살았고 누군가와 말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도 몰랐다. 토모와 있는 것으로 벅찰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영화에서 했던 말처럼 걷기 전에 뛰는 법을 배워야 할 때도 있었다.

 토모는 한번의 뜀박질로 계단을 내려와 계단 아래에 서있었던 치아키를 안았다. 그리고 그의 입을 맞추었다.

 “자, 잠깐! 그런 식으로 다짜고짜 키스한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는 양 그러지마!”

 치아키는 토모를 떼어내며 외쳤다. 최대한 치아키와 가까워지려 내민 토모의 입술을 피하며 말했다. 하필이면 방과후였다. 복도와 계단에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반의 친구를 만나거나 부활동을 가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은 자리에 멈추어서 층의 중간에 서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토모! 그만둬!”

 “하지만 사랑은 모든 걸 해결한다고 배웠어!”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운 거야, 읍!”

 치아키는 토모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토모의 입술은 치아키의 입술과 닿았고 둘은 다시 키스를 했다. 박수소리가 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사랑의 결실이 맺는 순간이었으니까. 휴대전화의 사진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소란이 이어졌다. 환호성이 이어졌다.

 부정할 수 없었다. 토모와의 키스는 좋았다는 것을. 그러나 이 상황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치아키는 남들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자신의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관심받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남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를. 남들에게는 당연한 행동들이 남들의 관심을 받게 된 자신을.

 “어때?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거지?”

 토모는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이 된다는양 말하고 있는 토모를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치아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웃었다. 사람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없었지만 토모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그를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했다.

 마침 치아키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즈루. 토모는 그렇게 불렀다. 치아키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유즈루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겠지. 토모를 안아준 치아키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유즈루 앞에 선 그는 손을 내밀었다.

 “타누키사키 치아키야. 잘 부탁해.”

 치아키의 말에 유즈루는 당황한 얼굴을 지었다. 치아키가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던 것이었으니까. 치아키라는 존재를 눈앞에서 인식할 일조차 예상도 못한 그녀였다. 치아키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 오가타 유즈루야. 잘 부탁해.”

 침을 꿀꺽 삼킨 유즈루는 치아키의 손을 잡았다. 치아키는 옆사람에게 가더니 똑같이 말했다.

 “타누키사키 치아키야. 잘 부탁해.”



 치아키는 순식간에 반의 중심이 되었다. 치아키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동안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치아키와 학생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던 치아키는 인기인이 되었다. 그의 책상에 앉아 그의 어깨의 손을 올린 토모가 곁으로 밀려날 정도였다.

 토모는 그 현실에 만족했다. 치아키는 바뀌었다. 다시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 누구도 거부하던 치아키는 토모로 인해 바뀌었다. 토모는 그것만으로 뿌듯했다. 토모는 치아키를 위해 존재했다. 치아키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토모가 한 일은 그 이상이었다. 치아키의 마음을 바꾸었다. 치아키가 다시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만들었다.

 집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치아키를 보며 놀랬다. 에이븐은 그런 모습을 볼 지 몰랐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 요시히로에게 말하겠다고 했지만 치아키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하겠다고 말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 모를 그였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만나 바뀐 자신을 보여주겠다고.

 “그래서, 치아키말야. 그 카페 가봤어? 특대 파르페 먹어봤어?”

 토모가 친구들과 갔던 카페를 말하는 것이었다. 토모가 치아키와 가려고 했던 카페였다. 물론 그 날, 치아키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느라 카페를 갈 여유가 없었다.

 “아직. 마침 토모랑 오늘 가보려 했거든. 특대 파르페라니. 토모의 말을 들으면 좀 겁나긴 하는데.”

 “남자잖아? 그정돈 아무것도 아니야.”

 치아키는 친구들과 여러 잡담을 했다. 토모도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했다. 평범한 학생처럼. 바이오로이드와 부자의 아들, 그런 것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고등학생인 치아키와 토모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진짜로 누구건 이곳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평생을 살았으면.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의 행복이었다. 이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메데타시메데타시. 그렇게 끝맺음을 맺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 마침표로 이야기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표는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마침표의 뒤에는 몇개의 마침표가 붙었고 그것은 더이상 마침표라 불리지 않았다. 그것을 우리는 말줄임표라 불렀다...

 “토모쨩! 잠깐만 이것좀 도와줘!”

 방과후였다. 집으로 치아키와 함께 돌아가려던 토모는 유이의 부름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요시다가 진로조사한 거 모아서 교무실로 가져와달라고 했는데 양이 많아서 말야. 좀 도와줄 수 있어?”

 토모는 슬쩍 치아키를 바라보았다. 그와 방과후 카페에 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아키는 토모를 보더니 다녀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것을 본 토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이의 자리에 놓인 진로조사표를 집어들었다. 토모에게는 그리 무거운 무게가 아니었지만 평범한 여고생인 유이에게는 무거울 무게였다. 어째서 바이오로이드가 학교내에서 인간인척 하고 돌아다니는 곳에서 진로조사를 굳이 종이로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토모쨩 고마워!”

 교무실을 나온 유이는 토모에게 인사를 하며 교실로 돌아갔고 토모는 치아키가 기다리고 있을 정문으로 걸어갔다. 카페라. 토모는 이전에 친구들과 카페에 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토모의 놀라울 정도로 좋은 기억력은 그녀가 먹었던 여러가지 맛의 파르페맛을 모두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그 감각을 느낄 것에 토모는 설레였다. 혀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맴도는 감각,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했던 감각. 그것들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토모는 기대했다. 이것을 먹은 치아키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토모는 즐거웠다. 그런 이런 저런 행복한 상상을 했다. 치아키와 보내게 될 행복할 나날들은 고작 상상뿐이었음에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교사를 나서 교문으로 걸어가던 토모는 교문쪽이 소란스러운 것을 들었다.

 “누가 경찰 불러줘요!”

 토모는 안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토모가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치아키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의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를 위해 토모는 존재했다. 마치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토모는 달렸다. 이 때를 위해 그녀는 존재했다. 설령 치아키가 과민반응이라 말할지라도 토모는 반응해야 했다.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었으니까. 타누키사키 치아키를 지키는 것. 그것이 유일한 토모의 존재이유였다.

 치아키를 지킨다. 그리고 그와 카페에 가서 행복을 나눌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었던 일을 즐겁게 이야기하겠지. 치아키는 토모에게 감사할 것이었다. 구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토모는 자신의 존재목적을 이룬 것을 기뻐할 것이었다.

 교문 앞에 모인 인파를 헤쳐나간 토모가 발견한 것은 치아키였다. 그리고 정문 앞에 멈춰선 두대의 밴. 그리고 치아키를 붙잡고 있는 남자들. 그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양복은 그들이 차고 있는 권총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양복의 윤곽선만 봐도 그들이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6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치아키를 노리고 있었다. 토모는 그들을 제압해야 했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왜 치아키를 납치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토모가 알아야 할 것이 아니었다. 토모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을 이길 방법이었다. 그들을 물리치고 치아키를 구할 방법이었다.

 “토모!”

 치아키의 외침이었다. 그는 토모를 보고 외쳤다.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쳤다. 당연한 것이었다. 토모는 치아키를 구할 것이었다. 그게 토모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남자들의 위치를 파악한 토모는 달렸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아키의 납치일 것이었다. 한두명 죽거나 이 자리에 남아 경찰에 잡히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토모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치아키를 납치하려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치아키를 붙잡고 있는 남자들을 제압해 치아키를 구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었다. 토모와 치아키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고 그 사이에 여러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토모가 달려오자 그녀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미식축구.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태클에 걸리지 않고 골인지점에 도달하는 것. 그를 위한 전술이었고 그를 위한 단련이었다. 토모는 훈련을 받았다. 전문 미식축구 선수들 사이에서 그들의 태클을 피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훈련을. 토모는 덩치가 작았고 재빨랐다. 성인 남성이라면 잡혔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토모는 재빠르게 피할 수 있었다.

 세명의 남자를 달려가며 피하는 것 정도야 토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권총을 빼들어 토모를 쏠까 하는 걱정을 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려한 몸동작으로 태클을 피한 토모는 어느새 치아키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토모가 남자 둘을 제압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턱을 가격하고 멱살을 잡고 아스팔트 바닥에 메쳤다. 한 사람에게 한 기술. 초 단위로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속도였다.

 “치아키, 물러나! 빨리 도망쳐!”

 “하지만 토모는!”

 치아키는 망설였다. 시간은 생명이었고 그 생명은 치아키의 것이었다. 토모는 치아키를 설득하려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쓰러진 사내의 몸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총. 그것만으로 사태의 위험성을 보여주기 쉬운 것은 없을 것이었다.

 총성이 세번 울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총알은 토모나 치아키에게로 날아오지 않았다. 토모가 쏜 총알이었다. 두 사람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세번째 사람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권총을 빼들었다. 토모가 쏜 세번째 총알은 그의 근처로도 날아가지 않았다.

 토모는 옆을 바라보았다. 차를 바라보았다. 차에서 나온 손이 토모의 손목을 붙잡아 조준이 어그러지게 만든 것이었다. 토모가 쏜 세번째 총알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고블린이었다. T-1 고블린. 블랙리버의 전투용 바이오로이드였다. 토모가 보지 못한 일곱번째 존재였다. 토모가 그것을 이길 수 있는가. 당연한 질문이었다. 토모는 그를 메치듯 잡아당겼고 고블린은 차에서 끌려나왔다. 총을 빼든 남자는 토모에게 총을 쏘았지만 그 총알은 끌려나온 고블린의 등에 맞았고 그 고블린이 땅바닥에 던져지자마자 토모는 그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고 그 다음으로 고블린의 가슴과 머리에 총을 쏘아 제압했다.

 땅바닥에 피와 내장이 흩어졌다. 사람들은 피가 묻은 토모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나 토모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쓸 수 없었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토모가 마지막 남자를 보았을 때 그는 권총을 빼들어 토모를 조준하고 있었다.

 토모 역시 권총을 들어 먼저 그를 죽이려 했지만 토모는 자신이 든 권총의 슬라이드가 후퇴한 채 돌아오지 못한 것을 보았다.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반면 총을 한발도 쏘지 않은 남자는 몇발이고 토모를 향해 쏠 수 있었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총알이 토모를 향해 날아갔다. 토모는 그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쏘기 직전에 반사적으로 피한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총알은 토모의 눈앞을 날아갔다. 그녀의 동체시력은 간신히 그 총알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마터면 그녀가 죽을 뻔했다. 다행이었다.

 총알은 토모의 눈앞을 지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니, 그 허공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치아키. 총알은 하늘로 날아가지 않았다. 그대로 직진하며 날아간 총알은 치아키의 가슴을 뚫고 말았다. 토모는 그것을 보고말았다. 자신이 살기 위한 총알에 치아키가 맞고 만 것이었다.

 몸을 숙인 토모는 고블린의 몸에서 권총을 빼들어 마지막 남자를 쏘았다. 머리에 한발이 아니었다. 그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가 움직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토모는 권총을 내려놓았다.

 “치아키!”

 토모는 거친숨을 쉬며 치아키에게 다가갔다. 이미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아스팔트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검붉은 피은 검은색 아스팔트는 붉게 물들였다. 토모는 치아키를 흔들었지만 치아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구급차를 불러줘!”

 토모는 외쳤다. 누군가가 도와주길. 치아키가 살 수 있길. 토모는 치아키의 목에 손가락을 대 그의 맥박을 짚었다. 손가락에서는 아무 맥도 느낄 수 없었다. 토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치아키!”

 토모는 외쳤다. 치아키의 가슴을 압박해 그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치아키는 죽은 뒤였다. 토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에 불과했다. 토모는 울부짖었다.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치아키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그가 살아돌아오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야.”

 영안실, 죽은 치아키를 보고 있는 요시히로에게 토모는 말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울음을 남에게 쉽게 보여주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야 하는 위치에 앉아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치아키를 지키지 못한 거냐.”

 그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치아키가 누운 테이블을 내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치아키가 이 테이블에서 떨어질까 무섭다는 듯 그는 떨리는 주먹을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와 슬픔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내가 부족한 탓이야. 다 내 잘못이야.”

 토모는 눈물을 또다시 흘리며 말했다. 그녀는 자책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녀는 치아키를 지킬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능한 존재였다. 그녀는 있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다 내가 책임질게. 내가 폐기되는 되는 거잖아. 내가 잘못한 거야.”

 “조용해!”

 요시히로는 소리쳤다. 외쳤다. 그 소리에 토모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다리가 떨렸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뺨이 떨리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블랙리버 놈들. 프로토타입이라는 명목으로 하자품을 팔아제꼈어. 내 아들 하나 지키지도 못하는 것이 토모라고? 어디가 친구야.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미 이야기는 다 끝났다. 너는 폐기될 거야. 나가. 너같은 바이오로이드는 더 이상 필요없어. 너에겐 끔찍한 일만 있을 거야, 아니, 그래야 해.”

 토모는 아무 말 없이 영안실을 나왔다. 문을 닫은 그녀는 문틈 사이로 요시히로의 울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은 울음이었다. 토모 역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것이 토모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시야는 사라졌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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