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즈는 라비아타가 구성한, 어디 편제로 넣기에도 애매한 인원들을 임시로 몰아넣어둔 것에 가까운 팀이었다.


소속 인원들은 우르, 티아멧과 같은 단일 개체와 본래 비전투 바이오로이드였으나 개조 후 전투원이 된 미나 등이 속한, 임시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부대였다.


다만 사령관이라는 구심점이 생기고 제대로 된 조직이 형성됨에 따라 찢어서 다른 곳으로 배치하기 애매해진 스트라이커즈는 그대로 굳혀져 하나의 팀으로 정식 분류 되었다.


그들이 주로 수행하는 임무는 다른 항공 전력의 발이 묶여서 다른 곳으로 급파되거나, 파괴, 정찰을 포함한 특정 요소를 집어 전문적인 공작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우르, 티아멧 뿐만 아니라 일반 바이로로이드 출신의 미나까지도 제 몫을 해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이 출전하는 날은 흔치 않았다.


스트라이커즈 보다 스카이나이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호드는 좀 더 범용적인 면에서 활동할 여지가 높았고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그들, 혹은 그들 이전에 마무리 되기 때문이었다.


스트라이커즈의 오르카 호 내 입지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평소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어 급할 때 시간을 벌어주고 상황을 안정시키는 일종의 비상용 발전기와 같았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둠 브링어가 고고도 정찰을 수행하고, 살짝 그 아래 고도에서 스카이나이츠가 고속 정찰을 시행하고, 숲 사이를 티아멧과 미나가 날아다니며 정찰을 수행하는 세밀한 정찰 활동이라도 나갔겠지만 오직 얼음과 눈만이 존재하는 스발바르 제도에서는 정말로 먼지 쌓인채로 빈둥거리는 비상용 발전기가 되고 말았다.


우르는 오르카 호와 임시 주둔지를 옮겨다니며 구경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 하는 등 일상 생활을 기꺼워했으나, 자신이 출격하여 활약하기를 원하는 미나는 이 백수 생활을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티아멧도 미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티아멧의 첫 출격 이후부터 발렌타인의 초코 여왕의 성을 방문하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티아멧이 출격하고 올 때마다 사령관은 티아멧에게 사탕을 하나씩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사탕을 입에 넣던 티아멧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티아멧이 사탕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오르카 호 내에서 별도로 참치캔을 지불하고 사탕을 사먹을지언정 사령관이 준 사탕은 먹지 않았다.


숙소의 침대에 앉아 옆에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커다란 유리 병( 금란은 이것을 담금주 병이라고 불렀다. )을 유심히 쳐다보는 티아멧을 보며 미나는 언제부터 티아멧이 저랬는지 생각했다.


사령관이 준 사탕이 아깝다고 서랍에 넣어놓고 안 먹은 것은 꽤 오래 됐던 것 같은데,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모으기 시작한 것은 아마 작년 연 초 였던 것 같다. 


천향의 히루메가 합류할 즈음 오르카 호는 설맞이로 분위기가 물씬 달아올랐고, 절을 하면 용돈을 준다는 새배 라는게 있었다더라~ 등 이러저런 멸망 전의 풍습을 주워들었는데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멸망 전에는 종이접기로 학 알을 천개 접어서 유리병에 담아 선물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더라, 였던가?


식당에서 티아멧과 밥을 먹던 도중 들은 말이라 자신은 별 것 없다고 생각해서 넘어갔지만 티아멧에게는 특별하게 들렸나보다.


그날 이후부터 티아멧은 서랍속에 모셔둔 사령관의 사탕을 옮겨 담을 유리 병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찰 도중 폐가를 발견, 안에서 여러 담금주 및 담금주 병을 찾았다.


거의 대부분의 담금주는 소완의 관리 아래로 들어갔지만 발견자인 티아멧과 미나는 각각 한병 씩 받을 수 있었고, 빈 병 또한 소완에게 부탁하여 하나 받아올 수 있었다.


빈 병을 얻으러 갔을 때, 티아멧의 이야기를 들은 소완의 표정을 미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기특한 동생을 보는 듯한, 따뜻하고 응원하는 듯한 그 눈빛과 미소는 평소 주방 인원들에게 듣는 소완의 느낌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티아멧은 그 이후부터 저 커다란 담금주 병에 사탕을 옮겨 담고, 임무를 마칠 때마다 받은 사탕들을 저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못해도 둘레 30cm, 높이 1M짜리 거대 담금주 병은 아무리 날고 기는 티아멧이라고 해도 언제쯤 다 채울 수 있을지 요원해보였다.


사령관이 언제나 사탕을 한개씩만 주는 것은 아니다. 


미나에게도 하나씩 주고, 숙소에서 느긋하게 먹으라고 한움큼 집어줄 때도 있다.


심지어 저번 비스마르크 본사 부근에 오르카 호가 정박했을 당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았을 때는 잘했다, 고생했다며 커다란 왕사탕을 몇 개씩 받기도 했다.


그래도 저 병은 너무 크다, 라고 미나는 생각했다.


한 해가 바뀔 때까지 열심히 모았는데 불구하고, 아직도 저 병에는 고작 3~40% 정도만 채워져 있을 따름이다.


담금주 병 사이즈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눈 돌아간 티아멧은 기어이 가장 큰 병을 선택했고, 아직까지도 할 게 없으면 저렇게 병을 노려보고 있다.


티아멧이 언제까지 저 병을 쳐다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티아멧이 미나를 불렀다.


이 병을 다 채우려면 못해도 4년, 5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야 너무 늦을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병을 반납하고 보통 사이즈의 병( 금란은 이것을 특대 사이즈 라고 불렀다. )으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라고 답했으나 티아멧은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사령관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면 이 사이즈도 부족하다는 티아멧의 말에 뒷목이 당기는 느낌을 받은 미나는 자신의 책상에서 물병을 들어 통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언제까지 티아멧의 저런 꼴을 봐야하는지 답답한 미나와, 반드시 병을 꽉 채울 생각만을 하는 티아멧이 한참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답은 밖에서 돌아온 우르가 내놓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무기를 거치하고, 드론을 충전 시킨 우르가 티아멧의 요청을 듣자 단번에 말했다.


매일 매일 어디선가 기어나오는 철충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정찰이 필요하고, 스카이나이츠와 둠 브링어가 매번 번갈아가며 출격하고 있다. 


그러면 거기에 끼어서 출격하면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는 활동 범위가 줄어들어 피로가 줄어서 좋고 티아멧은 출격 횟수가 늘어나니 사탕을 받을 일이 좋다는 것이었다.


덤으로 사령관과 자주 만날 수 있다, 는 것은 부수적이지만 정말 끌리는 보상이었다.


눈을 번쩍 뜬 티아멧이 옷을 갈아입고 일단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미나가 붙잡았다.


메이 대장은 갑자기 자신들의 작전에 외부인이 끼어드는 것이 매우 불쾌해 할 가능성이 높고, 스카이나이츠는 합이 맞지 않는 인원이 합류해서 새로 편제를 나눠야 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라는 미나의 말에 티아멧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 AGS 정찰 범위의 일부를 할당받고 기존에 배치된 AGS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세부정찰 활동으로 돌리자고 사령관에게 건의해보는 것이 어떻겠냐, 는 우르의 말에 미나가 다시 붙잡을 새도 없이 티아멧이 날아가듯 숙소를 뛰쳐나갔다.


사령관은 지금 아르망에게 패널을 뺏겨 권한이 정지된 상태라는 것을 우르에게 상기시킨 미나는 침대에 누운 우르를 강제로 기상시켜 따라나오게 했다.


티아멧을 찾아 사령관실로 갔을 때 보이는 것은 부재중인 사령관 대신 맞이한 바닐라와 이야기 중인 티아멧이었다.


티아멧은 사령관의 위치를 물었으나 임시 주둔지 정찰을 나갔기에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바닐라의 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우르를 동반한 미나가 바닐라에게 인사하고 티아멧을 데리고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바닐라는 다시 사령관실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미나는 사령관의 현재 상황을 티아멧에게 알려주고 아르망, 혹은 알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일단 사령관실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알파의 집무실을 찾았으나 그 말 많은 오렌지에이드조차 문이 열린줄 모르고 입을 꽉 다문채로 자판을 두들기고 있고, 알파 또한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키보드 여러개를 두들기는 모습에 문을 다시 닫고 나왔다.


좀 더 이동하여 아르망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손 대기 전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멸망 전 영화에서 폭력 조직의 보스의 등장 씬 처럼,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문을 쳐다보고 손을 깍지 낀 아르망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우르는 웃음을 터뜨렸고 당황한 티아멧과 미나를 의자에 앉힌 아르망이 집무실 한쪽에서 음료수를 내왔다.


한 때 학 알을 접는 것이 유행했고, 큰 병을 받아간 적이 있고, 티아멧이 복귀 할 때마다 사령관에 사탕을 받았다는 점 등을 따졌을 때 슬슬 자신을 찾아올 것을 예측했다는 아르망의 말에 다들 감탄했다.


티아멧은 AGS의 정찰 영역을 일부 할당 받는 것을 요청했고 아르망은 흔쾌히 수락했다.


현재 주기적인 정찰을 시행중이므로 그 중 한 파트를 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티아멧이 고개를 저으며 하루에 세번 정도 출격해도 좋으니 많이 달라고 했다.


아르망이 미나를 보며 둘이서 같이 출격을 해야하는데, 미나 입장에서도 괜찮냐고 물었다.


티아멧은 자신 혼자 출격해도 괜찮다고 했으나 미나는 아무리 그래도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고, 다만 티아멧에게 할당되는 오르카 호 부식의 일부( 소완제 푸딩이라던가, 아우로라제 아이스크림이라던가 )를 양도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냥 도와달라고 해도 같이 나갔을 것이지만 티아멧이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미나의 배려에 아르망이 웃었다.


아르망은 아무리 미나가 괜찮아도, 꼼꼼한 배치가 필요한 정찰인 만큼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라도 한 파트만 출격을 허가하겠다고 했다.


단호히 말하는 아르망에게 더 이상 떼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 티아멧은 얌전히 권고를 받아들였다.


잠시 후 정찰 구역을 할당받은 티아멧과 미나가 출격포드에 올랐고 그들의 정찰이 끝나고 복귀했을 때 사령관은 집무실로 돌아와 있었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왜 힘들게 정찰 활동을 요청했냐는 사령관의 물음에 티아멧은 그저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티아멧을 대신해서 미나가 답변했다.


스트라이커즈가 활약하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뭐라도 하고 싶다는 등 이러저런 이유를 대자 대강 납득한 듯한 사령관이 기특하다며 티아멧과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서랍을 열어 사탕을 한 움큼씩 주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출격하느라 계속 방치되서 뚱한 표정의 우르를 달래준 티아멧은 병에 사탕을 넣고 침대에 누웠다.


이틀 뒤 아침,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 티아멧이 말을 꺼냈다.


저 병을 채우는데 얼마나 걸릴까, 라는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냉정하게 말한 것은 우르였다.


지금처럼 계속 출격하면 2월 중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스발바르 제도의 안정화는 거의 끝난 상태라서 조만간 출격도 취소될 것 같다는 것이 우르의 의견이었다.


올해 발렌타인 때 꽉 채운 병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 굴뚝같았지만,  병이 너무 커서 그 목표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티아멧 본인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못 해도 올해 내에는 꽉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 티아멧은 마음을 다잡았다.


식사 후, 티아멧은 평소와 같이 책상위의 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발렌타인은 무리여도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전하리라, 티아멧은 다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미나는 티아멧을 보며 자신에게 추가 배정된( 원래는 티아멧 것이었던 ) 소완제 과일 푸딩을 야금야금 먹었다.


며칠 뒤, 어느 날과 같이 빡세게 정찰 활동을 끝나고 돌아온 티아멧에게 사령관이 몸을 녹이라고 차를 권했다.


미나는 몸이 좋지 않아 의무실에 다녀온다며 이미 내뺀지 오래였다.


사령관이 물었다. 요즘 심정에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냐고, 아니면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돌직구로 들어오는 사령관의 질문에 티아멧의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르망이 말했을까? 스트라이커즈 숙소에 있는 내 병을 보았을까? 내가 너무 티냈나? 등등


티아멧이 당황하자 사령관이 오히려 당황하며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 같아서, 걱정되서 묻는 것이라고 티아멧을 달랬다.


뭐라 답변해야할까, 우물쭈물하던 티아멧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 말했다.


스스로를 너무 혹사하는 것은 아니고, 사령관과 여러 인원들의 배려로 무탈히 잘 지내고 있고... 티아멧은 허둥지둥 핀트에 어긋나는 말들을 꺼내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말하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당당히 사령관에게 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내 우물쭈물하다가, 몸을 떨다가, 마침내 반쯤 울먹이는 티아멧을 사령관이 한참을 달래주고 나서야 티아멧이 떨림을 멈추고 차를 마시며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사령관이 말했다.


티아멧이 뭘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언제나 여기 있을 테니까 기다리겠다고. 그때까지 아무 것도 묻지 않겠다고 했다.


티아멧이 웃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고. 그 때가 되면 당당하게 와서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겠다고 했다.


사령관과의 대담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티아멧은 터질것 처럼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며 침대에 누워 책상 위의 병을 쳐다보았다.


사령관이 뒤늦게 들이닥친 아스널에게 쥐어짜이기 시작할 때. 


티아멧은 자신의 마음을 꽉 채워 전달하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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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안써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