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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가 다쳤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다프네의 말을 듣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실도피를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천천히, 하지만 확살한 발걸음으로 수복실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문 앞에 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문을 크게 두어번 정도 두드렸다.

 

 “...나야, 들어가도 될까?”

 

 내가 눈을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갈게.”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다프네, 리제, 아쿠아같은 의료 인원들과 브라우니나 레프리콘 같이 그녀들을 돕는 인원들로 수복실은 꽉 차있었다.

 

 내 얼굴을 본 다프네가 나를 한쪽으로 안내했다. 아마 다프네의 목적지에 우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발소리는 컸다. 우르는 지독한 원시라 가까워지는 나를 알아볼 수 없으니, 일부러 특징적인 소리를 내서 내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늘따라 수복실에 사람이 많아서, 내 발소리는 다른 소리들에 묻혀서 조그맣게 들렸다.

 

 우르가 못 들으면 어떻게 하지? 깜짝 놀라는 우르도 귀엽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평소에 다섯 배는 같이 있어줘야 하니......

 

 “하아.”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바닥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내 모습이 어렴풋하게 비쳐보일정도로 광이나는 바닥이다.

 

 고개를 들자 하얀색이 보였다. 투명한 흰색의 피부, 곱슬거리는 흰색의 장발, 그리고 흰색의 환자복.

 

 하얀색과 하얀색들이 겹쳐져 푸른빛을 띄었다.

 

 우르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르, 나 왔어.”

 

 내 목소리를 들은 우르는 어깨를 들썩인 뒤,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 왔어...? 하하...”

 

 우르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나는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벌렸다.

 

 하얀색이었다.

 

 원래도 하얀 우르였지만, 하얀색의 무언가가 그녀의 색을 막고 있었다.

 

 “사령관...? 거기 있는거 맞지?”

 

 우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나는 대답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없었다.

 

 눈이.

 

 원래도 하얀색이었던, 회색빛깔이 도는 우르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하얀 붕대가 빙빙 둘러져있었다.

 

 “우,르... 그 눈은, 도대체...”

 

 “응? 이거...?”

 

 우르는 웃었다.

 

 “실수해서 말이야.... 완전히 못 볼 꼴을 보여줘버렸네? .....막 이래.”

 

 평소와 같은 미소.

 

 평소와 같은 목소리.

 

 평소와 같은 약간 낡은 개그.

 

 모든 게 평소의 우르와 같았으니, 나도 평소처럼 웃어줘야 하는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미나가......”

 

 우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 좁지 않은 방이고, 우르의 목소리도 작았지만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랬더니 티아멧이... 사령관, 왜 그래? 혹시 무거워?”

 

 “아니, 괜찮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우르는 내 무릎 바로 위에 앉아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지독한 원시 때문에 내 온기를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던 우르다.

 

 더욱이 눈이 이 모양이 되어버린 뒤로는 나아가던 분리불안증이 심해지는 바람에,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꽤나 곤란했다.

 

 “......사령관, 고민이라도 있어?”

 

 우르는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니, 괜찮아.”

 

 “고민이 없다는 소리는 안 하네?”

 

 “......”

 

 저격수 아니랄까봐, 갑자기 들어온 저격에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우르는 그런 나를 보고... 아니, 느꼈는지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미안... 내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아냐, 우르 때문이 아닌걸...”

 

 우르의 눈은 감겨있었다. 저번에 닥터의 보고서를 봤는데, 양안이 완전히 으깨져서 적출을 해냈다고 한다. 그 사진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눈의 치료도 어렵다고 했다. 우르의 눈은 극도로 먼 거리만 볼 수 있는 심각한 원시. 그 시력이 기본 사양이다. 평범한 안구라면 몰라도, 그러한 눈을 딱 맞는 사이즈로 만들려면 사실상 우르를 하나 더 만들어서 눈을 갈아끼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건 조금 그렇잖아.

 

 그래서, 우르의 눈은 아마도 방법을 찾을 때까지 계속 이대로.

 

 그 말은 즉, 앞으로 계속 이런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뜻.

 

 일부에서는 이미 후방으로 배치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왔지만, 우르 본인의 불안증세가 너무나도 심해서 차마 그런 짓은 하지 못했다.

 

 뭐, 덕분에 나도 그 진빠지는 동침 일정에서 벗어나 심신이 편하지만......

 

 “사령관,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래.”

 

 앞이 보이지도 않을텐데, 어떻게 내 표정을 안 걸까.

 

 나는 쓴웃음을 지은 뒤 내 볼을 주물럭대는 우르의 볼을 만졌다.

 

 “우웃? 샤려응과안... 하으지 마으아....”

 

 볼을 주물러 댈 때마다 바뀌는 우르의 목소리에 실소를 흘렸다.

 

 우르도 그에 화답하듯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나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르, 눈 고칠 생각 없어?”

 

 아주 잠깐, 우르의 표정이 잠시 굳은 뒤, 다시 아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우르가 말한다.

 

 “으음...... 고칠 생각 없다고 하면, 화낼거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

 

 “사령관도 알잖아, 내 눈.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는 이상한 눈. 물론 저격할 때는 되게 쓸모 있지만...... 평상시에는 도움도 안 되는 눈치 없는 눈.... 헤헤.”

 

 우르는 늘상 치던 개그를 치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항상 그랬듯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이런 말 하면 내 눈을 고쳐주려고 열심히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나 대신 일해주는 다른 대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이 상태가 더 좋아.”

 

 “......왜?”

 

 목소리가 떨렸다.

 

 “확실하잖아. 괜히 애매하게, 희미하게 보여서 저게 인형은 아닐까? 정말로 지금 내 곁에 누군가가 있는걸까? 하면서 고민할 바에는, 확실하게 안 보이는 편이.... 좋아. 응, 그게 나아.”

 

 우르는 나에게 몸을 기댔다.

 

 “봐,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사령관의 따뜻한 체온, 사령관의 냄새, 사령관의 소리까지...... 애매했던 시각이 사라지니까, 다른 감각들이 이렇게나 새로운걸. 10을 잃고 20을 얻었으니까, 10 이득이야.”

 

 줄여서 씹이득. 헤헤.

 

 정말이지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농담이다.

 

 우르도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지금 엄청 행복하니까.”

 

 우르는 웃었다.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저 웃음을 짓기 위해 우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짓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그 웃음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천 두 장을 사이에 두고 딱 달라붙어있을 정도롤 가까운 거리인데, 그 어느때보다도 우르가 멀어보였다,

 

 그래,

 가까워질수록, 멀어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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