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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눈이 싫었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기분 나쁘다고 하는게 맞겠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무엇 하나 느낄 수 없는 거리까지 떨어져야하는 이상한 눈.

 

 시각을 위해서는 그 외 나머지 감각들을 포기해야하고, 나머지 감각들을 모두 느낄 수 있으면 시각만은 느낄 수 없는, 완전한 감각따위는 느낄 수 없게 만드는 눈.

 

 눈이 싫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만 보이는 눈이었다면.

 

 그랬다면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일도, 매일매일 얼굴이 보고싶은 이 뜨거움도, 하지만 결코 완전한 만남을 가질 수 없다는 이 상실감도.

 

 전부, 전부,

 

 모르고 지나갔을텐데.

 

 차라리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처음부터는 무리지만.

 

 지금부터는 가능하니까.

 

 나는.

 

 그대로.

 

 

*****

 

 

 “그래서, 미나가 티아멧의 머리를 때려버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웠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내 몸을 포근히 감싸는 온기, 은은하게 풍겨오는 체취,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모든 감각들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눈이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나가 바퀴벌레를 잡겠다고 티아멧의 머리를 랜스로 내려찍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티아멧이... 사령관, 왜 그래? 혹시 무거워?”

 

 사령관이 자꾸 몸을 뒤척였다. 무거운 걸까 싶어서 물었다.

 

 “아니, 괜찮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괜찮다고 대답하는 목소리였지만, 내용과 다르게 전혀 괜찮아보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 괜찮게 들리는 이라고 해야하나.

 

 우르 조크, 헤헤.

 

 고개를 위로 들고 손을 쭉 뻗었다. 말랑하면서 약간 거친 느낌이 나는 온기가 느껴졌다.

 

 “......사령관,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괜찮아.”

 

 ‘없어’, 가 아니라 ‘괜찮아’라... 약간 서운했다. 나를 멀리 떨어트려두려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나빠졌다.

 

 “고민이 없다는 소리는 안 하네?”

 

 사령관은 말을 잃었다. 숨소리도 멈춘 걸 보니, 꽤 많이 놀란 모양이다. 

 

 “미안... 내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아냐, 우르 때문이 아닌걸...”

 

 아냐, 나 때문이 맞는걸.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결단을 내렸다면 이럴 일은 없었어.

 

 사령관은 착하고 상냥하고 다정해.

 

 나 같은 결함품도 이렇게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사령관이니까, 아마 지금 내가 눈을 잃어버린 걸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사령관은 지금의 내 상태를 자신의 작전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흔들리는 온기가, 불안한 듯 뛰는 심박음이, 눈을 잃은 댓가로 한층 날카로워진 저격수로서의 감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알렸다.

 

 아닌데, 사실은 전부 나 때문인데.

 

 바보 같은 사람.

 

 그래서 사령관이 좋아.

 

 그러니까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사령관,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래.”

 

 사령관의 볼을 주물럭대자, 내 볼에서도 비슷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내 볼을 이리저리 비틀고 잡아당기고 늘렸다.

 

 “우웃? 샤려응과안... 하으지 마으아....”

 

 사령관이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역시, 눈 같은게 없으니까 이렇게 행복한데----

 

 “우르, 눈 고칠 생각 없어?”

 

 아주 잠깐이지만, 표정이 굳었다.

 

 눈을 고쳐?

 

 싫어.

 

 이제 다시 얻고 싶지 않아.

 

 “으음...... 고칠 생각 없다고 하면, 화낼거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 

 

 왜 그렇게 생각했냐라, 어려운 질문이었다. 말하는 입장으로도, 대답하는 입장으로도.

 

 대답하기는 쉬웠다. 내 감정을 그대로 말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괜히 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사령관에게 먹였다가, 배탈이 날지도 모르니까.

 

 조금은 요리를 해야한다.

 

 나는 내 눈을 싫어하게 된 가장 첫 계기를 떠올렸다.

 

 오르카 호에 처음 왔을 때의 일이었다. 미나나 티아멧 같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좁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혼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에 있게 되어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던 그때. 사령관이 들어와서 나를 끌어안아줬었지.

 

 그때, 너무나도 내 눈이 싫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의 얼굴도 곧바로 확인할 수 없는 이 눈이 미웠다.

 

 “사령관도 알잖아, 내 눈.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보이는 이상한 눈. 물론 저격할 때는 되게 쓸모 있지만...... 평상시에는 도움도 안 되는 눈치 없는 눈.... 헤헤.”

 

 평소에는 재밌었던 농담인데, 이번에는 전혀 재밌지 않았다. 사령관도 그런지 평소와 달리 웃지 않았다.

 

 “이런 말 하면 내 눈을 고쳐주려고 열심히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나 대신 일해주는 다른 대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이 상태가 더 좋아.”

 

 “......왜?”

 

 사령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확실하잖아. 괜히 애매하게, 희미하게 보여서 저게 인형은 아닐까? 정말로 지금 내 곁에 누군가가 있는걸까? 하면서 고민할 바에는, 확실하게 안 보이는 편이.... 좋아. 응, 그게 나아.”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사령관에게 몸을 기댔다.

 

 

 어차피 감겨있는 눈이지만.

 

 “봐,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사령관의 따뜻한 체온, 사령관의 냄새, 사령관의 소리까지...... 애매했던 시각이 사라지니까, 다른 감각들이 이렇게나 새로운걸. 10을 잃고 20을 얻었으니까, 10 이득이야.”

 

 내 눈이 싫었다.

 

 사령관과의 처음은 정말로 황홀했다. 그때는 눈 따위 신경 쓰지도 않고 사령관의 냄새, 감촉, 맛, 향기까지,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이 반짝거려서, 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영상을 보았을 때.

 

 나를 끌어안으면서, 내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사령관의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는데.

 

 볼 수가 없어서.

 

 그것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해서.

 

 그게 너무나도 슬프고, 괴롭고, 짜증나고, 화가 나고, 비참해서.

 

 차라리, 저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었다면, 그냥 하나의 장면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었을텐데.

 

 저 멀리 바위 끝에 묻어있는 물고기의 알보다도 작은 가능성이 있는 바람에, 그 가능성을 포기 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실낱보다도 가는 가능성을 놓지 못하고 가라앉을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지금 엄청 행복하니까.”

 

 저기, 사령관. 그거 알아?

 

 내 눈, 정말로 이상한 내 눈.

 

 저격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그 때를 제외하면 방해만 되는 귀찮은 눈.

 

 사령관은 그런 점도 내 매력중 하나라고 했지만... 미안, 역시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 덕분에 알게된 사실도 있었지.

 

 내 원시는 사실상 장애 수준이잖아? 하지만 사령관은 그런 점도 매력으로 봐줬어.

 

 그렇다면, 만약 내 눈이 멀어도, 사령관은 그걸 내 매력으로 봐 줄 거야?

 

 내 눈, 정말로 이상한 내 눈.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잘 보이지 않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또렷하게 보이는 내 눈.

 

 사령관이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령관의 모습이 더 가깝게 보여. 

 

 내가 사령관에게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령관의 모습이 더 멀게만 보여.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령관이 더 가까워지니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

 

 지금은 눈이 멀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뒤가 없는 곳까지 멀어져버렸으니까.

 

 눈이 멀어버린 지금, 사령관이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만 느껴지는게 너무나도 기쁘니까.

 

 나 때문에 후회하지말고, 나 때문에 자책하지 말아줘.

 

 나는 행복해.

 

 사령관과 멀어져버렸으니까.

 

 그래, 

 멀어질수록, 가까워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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