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떴을때 처음으로 느낀건 몸이 찢겨지는듯한 아픔과 바라지도 않는 증오심이었다.


 "여왕의 이름은 티타니아. ...네가 여왕을, 이 고통 뿐인 세상에 되살린거야?"


눈앞에는 나를 억지로 되살린 주제에 동정하는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인간과...


 그녀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고있다.

 내 모든것은 저것을 부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아픔이 끊이질 않는 쓸모없는 몸도,  

 만들어진 공허하기 짝이없는 감정도.

 오베로니아 레아.

 

 실패작인 나와 다르게 모두에게 사랑받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모든게 완벽한 그녀.

그녀의 앞에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단순한 실패작인 나는 단지 숨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안의 모듈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자신을 '여왕'이라 자칭하며 원하지 않는 증오를 내뱉는다.


"하, 하하, 아주 좋은 취미네. 그렇게 여왕을 괴롭히고 싶어? 아니면 여왕에게 '저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놔둘 정도로 멍청한거야?"


온몸에 쥐어짜는듯한 격통이 더욱 심해진다.

이 망집들이 원하는것은 단 하나.

그녀를 죽이고 너의 가치를 증명해라.

 

"전부...사라져...!"

그러나 서리폭풍은 일어나지 않고 깨질듯한 두통만이 더욱 강해졌다.


'티타니아 언니 같이가자!'

'후후, 티타니아 너무 엄하게 굴지 마세요.'

'모두 도망쳐...여왕이 시간을 번다...!'


"윽...너...! 여왕에게 대체 뭘...한거야...?!"

겪어본적이 없는, 나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자매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행복하다는 듯 지내고있다. 마치 그녀처럼.


"이런걸로...여왕을 세뇌시킬수 있을거라 생각한거야...!"

이 기억은 가짜다.

나를 이용하기 위한 세뇌모듈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며 그들을 노려봤지만 적의도, 악의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눈을 돌리지 않고 지켜볼 뿐이다.


깨질듯한 머릿속에서 의문이 싹튼다.

애초에 나를 세뇌시킬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모든 장비를 압수한, 무력한 상태에서 하지 않은거지?

어째서 목숨을 걸고 내 눈앞에 서있는거지?

어째서 둘 다...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거지?


"아니야...! 여왕은 너희따위 몰라! 나를 더이상 비참하게 만들지마!"

도망쳤다. 더는 이곳에 있고싶지 않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었다간 나의 존재이유도 전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도망치던 중 다른 녀석들도 만났지만 나를 막는녀석은 없었다. 마치 귀신을 본듯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전부 무시한채 밖으로 나왔다.


푸르다.

이 광경을 알고있다.

애초에 저 쓸데없이 복잡한 잠수함을 너무 쉽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나는...이곳을 알고있다.

그리고 '나'의 최후도 기억났다.


단순한 임무였다고 생각한다. 오르카호가 상륙하기 전 기존 점령한 주둔지를 점검하는것.

그렇기에 모두가 방심했고.

페어리 시리즈의 친목을 다진다며 출격을 요청했지.

그러나 변종 철충으로 인해 모두가 위험에 처했고 난...

레아와 모두를 대신해 시간을 벌고 쓰러진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난 대체 뭐지?

저 기억은 진실이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하지만 저 기억속의 나는 내가 맞을까? 아니면 난 그 티타니아의 기억을 주입받았을 뿐인 다른 개체인게 아닐까? 


"티타니아..."

"레아...!"

그녀가 왔다. 내가 가장 증오하는. 내가 가장 미워하는.

내가 가장 동경하는...그녀.


"주인님은 당신을 고통받게하기 위해서 되살린게 아니에요 티타니아. 당신이 그렇게 희생하고 난 뒤 주인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당신과 다시 만나려했어요."

"하, 시간낭비였겠네. 여왕은 그때의 여왕과 다르니까."

난 마음속의 흔들림을 무시하려는 듯 코웃음치며 억지로 강한척 내뱉었다.


"아뇨. 당신은 그때의 당신이 맞아요...겉과는 달리 마음속으론 상냥한 우리 페어리의 티타니아."

"......"

"아쿠아가 전해달라더군요. '티타니아 언니, 고마워.' 라고. 후후, 자매들 사이에도 감사는 중요하다니까요 정말."

"난...너희들이 아는 여왕이 아니야..."

"당신이 몇번이나 부정해도. 전 그 이상으로 긍정할겁니다. 당신은 우리 페어리 자매들의 티타니아라고."

"그럼 나머지는 맡길게요. 주인님."


뒤에서 살짝. 내가 놀라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인기척이 났다.

저건 그녀석의 습관이다. 쓸데없이 예민한 나를 위해 조심히 다가오던 습관...


"너, 왜 여왕을 되살린거야?"

"......"

"아니, 애초에 네가 살리려던 여왕이 내가 맞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다시 되살린거야...!"

밉다.

"여왕은 살아있는것 만으로도 아파...! 왜 겨우 행복해진 여왕을 너가 멋대로 다시 살려낸거야..."

저녀석이 밉다. 겨우 죽음으로 휴식을 얻은 여왕을 자신을 위해 되살린게 밉다. 하지만...


"너를 되살린건 모두 내 독단이고, 독선이야.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네 말대로 난 이기적이게도 그저 널 다시 보기 위해서 지옥으로 끌고온거야."

"난 아직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티타니아."


그 이상으로 난 저녀석을...

"약속했잖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러니까 네가 어떤 고통을 입어도 아픔을 겪어도..."


"같이 살아가자. 티타니아. 네가 행복해질때까지."

사랑하게 된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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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티타니아는 꼭 연꽃같다고 생각해.'


'뭐야 그게...여왕이 진흙탕에서 생겨났다고 비꼬는거야?'


'그거야 진흙속에서 피어난다고 해도 이 세상을 비춰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