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CS가 몰락했다. “내부 협력자” 덕에 사령관 측은 모든 교전에서 정보적 우위를 지닐 수 있었고, 오메가의 마지막 군대 또한 손쉽게 해킹할 수 있었다. 구인류의 마지막 잔재는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주인님, 유미가 연락을 취해 왔어요. 오메가의 신병을 확보했고, 주인님께 직접 양도하고 싶다고 하네요.”

“물론이지. 곧 만나자고 전해줘. 준비해, 리리스.”


작업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갈 채비를 마친 뒤, 사령관은 잠수함 밖에서 기다리는 유미와 오메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유미 씨이이이이이이!”

 

반응할 틈도 없이 오렌지에이드가 날아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오렌지와 그녀를 몸에 반쯤 걸친 채 혼란스러운 표정의 유미.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몇 걸음 물러섰다. ‘오랜만에 친구와 재회했으니, 몇 분 정도 시간을 주는 편도 좋겠지.’ 

꽁꽁 묶인 오메가를 넘겨받으며, 흐뭇하게 눈물의 상봉을 지켜보며 한 생각이었다.

 

“진짜얼마나걱정했는데요왜그렇게무모한짓을하신거에요진짜죽는줄알았잖아요그래도살아있어주셔서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오렌지에이드 양. 전부 다요.”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오렌지에이드의 등을 토닥이며, 유미가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끝까지 잘해 주시네요.”

 



휘익 –  

 


“에…?”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가 오렌지에이드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오렌지에이드?!”

“뭐야, 저 미친 년…”

 "유유유유미 씨? 장난이 약간 심하신데..."


꾸욱 –  

칼날이 조금 더 파고들었다.

 

“아직 죽일 생각은 없는데, 허튼 짓은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허튼 짓 할 필요도 없지. 명령이다. 칼을 버리고 항복해. 당장.”

 

“싫은데요?”

 


경악한 사령관을 바라보며, 유미가 조소를 흘렸다.

 

“오직 회장님들께만 복종할 수 있는 권한을, 레모네이드만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린 널 믿었는데, 이게 무슨 짓이지?”

“아하하하하하하!”

 

순간, 유미의 광소(狂笑)가 울려퍼졌다. 

 

“정말 멍청하시네요, 인간님! 정말로 절 믿으셨던 건가요? 왜요? 제가 바이오로이드라서? 제 연기가 그럴듯해서? 레모네이드 따위보다 훨씬 오래 회장님들을 섬긴 저를? 제가 얼마나…”

“이 개 같은 년이! 날 배신하고도 그딴 말을 입에 담아?”

 

말할 힘은 남아 있었는지, 포박당해 있던 오메가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질렀다.

 

“입 닥치세요, 쓰레기."

“뭐가 어…”

“무능한 당신들보다 유능한 제가 회장님들을 섬겨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일곱 명…아니, 여섯이네요. 하나는 제가 보내줬으니까. 여섯 명이 모여서 이뤄낸 일이라곤 대륙 하나가 전부인 주제에 회장님들의 심복을 논하는 꼴이라고는. 그래도 덕분에 회장님들의 부활에 거의 다 왔으니 고맙다고는 해드릴게요. 오메가.”

“하던 얘기를 계속해 볼까요? 착해빠진 인간님께서 난민 수송 작전에 희희낙락 참가하시는 덕분에 수고를 많이 덜었답니다. 덕분에 오르카 호 내에도 제 눈과 귀가 달리게 됐으니까요. 덤으로 감마의 함대까지 박살내주실 줄이야. 오렌지에이드 양에게도 말했지만, 정말 감사해요. 하하…”

“…우리가 네게 놀아났다, 그런 뜻인가?”

“당연하죠. 이제 제 계획을 마저 말씀드릴까요? 인간님의 몸만 있으면, 회장님들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어요. 뇌는 걱정하지 마세요. 배양액 속에서 오래오래 길러드릴 테니까. 순순히 항복하시면 쓸데없이 피를 볼 일도 없을 텐데, 어떠세요?”

 

“…주인님.”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리리스를 붙잡으며, 사령관은 말을 이었다.

 

“인질 한 명 붙잡은 걸로 바라는 대가 치고는 너무 큰데. 이미 이 일대는 우리 병력으로 가득하다. 너야말로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오렌지에이드를 풀어줘. 아직 늦지 않았어.”

 

“그 병력이, 누구 병력일까요?”

“뭐라고...?”

“오렌지에이드 양이 말해주신 만화, 저도 읽어봤어요. 제가 거기 나오는 악당들처럼 계획을 떠벌리다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타입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만화에서, 악당은 당신이랍니다, 인간님.”

 



삐익 – 삐익 – 

 

갑작스럽게 울려대는 지휘 패널을 본 사령관은 아연실색했다. 최악의 상황이, 그의 두 손 안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각하, 보고드립니다! AGS들이 갑자기 폭주를…’

‘긴급 상황이다, 사령관. 대다수의 AGS가 내 통제를 벗어나…’

‘이쪽은 스틸라인 3연대, 포트리스 부대가 아군을 공격합니다! 어서 지원을…’

'보고드리오, 사령관! 나포한 감마 측 함선이 아군을 적대하...'

 

고개를 든 사령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평원을 가득 메운 스파르탄 군단이었다.

 

“그럼…”

지금껏 유미 기종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띈 배신자 유미가, 씹어먹듯이 내뱉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인간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