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오르카호에서 하선한 지 오늘로 사흘째, 어째 몸에 힘이 없는 게 밥을 제대로 못먹어서 그런건지 오르카호 떠나기 전에 맞은 오리진더스트 약빨이 다 떨어져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리디아가 합류한 뒤로 식량사정이 조금 나아졌으니 아마 전자는 아닐 거 같다. 내가 오르카호에서 가져온 일주일치 식량은 셋이서 소비하다보니 금방 동나게 생겼고, 그러자 리디아가 야생동물을 사냥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서바이벌 짬밥은 폼이 아니었는지 총알을 낭비하지도 않고 덫이나 맨손으로 토끼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오곤 했다. 그 덕에 보존식밖에 없었던 우리의 식탁에 고기가 추가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항상 수렵민족으로 살 수도 없으니 참치캔같은 보존식품도 확보해놔야 한다.


마침 도로 한켠에 과거 주유소 겸 편의점 역할을 했던 폐허 건물이 눈에 띄었기에 차를 세웠다.

갈길이 급하다지만 슬슬 쉬고 싶기도 했고 주유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냉큼 주유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셀프 주유소네... 누구 카드나 현금 있는 사람?"


"있을 리가."


"저도 빈털터리임다."


"그보다 전원도 안들어오네 이거. 망했군."


"비켜봐 형님."


리디아가 나를 슬쩍 옆으로 밀고선 주유기계를 군홧발로 쾅쾅 걷어찼다. 기계 아랫쪽이 음푹 패이며 주유건에서 기름이 줄줄 새기 시작하더니 이내 땅바닥이 검게 적셔졌다.


"됐어! 역시 기계는 이래야 말을 듣는다니까."


"그래 뭐... 여기 또 올 것도 아니니까 당장 기름만 넣으면 됐지. 리디아 니가 주유 좀 해라, 여기선 담배 피지도 말고."


"형님,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트레저 넌 나 따라와. 가서 먹을 것 좀 찾아보자."


"가기 전에 잠깐, 고블린 넌 이거 챙겨가."


리디아가 차 뒷문을 열고 트레저에게 총을 한정 건네줬다, 형태로 보아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브라우니가 쓰던 돌격소총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럼 너는?"


"난 상뱀한테 받은 기관총 있거든. 이게 더 쓸만하더라."


"그래보이네, 내꺼랑 바꾸자."


"주는대로 쳐받아 고블린새꺄."


칼같이 거절당하고 툴툴거리는 트레저를 챙겨 주유소 옆에 딸려있는 편의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로 된 문을 열자 문 위에 달려있던 작은 종이 경쾌하게 딸랑거렸다.

솔직히 안에 있는 식량은 멸망 전에 싹 다 털어갔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정말로 텅 비어있었다 제길.

카운터에도 진열대에도 상품 대신 먼지만 뿌옇게 쌓여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카운터 뒤쪽에 자물쇠가 걸려있는 창고 문을 발견하자 아직 남은 식량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도로 피어올랐다.


"카운터 잘 뒤져봐, 열쇠가 남아있을지도 몰라."


"걱정마십쇼 형님, 저한테 자물쇠 따는 기술이 있슴다."


뭔가 자신있게 말하길래 락픽이라도 하려나 했더니 냅다 자물쇠에다 대고 총을 쏴서 끊어버렸다.


"...아니 차라리 개머리판으로 쳐서 부수지, 총알 아깝게스리 뭔 개짓거리여."


"헤헷,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슴다."


창고 안의 선반에는 제일 밑에 칸에만 상자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중 태반이 상한 음식이었으나 다행히 통조림같은 보존식이 들은 상자도 찾을 수 있었다. 나와 트레저가 상자를 하나씩 들고 창고를 나서려던 참에 급박하게 뛰어들어온 리디아와 부딪혔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걸 뒤에 있던 트레저가 몸으로 받쳐줘서 뒤통수 깨지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아야야... 뭐야?"


"야, 눈을 어따 달고 다니는 거야! 하마터면 형님이-"


"지금 그럴 때가 아냐! 안으로 들어가, 빨리!"


다급하게 들어온 리디아는 설명도 없이 우릴 창고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문을 닫았다.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문에 달려있는 창문으로 바깥을 살피는 모습에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뭐라 묻기도 전에 리디아가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철충이야, 나이트칙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나이트칙, 폴른이 철충에 감염된 형태. 인게임에서는 폴른이나 브라우니나 비슷비슷한 전투력의 졸병 취급이었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 알바트로스도 체강지휘관으로 놀림받는 신세가 아닌 설정값 그대로의 트루 최강 지휘관일 거란 말이다.

설정상 브라우니 3명 레프리콘 1명으로 구성된 1개 분대와 폴른 1대의 전투력이 동등하고, 거기다 철충에 감염된 AGS는 성능이 더욱 강화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팀 전투력은 대략 브라우니 2인분인데 저쪽 전투력은 폴른 2대 플러스 알파라고? 게임이 안된다.


"망했군..."


"아직은 아니지, 저것들이 형님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가주기만 하면 돼."


*


해안가 도시를 점거했던 철충 부대가 그 살덩이의 군대에 패배했다. 패잔병들은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내륙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가던 나이트칙의 시야에 한 폐건물이 들어왔다. 건물 앞에선 '만들어진 살덩이' 하나가 뭔가 하고 있었으나 저들을 보자 냅다 건물 안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꼴사납게 쥐구멍으로 숨는 생쥐를 연상시켰다. 

그 뿐이다, 만들어진 살덩이를 쳐다보느라 시간을 허비할 이유는 없다. 나이트칙은 그렇게 생각하고선 가던 길을 마저 가려 했다.


그러나 그 나이트칙은 뭔가 놓친 게 있다는 듯 다시 폐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들어진 살덩이가 뭔가 하고있던 AI회로가 없는 바퀴달린 기계, 그 밑에 흥건한 구식 액체성 연료.

그 연료가 만들어진 살덩이의 신발을 적셨기에 바닥엔 차량에서 건물까지 까만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이트칙은 그 발자국에서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본 만들어진 살덩이는 한 마리 뿐이었으나 발자국은 분명 두 마리 이상의 것이 남아있었다.


만들어진 살덩이가 여럿 뭉쳐다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이미 저 바다엔 오래전 멸종시켰으리라 여겼던 진짜 살덩이 한 마리가 멀쩡히 살아있는 전례가 있다.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또다른 살덩이가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도 터무니없는 의심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후발 부대가 자신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잠깐 확인하는 정도는 임무에 아무런 지장도 없을 것이다. 만들어진 살덩이 뿐이면 그냥 가면 되고, 진짜 살덩이가 남아있다면 사살하고 가면 된다.

나이트칙은 그렇게 생각하며 까만 발자국을 따라 건물로 진로를 돌렸다.


*


"어어 저거 이쪽으로 오는... 아, 발자국!"


리디아의 외침에 나와 트레저가 신발을 내려다보자 여태껏 바닥에 까맣게 도장을 찍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눈치챘다.


"싸울까?"


"싸워서 될 일이 아니야, 고블린!"


"뭐 어쩌라고 그럼, 이 안에선 도망칠 데도 없는데!"


"둘 다 진정해. 일단 창고 밖으로 나가서 뒷문으로 도망-"


내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문에 달린 벨소리와 함께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트칙이 유리로 된 문을 부수고 실내로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냐. 여기가 내 관짝인가 보군."


"형님, 정신 붙들어매십쇼! 제가 차까지 하이패스로 길 뚫어놓겠슴다!"


"아 그러니까 우리 둘로 폴른 한대도 못이긴다고 이 멍청한 고블린새꺄!"


"이 브라우니년이 진짜, 그리 무서우면 너 혼자 도망치던가!"


"얘들아 제발 좀, 철충 눈앞에 두고 굳이 싸워야겠냐?"


고블린은 설정상 브라우니랑 비슷하게 낙천적인 성격이라매... 오르카 브라우니는 여럿 모이면 다같이 양파노래 부르며 잘 지내는데 얘들은 왜이래...

사실 뭐 이유가 짐작이 안가는 건 아니다, 한명은 야생에서 짬밥 먹으며 성깔 생긴 장발브고 한명은 선천적 분노조절장애니까.

이러는 와중에도 나이트칙은 점점 창고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저놈이 문 부수고 나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기관총 갈길거다.

시발 참치캔 좀 챙기려고 편의점 들렀다가 이게 왠 날벼락이야. 정작 들어와서 찾은 것 중 두 상자만 멀쩡한 음식이고 나머지 상자는 다 쓰레기...


"그거다!"


"예? 형님?"


*


실내까지 찍힌 발자국의 끝은 저 조약한 철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에서 뭔가 쌓아놓은 게 무너지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이트칙은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가 본 것은 만들어진 살덩이 두 마리, 하나는 아까 자신을 보고 도망친 개체이며 하나는 처음 보는 개체. 보기드문 남성형이었지만 그것 또한 만들어진 살덩이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두 마리는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으나 위협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만들어진 살덩이들은 진짜 살덩이의 명령 없이는 방아쇠도 못 당기는 한심한 족속임을 잘 안다.

그들의 뒤에는 대충 쌓아놓은 종이상자와 그 주변에 흩뿌려진 상자에서 흘러나온 듯한 잡동사니. 그 외엔 자신이 들어온 곳을 제외하면 사방이 벽이었다. 발자국을 보고 예상한 대로 만들어진 살덩이가 두 마리 이상 있었을 뿐이다. 역시 진짜 살덩이는 없군, 나이트칙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


나이트칙이 유리 파편을 콰직 밟는 소리를 기점으로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형님, 갔슴다."


"-휴우!"


트레저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위에 깔린 상자더미를 치우고 일어섰다.


"다행히 놈이 상자 쌓아놓은 것까지 들춰보진 않았네. 급하게 대충 숨은 거라 진짜 들키는 줄 알았어."


리디아가 부숴진 창고 벽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깥을 살펴봤다. 아까 창고 안까지 들어왔던 나이트칙이 바깥에서 대기하던 나이트칙과 합류해 도로를 따라 어디론가 가는 걸 보고 안심했다.


"하여간 그 벌레놈들이 멍청해서 다행이라니깐."


*


건물 바깥에서 대기하던 철충이 물었다, 안에서 무엇을 보았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철충이 답했다, 만들어진 살덩이 두 마리 뿐이었다.

건물 바깥에서 발자국을 관찰하던 철충이 되물었다, 발자국은 세 마리의 것이었는데 왜 둘밖에 보지 못했냐고.


두 나이트칙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두 마리 뒤에 있던 상자 더미. 하다못해 상자를 자기들 앞에 세워서 바리케이드로 쓸 수도 있었을텐데 왜 자신들의 뒤에 뒀지? 마치 그 상자 더미를 지키는 것처럼?

만일 그 세번째 발자국 또한 만들어진 살덩이였다면, 그렇게까지 해서 지킬 이유가 있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두 나이트칙은 몸체에 새겨진 소용돌이 무늬에서 붉은 빛을 한층 더 강하게 뿜어내며 도로 그 폐건물 쪽으로 진격했다.


*


편의점에서 멀쩡한 식량이 들어있는 상자를 하나씩 들어 트렁크에 막 싣고 차에 타려했다. 난 운전석 문을 열고 리디아는 그 뒷문에 서서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도로 앞쪽에서 까만 쇳덩이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한순간 정신이 팔렸었고, 총성이 들림과 거의 동시에 뭔가 내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내 뒤에 서있던 리디아가 나를 당겨 차 뒤쪽으로 몸을 숨겨준 거였다. 좀 전에 열어놓은 운전석 문에 총탄이 박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서야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었다.

우릴 향해 나이트칙 두 마리가 기관총을 쏘며 달려오고 있고, 우리 셋은 급한대로 차를 엄폐물 삼아 숨은 상태였다. 다행히 블랙리버에서 만든 지프차라 그런지 나름 튼튼한 것 같았다.


"저놈들 왜 돌아온 거야!?"


"낸들 아냐! 그보다 형님, 빨리 명령을-"


"누구한테 총을 쏴재기냐 이새끼들아!!"


나를 향해 총을 쐈다는 사실은 트레저 뚜껑 열리게 하는 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일반적으로 바이오로이드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인간(과 인간같은 뇌파를 뿜는 철충)에게 해를 끼칠 수 없도록 설계되었으나 초창기 바이오로이드인 고블린에겐 그런 제약이 전혀 걸려있지 않았다. 이마에 핏줄까지 선 트레저는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철충을 향해 소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와."


"저쪽 그만 쳐다보고 빨리 명령 내려줘! 난 명령 없으면 못싸운다고!"


"아, 그렇지.. 교전을 허가한다! 공격해!"


제조된 후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들은 인간의 명령. 리디아는 머릿속에 내재돼있는 새것과 다름없는 전투모듈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됨을 느낄 수 있었다.

트레저에 이어 리디아도 철충을 향해 레프리콘의 기관총을 쏘기 시작하자 철충이 죽일듯이 달려오는 걸 멈추고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엄폐물 너머로 슬쩍 머리를 내밀어 보니 트레저는 정직하게 나이트칙의 둥근 몸통부분을 집중적으로 쏘는가 하면 리디아는 노련하게 나이트칙의 다리 관절부를 노려서 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리디아는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애꾸눈이라 그런지 명중률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이트칙의 원본형인 폴른은 AGS 로보테크의 졸병급 위치라 한들 전고 약 2m에 무게 약 1t짜리 전쟁병기다, 결코 얕볼 게 못된다. 두 나이트칙은 트레저와 리디아의 총알세례를 맷집으로 버티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제길, 아무리 쏴도 죽지 않잖아 저거!"


옆에서 리디아가 탄창을 갈아 끼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철로 이루어진 몸이라 한들 총탄이 박힐수록 조금씩 고장나는 건지 점점 움직임이 더뎌지고 있으니까.

너무 조금씩 말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저 철충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여기까지 와서 날 죽일거다.


"화력이 부족해! 리디아, 수류탄 같은 거 없어?"


"미안한데 노움 상뱀이 쓰던 발포 콘크리트 수류탄 몇 개 뿐이야!"


"그걸 왜 니가 가지고 있어!?"


"상뱀 시체 옆에 떨어져 있길래 내가 줏었다 왜!"


"어... 미안."


"미안하면 잠깐 나 대신 총 좀 잡아줄래? 곧 상뱀이랑 재회할 거 같은데 죽기 전에 담배 한 대만 피게."


"내가 여기서 담배 피지 말랬지, 안그래도 바닥에 기름 흥건한데-"


그 순간 나와 리디아는 말을 멈추고 서로의 눈만 응시했다. 잠시 후 사백안이 됐던 리디아의 눈이 삼백안으로 돌아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저, 차에 탈 준비해!"


"아니 형님, 저놈들을 내버려둔 채 후퇴하자는 검까!"


"우리 화력만으론 못이기거든? 리디아!"


신호를 주자 리디아는 재킷 주머니에서 노란 수류탄을 집어들어 안전핀을 뽑고 차 앞으로 던지자 착탄지점에 순식간에 콘크리트 벽이 만들어졌다.

나이트칙의 공세가 멎자 우린 재빨리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 멜 틈도 없이 후진 기어를 넣어 뒤로 급발진했다. 차가 시끄러운 바퀴소리를 내며 주유소에서 벗어나자 상황을 파악한 나이트칙들은 곧바로 차를 뒤쫒아 주유소 안쪽으로 들이닥쳤다.

우리가 주유하러 차를 세웠던 그 자리에 나이트칙이 선 순간 리디아가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철충이 아닌 바닥을 향해 난사했고, 땅바닥과 총탄이 부딪히며 튕긴 스파크가 바닥을 적신 기름에 불을 붙였다. 불이 번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까만색으로 빛나던 땅이 뜨거운 붉은색으로 칠해졌고, 곧이어 주유소가 통째로 폭파되었다. 피할 틈도 없이 폭발에 휘말린 두 나이트칙은 고철더미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폭발 범위에서 충분히 벗어나자 차를 멈춰 완전히 박살난 주유소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차의 유리에는 아직도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과 그 위로 피어오르는 새까만 연기가 비춰졌다.


"...위험했다아..."


"끝내주는 작전이었슴다 형님!"


나이트칙의 파편으로 보이는 것이 바닥에 널부러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트레저가 신난 표정으로 떠들고 있었지만 워낙 피곤해서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쉴 틈이 없었다. 휩노스 병이 닥쳐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형님, 뒤! 뒤!"


"뭔데 또... 이런 씨-!"


백미러를 보자 뒤쪽에서 철충 증원병력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림잡아 10마리도 안되는 수이긴 하나 우리에겐 충분히 위협적인 숫자였다. 안전벨트도 매지 못한 채 급발진해서 전력질주하고 나서야 철충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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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칙, 시체로 결☆정


분량조절 실패한데다 반으로 끊기도 애매해서 이번화는 평소보다 두둑히 넣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