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는 건 상관없지만... 슬슬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로롱 소리를 내며 손길을 즐기는 모습과 정반대의 말이란 전혀 설득력이 없지만 내심 중독성 있는 이 행위를 그만둬야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확실히 일이 업무가 밀려있기도 했거니와,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 종일 그녀를 붙들고 늘어질 수 있으니까.


"으~ 그래도 너무 아쉬운 걸."

"저도 주인님의 손길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답니다."


페로의 쫑긋 한 귀를 살며시 쓰다듬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어루만지는 것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으로 사람을 나태하게 만드는 기능이 내제되어 있음이 분명하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쉬운 감정이 생길 리 없지.


"하지만 지금 페로는 자그만치 귀가 6개라고! 더불어서 꼬리도 2개! 이걸 어떻게 참아?"

"주인님이 이 복장을 좋아하시니 다행이지만.."


솔직함이 담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던가. 과연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칭찬 답게, 내 무릎을 차지하고 앉은 하얀 고양이 역시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귀가 살랑 거리고 꼬리 역시 일자로 솟아 그녀의 기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역시 안되겠어!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안됩니다. 커피라도 드시고 집중해 주세요."


결국 페로가 내 무릎에서 벗어나 커피 포트로 향하며 단호한 태도로 더 이상의 응석을 거부했다. 이렇게 된다면 남은 방법은 최대한 빠르게 업무를 마무리 짓는 것. 그것만이 페로 성분을 느긋하게 충전할 핑계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의욕에 불이 붙었다.


"어디 보자, 지금이 몇 시더라.."

"오후 1시 입니다. 주인님."


커피를 건네며 시간을 알려주는 페로에게 가볍게 감사를 표현하고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마무리 짓는다면 2~3시간 정도는 충분히 여유를 즐길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인님.. 얼굴이 변태 같습니다만.."

"어... 속으로 상상한다는 게 그만 표정으로 나왔나."


가볍게 농을 주고 받으며 업무를 처리하자 속도가 붙어 평소보다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방 안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분주하게 들리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가끔 주고받는 업무상의 대화가 전부였지만 역시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편이 더 즐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 이걸로 대충 급한 것들은 끝났나.."

"고생하셨어요, 주인님. 평소보다 빠르게 끝내셨네요."


확실히 페로의 말처럼 금방 업무가 끝났다. 뭐 중요한 일들은 이미 비서실에서 처리하고 있을 것이니 애초에 정말 중요한 것들만 처리할 뿐이었지만, 그것들만 모아두어도 생각보다 많은 양이 밀려 있었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이야."

"네?"

"왜 오늘은 바니걸 복장이야?"

"아..."


처음 출근했을 때 의문이 생겼지만 바로 그녀를 품에 안고 쓰다듬기에 여념이 없어 차마 질문하지 못했던 것을 여유가 생긴 지금에야 묻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도도한 척 대답했다.


"그, 그게 전 저녁에 카페 업무로 출근해야 하니까..."

"그럼 그때 갈아입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의문이었다. 구태여 아침부터 바니걸 복장으로 출근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때 가서 갈아입으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고, 내 의문에 결국 페로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자폭하기 시작했다.


"저, 절대 주인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닙니다! 나중에 카페 업무 때문에 입은 겁니다!"

'바로 그거였군.'


역시 페로는 처음부터 내게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내 취향이 잔뜩 반영된 바니걸이란 복장을 입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게 어필을 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묘한 구석에서 솔직하지 못한 페로의 성격 답게 입으로는 변명을 하고 있지만서도.


"흐음~ 그렇구나, 페로는 내가 봐주기를 원하지 않았구나?"

"그, 그건.."


적당한 연기를 섞어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자 페로의 오드아이가 잔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등을 떠민다면 조금은 더 솔직해진 고양이가 되겠지.


"나만 기대했나 봐.."

"윽.."

"난 페로의 바니걸 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날 위한 게 아니었다니.."


결국 페로의 꼬리가 그녀의 다리에 살며시 감기며 항복을 고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살며시 내 무릎에 앉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싫었다면 이런 창피한 복장... 입었을 리가 없잖아요..."

"정말?"

"하아~ 제가 주인님께 또 속은 느낌이네요."


도도하게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외면하는 페로였지만, 그녀는 살며시 내게 기대며 체중을 실어오기 시작했다. 완벽히 밀착되어 따뜻한 온기를 서로 나누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그녀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꼬리가 살살 흔들리기 시작하고 귀 역시 팔랑이기 시작했다.


'꼬리와 귀는 정말 솔직하네'


도도하고 싶은 고양이의 마음이란,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 생각 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있었다.


"하하! 역시 이렇게 페로를 쓰다듬는 건 참을 수 없다니까."

"저도.. 주인님께서 쓰다듬어 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앙증맞은 토끼 귀 장식이 그녀의 고양이 귀 장식에 이끌려 함께 흔들렸다. 그래, 저것이 가짜 귀면 어떻고 진짜 귀면 어떻겠는가.

그것이 페로의 귀라면 그저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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