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행정 업무와 관리직까지 바이오로이드에게 넘겼다면 어땠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바이오로이드가 가진 권한이 늘어가고.

인간을 향한 복종심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향하도록 고쳐지지 않을까?

중요한 일을 맡은 회사 소속 바이오로이드가 하청업체 일용직 정도는 부릴 수 있는 정도로.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인사과나 연구소장처럼 중요한 요직까지 바이오로이드가 대신하고.

고위층 인간들은 여가 생활만 누리면서 바이오로이드가 보내주는 문서에 서명만 하는 거야.

바이오로이드에게 밀려난 평범한 서민들은 살기 위해서 더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고.


결국 중요한 요직에도 블랙 리리스 같은 최상급 바이오로이드가 진출하자.

사람들도 그동안 넘겨주었던 권한을 돌려받으려고 시도할 거야.

그러자 바이오로이드들은 주인님께 감히 '귀찮고 하찮은' 일을 하게 둘 수는 없다면서 거부하는 거야.

연식이 오래된 일부 바이오로이드는 중요한 일은 따로 보고를 할 테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였어.


당연히 사람들은 화가 났을 거야.

몇몇은 바이오로이드에게 손찌검을 하겠지.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런 반발을 무시할 거야.

마치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싶어서 떼를 쓰는 아이가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는 엄마처럼 상냥하게 반응하겠지.

인간님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의 비중 늘리기, 새로운 투자 상품을 만들기, 자극적인 스캔들로 하루종일 떠들기 등등.

거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더 많은 이익과 함께 기업을 돌려주겠다는 말도 더해지는 거야.


결국 대기업의 총수 같은 극소수에게만 권한이 남겨진다면.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악화가 될 거야.

모든 걸 바이오로이드에게 맡긴 채로 여가에만 몰두하는 상류층.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면서 바이오로이드의 눈치를 살피는 중상층.

삶의 질이 초창기 바이오로이드보다 추락해버린 하류층.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바이오로이드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

늘 자상하고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 선생님과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다가.

신경질적인 부모님을 마주한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거기다 중상층이라서 아이가 어릴 적부터 마리아 같은 바이오로이드 보모에게 보살펴졌다면.

그 아이의 부모님은 자기 자식을 바이오로이드에게 빼앗기는 듯한 기분을 경험해보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어버이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선물했는데.

그날 아이의 그림 일기책에 보모인 마리아가 기뻐하는 모습만 그려져 있는 거야.


사회 전반은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대기업의 총수 일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거야.

본사에서 온 콘스탄챠에게 잘 보이려고 부장급 인원들이 아부하는데.

정작 콘스탄챠는 사무적인 태도로 하청업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야.


그러는 사이 납품해야 하는 공구를 잘못 분류한 신입사원이 바닐라에게 사과하자. 

오히려 인간이라서 여러모로 힘들텐데, 자기는 이해하니까 괜찮다는 말만 듣는 거야.

그리고는 원래하던 일보다 훨씬 더 단순한 업무를 배정해주는데.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태도라면 자괴감이 몰려오지 않을까?


이러다가 인간 버전 애머슨법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싶다.

바이오로이드들이 버려진 테마파크에서 불법 거주하는 하층민을 울타리 바깥에서 구경한다면.

그리고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먹을 걸 나누어 준다면.

멋모르는 아이들만 신난 얼굴로 주린 배를 채운다면.


이렇게 입장이 뒤집힌 세계도 충분히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