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덴세츠 사이언스.”

 타누키사키 요시히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츠시타가 예상도 못한 단어였다. 대체 이 회사는 일본의 어디까지 손을 댄 것인가.

 “이 회사의 이름을 알아내는데 내 모든 시간과 돈을 쓰고 말았네. 내 아들을 죽인자들의 배후. 경찰은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 답을 알아낸 자들이 있었네. 나는 그들에게 돈을 주었고 그들은 돈값을 해냈지. 그들이 목숨을 걸고 내 아들이 누구의 명령으로 죽어야 했는가를 알아내었지. 이 자리에 데려올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타누키사키 치아키는 탐정을 고용했고 그 탐정은 진실을 알아낸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했다. 너무나 당연한 답이었지만 마츠시타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덴세츠 사이언스가 학생을 죽일 이유가 있었나요? 덴세츠 사이언스가 수많은 사람을 죽인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타누키사키 치아키가 덴세츠에 의해 죽었어야 했던 거죠?”

 질문을 한 마츠시타는 뒤늦게 자신의 실례를 깨달았다. 기자의 본능은 그녀로 하여금 의문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진실을 아는자에게 진실을 묻게 만들었다. 자식이 죽은 아비에게 물을 질문은 아니었다. 마츠시타는 이곳에 기자로서 온 것이 아니라 조문객으로 온 것이었다. 그에 맞은 예절을 따라야 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자리가 아니었네요. 조금 전 질문은 잊어주세요.”

 마츠시타는 후회하며 말했다. 요시히로의 대답을 들을 곳이 아니었다. 질문은 나중에 시간을 내서 만나 천천히 이야기해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마츠시타였지만 요시히로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아니네. 나도 마츠시타씨, 당신이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치아키가 어째서 죽어야 했냐고? 타누키 공업의 회장인 나의 아들이었으니까. 그것이 답일세. 당시 내 타누키 공업은 AGS 사업으로 잘 나가고 있었지. 군대에도, 경찰에도 우리 회사의 AGS를 납품했네. 그러던 중 한 바이오로이드가 이슈가 되었지. T-1 고블린. 블랙리버의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를 미 육군이 정식 채용한 사건이었지. 그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육전용 바이오로이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이 나왔었던 마츠시타씨,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

 덴세츠 사이언스와 블랙리버가 육자에 육전형 바이오로이드를 납품하려 했지만 의회에서의 반대로 무산된 사건이었다. 돈을 주고 용병을 사오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키리시마 법으로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아님을 법적으로 공표한 뒤에야 자위대는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를 구매할 수 있었다.

 “덴세츠 사이언스도 육자에 육전형 바이오로이드를 납품하려 뛰어들었지. 그들에게 가장 큰 방해는 블랙리버가 아니었네. 그들은 자신했지. 육자는 미국산 바이오로이드보다 국산 바이오로이드를 선호할 거라고. 그들의 가장 큰 적은 밭은 바이오로이드 업체가 아니었네. 이미 육자에 수도 없이 보급되었고 당시 5차 남오세티아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친 AGS가 그들의 경쟁상대라 생각하였지. 그리고 그 AGS의 다수를 납품하던 업체가 바로 타누키 공업이었고. 그들의 목적은 간단했어. 내 아들을 납치해 나를 협박하는 거였지. 하지만 일은 모두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결국 내 아들은 죽고 말았지.”

 “죄송해요.”

 토모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며 말했다. 사과했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 자신이 치아키를 지킬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니.”

 요시히로는 고개를 저었다. 토모의 잘못이 아니라고, 책임질 존재는 토모가 아니라고.

 “사과를 할 것은 네가 아니라 덴세츠 사이언스네. 그들이 치아키를 죽였어. 토모, 너는 최선을 다했어. 치아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 책임은 네가 아니라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있어야 했네.”

 요시히로는 토모를 위로했지만 토모에게 그의 말은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여전히 토모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덴세츠는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네. 내 아들과 내 재산까지 말일세.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예전에 비하면 초라해진 작은 회사 뿐이네. 타누키 공업에는 이제 옛날과 같은 모습은 남아있지 않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다들 열심히 노력하지만 내가 죽을 날까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네. 다 늙은 노인들처럼 옛날을 추억하며 무너져 갈 뿐이지.”

 요시히로는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그의 얼굴에는 후회와 원망과 슬픔으로 주름져 있었다.

 “전부다 이걸 얻기 위한 거였네. 이 작은 디스크에 내가 알아낸 모든 것이 있네. 이것을 위해 나는 재산의 대부분을 잃었고 회사는 망하기 직전까지 갔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했지.”

 요시히로는 품속에서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꺼냈다. 얇은 직사각형 모양의 물건이 무엇인지 마츠시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메모리디스크. 그것도 오래된 물건이었다. 최소한 마츠시타의 나이보다 많아보이는 것이었다.

 “USB. 이제는 안쓰이는 규격이네. 수십년전에 사라진 규격이지. 이게 최선이었네. 안의 데이터를 덴세츠 사이언스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네.”

 정확히는 USB A타입이었다. 직사각형의 단자의 한쪽에만 접촉부가 있어서 한쪽 방향으로 꽂아야만 연결이 되는 불편한 구조로 유명한 접속단자 규격이었다. 어째서 최신 무선연결구조의 디스크 드라이브가 아닌 것인가. 마츠시타가 묻기도 전에 요시히로가 말을 이었다.

 “이 드라이브 안에 들어있는 파일은 전자기기에 연결되는 순간 덴세츠 사이언스로 신호를 보내게 만들어졌네. 실행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덴세츠 사이언스는 자사의 기밀을 함부로 유출시키지 못하게 했지. 만일 이 드라이브를 일반 컴퓨터에 연결한다면 덴세츠 사이언스로 바로 연락이 가네. 그러면 마츠시타씨, 당신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덴세츠 사이언스의 암살팀이 당신의 집으로 찾아올 거네. 이 드라이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 그 불쌍한 탐정은 내게 이 드라이브를 보내고 자신은 덴세츠에 의해 살해당했네. 어쩌면 경고일지도 모르지. 자신들의 비밀을 더 파헤치면 어떤 결말에 다다를지 말일세.”

 요시히로는 그렇게 말하며 마츠시타에게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밀었다. 마츠시타는 망설였다. 그 디스크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안에 희망이 들었지만 그 희망을 찾기위해서는 수많은 위험을 넘어야 했다. 내용을 확인해야 하지만 내용을 확인하면 죽게 된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마츠시타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 수 있죠?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로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덴세츠로 연락이 가지 않게 만든다면. 간단한 파훼법이었다. 통신을 차단하면 이 파일이 아무리 덴세츠 사이언스로 신호를 보내더라도 덴세츠 사이언스에서 알아낼 길이 없을 것이었다.

 “백도어네. 이 나라의 전자제품 유통을 어느 회사가 잡고 있는지 아나? 대만의 반도체 회사의 대주주가 어느 회사인지 아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자제품의 어딘가는 덴세츠 사이언스의 손이 닿아있네. 아무리 인터넷에 연결되어있지 않다 하더라도 덴세츠 사이언스는 감시할 방법을 다 만들어놓았네. 음모론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마츠시타씨, 당신도 지금쯤이면 알 걸세.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덴세츠 사이언스는 그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당신의 목숨을 걸고 싶지 않겠지.”

 “...”

 용기가 없었다. 요시히로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반박하기 위해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네. 덴세츠 사이언스가 사람을 죽여서까지 숨기고자 하는 정보네. 마츠시타씨, 기자라 했지. 그래, 마츠시타 쥰. 들어본 이름이었어. 키리시마 의원의 결혼식에서. 당신 그 기자 맞지? 이런 우연이 일어날 줄이야. 덴세츠 사이언스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자. 당신이라면 이 디스크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알고 싶을 것이네. 그리고 이 자료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겠지.”

 마츠시타는 그가 내밀고 있는 디스크를 보았다. 손은 들었지만 디스크를 잡지 못했다. 용기가 부족했다. 걱정으로 가득했다. 열지도 못하는 파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기회였다. 덴세츠 사이언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출되지 않게 한 데이터였다. 수많은 돈을 들여서, 사람을 죽여서까지 기밀을 유지하려 한 정보였다. 마츠시타는 기자였다. 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마츠시타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디스크를 쥐었다. 작은 USB 드라이브를. 은색의 드라이브에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딱딱한 모습으로 있을 뿐이었다.

 “그럼 마츠시타씨, 부탁합니다.”

 디스크를 마츠시타에게 건네준 요시히로는 고개를 숙여 마츠시타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고개를 든 그는 토모를 바라보았다.

 “토모, 정말 미안하네. 나는 네게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었어. 내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 네게 몹쓸짓을 하고 말았어. 정말, 정말로 미안했네. 토모, 부디 나를 용서해주게.”

 “요, 요시히로씨가 사과할 건 없어요. 이미 다 끝난 일이에요. 저는 단 한순간도 요시히로씨를 원망한 적이 없었어요.”

 토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토모를 요시히로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야 고맙지. 늦었지만 고맙네, 즐거운 토모.”

 요시히로의 말을 들은 토모는 마츠시타를 보며 신나는 듯 말했다. 그 누구도 그녀를 즐거운 토모라 부르지 않았으니까.

 “마츠시타, 들었어? 날 즐거운 토모라 불...”

 신나게 말하던 토모의 말이 멈추었다. 요시히로가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의 정장의 가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토모는 그것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알아챘다. 총알이 요시히로의 몸을 뚫은 것이었다.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마츠시타와 토모의 사이를 날아가 치아키의 묘비에 박히고 말았다.

 “요, 요시히로씨!”

 토모는 마츠시타를 나무 뒤에 피하게 하며 외쳤다. 요시히로는 힘없이 땅에 쓰러졌다.

 “토모! 타누키사키씨를 도와야지!”

 토모는 마츠시타를 지키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츠시타는 그를 돕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마츠시타, 안돼!”

 토모는 재빨리 마츠시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바닥에 튕기며 흙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해!”

 토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땅바닥에 쓰러진 요시히로를 보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토모는 다시 구하지 못했다. 구할 수 없었다. 자신은 무력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되찾았지만 그럼에도 무력했다. 토모는 이를 악물며 몸을 숨기고 있는 나무를 쥐었다. 딱딱한 나무껍질은 토모의 악력에 힘없이 바스러졌다.

 “회장님!”

 어디선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인들처럼 보였지만 토모도 마츠시타도 그들이 T-1 고블린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들은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토모와마츠시타를 경계했다. 그들이 자신에게 총을 쏘기 전에 토모가 외쳤다.

 “저게 저격이다! 위치와 방위는 불명!”

 토모의 말을 들은 고블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직후 머리에 총에 맞은 고블린 한기가 쓰러지자 그들은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마츠시타, 뛰어!”

 고블린들의 사격을 엄호 삼아 마츠시타와 토모는 달려갔다. 총소리가 울렸고 귀가 울렸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둘은 달려서 아오야마 영원을 빠져나갔다. 자신들을 누가 노렸는지도 알지 못한채. 의문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을 마음속에 담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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