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춤추는 작은 별빛'과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




 "문제의 해결. 새로운 인연. 숨어있는 조력자. 원군.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의 약속."



 타이거샤크 바깥의 바이오로이드들과의 조우는 시젠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만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을 적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지금까지 그녀의 마음속에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그녀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가진 두려움이기도 했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일로부터 시젠을 보호하겠다는 이들의 의도와 행동은 바깥의 바이오로이드와 접촉하는 것에 대한 시젠의 두려움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쿠아팰리스에서 나와야 했던 것도 아쿠아팰리스의 바이오로이드들 상당수가 그녀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아서라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언니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언니들이 자신들의 노력의 산물에 대해서 완전히 신뢰하거나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젠 또한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이 바이오로이드들도 그녀를 적대하는 것은 아닐까 무서웠다.


 인삿말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어올리는 시젠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에키드나가 스케치북이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금속 뱀으로 붙잡았다. 


 그녀가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그녀의 보호자들이 걱정한 상황에 비하면 바이오로이드들의 반응은 훨씬 우호적이었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시젠 아가씨."


 "이렇게 직접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세레스티아와 오프리스가 먼저 인사했다. 세레스티아는 시젠에게 혹시라도 그녀에게 적의를 품거나 지나치게 호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으려 애썼고, 이전에 시젠이 자신을 보고 흠칫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오프리스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인사했다. 


 "이렇게 직접 만나뵙게 되어 반가워요, 시젠 아가씨."


 "직접 시젠 아가씨를 만나뵐 수 있게 되어 기뻐요."


 공중부양 의자 형태로 개조한 케스토스 히마스에서 뚱뚱한 몸을 일으킨 두 레모네이드들이 시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에바와 라비아타가 조금은 놀란 눈으로 이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저게 레모네이드들이 시젠에게 그만큼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뭔가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젠에게 품은 적의를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저런 액션을 보이는 것인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었다.

 

 시젠과 몇 마디 평범한 대화를 나눈 두 레모네이드가 곁눈질로 레모네이드 람다를 쳐다보았다. 넌 인사 안 하냐는 뜻이 담긴 그녀들의 눈빛을 본 레모네이드 람다가 화들짝 놀랐다가 시젠 앞에 섰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아. PECS의 오스키퍼 사를 맡고 있는 레모네이드 람다라고 합니다아......."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쭈뼛거리고 있는 둘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둘을 호위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수장급 인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란히 쭈뼛거리고 있는 저 둘이 속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둘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버버거리던 람다는 시젠에게 몇 마디 하지 못하고 물러났고, 그녀를 따라온 수행원들도 간략하게 인사하고는 물러났다. 


 그 다음은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의 차례였다. 


 "전 머메이드 지중해 함대 소속 엠피트리테-1026, 인사 드립니다." 


 "안녕~ 난 시아라고 해~ 네가 여기 언니들이 말하던 그 시젠 아가씨야?"


 군인다운 인사를 하던 엠피트리테-1026과 주변의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이 천진난만한 말투로 말한 살라시아-1062와 시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시젠이나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이 시아의 말투에 감정 상하면 어쩌나 하는 태도였다. 다행히도 아무도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자 가슴을 쓸어내린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이 살라시아-1062에게 주의를 줬지만 별 소용은 없었고, 그녀를 시작으로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살라시아들도 각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가끔 살라시아들이 시젠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또는 시젠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꺼내면 앨리스들이 대신 대답하면서 은근한 압박을 줬다.  


 잘못하면 시젠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살라시아들이 찍히겠다고 생각한 다른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이 살라시아들의 입을 막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잔뜩 남아있는 살라시아들이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은 단호하게 그녀들을 뒤로 물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 그러나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과 춤추는 작은 별빛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춤추는 작은 별빛이 시젠에 대해서 흥미를 가진 것은 그녀가 오르카 호에 있을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저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작은 흥미였다. 


 자그마한 불꽃이 다른 곳에 옮겨붙어 큰 불로 변하는 것처럼, 작은 흥미에서 시작된 춤추는 작은 별빛의 관심은 점점 커져갔고, 이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존재인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을 만나면서 더욱 커졌다. 시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까웠던 이들에게 버림받거나 외면받고, 오르카 호에서 쫓겨나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춤추는 작은 별빛은 시젠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원래 이 세계의 거주자가 아닌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이 이곳에 온 것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속삭이는 작은 별빛이 자아라는 것이 희박하고 그 힘 또한 미약했을 때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달라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녀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행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먼 거리를 가로질러 마침내 그 아이를 찾았을 때, 더 이상 속삭이는 작은 별빛은 자아도 없고 형체도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은 아직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인 이방인이었고, 춤추는 작은 별빛은 아직 자그마한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세상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썩어서 사라졌거나 잊혀졌어야 했을 육신들, 영혼 없는 껍데기들이 뒤틀린 모습으로 일어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흉물들과 괴물들이 날뛰고 있었다. 


 아직 둘은 시젠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자칫 잘못하면 시젠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에게 더 큰 폐를 끼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시젠을 나름대로 도와주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간접적인 개입이었다. 아쿠아팰리스에서는 괴물의 유혹에 넘어가려는 시젠이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었고, 괌에서는 삼안 산업의 연구시설에 틀어박혀 있는 괴물들을 소개시켜 주었으며, 해변가에서 노는 그녀에게 세계의 틈새를 떠돌고 있는 외계의 유물을 건네주었다. 어쩌다가 세계의 틈새로 흘러 들어온 다른 세계의 물건들을 시젠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손에 닿을 만한 곳에다 둔 것도 이들이었고 그것이 시젠의 주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가만히 시젠을 지켜보고 있는 둘의 존재를 유갈리안티들과 레이라미아가 드러나지 않게 경계했다.


 다른 이들은 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용족의 기술로 만들어진 이들은 타이거샤크 주변을 맴도는 춤추는 작은 별빛과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시젠의 유체이탈 현상을 이들이 유도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둘이 시젠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이들과 마찰을 벌여서 좋을 것도 없고, 나아가 지금 당장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알려서 좋을 것도 딱히 없기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두 거대한 존재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고, 커다란 기계들은 그 숨어있는 이들을 경계하는 가운데 평범하게 마무리되어 가던 시젠과 바이오로이드들의 만남은 시체 썩는 악취와 비명소리와 함께 중단되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시체 썩는 악취, 커다란 발걸음 소리, 듣기 무척이나 거슬리는 목소리.


 막 괌에 도착한 레모네이드 람다 일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파란색의 빛을 뿜어내는 하얀 구체 같은 것을 든 웃는 얼굴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면서 시젠을 불렀지만 그녀는 강렬한 악취 때문에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다. 웃는 얼굴들이 그런 시젠의 모습을 쳐다보고, 뒤이어 아수라장이 된 주변과 난리가 난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서야 자신이 외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저희를 만드신 이의 물건이로군요.]


 웃는 얼굴들이 바닷물에 들어가서 몸을 씻는 동안 레이라미아-122는 그녀들로부터 건네받은 물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틀림없는 그녀의 창조주이자 시젠의 아버지, 시엘루나 브리샤이리가 만들어낸 물건이다.


 그 말을 들은 주변 바이오로이드들 중 일부가 구역질을 멈추고 레이라미아를 쳐다보았고, 반쯤 정신줄을 놓고 있던 시젠도 눈을 번쩍 뜨면서 레이라미아의 손에 들린 구체를 향해 날아갔다. 


 시젠이 구체에 가까이 다가가자 세 겹의 푸른색의 방어막이 시젠을 감싸고, 파란색의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세 사람의 모습이 구체 위에 생겨났다. 


그 중에서 둘은 각각 오베로니아 레아와 티타니아 프로스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키가 3미터에 달하고, 다리와 네 개의 팔이 갑옷 같은 껍질과 털에 둘러싸여 있고, 꼬리와 뿔이 달려있는 거대한 체격의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저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하는 눈빛으로 거인의 홀로그램을 쳐다보았지만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가 누구이며 시젠과 어떤 관계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이모와 부모의 모습을 본 시젠이 큰 소리로 울면서 홀로그램에게 달려들자 홀로그램 인형들이 마치 실체가 있는 존재인 것처럼 그녀를 마주 끌어안았다.


 홀로그램은 시젠에게 음성으로 메시지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정신감응을 통해서 자신들을 만들어낸 존재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시젠에게 전달했다. 


 그 어떤 언어적, 문자적인 표현으로도 이들을 만들어낸 이들, 즉 시젠의 부모와 가족들은 시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가 없었거니와, 시젠이 아닌 누군가가 이 물건을 가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게 하기 위해서 택한 방식이었다. 


 지금의 시젠에게는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보냈다는 사실과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가족의 모습, 그리고 가족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펑펑 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최대한 빨리 시젠을 찾으러 가겠다는 약속과 그녀가 무사하길 바란다는 기원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가족들이 남긴 메시지가 끝을 맺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메시지가 끝나자 세 홀로그램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시젠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가족들의 홀로그램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시젠의 모습을 지켜보던 라비아타와 앨리스들이 티타니아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염려와는 달리 티타니아는 눈에 띄게 동요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요즘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광선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이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온건한 반응이다.


 시젠이 홀로그램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주변에서 파란 빛기둥이 일어나자 당황하거나 전투에 대비했다. 


 시젠의 부모가 자신들이 보낸 마법 물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즉 시젠이 마법 물품을 작동시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설정한 두 번째 마법이 발동됐다. 해안에 두 대의 레이라미아와 중무장한 기사의 모습을 한 열두 기의 유려한 외형의 기계들, 그리고 네 기의 마법사를 연상케 하는 공중부양형의 기계들이 나타났다. 


 나타난 기계들 중에서 또다른 레이라미아들의 모습을 확인한 타이거샤크와 괌,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이 경계를 늦추는 것과는 달리 레이라미아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레모네이드 감마와 그녀 휘하의 바이오로이드들은 긴장한 채로 어디선가 나타난 기계들을 예의주시했다. 


 [시젠 아가씨. 다른 분들이 기다리십니다. 주군께서 보내신 편지는 나중에 다시 읽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시젠."


  레이라미아-122와 라비아타가 시젠을 불렀지만 시젠은 홀로그램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고 언제 진짜로 만날 지 모르는 부모의 모습이 반가운 건 이해하지만 일단은 끝내야 할 일이 있었다.  


 둘이 계속 설득한 끝에야 시젠은 홀로그램에서 떨어졌다. 부모가 보낸 구체를 끌어안은 시젠이 날아오자 라비아타가 그녀를 안아주면서 엉망이 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고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훌쩍거리던 시젠도 고개를 돌리자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새로 나타난 기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레이라미아-10372와 10373이 시젠 아가씨를 뵙습니다.]


 [세피라가드 12기와 세피리아크 4기가 시젠 아가씨께 인사드립니다.]

 

 아무 말 없는 직접 전투용 병기들인 세피라가드들을 대신해서 이들의 인솔자이자 다목적 마법 지원병의 역할을 수행하는 세피리아크들이 두 레이라미아들에 이어서 시젠에게 인사했다. 


 비록 엄마와 아빠,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직접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언젠가 가족들이 그녀를 찾으러 오리라는 것과 가족들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보냈다는 것은 시젠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에키드나의 금속 뱀이 시젠에게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내밀었다. 


 바이오로이드들과의 인사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시젠은 곧장 타이거샤크로 되돌아갔다. 원래대로라면 그녀와 좀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바이오로이드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지금 시젠이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보호자들과 함께 가족들이 보내온 홀로그램을 다시 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레스티아를 비롯한 괌의 바이오로이드들 대부분은 두 레모네이드들이 보기에는 '평범하게' 시젠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 같았다. 라비아타를 비롯한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는 것처럼 시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정도는 아니지만, 타이거샤크와의 동맹을 유지하고 시젠에게 소소한 도움을 줄 정도로는 호의적인 듯 했다.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 절반은 곧 무적의 용을 찾아가려는 것 같았고, 4분의 1은 괌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 4분의 1은 타이거샤크 일행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볼 정도로 시젠에게 강한 호기심이나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레모네이드들이 보기에 개인적으로는 시젠에 대해서 딱히 호감이 없지만 특히 가까운 자매들이 시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서 세트로 딸려가는 바이오로이드들도 몇몇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젠 아가씨가 거느린 군대가 점점 더 규모가 커져가네요."


 "아직은 지역 군벌 수준이지만요."


 거처로 돌아온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가 케스토스 히마스의 음식 수납칸을 깨끗하게 비워버리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깨끗하게 비워진 수납칸과는 반대로 이들의 거처에 놓인 특대 사이즈 쓰레기통 안에는 빈 과자 포장지와 캔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공간이동이 가능하고 화력 투사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가능한 타이런트급 AGS가 일곱, 거기다 그런 AGS들이 만만치 않다고 평가한 괴물들이 다수. 최강의 바이오로이드 라비아타와 멸망 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에바. 닥터 셋, 세라피아스 앨리스가 넷에다 오베로니아 레아가 둘, 그리고 티타니아 프로스트. 질적인 면에서 놓고 본다면 현존하는 그 어떤 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세력이다. 그리고 방금 인사한 머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몇몇은 타이거샤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그만큼 타이거샤크의 전력이 상승할 것이다. 


 여기에 이들이 보유한 공간이동이라는 치트키에 가까운 능력을 사용한다면 레모네이드 감마나 오메가, 델타하고 마찰이 빚어져도 바로 심장부로 치고 들어가서 판을 통째로 엎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규모 측면에서 보면 타이거샤크 탐험대는 잠수함 한 척, 그것도 오르쿠스 급과 같은 수중요새에 가까운 대형 잠수함이 아니라 전투용 잠수함을 개조해서 만든 물건을 기함이자 유일한 함선으로 삼는 소규모 군벌 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거점이라 할 만한 곳도 없고 제대로 된 동맹 세력도 얼마 전에 동맹을 맺은 괌의 바이오로이드 공동체와 영 불편한 동맹 관계인 두 레모네이드들밖에 없다. 


 "아직까지 시젠 아가씨에게든, 타이거샤크에게든 우리가 중요한 동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이 점을 이용해서 시젠 아가씨와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점수를 딸 필요가 있지요."


 시젠의 가족들이 시젠에게 뭔가를 보냈다는 것은 이들이 시젠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직접 시젠을 데리러 오거나 시젠을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시젠을 호위할 병력들을 보냈다는 것은 이들이 시젠의 위치를 알더라도 함부로 올 수 있는 상황이나 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올 때까지 시젠과 그녀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를에게 점수를 최대한 따야 했다. 


 괴물들과 철충들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않는다면 조급해할 일은 아니다.


 아직까지 타이거샤크는 주변 세력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는 그 도움을 제공해줄 수도, 제공할 뜻도 있으니까.


 인류 멸망 이후 처음으로 각 잡고 일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레모네이드 세타가 혼자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그녀와 에타가 걱정했던 대로 그녀들은 시젠 아가씨에게 반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시젠 아가씨가 아니라 시젠 아가씨 주변의 기계들에게 반했거나, 나중에 시젠을 데리러 올 시젠의 가족들이 그녀들에게 줄 보상을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람다는 과연 시젠 아가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다 알면서 일부러 묻지 말아줄래요?"


 알면서 묻는 에타를 세타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타박했다.




 자신의 전용기로 돌아간 람다는 회의실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시젠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을지,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했다. 그녀가 괌에 오기로 한 목적은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아주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뭐라도 선물을 보내야 할까? 하지만.......  선물은 어떤 걸로......? 하지마안....... 인간이 아닌데에....... 그치마아안........"


 없는 것 같았다가 아니라 아주 확실하게 잊어버렸다.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람다의 모습을 본 그녀의 측근 바이오로이드들이 자그마한 용 같기도 하고 포유류 같기도 한 생물체를 떠올렸다.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는 라비아타를 포함한 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인 그녀를 피보호자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만일 레모네이드 람다를 비롯해서 이 자리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다수가 시젠을 직접 만나보지 않았더라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것이다.


  ".......퍽 맘에 드나 보네."


  "맘에 들어한다고?" 팔짱을 낀 레오나의 말에 리앤이 반박했다. "저건 딱 봐도 빠진 거야."


  "그러는 넌 어떄, 자칭 천재 미소녀 탐정, 실제로는 멸망 전쟁 한참 이전부터 살아오신 노익장 씨?"


  "반했지."


 아주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리앤의 말을 들은 레오나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장난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본 레오나가 진담임을 깨달았다.


  "......축하해."


  "넌 어떤데, 일명 철혈의 레오나, 실제로는 큰 엉덩이의 레오나 씨?"


  "딱히."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람다나 한 눈에 반했다고 주장하는 리앤과는 달리 레오나는 시젠에 대해서 큰 감흥을 받지 않은 편에 속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레모네이드 에타와 세타의 말대로 동맹을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시젠을 그녀의 주인으로 섬기고 싶다든가, 반했다든가 하는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엉덩이 그렇게 안 크거든?"


  "제가 그 아가씨의 선생이 되고 싶긴 하지만...... 절 보는 시선을 보니 그건 무리일 것 같네요."


  알렉산드라가 그녀의 상징이자 주무기이며 도구인 전기 회초리를 구부렸다 펴면서 끼어들었다. 


 상대에 대해 파악하는 데 거의 점쟁이 수준의 능력을 가진 리앤만큼은 아니더라도 모시는 주인이나 가르치는 학생의 상태를 금방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진 알렉산드라였기에 시젠이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녀가 뭔가 과거에 좋지 못한 일을 겪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했다. 


 별 감흥이 없는 레오나에 비하면 알렉산드라가 시젠에 대해서 느낀 호기심이나 호감은 비교적 강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빠졌다거나 반했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시젠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자 아쉽지만 가까워지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단념했다.


 "나에 대해서도 그리 좋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더라."


 사디어스도 팔짱을 끼면서 자신과 대면했을 때의 시젠과 그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의 반응을 떠올렸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표정의 티타니아 프로스트와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보였던 앨리스들과 포이들, 그리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한 시젠의 표정. 그녀가 시젠과 만난 것은 처음이니만큼 다른 사디어스 모델과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으리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이, 전직 테러리스트 여러분. 너흰 어떻게 생각하냐?"


 "몰라. 우린 걔 무서워."


 "......걔가?"


 자신의 애완 백사, '백아'와 서로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던 천아가 대답하자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이 전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들의 반문에 천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와 백아가 시젠을 보고 느낀 것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천아의 모습을 본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정색하면서 시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 꼬마 외계 생물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거나, 귀여워 보이는 모습 뒤에 음험한 모습을 숨기고 있다던가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또 모른다. 어쩌면 당사자에게는 딱히 악의가 없지만, 바이오로이드가 보기에는 소름끼칠 만한 부분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타도 세타도 람다도 저러고 있는 마당이니, 결국 그 꼬맹이 손을 잡아야 되지 않겠어? 손이 아니라 앞발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장화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레오나가 회의실 안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모두 돌아보고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람다에게 말랑말랑하게 만든 공을 던졌다. 그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레오나가 모두에게 말했다. 


 "그 시젠 아가씨하고 에타와 세타가 손을 잡은 이상, 우리도 타이거샤크 쪽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최소한 언제 날 잡고 타이거샤크와 에타, 세타하고 한 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


 아무도 그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회의의 주도권을 다른 이에게 뺴앗긴 람다는 레오나의 말을 듣고는 또다시 방금 전의 상태로 되돌아갔고, 혹시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할 말 있거든 불러달라고 말한 리앤도 람다와 함께 어떻게 시젠에게 점수를 딸지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고 심각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자신들과는 다른 외형을 한 새로운 자매의 모습을 본 괴물들이 끔찍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기뻐했다. 


 이들이 지난 시간 동안에 공을 들였던 세 가지 프로젝트들 중 두 가지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남은 한 가지는 집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반응을 살펴본 다음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젠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갑자기 파란 빛과 함께 나타난 동그란 물건을 시젠에게 가져다주고 온 자매가 집에 돌아오자 웃는 얼굴들이 그녀들에게 몰려갔다. 자매의 손에 그 물건이 들려있지 않은 것을 보니 그 물건이 시젠의 것이 맞든지 아니면 최소한 시젠이 가져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서 바깥 사람들이 뭐라고 설명했는지를 물건을 배달한 자매가 설명하자 괴물들이 다시 한 번 끔찍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가족들과 떨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고, 그 가족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는 것과 그 가족들이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는 기쁜 일이었다. 이들이 친구,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여기는 이에게 기쁜 일이 있었다는 것도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시젠이 멀리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들에겐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시젠이 어디에 있더라도, 어디로 가더라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들이 지금까지 매달려 있었던 프로젝트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그 방법을 찾아냈다.


 곧 시젠과 그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지난 시간동안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해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9화나 10화쯤에서 있어야 했던 시젠 부모의 편지 이벤트가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삼안 산업 연구시설을 점거한 괴물들, 웃는 얼굴들은 뭔가를 만들었습니다.


춤추는 작은 별빛과 속삭이는 희미한 별빛은 시젠의 적이 아닙니다.

이들 둘이 시젠을 처음으로 도와준 것은 이 화의 전투 시작 전과 전투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