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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든 안드바리는 코로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한숨에 가까운 날숨이었다. 벽에 걸린 아날로그식 디지털 시계의 시침이 아래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안드바리가 있던 방은 창문 하나 없는 방이었다. 밖이 어둡든 밝든 안드바리가 있는 방을 밝히는 것은 천장의 등 뿐이었다.

 너무 일에 몰두해 아침이 되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었다. 밤 내내 수많은 남자의 시종을 든 그것은 일을 끝내고 쉴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은 남자들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빨아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과 같은 일을 하는 수많은 것들의 보조를 하는 것이 그것의 일이기도 했다. 이 건물을 유지하는 것도 그것의 일이었고 아무도 하지 않는 모든 잡무가 그것의 일이었다. 안드바리는 밤을 지새우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일을 끝내고 싶어했지만 그것의 바램대로 만성피로를 푸는 날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어제와 똑같은 날이었고 내일은 오늘과 똑같은 날이겠지. 안드바리는 책상위에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아직 할 일은 산더미였다. 그리고 그 일은 하루종일 해도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일은 점점 늘어났고 일종의 스노우볼이 되어 이제는 밤새 일해서 며칠전에 끝냈어야 하는 일을 겨우 끝내는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안드바리는 그런 꿈을 꾸었지만 그것을 도와줄 무언가는 이 건물에 없었다. 하우스를 운영해야 할 파스칼은 하우스에 잘 찾아오지 않았고 하우스의 다른 자매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직접 모든 것을 하고 말지. 안드바리의 그런 성격은 블랙리버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무리 업무에 눌리더라도 행정업무를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른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나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설령 과로로 작동불능이 되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론 하우스의 안드바리는 그렇게 죽을 생각이 없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하우스에서 몇년을 일한 그것은 알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일해도 이 일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죽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맡지 않게 될 거라고. 아마도 안드바리가 없다면 건물의 수도세나 전기세를 낼 사람도 없겠지.

 안드바리는 건조해진 눈을 비볐다. 눈은 건조해졌지만 그것의 피부는 기름져져 있었다. 머리는 두피에서 나온 기름으로 인해 부드러웠던 머리결이 힘을 잃고 조금 뭉쳐져 있었고 그것의 손가락 말단은 힘들다는 듯, 조금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일은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하루가 지난 다음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이게 무슨 소리람. 안드바리는 아무래도 자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머리속이 엉망이었다. 이러다가는 태블릿에 머리를 박고 자느라 액정 화면에 거대한 기름 자국을 남기게 되겠지. 그리고 엑셀에는 똑같은 글자가 수백자 넘게 일렬로 늘어서 있을 것이고.

 안드바리는 잠을 깨우려는 듯,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어번 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라도 가볍게 하고 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것은 방을 나와 자신의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아, 앤. 조훙 아힘.”

 2층으로 올라갔을 때, 마침 스카디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목에는 수건을 걸고 입에 칫솔을 물고 있는 그것은 누가 봐도 밤을 새고 이제야 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카디를 본 안드바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언니도 좋은 아침이에요. 언니도 밤 새고 이제 자려는 거죠?”

 “자다니? 잠은 밤에 자는 거야. 밤이 올 때까지 안 잘 거야. 이건 그냥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려는 것 뿐이야. 몸이 더러워지면 마음도 더러워지는 법이고 그러면 해킹도 힘들어진다고?”

 입에서 칫솔을 뺀 스카디가 당연하지 않은 말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앤은 잘 자. 나는 씻고 다시 작업을 할 거니까.”

 스카디가 밤새 무엇을 하는지 안드바리는 알 수 없었다.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고 답해줘도 무엇인지 안드바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을 테니. 스카디는 손인사를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드바리는 스카디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3층, 그것이 사는 방이 있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안드바리와 아크로바틱 써니, 이터니티가 같이 쓰는 방이었다.

 안드바리는 조심히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혹시나 자고 있는 아크로바틱 써니와 이터니티, 그리고 언제든 깰 수 있는 작은 아기, 론 브래드버리를 깨울까 걱정한 것이었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간 안드바리는 곧 괜한 짓을 했나 싶어졌다.

 “부우우, 빵!”

 아크로바틱 써니는 신나는 얼굴로 론 브래드버리와 놀아주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그것은 허리를 반으로 접어 머리 위에 자신의 엉덩이를 올리고 발로는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보여줬다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얼굴을 가렸다 보여줬다 하면서 아기와 놀아주었지만 아크로바틱 써니는 그런 평범한 동작을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언니들 벌써 일어난 거였어요?”

 안드바리는 조금은 피곤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이터니티를 보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리 위에 론 브래드버리를 올려놓은 그것에게서 경계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터니티는 조금씩 하우스의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아침에 놀라며 깨지 않았고 론 브래드버리를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서 멀리하게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안드바리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기는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들었다. 바이오로이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아, 안드바리, 오셨나요? 그러고보니 잠은 안 주무신 거 같은데, 밤새 일하셨던 건가요?”

 이터니티는 청아한 목소리로 안드바리를 보며 말했다. 그것은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성애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처음 이터니티를 보았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미소였다. 그것이 미소를 지을 줄 있었을 줄야.

 “일이 많아서요. 낮에라도 잠깐 자야죠. 평소라면 낮에 자면 안된다고 하겠지만 오늘은 못버티겠네요.”

 안드바리는 천천히 자신의 침대로 걸어가 그 위에 걸터앉았다. 푹신한 침대에 앉자 순식간에 잠이 안드바리를 휘감았다. 정신줄을 놓는다면 바로 그대로 쓰러져 잠에 들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되지. 자기 전에 씻고 자야해. 그렇게 생각하며 안드바리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써니 없다!”

 아크로바틱 써니는 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아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안드바리와 같은 피곤과 스트레스에 찌든 존재와 살다가 론 브래드버리와 같은 순수한 존재와 함께 하니 재미있어진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부우우, 빵! 써니 있다!”

 다리를 벌리며 써니가 얼굴을 보여주자 론 브래드버리는 까르르 웃었다.

 “치프도 해볼래? 아기랑 놀아주는 건데도 내가 더 재밌는 거 같아!”

 써니는 안드바리를 향해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바라보았다.

 “저는 유연하지 못해서 언니같은 모습으로 놀아줄 수 없어요.”

 안드바리가 써니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었다. 그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에이, 이런 자세는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치프는 그냥 손으로 얼굴 가렸다가 얼굴을 보여주면서 아기를 놀래켜주는 거야.”

 써니의 말은 조금 혹했다. 안드바리는 몇번인가 론을 안아준 적이 있었다. 그 작은 아기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단 말인가. 그것은 써니의 유혹을 참을 정도로 인내심을 강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에게 다가오자 써니는 화려한 몸짓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드바리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럼 어디 보자... 안드바리 없다!”

 아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안드바리는 몸을 숙여 손으로 가린 얼굴을 아기에게 가까이 하며 말했다. 조금의 뜸을 들인 그것은 얼굴을 가렸던 양손을 양쪽으로 활짝 펼치며 회심의 말을 햇다.

 “안드바리 있다!”

 “...”

 써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기는 안드바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이터니티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안드바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기에게 무시당했다. 론 브래드버리는 써니의 때와는 달리, 안드바리의 놀이에 놀아주지 않았다. 아기의 반응을 기대했던 안드바리는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마암마!”

 한편 아기는 손을 뻗어 이터니티의 거대한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 맘마. 밥을 뜻하는 아기의 말이었다. 물론 아기가 아닌 성인이 여성의 가슴을 보며 말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건 예외로 치도록 하자.

 맘마. 아기는 한국어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대한민국 런던광역시가 아니었다. 영국 런던시였다. 이 모든 대화는 원래 영어로 이뤄져야 정상이다. 론 브래드버리는 정확히 맘마라 말했다. 영어로. 이것은 이터니티가 대한민국의 삼안산업에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영어에도 맘마라는 말은 존재했다. 아기의 젖, 더 나아가 여성의 유방을 뜻하는 말이었다. 현대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었다. 어원은 고대 로마 라틴어까지 올라간다. 아마 카이사르도 아기일 시절 자신의 어머니에게 맘마라고 말했겠지.

 맘마라는 말이 왜 머나먼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기가 발음할 수 있는 첫 발음이 바로 ㅁ과 ㅏ였으니까. 그 조합인 맘마가 아기에게 가장 필요한 먹을 것, 젖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아, 주인님. 맘마 필요하신가요? 제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속옷을 벗어 자신의 가슴을 드러낸 이터니티는 론을 안아들어 자신의 검은색 유두에 론을 물렸다. 아기는 행복한 얼굴로 가슴을 주무르며 젖을 빨기 시작했다.

 “이터니티 언니? 언제부터 론님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설마 지금이 첫 말인데 아무것도 아닌양 넘어간 건 아니죠?”

 “주인님이 첫 말을 한 것은 며칠 되었어요. 그 때는 안드바리씨가 없을 때라 모르셨나보네요. 그래도 써니는 저와 같이 주인님의 첫말을 들을 수 있는 영광을 함께 누렸습니다.”

 써니는 안드바리의 옆에서 자랑스럽다는 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에서 자신만 놓친 것이었다. 일을 하느라 론 브래드버리의 첫 말을 놓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왜 말을 안해준 거에요? 저도 론님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죠.”

 “그러게요. 말하는 걸 깜빡했네요. 주인님을 신경쓰느라 안드바리씨를 신경쓰지 못한 모양이에요.”

 이터니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머리가 조금 자라기 시작한 론 브래드버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론님의 첫 말을 듣고 싶었어요. 설마 다른 말도 시작한 건 아니죠? 파파를 부르고 이터니티 언니 이터니티 언니라 부르고 써니 언니도 써니 언니라 부르는데 저만 안드바리라 부르지 못하는 건 아니죠?”

 안드바리는 자신만 뒤쳐졌다는 걱정에 이런 저런 말을 했다. 이터니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직은 맘마 뿐이에요. 주인님께서는 총명하시겠지만 배움이란 늦을 수도 있는 법이죠. 하지만 저는 기대하고 있답니다. 주인님의 다음 말을 말이죠.”

 “뽜빠.”

 입에 젖을 묻힌 론의 말이었다. 그 말에 방에 있는 셋은 숨을 죽이고 아기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두번째 말을 한 것이었다. ㅃ. ㅁ에 이은 아기의 두번째 발음이었다.

 “뽀뺘.”

 “뽀삐? 그렇게 부른 거 맞죠?”

 안드바리는 흥분한 듯 말했다. 론의 첫말은 듣지 못했지만 두번째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앞에서. 안드바리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은 아기는 신나는 듯 그 발음을 다시 말했다. 웃으며 작은 손으로 이터니티의 가슴을 두드렸다.

 “뽀삐!”

 “봐요, 이터니티를 부른 거에요!”

 “지금 주인님께서 저를 부르신 거라고요? 뽀삐요?”

 이터니티는 입을 벌리며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고 광대가 올라가며 눈이 조금 찡그려졌다. 눈물이 흘러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요, 주인님, 뽀삐에요. 제가 뽀삐입니다. 주인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이름이 제 이름이 됩니다. 저는 이터니티이자 뽀삐로 주인님을 섬기겠습니다. 주인님께서 먼 훗날 돌아가시게 될 그 날, 저는 주인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주인님의 영원한 뽀삐가 되겠어요.”

 이터니티는 론 브래드버리를 안아주었다. 울며 안아주었다. 론 브래드버리는 웃으며 계속 말했다. 뽀삐. 뽀빠, 비슷한 여러 말을.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옹알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말들은 하나하나 이터니티에게 큰 의미를 가졌다. 자신을 불러준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터니티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론 브래드버리에게 향했지만 지금 이순간, 이터니티의 사랑은 뽀삐라는 말로 이터니티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꽃이라는 시처럼 론 브래드버리가 이터니티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이터니티는 한기의 바이오로이드에 불과했다. 론 브래드버리가 이터니티를 뽀삐라 불러주었을 때, 이터니티는 비로소 론 브래드버리의 꽃이 될 수 있었다.

 “써니, 써니! 난 써니야! 말해봐! 써니!”

 써니가 다가와 론을 보며 말했다. 론 브래드버리에게 있어서 너무 빠른 진도였다. 이제 겨우 ㅃ발음을 한 아기에게 ㅆ발음은 무리가 있겠지.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안드바리 역시 아기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저는 안드바리에요! 앤, 안드, 바리, 뭐든 좋아요. 다만 치프는 빼고요. 저도 불러주세요!”

 그러나 아기의 발음은 바뀌지 않았다. 뽀삐. 그 이름을 아기는 수도 없이 불렀다.

 엄마와 아빠 현상. 언어학에 있어서 재밌는 현상중 하나이다. 수많은 언어에서 엄마는 M 음가를 가지고 아빠는 B나 F 음가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당장 영어의 마더, 파더, 프랑스어의 마망, 파파, 중국어의 마마, 빠바, 한국어의 엄마, 아빠까지.

 누군가는 이것을 전인류의 공통적 언어가 있다는 근거로 삼지만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앞서 말했듯 M과 B,F는 말을 못하는 아기가 자연스럽게 발음할 수 있는 첫번째, 두번째 발음이었다.

 부모는 아기가 자신을 하루라도 빨리 부르길 바라곤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자신을 마마, 파파라 부르는 것에 얼마나 기뻐하는가. 아기가 말할 수 있는 첫 두단어는 부모의 몫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어미가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기의 첫 말을 들을 가능성이 아비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육아는 원시시절부터 어미의 몫이었고 아기의 첫말은 어미의 것이 되기 마련이었다. 두번째말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아비의 몫이었고.

 이것은 전 인류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누군가, 어딘가의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동시에 발생한 일에 불과했다. 부모된 존재의 본능에 새겨진 자의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터니티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의 어미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기의 첫말을 마망이 아닌 맘마에게 양보했다. 모미가 되는 대신에 뽀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에게 있어서 두번째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저 론 브래드버리를 보살펴주고 론 브래드버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줄 뿐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의 첫번째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 자격은 자신과 같은 보잘것 없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훨씬 대단하고 위대한 존재에게 주어져야 했다. 그것이 누구가 될 지는 모르지만 이터니티는 대신에 론 브래드버리의 무덤에서 영원히 함께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것은 뽀삐라는 이름에 기뻐했다. 우선순위가 두번째가 된 것에 기뻐했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이터니티는 그런 존재였다. 지금의 그것은 자신을 그저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다. 론 브래드버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뽀삐가 론 브래드버리의 첫번째가 되고 마망이라 불리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이터니티의 이름대로 영원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