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

멸망 전에는 꽤나 유명했던 격언이다.

... 라고 방주의 기록에서 보았다.

 

편익이니 대가니 기회비용이니, 그런 어려운 말엔 관심이 없다.

다만 저 문장을 보자마자 떠오른 사악한 음모가 날 웃음짓게 했다.

오늘의 타깃은 마침 매점 앞을 지나가는 흑발의 소녀, 엠피트리테.

 

앞으로 다가올 일은 꿈에도 모른 채 동생에게 먹일 간식을 

쓸어 담는 저 모성 가득한 모습을 보라!

오늘만큼은 그 모성이 그녀에게 독이 될 것이다.

몇십 년을 떠돌며 짠돌이가 된 탓에 공짜라면 환장하는 엠피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리라.

 

“앗, 사령관님. 좋은 아침입니다.”

“응, 좋은 아침. 뭐 하고 있었어?”

“시아에게 먹일 간식이랑... 그... 성인용품을...”

 

하여튼 지나치게 솔직해서 탈이다.

생각도 못 한 답이 나온 바람에 말을 삼키고 말았다.

이런 순수한 아이를 괴롭히는 건 자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람차다.

다루기도 쉽고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얀색은 가장 더럽혀지기 쉬운 색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일단 내 방으로 가자. 할 얘기가 있어.”

“제, 제게 하실 말씀이요? 시아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지금 상관 말에 토를 단 거야?”

“헉... 아, 아닙니다!”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자 완전히 사색이 된 엠피.

평소와는 다른 태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완전히 기가 죽은 그녀는 순순히 비밀의 방으로 따라왔다.

방은 매점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엠피가 비밀의 방에 첫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문을 닫았다.

눈동자가 가볍게 떨리고 피부는 겁을 먹은 듯 창백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플레이인 것으로 기대하는 건지 뺨은 붉었다.

이어서 잠금쇠를 걸자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듯하다.

 

“사, 사령관님. 오늘따라 다른 사람 같아 보입니다...”

“엠피트리테.”

“네, 넵!”

 

엠피의 말을 끊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 상태로 한숨을 푹 쉬고 다가가자 뒷걸음질치는 그녀.

엠피의 붉은 동공은 겁에 질려 콩알만큼 작아졌다. 포식자를 앞에 둔 아기 양의 눈 같다.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은은하게 빛나는 전등이 지금만큼은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기 위한 방을 연상하게 한다.

이상한 곳에서 분위기를 잘 읽는 그녀를 속이기 위한 최고의 장소다.

 

“그거 알아?”

“무, 무엇을 말입니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라는 격언 말이야.”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자네가 지금까지 먹고 사용한 모든 것이, 공짜였다고 생각해?”

“헉...”

 

엠피는 비록 순진하지만, 눈치만큼은 빠른 여자다.

슬슬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정도는 예상하고 있으리라.

 

“설마...”

“그래. 그 설마야. 이제 ‘대가’를 지불해야지.”

“갚을게요! 그러니 제발 시아만큼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엠피는 무릎을 꿇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다.

이래서야 내가 나쁜놈 같잖아...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지만 약해지면 안 된다.

 

“시아의 몫까지 네가 갚으려고?”

“무슨 짓이든 할게요! 시아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정말, 무슨 짓이든 할 거야?”

“네. 대신, 시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래. 그럼, 지금 당장 내 명령에 따라줘야겠어.”

“읏... 알겠습니다...”

 

수긍했음을 뜻하는 걸까.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몸을 바쳐서라도 동생을 지키려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마지막 남은 양심을 깎아내렸다.

아니, 생각해보니 애초에 내가 뭐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이럴수록 속전속결이 필요하다. 빨리 진행하자.

 

“소완!”

“부르셨나이까, 부군.”

“소, 소완님? 어디서 나오신 거죠?”

 

구석에 쳐져 있던 천막에서 퀸 사이즈 침대 크기의 탁자와 함께 소완이 걸어나왔다.

그 엄청난 크기의 식탁 위를 가득 채운 호화로운 만찬을 본 엠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위해 비밀의 방을 개조하느라 힘 좀 썼다.

 

“오늘의 조찬은 아페리티프의 라마초티, 오르 되브르의 안티파스토, 앙트레의 양고기 스테이크, 디제스티프로 구성된 이탈리아식 식단이옵니다. 아침 식사로 드시기엔 부담스럽겠지만, 부군의 명령인지라... 후후.”

 

소완이 메뉴를 구성하는 원료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조리되었는지 능숙하게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인지 엠피는 그저 침만 뚝뚝 흘리며 입맛을 다신다. 이윽고 설명이 끝나자 ‘어서 먹게 해주세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엠피.”

“ㄴ, 네!”

“이걸 다 먹는 게 네게 주는 징계야.”

“전부 다요!? 같이 먹는 게 아니고요? 무리에요! ... 아마.”

“후후... 일명 식고문이라고도 하지. 

네가 평소 먹는 양보다 1.5배는 더 준비했다!”

“그, 그런...”

 

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미소를 짓자 엠피는 

이게 정말 벌인 줄 알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읏... 시아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어요.”

 

겨우 밥 좀 먹는 걸로 분위기 잡긴...

이쯤 되면 장난이란 걸 눈치챌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듯하다.

눈앞의 밥상 때문에 사고가 마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흑... 시아야, 조금만 기다려. 언니가 더 힘낼게.”

 

고기를 ‘마시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옷이고 얼굴이고 온통 기름과 양념 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식사예절에 어긋난다며 호통을 치는 소완이지만, 

유독 엠피와 시아에게만큼은 너그럽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맛깔나게 먹어주는 데에 고마움마저 느끼는 듯 보인다.

 

“하웁... 시아야, 미안해... 언니만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서...”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말하건데, 난 그녀들을 굶긴 적이 없다.

당장 어제만 해도 둘이서 갈비탕 10그릇을 해치웠단 말이다!

 

“저기... 혹시 더 없나요? 부, 부족해서가 아니라요! 벌을 더 받고 싶어서요...”

 

역시나 다 먹어버렸다. 그냥 2배로 늘렸어도 충분했으려나...

준비된 와인까지 다 마신 그녀는 만삭의 임산부처럼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아침도 못 먹고 자신을 기다릴 시아가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사실 주방에서 무제한 뷔폐를 즐기고 있다는 걸 알면 까무러치겠지만 말이다.

 

음식의 흔적도 없이 텅 비어버린 밥상을 소완이 끌고 나가자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제... 벌은 다 끝난 건가요?”

“네가 지금까지 쓴 물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바느질 금지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 방에 있는 수선 도구는 전부 압수했어.”

“어떻게 그런...! 이제 전처럼 잔뜩 헤진 옷만 입어야 하는 건가요?”

 

엠피는 바느질의 귀재다. 떠돌이 생활 내내 시아와 자신의 옷을 직접 수선해온지라 군용 바이오로이드답지 않은 훌륭한 손재주를 갖게 된 것이다. 남의 취미를 빼앗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만 다 생각이 있다.

 

“이제 옷이 헤지면 새 옷을 입어.”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옷이 낡으면 수선해서 입는다. 그게 상식 아닌가요!?”

“구멍 난 양말이나 속옷, 지퍼가 잠기지 않는 점퍼, 전부 버려.

그리고 뻔뻔하게 새 옷을 입는 거야! 아까워서 미칠 것 같지? 응?”

“안돼!!!!!!!!!!!!”

 

아마 그것은 엠피가 지금까지 보여준 감정 중 가장 강렬했을 것이다.

간만에 괴롭히는 보람이 있는 아이다.

이게 괴롭힘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의문이지만...

 

“설마 이걸로 끝난 것 같니?”

 

국가를 빼앗긴 사람처럼 울부짖는 그녀 앞에 오드리가 화려한 원피스와 함께 등장했다.

 

“앞으로는 그 헌 옷 대신 이 옷을 입어.”

“훌쩍... 정말 그게 벌인가요...?”
“물론이지! 평소에도 비싸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으면서 양심에 가책에 시달리는 게 네 벌이야.”

“그렇다기에는 너무 예쁜데...”

“그리고 하나 더.”

 

주머니에서 예쁘게 접힌 종이 몇 장을 꺼내었다.

설마 이대로 모두가 행복한 엔딩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훈훈하게 끝나면 괴롭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 그건!”

“그래, 네가 써준 편지들이야.”

“설마 여기서 그걸 읽으실 생각인가요?”

“읽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새벽에 썼던 거라... 분명 낯부끄러운 내용이!”

“어디... 다시 읽어볼까?”

“자, 잠깐!”

“사령관님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이 편지를...”

 

대략 절반 정도 읽었을까?

자기 눈동자 색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잠잠히 듣고 있던 그녀가 참다 못 해 소리쳤다.


“꺄아악! 그만, 그만!”

 

역시 전부 모아두길 잘한 것 같다.

힘들 때마다 읽으면 우울할 날이 없겠는걸.

 

“세 번째 벌은 이 편지들, 버리지 말고 나한테 주는 거야. 괜찮지?”

“으으... 알겠습니다. 부디 혼자만 읽어주세요. 그런 걸 들키는 날엔...”

“어? 이미 다들 듣고 있었는데 뭘.”

“... 네?”

 

음식과 옷이 나왔던 천막에서 거의 열댓 명은 되는 인원이 걸어 나왔다.

공짜 점심은 없단다, 엠피야.

 

그날로 일주일간 오르카에서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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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