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사열을 나온다는 소식에 피닉스는 급히 무장 정비에 나섰다. 보통은 실키 정비병이 대신해 주긴 하지만, 사령관이 보러 온다니까 직접 정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리 계급이 대령이라 해도 사령관 앞에서는 새발의 피, 솔선수범하면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다.


목표물(?)이 점점 다가온다는 첩보와 함께 그녀는 열심히 포신과 비행체를 닦고 기름치고 조였다.


안 그래도 신형 전투장비를 얻었다는 것 때문에 사령관이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을 터이다. 그녀는 오늘을 위해서 멀쩡한 정비복을 놔두고 하계 전투복까지 따로 갖춰 입은 채였다.


마침내 사령관이 피닉스의 격납고까지 찾아왔다.


"오오. 피닉스. 스스로 정비도 하는 거야? 열심이네."


"충성. 대령 GS-130 피닉스, 언제든 출격 준비 완료."


정비하는 척하던 피닉스는 급히 돌아서서 예의상 관등성명을 대었다. 기대와 달리 사령관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온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기회였다.


"쉬어."


경례를 받아준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피닉스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잘 왔어. 안 그래도 요즘 심심했거든." 피닉스가 말했다.


"그래? 오…… 마침 나도 보고 싶었는데."


사령관이 대답하자 피닉스는 순간 당황했다.


"오옷, 정말?!"


설마 사령관이 자신을 보고 싶었다는 뜻일까.


그녀가 두근거리기 시작하려는 찰나 사령관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피닉스가 장비를 새 걸로 받았다길래.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가 되었거든."


"……."


피닉스는 대번에 실망하려던 것을 참느라 애썼다. 진정하자. 내가 착각한 것 뿐이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 그래. 이번에 새로 맞췄지. 어때?" 피닉스는 신형 개인 화포를 소개하는 척하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인간이라도, 피닉스가 붉은 항공 재킷이나 정비복 대신 신형 하계 전투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것이다. 눈알이 장식이 아니라면.


피닉스의 하계 전투복은 경기용 수영복인 것마냥 푸른 색조로 된 하이레그 원피스였다. 이전에 입은 하계 전투복보다도 더욱 장식이 들어가고 아름다운 복장이었다.


"어…… 그래. 크고 아름다워. 예뻐."


이편을 바라보는 사령관이 멍하니 하는 말을 듣고, 피닉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 가슴과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하계 전투복을 입으니 반응이 없을 수 없으리라.


"105mm 곡사포의 개량형이라니…… 이 얼마나 강력하고 아름다운 포인지. 이놈이라면 어떤 철충도 한방일 거야."


피닉스는 눈살을 찌푸릴 뻔했지만, 곧 표정을 관리했다.


어쩌면 일부러 장난을 치는 걸지도 모르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비행체 날개에 달린 네발 프로펠러의 개량점을 소개하면서, 그의 시선을 가로막듯이 비행체 측면으로 다리를 뻗어서 대 보였다. 하계 수영복으로 드러난 각선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려는 생각이었다.


"……여기도 멋지지? 군더더기 없이 제일 예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녀는 프로펠러가 아니라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자신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사령관은 이번에야말로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단한데? 진짜로."


피닉스는 얼른, '내 다리가?'라고 되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령관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비행체에 달린 네발 프로펠러들의 날카롭고도 매끄러운 단면…… 이 초과학 시대에 얼마나 극에 달한 고전 항공역학의 진수인지."


피닉스는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이 개량된 이온 부스터같이 진보한 기술과, 

 프로펠러가 합쳐진 비행체라니…… 아름답고 또 아름다울 뿐이야."


사령관은 그 뒤로도 피닉스가 아니라 피닉스의 갖가지 무장과 비행장비들을 부지런히 칭찬하고 감탄했다.


그때 피닉스는 이 인간이 혹시 밀리터리 오타쿠가 아닌지 하고 와락 의심이 들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노라니, 이번에는 사령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참. 그러고보니 몸이 좀 무겁지 않아?"


"뭐, 뭣?"


피닉스는 일순 당황했다. 사령관이 자신의 몸무게가 늘었다고 말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아니…… 그게. 요즘 전투에 나간다고 스트레스를 식사로 풀다보니. 헤헷."


피닉스가 머리를 긁으며 변명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야. 이렇게 새로운 장비로 업그레이드했는데, 무게가 늘면 네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늘까봐 그런 거지."


"……."


아무래도 이 인간은 피닉스 그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전쟁병기 GS-130 피닉스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맥이 탁 풀렸다.


하기야, 인간 입장에선 바이오로이드는 그저 인형에 가까운 존재일 터였다. 사령관을 좋아하느라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영부영 사열을 마치고, 피닉스는 처음 맞이했을 때완 다르게 축 늘어진 어깨로 사령관을 전송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저도 모르게 존대가 나왔다.


피닉스의 경례를 받아주고, 그 길로 격납고를 나가려던 사령관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참, 피닉스."


"예?"


그녀는 퉁명스럽게 존댓말로 대답했다. 사령관이 자신을 무기로만 본다면 자신도 그저 상급자로 대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씩 웃으며 이러는 것이었다.


"하계 전투복도 예쁜데, 난 그것보단 피닉스가 평소 입고 다니는 붉은 항공재킷이 더 멋있었어. 다음엔 그거 입고 보자."


사령관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경호원 자매가 뒤따르며 풉 하고 웃었다.


"……."


피닉스는 망연자실하게 사령관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였다.


이 인간이 완전히 나를 가지고 놀았어!


피닉스는 화가 나서 포신을 닦던 걸레를 집어던졌다.


사령관이 자신을 공중병기 피닉스가 아닌 '피닉스 대령'으로 봐 준다는 사실만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 * *



사열 후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종 부관으로 불러주어 같이 근무하고는 했지만, 별다른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었다.


피닉스가 함께 저녁이나 하자고 눈치를 주거나 해도, 사령관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거나, 혹은 일부러인 것처럼 다른 대원들과 선약을 잡아 놓기가 일쑤였다.


하루는 피닉스가 또 부관이 된 날이었다.


피닉스는 이쯤에 와선 사령관이 역시 일 문제로 부관을 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아닌게 아니라 피닉스는 공중지원뿐만 아니라 행정처리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그날도 실망한 채로 근무를 마칠 무렵, 사령관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아- 아. 오늘 저녁은 뭘 먹나. 누구랑 먹어야 하나."


그는 말끝을 흐리며 슬쩍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뚱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훔쳐보던 피닉스는,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피닉스도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아. 내 행복은 도대체 어디 있으려나. 누구는 눈치도 없고."


쓴웃음을 지은 사령관은, 깍지를 끼고 피닉스를 바라보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피닉스. 오늘 시간 괜찮아?"


"응?"


"오늘 같이 저녁이나 먹지 않을래? 시간 돼?"


사령관이 먼저 다가오길 바랬던 피닉스로서는 드디어 바라마지 않던 말이었다.


"저녁? 무…… 물론. 당연히 시간 되지! 나 먹는 거 엄청 좋아하거든."


"그럼 가자고."


사령관은 피닉스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러자 바라마지 않던 피닉스는 오히려 당황해 했다.


"지, 지금?"


"뭐 어때. 할 일 있어?"


"아니, 그게. 난 옷도 전투복 그대로라서……."


피닉스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전에 사령관이 해준 말 그대로 항공재킷을 입은 건 좋았지만, 속에 입는 건 스틸라인 전투복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복장 따윈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같이 놀자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괜찮아. 오드리보고 만들어 달라고 할게."


신이 난 피닉스는 부관 업무를 마치자마자 사령관의 손에 이끌렸다.


저녁 먹으러 가는 김에 여기저기 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데이트처럼 되었다.


피닉스는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실실 웃으며 따라가기 바빴다.


마주 지나치는 병사 몇몇이 실실거리는 게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트집 잡을 마음 따위 생기지도 않았다.


데이트하는 일에 비하면 병사들을 혼내는 일은 관심 밖이었다.


사령관의 손에 이끌려 의상실에 온 피닉스는 항공재킷 속에 걸쳐 입을 티셔츠나 스웨터를 받았다.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여태 이 귀여운 아가씨한테 스틸라인 타이즈나 입히고 다녔던 건가요?"


호들갑을 떠는 오드리의 핀잔에, 사령관은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하하…… 그렇게 됐어. 얘 휴일에 재킷 속에 입을 것 좀 만들어 줘."


"물론이죠. 시키지 않아도 인스풔뤠이숀이 떠오르니까?"


덕분에 피닉스는 이제 쉬는 날에는 스틸라인 전투복인 타이즈를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새로 받은 옷 위에 재킷을 걸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곧 저녁 시간이 되어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고 만족해 있으려니, 사령관이 문득 말해 왔다.


"참, 나랑 함장실에 가지 않을래? 특대의 행복을 제공할게."


"응. 뭐든지 좋아. 헤헤."


어른의 시간을 갖자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다. 피닉스는 그를 따라서 함장실로 들어섰다.


함께 보는 영화도 재밌었지만, 도중에 사령관하고 신체를 접촉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자연스럽게 샤워까지 마치고 누운 피닉스는, 사령관에게 어깨를 안긴 채로 문득 한숨을 쉬었다.


사령관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왜 그래?"


"그냥. 실감이 안 나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령관은 내 신호를 아예 모른체 했었잖아.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진도도 나가고."


피닉스는 살짝 야속한 듯이 눈을 흘겼다.


사령관은 피식거렸다.


"네가 그동안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좀 돌려서 말한 게 잘못이지. 난 빙빙 돌리는 것보다 직설적인 걸 좋아하거든."


"……어장관리꾼."


그는 할 말 없이 웃기만 하다가, 피닉스를 돌아보며 이렇게 물어 왔다.


"그나저나 피닉스. 오늘은 어땠니."


"어떻냐니.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행복은 처음이야."


"다행이네. ……그런데, 너도 나한테 봉사할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봉사?"


봉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피닉스는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을 떠올렸다.


여자가 남자한테 봉사할 만한 일이라면. 그녀는 저도 모르게 히죽거렸다. 평소에도 야한 걸 밝히는 그녀답게 금방 그렇고 그런 짓을 떠올렸다.


"그럼! 봉사하고 말고. 나도 봉사 아주 좋아하거든?"


"그래?"


사령관이 히죽 웃었다.



* * *



피닉스는 문득 서늘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 선실이 아니었다. 바로 함장실이었다.


그런데 곁에 있어야 할 사령관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도 허전한 느낌이었다. 슬쩍 만져보니 양갈래머리가 풀려서 긴 머리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겉옷도 벗겨진 속옷차림이었다.


피닉스가 잠깐 어리둥절한 그때 사령관이 함장실로 들어왔다.


"여, 좋은 아침."


피닉스는 얼른 이불을 당겨서 몸을 가렸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진 탓이다.


새벽까지 있던 일을 떠올리자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하도 격렬해서, 도중에 양갈래머리도 풀어 헤쳤었지. 부끄럽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사령관은 그녀 곁에 앉아서 커피를 건넸다.


"어젠 행복했어?"


피닉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행복은 처음이었다.


"잘됐네…… 그런데, 피닉스는 사령관의 행복은 알고 있을까?"


"사령관의 행복? 글쎄."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령관이 턱을 쥐며 말했다.


"흠. 예를 들면 공중 지원을 열심히 한다던가, 부대 일을 잘 돕는다던가,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빙글빙글 웃더니, 틈을 노려 피닉스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이런 거라든가."


피닉스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곧 환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이런 게 대가라면 언제든지 스탠바이인데? 오히려 사령관이야말로 각오하는 게 좋을 걸."


피닉스는 조금 전까지 부끄러워하던 것이 무색하게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은 방금 전까지도 사령관이 자신을 총애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 그가 이렇게 나와 주니 피닉스로서도 거칠 게 없었다.


"내게서 도망칠 수는 있을 거야. 피하다 지치겠지만. 흐흐흐."


사령관도 그런 피닉스가 귀여워진 나머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가 먼저 지칠지는 과연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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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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