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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나날들로 가득하시길, 사령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든, 아니면 훈련을 하고 있든.


 그것도 아니라면 해도해도 줄지 않는 업무량에 밀려 허덕이든.


 그런 와중에도 때때로 비는 시간이 생기는 법이었다.


 “한가하네…….”


 그래, 지금 내가 바로 그랬다. 어찌나 한가한지 휴식을 핑계로 비밀의 방 침대에서 대자로 뻗어 뒹굴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공무는 오전 중에 모두 처리하셨으니까요. 15시에 있을 호드 대원들의 정찰 보고만 확인해주신다면 오늘 공무는 모두 끝입니다.”


 내 다리를 베개 삼아 베고 있던 아르망이 한창 독서 중인 책에서 눈도 안 떼고 말했다. 책은……. 요리책이네. 저번에 내가 아우로라의 신작 디저트를 맘에 들어 했던 게 인상 깊었었나본지 요즘 아르망은 한창 제과제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발렌타인 데이를 기대하라나 뭐라나. 그런데 아르망, 발렌타인 데이는 한 달이 넘게 남았다고…….


 “평소에 틈틈이 준비를 해놔야 걱정이 없는 법이니까요, 폐하.”


 “독심술…….”


 “예지에요.”


 “…….”


 “풀죽은 척하셔도 안 속을 거예요, 폐하. 애초에 평소에 틈틈이 해놓으셨다면 이렇게 삼일 밤낮 철야하고 축 쳐져 있지 않으셔도 됐잖아요.”


 어쩐지 아까부터 좀 뚱해보이더라니 그거 때문이었나. 나는 대답 대신 아르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 맞춰 잘 끝내서 살았어. 진짜 고마워, 아르망.”


 “…말씀만 하실 거예요?”


 “설마.”


 이미 내가 말할 땐 아르망이 내 가슴팍에 매달려 속삭이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입맞춤. 짧게 붙었다가 살짝 떨어지길 반복하는 와중에 어느새 야릇한 연분홍빛 분위기가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는 가볍게 아르망에게서 얼굴을 떼며 내 옆에서 등을 기댄 채 패널을 들여다보고 있던 용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췄다.


 정돈되지 않아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제복이 아닌 파자마 차림, 그리고 아무래도 철야의 탓인지 약간 퀭해보이는 눈빛. 용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오직 이 세상에서 나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절대로 남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아 물론 파자마에 퀭한 눈빛은 나나 아르망이라고 해봤자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우리 세 명은 삼일밤낮의 밀린 업무라는 괴물과 싸우고 귀환한 동료들이었으니까…….


 나는 계속 용의 손등에 얼굴을 문대며 나른하게 말했다.


 “뭐해, 용? 일하는 건 아니지?”


 “업무용 패널은 저쪽에 던져뒀습니다, 서방님. 두 시간 동안은 바라보기도 싫군요.”


 용의 목소리엔 고단함이 서려 있었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엔 애정이 가득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른한 눈빛이었다.


 “그럼 그 패널은 뭐고?”


 “안 쓰는 보조 패널입니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용으로 가끔 쓰는……. 재밌는 걸 찾았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감히 누구 말씀이신데 당연히 봐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마이 러블리 엔젤 아르망…아얏!”


 “제, 제발 그런 이상한 별명 좀 붙이지 마시라니까요!”


 “후훗.”


 용은 그런 아르망과 날 보며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내 품에 파고들었다. 동시에 아르망은 이번엔 내 팔을 베개 삼아 옆에서 파고들었고 말이다. 졸지에 내 양쪽 팔이 베개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 물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내들을 위해서라면 이깟 게 대수일 리가 없었다. 


 “이것 좀 봐주십시오, 서방님.”


 “뭔데 이게? 음, 설랄?”


 “설날입니다.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지요. 한해를 잘 보내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먹고, 조상을 기리며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우린 기릴 조상이 없잖아.”


 “서방님이 계시잖습니까.”


 “제사는 죽은 사람한테 지내는 거 아니었어……?”


 가볍게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날 보면서 용은 슬며시 내 뺨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보우해주시는 분도, 지켜주시는 분도 모두 서방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려야 할 분을 선택한다면 그건 서방님밖에 없습니다.”


 “폐하는 저희들의 빛과도 같은 분이시니까요.”


 “그리고 제 몸과 마음을 바칠 가치가 있는 분이시죠.”


 “저도 그래요, 폐하.”


 “그래 설날 하자! 하자고!”


 낯부끄럽기도 하고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그쪽으로 흘러가는 거 같아 얼른 대답했다. 아니 벌써 매너리즘이나 뭐 그런 거에 빠진 건 아닌데, 아무튼 뭐시냐 이 둘은 따로따로는 괜찮은데 둘이 같이 있을 땐, 음……. 쪽쪽 빨리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이 둘의 조합은 위험하다. 그래서 용의 패널을 휙휙 넘기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대충 한 2주 남았네? 보자, 설날에 먹는 음식이 떡국에 떡에 전에 만두에……. 만두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거 손이 안 가는 음식이 없어 보이는걸. 소완이 고생 좀 하겠네.”


 “음식 준비를 다 같이 하는 거로 하면 협동심도 키우고, 일손도 덜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거 좋네. 거기에 대회도 하나 정도 열어주고, 그래도 명절이니까 장식도 좀 해야 할 거 같고, 또…….”


 머릿속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며 괜찮은 게 없나 생각을 굴려봤다.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2주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를 해놔야 업무랑 축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중얼거리다 둘한테 아무런 말도 안 나와서 고개를 내려보니, 용과 아르망은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론 한심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나 또 뭐 잘못했어?”


 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까 제가 무어라 말씀을 드렸는지 혹 기억하시는지요.”


 “사랑한다고……?”


 “그 전에, 서방님을 기린다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그 말뜻을 어찌 이리 몰라주십니까.”


 “……?”


 머릿속에 의문 부호가 수십 개씩 떴다가 사라졌다. 나한테 제사 지난다는 게 뭔 말일까.


 “설마 나 진짜 죽이려는 거…….”


 “…….”


 “…….”


 “…미안.”


 순간 온도가 2도 정도 떨어진 줄 알았다. 한 명만 노려봐도 무서운데 그게 두 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앞으로 절대 이런 농담은 하지 말자. 한 번 더 꺼냈다간 진짜 죽을 거야…….


 “언니, 아무래도 폐하께선 언니가 말씀하신 걸 전혀 모르시는 모양이에요.”


 “한두 번도 아닙니다. 이제 익숙해져야지요.”


 “힘이 덜 드신 모양이에요. 그런 쓸데없는 농담도 다 하시고.”


 “맞습니다. 지아비의 몸 상태도 모르고 아내로서 큰 불찰이로군요.”


 “…뭐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데?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둘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슬며시 내 팔을 감싸 안고 있었다. 얇은 잠옷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속살. 아니, 이 이 흐름은 설마……?


 “폐하께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저희들이 드리는 공물이나 감상하시면 된답니다. 마침 좋은 기회니까, 이번만큼은 폐하께 아무 일도 시켜 드리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점차 서방님의 업무를 줄여드리고자 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어느새 아르망의 목소리엔 뜨거울 열기가 가득했고, 용은 내 귓가에 속삭이며 미끄러뜨리듯 손을 아래로 뻗고 있었다.


 “있잖아, 그, 우리 어제까지 삼일 내내 철야했으니까, 그…….”


 “그런 농담도 할 체력까지 남아 있는데 뭘 그러시나요? 아무래도 우리 폐하의 체력을 조금만 더 빼야겠어요. 안 그러면 또 집무실로 쪼르르 가셔서 그렇게 철야를 해버리실 테니까요.”


 “저 혼자서 서방님의 상대를 한다면 조금…힘에 부칠 수도 있습니다만, 둘이라면 약해진 서방님을 상대로 어느 정도 승산을 가늠할 수 있겠군요.”


 요컨대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 테니 얌전히 쉬고(?) 있어라, 뭐 이런 얘기 같았다.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읍…….”


 “음…….”


 말문 따윈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듯 아르망은 내게 입맞춤을 했고, 용은 내 목덜미부터 입을 맞추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내 아랫도리는 당연히 반응을 했고 결국…….


 “하아, 서방님…….”


 “…….”


 삼 일 철야 후에 치르는 의무방어전. 


 ‘에라 모르겠다.’


 애초에 유혹에 이길 생각도 없던 난 그대로 아르망과 용을 안으며 용광로보다도 뜨겁게 몸을 섞기 시작했다. 덧붙여서 용과 아르망은 그 뒤로 장장 여덟 시간 동안 하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직후까지 어떻게든 버텨서, 가까스로 남자로서의 체면은 세우긴 했지만…….


 “…….”


 그런데도 패배감이 들었던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




 내게서 일을 다 뺏어버리겠단 아르망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다음날 나는 사령실에서 업무 패널과 수많은 보고서 대신 방실방실 웃고 있는 아자즈와 대면해야만 했다.


 “…아자즈.”


 “왜요?”


 “이것들 다 뭐야?”


 내가 슥 가리킨 물건들엔 죄다 시뻘건 스티커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차압’이라는 흉물스러운 단어와 함께. 차압 딱지가 붙은 물건들은 아무리 버튼을 눌러봐도 요지부동 움직이질 않았다.


 “제가 디자인한 차압 딱지에요. 예쁘죠? 아이디어 제공자는 리앤 씨에요. 아, 입안자는 용 대장님이고요. 딱지를 떼기 전까진 어떤 것도 사용 못 할 거예요.”


 “자랑하라고 물어본 거 아니거든……? 빨리 떼! 일을 못 하겠잖아!”


 “업무 배분은 이미 아르망 양이 다 해놨다고 들었는데요? 오늘 사령관이 할 일은 없댔어요. 아, 하난 있네요. 오늘 할일도 없을 테니 돌아다니면서 대원들하고 얘기나 나누래요.”


 “그것도 아르망이 그러디?”


 “그건 용 대장님이 그랬어요.”


 “…….”


 세상에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두 손 두 발 다 묶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줄이야. 나는 차압 딱지가 붙은 패널을 휙 던지고 의자에 등을 죽 기댔다. 갑자기 할 일이 사라지니까 뭔가 텅 빈 느낌이었다.


 “사령관, 지금 한가하죠?”


 “누구 씨 덕분에 강제로 한가해진 참이야.”


 “삐지지 말아요. 저도 좀 더 온건한 방법이 있었으면 이런 수까진 안 쓰려고 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사령관은 패널을 숨겨도 찾을 거고 뺏어도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가져올 거잖아요.”


 “누굴 일 중독자로 보니?”


 “아니에요?”


 “…….”


 아자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니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네가 첫 번째 얘기 상대란 거구나.”


 “맞아요. 사령관이 딴 짓 할까봐 혹시 몰라서 보러 온 것도 있고요. 참,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스티커 강제로 뜯으려고 했다간 패널에 있는 자료 다 날아갈 거예요. 그거 소형 EMP폭탄이거든요.”


 “폭탄?! 스티커가?”


 “정확히는 스티커 안에 내장된 칩이에요.”


 “아니 원리를 물어본 게 아니고, 아니…….”


 “인체에 해는 없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게다가 붙였다 떼기도 편하게 만들었답니다.”


 “…….”


 안 되겠다. 대화가 이어지는 거 같으면서도 전혀 이어지질 않고 있어. 그렇게 소형 EMP 폭탄에 대해 한참 장광설을 늘어놓던 아자즈는 돌연히 내 책상에 뭔가를 올려놓으며 내 눈치를 살짝 봤다.


 “사령관.”


 “왜?”


 “어차피 할일 없으면 이건 어때요?”


 아자즈가 올려놓은 것은 골타리온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커다란 상자였다. 그리고 상자를 쫙 열자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 부품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아자즈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마침 마계군단장 골타리온 모델 조립을 안 해봤거든요. 도와주시면 좋을 텐데. 이거 꽤 어려워요. 부품도 많고.”


 조립이 어렵다는 말에 순간 픽 웃을 뻔했지만 아자즈의 얼굴이 예상 외로 진지해서 꾹 참았다. 아마 나름대로 신경 써서 준비해준 거겠지. 아자즈는 묘하게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하니까. 아무래도 같이 뭔가 활동을 한다면 훨씬 더 대화하기 쉬울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같이 할 수 있어요?”


 “하면서 부품들도 설명해주면.”


 그런 시도를 함부로 거절해선 안 되겠지. 내가 승낙하자 아자즈로서는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안 웃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안도하는 웃음을 지은 적이 없단 뜻이었다.


 “이 골타리온 모델은 덴세츠에서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3기 극장판을 내면서 1차로 판매한 한정 제품이에요. 차후에 나온 모델들에 비해 재현도는 떨어지지만, 오히려 그 점이 희소가치가 돼서…….”


 어느새 의자까지 내 옆으로 끌고 온 아자즈는 드물게 활기찬 모습으로 설명을 하며 즐겁게 프라모델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비록 절반은커녕 전체의 10분의 1도 완성하지 못하고 끝냈지만, 방을 나설 때 그녀는 세상 다시없는 희귀한 프라모델이라도 손에 넣은 양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믿거나 말거나, 그 후의 이야기.


 “주인님 설날 축하드려요! 여기 하치코가 만든 미트파이에요!”


 “어, 응. 잘 먹을게, 하치코.”


 “리리스 언니가 미트파이를 잘 만드는 애는 예쁜 아기를 낳는다고 했어요! 하치코도 언젠가 주인님의 예쁜 아기를 가지고 싶어요!”


 “…….”


 미트파이가 아니라 만두겠지…….


 생일의 개념과 설날의 개념을 바꿔먹은 것도 모자라 대형 폭탄 같은 한 마디를 떨군 하치코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 나는 함교에 차려진 대형 식탁 앞에서 우리 대원들의 세배를 받고 있었고 말이다.


 “사령관! 오늘 송편은 안 먹어?”


 “송편은 설날이 아니라 추석이야, 토모.”


 “바보야 넌 그것도 몰랐냐? 송편은 제비가 물어다주는 거라고!”


 “…….”


 토모의 잘못된 상식을 정정해주려는 찰나 해괴한 지식을 주입해주는 스틸드라코. 대체 송편을 제비가 물어준다는 기괴한 지식은 어디서 어떻게 잘못 들어야 생길 수 있는 걸까.


 “주인님, 저희 배틀 메이드 전원이 주인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우와……. 고마워, 라비아타.”


 라비아타를 비롯한 배틀메이드 대원들은 각자의 이름을 뜻하는 꽃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수놓은 손수건을 선물로 줬다. 선물의 질 여부를 떠나 그걸 직접 만들어서 줬다는 게 무엇보다도 기뻤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인님. 저희들도 언제까지나 주인님을 따르겠습니다.”


 “고마워, 모두들. 선물도 고맙고.”


 그날 하루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다. 


 발할라 부대원들에겐 벙어리 장갑을, 호드 대원들에겐 질 좋은 양주 한 박스, 그 외에도 수많은 선물을 하나하나 받고 고맙다고 인사해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놀라운 점은 오르카의 모든 대원들이, 심지어 AGS들도 선물을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토미 워커 등은 아직 선물의 개념을 잘 모르는 듯했지만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령관님.”


 “새해 복 많이 받아, 사령관!”


 쉴 새 없이 들었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 선물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나 역시 쉴 새 없이 했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 작은 선물 하나하나에도 대원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렇게 모두의 선물을 다 받자 그 큰 탁자가 한가득 메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가장 사랑하는 두 아내로부터 또 한 개씩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선물은 어떠셨나요, 폐하?”


 “최고였어. 가만히 앉아 받는 입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응당 서방님께서 취하셨어야 할 권리입니다. 만족하셨다니 기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깜짝 놀랄 만큼 음란한 속옷을 입고 내 방을 찾은 아르망과 용은, 양옆에서 내 옷을 벗겨주며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이러면 버릇될 거 같은걸. 나 이러다 쓸모없어진다고…….”


 “절대 그럴 린 없습니다, 서방님. 서방님께서 일을 안 하시고 노실 리는 없으니까요. 연휴는 오늘 밤까지입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힘내라는 뜻으로, 오늘 밤만큼은 저희들에게 몸을 맡겨 주세요.”


 “용…….”


 자연스럽게 겹치는 입. 용의 가는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으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아르망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매만졌다. 비단처럼 매끄러운 머리카락. 하복부에는 연신 아르망의 뜨거운 숨결이 닿아 폭발하듯 빳빳하게 경직된 상태였다.


 “오늘은 폐하의 검이 먼저 무뎌질까요, 아니면 저희들이 먼저 뚫리고 패배하게 될까요?”


 “오늘은 컨디션 최고니까 저번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을걸.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아르망.”


 “…기쁘게 각오하겠습니다, 폐하.”


 아르망의 녹을 듯한 목소리는 내가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원했다. 그렇게 연휴의 마지막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바라건대 부디 내년도 올해와 같이 즐거운 한 해로 시작할 수 있기를.


 용과 아르망의 데일 듯한 입술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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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특집

새해복많이받으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