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씨발, 캐슬이 죽었어. 그 다음은 뭔데. 또 누가 죽어야 하는 거야? 이딴 일 맡는게 아니었어.”

 바이킹은 텅빈 전자담배의 액상을 벽에 던져 깨트렸다. 안전가옥에 있는 퀵샌드의 용병들에게서 기운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지하수도에서 입고 있었던 장비를 밤새 벗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벨에 이은 캐슬의 죽음.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었다.

 맥켄지는 그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잔에 위스키를 따른 뒤 그것을 단숨을 들이킬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달리 있는가. 죽은 동료에 대한 추모를 한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이제 원동력은 없었다. 토모를 찾기 위해 그들은 갖은 수를 썼지만 결과는 이것이었다. 이미 둘이나 죽었지만 토모를 잡기는 커녕 얼굴 한번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긴 했어? 어차피 금 아니면 납이야. 말이 용병이지, 우린 놈들이 돈을 쥐어주면 전장에 나갈 고기방패에 불과하다고. 바이킹, 선택권이 있었다는 듯 말하지마.”

 크로아상은 그렇게 말한 뒤, 옆에 놓인 맥주캔을 들어 마시려 했다. 그러나 텅빈 캔을 본 그는 신경질적으로 캔을 던졌다. 안전가옥의 한켠에서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힘없이 들려왔다. 그 누구도 힘을 내지 않았다. 심지어 브라우니 마저.

 “차라리 전장에서 죽어나는 게 더 편했어. 최소한 누구와 싸우다 죽는지는, 최소한 열심히 싸우면 집으로 돌아갈 거란 희망이 있는 곳이었어. 여기처럼 누구랑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지 모르진 않았다고. 맥, 우린 돌아갈 수나 있는 거야? 이 씨발,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서 얼마나 좆뱅이 쳐야 하는 거냐고!”

 맥켄지는 바이킹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았다. 위스키병을 집어들어 남은 술을 잔에 따르려 했다. 그러나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병입에는 남아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의 위스키 방울이 매달려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맥켄지는 병을 털어 그 방울을 떨어트리려 하지 않았다. 힘없이 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바이킹, 그만해요. 캐슬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근데 우리는 용병이잖아요.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이런 죽음이 다가올 거라 한번도 생각 안한 거였어요? 씨발, 용병이 늙어서 침대 위에서 편히 죽을 거라 생각한 거에요?”

 요크셔의 외침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서 한숨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래서 리오에게 연락온 건 없어?”

 맥켄지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만일 연락이 왔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겠지.”

 크로아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맥켄지는 이 방에서 떠나지 않았고 리오는 안전가옥으로만 연락을 했다. 만일 그가 연락을 했다면 맥켄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알고 있어. 맥켄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숨을 뱉었다. 그 외에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무슨 말을 하든 의욕과 기운이 떨어질 말 뿐이었다. 웃는 얼굴로 죽은 동료를 추모할 수도 없었다. 슬픈 얼굴을 지을 수도 없었다.

 무슨 말로 추도를 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위해 죽었다고 축하해줘야 한단 말인가. 아무 의미 없이 죽었다고 애도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퀵샌드팀은 동료를 보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런 일에 익숙한 자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 문이 열렸다. 맥켄지는 반사적으로 손을 허벅지의 권총집으로 가져갔다. 여차하면 빼들 셈으로. 그것은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총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맥, 좋은 소식...”

 문을 열고 리오가 나타났다. 빼든 권총을 다시 권총집으로 가져가는 맥켄지를 본 리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추었다.

 “다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토모 잡아온 거 아니었어?”

 “씨발, 그랬으면 이 자리에 이러고 앉아있었겠어? 그랬다면 지금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있었을 거야. 네가 모를 일도 없었겠고. 씨발, 전부 말아먹었어. 그리고 씨발, 캐슬마저 뒤졌고.”

 맥켄지의 말을 들은 리오는 혀를 차고는 길게 숨을 내쉰뒤 말했다.

 “그래, 농담을 할 상황은 아닌 모양이군. 그러면 근황토크보다는 본론으로 넘어가는게 좋겠군. 토모의 현재 위치는 알 수 없고 기존의 서버 추적방식으로는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어. 그래, 이제 망했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여기서 내가 새로 알아온 정보는 일종의 반전이 될 수 있을 거야. 오늘 오전, 타누키사키 요시히로가 연락을 받았어. 상대는 토모야.”

 “씨발?”

 맥켄지는 놀라며 외쳤다.

 “그래, 씨발. 타누키사키 요시히로가 토모를 우리 몰래 빼돌린 걸 알아낸 뒤로 그녀석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어. 도청은 물론이고 말야. 허튼 짓인가 생각했지만 그 결실이 오늘에 와서야 성과를 이뤄냈어. 기억을 되찾은 존재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게 뭐겠어. 과거의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거겠지. 오늘 타누키사키 요시히로와 토모가 만날 거야. 위치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타누키사키를 미행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

 “다들, 장비 챙겨.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 가능한 다양한 총기를 챙긴다. 시가전을 할 수도 있고 장거리 암살을 할 수도 있어. 뭐가 되었건 씨발, 토모를 잡을 거야.”

 “그래. 이게 마지막 기회야.”

 리오가 말하자 대원들은 리오를 일시에 노려보았다.

 “뭐, 내가 말 잘못한 거야?”

 리오는 당황한 듯 말했고 크로아상은 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벌써 그 말을 두번이나 들었고 아무 성과도 없었어. 그리고 캐슬마저 그와중에 죽었고. 마지막 기회란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그 이야기 듣고 아무도 방아쇠에 손가락 안 얹은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징크스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아니면 플래그라는 말도 좋겠지. 전장에 나서는 군인이 갑자기 가족 이야기를 읊는 장면과 비슷한 것이었다. 안좋은 일을 암시할 뿐인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50구경으로 가져감까?”

 브라우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대물저격총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키만큼이나 큰 총이었지만 브라우니는 아무것도 아닌양 번쩍 들고 있었다.

 “.338이면 충분할 거야. 그리고 불펍에 단축총열인 걸로 챙겨. 아마도 시내에서 만날 거야.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 눈에 안띄는게 중요하겠지.”

 바이킹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보다 짧은 총을 집어들었다. 장난감으로 보일 정도로 작은 총이었지만 위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대원들이 장비를 챙기고 있는 사이, 리오는 맥켄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야. 전에 TV에 나왔던 영상 기억하나? 토모와 한 여성이 함께 있던 장면이 찍힌 것.”

 바로 얼마전의 일이었다. 고작 사흘밖에 안된 일이었다. 우연히 토모가 TV에 나왔던 것이었다. 그 일로 퀵샌드팀은 붉은 아레나 경기장에서 헛수고만 했다. 그러나 그 영상에는 한가지 희망이 남아있었다. 토모와 같이 있는 여성이 누군지만 알아낸다면 토모가 아닌 그 여성을 찾는 것으로 토모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신원을 알아냈어. 조금 늦었지만 그렇게 늦진 않았어. 마츠시타 쥰. 기자야. 월간 치바라는 지역 잡지에서 일하고 있다는군.”

 리오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맥켄지에게 건네주었다. 작은 사진이었다. 젊은 일본인 여성은 조금은 불편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추시타 준...”

 맥켄지는 어눌하게 이름을 따라 말했다. 몇번이고 일본어를 들었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의 이름은 읽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건 대원들에게 비밀로 해둬. 이 여자를 굳이 쫓을 필요 없이 오늘 토모일은 끝내야 해. 본사에서도 더이상 토모 건으로 질질 끄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어. 우린 일본이 북한과 전쟁을 하기 전에 이 나라를 떠야 한다고.”

 전쟁. 블랙리버는 북한의 소행으로 위장해 무인도에서 핵폭탄을 터트렸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여론은 전쟁으로 기울었지만 여전히 정부는 전쟁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전쟁은 시간문제였다. 맥켄지마저 알 정도로 확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전쟁을 하는 즉시 일본 사회는 무너질 것이었다. 그 이전에 일본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 나라가 정치적으로 침몰하기 이전에. 모든 것이 늦어버리기 이전에.

 “걱정마. 토모를 쫓는 건 오늘로 끝낼 거야. 그러니까 리오, 당신은 우리가 정말로 이 나라에서 뜰 수 있게 덴세츠 관련 일을 끝낼 방법을 알아내. 080이 오케이 사인 보내면 바로 이 나라 뜰 거니까.”

 맥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로 걸어가 돌격소총을 집어들었다. 간단히 총기를 확인한 그녀는 탄창을 챙겨 자신의 탄입대에 꽂아넣었다.

 “타누키사키의 차는 드론으로 추적할 거야. 너희는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타누키사키가 차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그를 쫓으면 될 거야. 시간은 충분하겠지. 토모는 먼저 기다릴 수도 있고 나중에 올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겠지. 그러면 건투를 빈다. 다시는 토모란 소리 나오지 않게 확실하게 처리해.”

 리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에 전자담배를 물었다. 대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각자의 무장을 챙긴 그들은 조용히 안전가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