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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뭐야 이게...?"

(하편) "뭐야 이게."






딱!


분노한 장화의 고성과 함께 내동댕이쳐진 고양이 귀 머리띠가 땅을 굴렀다. 신입 종업원의 지도 편달을 맡은 테티스의 얼굴은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홀 매니저인 세이렌은 조마조마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도와준다고 했어도 어디까지나 서빙이지, 이런 건 들은 적 없어! 무슨 집창촌도 아니고... 술집 작부랑 다름없는 천박한 옷도 그렇고, 그 몸 파는 거랑 다를 바 없는 스페셜 메뉴인지도...!"

"주우세요."


착 가라앉은 테티스의 목소리가 성토하는 장화를 가로막았다. 장화의 얼굴이 심상찮게 일그러졌다.


"...뭐라고?"

"주우라고 했어요."

"까고 있네."

"그럼 나가세요. 우리도 할 맘 없는 사람 데려다놓고 낭비할 시간 없으니까."

"이 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죽고 싶은 거야?"

"말뿐인 위협은 그만하세요. 할 지, 안 할 지. 그거만 정하세요."

"..."


피부가 따끔해지는 살기와 일촉즉발로 치닫는 둘 사이의 긴장감. 어느새 운디네와 네레이드도 몸을 긴장시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발끝에 힘을 주었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장화와, 지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비딱한 무표정으로 돌려주는 테티스. 머리 하나는 차이나는 둘이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을 정도로 테티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기색은 단호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테티스였다.


"사령관님한테 보답 안 하실 거예요?"


움찔한 장화의 몸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살짝 수그러든 위압감.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팽팽한 길항 상태이니만큼 주도권은 쉽사리 기울어졌다.


"고작 좀 부끄러운 거 못 참겠으면 관둬요. 저희도 마냥 헤퍼서 이러고 있는 줄 아세요? 평생 그러고 있으면 사령관님이 당신 마음 알아줄 거란 착각 하고 있는 거면, 너무 머릿속이 꽃밭이신 거 아녜요? 당신 말고도 사령관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대원들 여기 차고 넘쳐요. 사령관님은 먼저 다가오는 분들 마음 받아주기에도 바쁘신 분인데, 고작 노출 좀 있는 메이드복 하나도 못 입겠다고 징징대는 당신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있을까요?"


가차 없이 떨어지는 테티스의 말. 장화의 가슴에 뜨거운 분기가 끓어오르고 있어도 차가운 머리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신이야 사령관님이 백마 탄 왕자님이고, 처음으로 상냥하게 대해 준 인간님이고, 구원을 받은 은인이겠죠. 근데 사령관님은 당신을 그만큼 특별하게 생각할까요? 당신 같은 떠돌이 바이오로이드는 지금도 수두룩하게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꽤 큰 규모의 바이오로이드 공동체도 여럿 흡수했어요. 어쩌다 운 좋게 신경 써 주셨어도 그게 얼마나 갈까요? 당신만 케어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시고, 그럴 시간도 없는 분인데."


다시금 폐점 시간의 카페 호라이즌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당장 그녀들도 거의 1년의 기간을 외부 작전 때문에 사령관의 품 밖에서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모두에게도 와닿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테티스의 손가락이 재차 머리띠를 가리켰다.


"주워요."


아님 나가든가. 테티스가 Open 팻말이 걸린 문을 향해 눈짓했다.


"...씨발."


장화는 이를 악물며 뇌까렸다. 그리곤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서 테이블 밑의 머리띠를 주워들었다. 손끝 마디마디마다 거부감이 뚝뚝 묻어나와서, 마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결 풀린 분위기에, 다른 멤버들은 간신히 편한 숨을 내뱉었다. 테티스도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장화를 격려했다.


"괜찮아요. 그래도 반나절 하시다 보면 배가 썰렁한 건 좀 적응되실 거예요. 아... 근데 평소 복장 보면 어차피 적응 되셨을 거 같기도 하고..."

"...지랄. 어떻게 이, 이런 파렴치한 복장이 적응 되겠냐고... 여기 년들 세상 편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진짜 다들 머리나 의식 수준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네? 솔직히 저희 복장 정도는 여기선 야한 축에도 못 끼는데요? 역시 멸망 전 분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요~ 너무 보수적이라니까? 고작 이 정도에도 호들갑이고."

"하하, 네리는 이해해... 아직도 좀 부끄러운걸... 그래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을 거야."


장화는 오르카 호의 상식 앞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풍기라고 장화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테티스는 박수를 두어 번 짝짝 치며 장화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럼, 인수인계 계속해도 되죠? 자자~ 빨리 탈의실로 가서 갈아입고 오세요."

"알았어, 알았다구... 씨앙..."

"앞으로 접객 할 생각이면, 위협적인 말투랑 그 욕설도 고치시고요."

"..."


장화는 웬수 같은 메이드복을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주섬주섬 챙겨서 탈의실로 향했다. 근데, 안에 무슨 철심 같은 게 만져지는데... 구김 방지용 와이어 비슷한 건가? 작은 의문을 뒤로하고 장화는 문을 열어젖혔다.


콰당!


탈의실의 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히자, 힘이 풀린 테티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에엥~ 무서웠어어~"

"우와, 테티스... 그래도 진짜 멋졌어. 나는 한 마디도 못하겠던데."

"고생했어요. 확실히 교관을 테티스에게 맡긴 게 정답이었네요."

"부함장니임~"

"아이구, 잘 했다. 잘 했다... 이젠 설득 되신 거 같으니까 방금 같은 일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 그렇겠죠? 저... 다음에 또 저 사람이 정색하면 그땐 울어버릴 지도 몰라요..."


세이렌이 품에 안긴 테티스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는 동안, 문득 운디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근데 테티스."

"왜?"

"장화 씨한테 꼬리 어떻게 착용하는지 알려줬어?"

"어... 그러고보니..."

"메이드복이랑 같이 접어놔서 안 보였던 거 아니야? 걔가 알았으면 귀 말고도 그걸로도 난리 쳤겠지."

"그, 그러네요? 분명 장화 양은 귀 가지고만..."

"꺄아아아아아악!!!"


마치 대답처럼 탈의실 방향에서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호라이즌은 서로를 쳐다보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쿵, 쿵, 쿵. 분명하게 울리는 화난 발걸음이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대원들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번 설득은 한층 더 힘들 것이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