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RL이 이상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피한다.


우연히 만나도 말을 얼버무리고 자리를 뜨고, 멀리서 나를 봐도 도망쳐버린다.


그 모습을 보자니……섭섭하다. 엄청.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돌이켜봐도 크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러면 반대로 LRL이 무엇을 잘못해서 나를 피하는 건가? ……이건 더 가능성이 없었다.


LRL이라면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저질러도 피하거나 숨기지 않을 것이다. 울면서 벌벌 떨면서 죄송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LRL이기에……더 섭섭하다. 아니, 슬프다.


그렇다고 강제로 물어보는 것은 더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 LRL이 진심으로 나를 싫어하면 나는 우울증에 걸려버릴 거다.


“무슨 일이신가요, 주인님?”


콘스탄챠가 의기소침한 나에게 다가왔다.


LRL만큼이나 나를 오랫동안 봐온 그녀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LRL과 함께 지냈던 그녀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한탄 섞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LRL이……요즘 이상해.”


“어머나? 큰일이네요. 어떻게 이상한가요?”


“나를……피해. 우연히 마주쳐도 금방 자리를 뜨고, 멀리서 나를 봐도 도망쳐. 그리고 지난번엔 혼자 무거운 것을 옮기길래 도와 준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면서 나를 쫓아냈어.”


“음…….”


콘스탄챠는 LRL의 나에 대한 반응을 듣더니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생각에 빠졌다.


나는 간절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콘스탄챠가 말했다.


“혹시 LRL에게 잘못한 거 있으신가요?”


“없어!”


나는 즉답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말했다.


“……아마도.”


“아마도?”


“내가 들떠서 뭔가 저질렀을 지도 모르잖아. LRL에게 직접 하지 않았어도 내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한걸 LRL이 봤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몇몇 언행들이 떠올랐다. 주로 성적인 것으로.


“아마……내가 뭔가 잘못했겠지.”


“아닐 거예요.”


콘스탄챠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LRL이 주인님을 피한다고 해도 무슨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내가 잘못해서…….”


“아뇨.”


콘스탄챠가 내 말을 끊었다. 상냥했지만 단호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주인님께선 언제나 당당하셔야 해요.”


“……미안해. 그럴게.”


내가 사과하자 콘스탄챠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주인님께선 실수를 하실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실 거잖아요.”


콘스탄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모두가 알고 있어요. 주인님께선 상냥한 분이시란 걸.”


“…….”


절대적인 애정, 절대적인 신뢰. 어떻게 이를 배신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말마따나 오르카 호의 모두의 애정과 신뢰가 있다면 나는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콘스탄챠는 내 손을 놓고 말했다.


“그러면 제가 LRL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올게요.”


“고마워. 부탁해.”


“후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그렇게 말하고 떠난 그녀는.


돌아온 후에 말했다.


콘스탄챠는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 주인님께서 LRL이랑 조금 대화를 해보셔야 할 거 같네요.”


“할게! 할게!”


나는 매달리듯이 말했다. 이렇게 기피되는 생활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나의 잘못을 마주하더라도 이렇게 LRL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 제가 장소를 수배한 후에 이틀 뒤에 알려드릴게요.”




영겁 같은 시간 속에 나의 강철 같은 마음이 서서히 녹슬고 아스러졌다.


……진조의 프린세스 식으로 말했다만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이틀동안 엄청 초조해했다는 말이다.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LRL에게 가는 길. 방을 안내해주던 콘스탄챠가 물었다.


“응. 괜찮아. 그냥. 긴장해서.”


“후후. 긴장하지 마세요. 주인님과 LRL이잖아요.”


콘스탄챠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콘스탄챠의 모습에 감화되어 나는 조금 진정되었다.


“콘스탄챠, 혹시 LRL이 왜 그런지는 말 안 해줬어?”


“음…….”


잠시 생각한 콘스탄챠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직접 물어보세요.”


LRL과 만나기로 한 방 앞. 콘스탄챠는 거기까지만 안내해주고 자기 일이 있다고 떠나버렸다.


LRL과 대화하다가 일이 꼬였을 때 중재해주길 바라서 ‘나 두고가지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콘스탄챠가 순식간에 사라져서 그러질 못했다.


혼자 남은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문을 두드렸다.


“LRL? 사령관이야. 들어가도 될까?”


“응! 들어와, 사령관!”


다시 가볍게 심호흡 후 나는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사령관.”


LRL은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LRL이 100년의 등대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드래곤 슬레이어의 캐릭터이자, LRL의 우상이 입던 옷과 동일한 옷.


LRL에게 가장 소중한 옷.


그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나는 나의 불안감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야, LRL?”


“헤헤, 무슨 일로 부른 거 같아?”


“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상자 몇 개가 그녀의 주위에 있었다. 개중에는 내용물이 너무 커서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것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붉은 리본이 묶여있었다.


아아. 알아차렸다. 그녀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지금까지 그녀가 나를 피했던 이유도, 그녀가 가끔 무거운 짐을 들고 옮겼던 이유도.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도.


나는 LRL앞에 무릎을 꿇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하나뿐인 아름다운 호박색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나에게 정답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음. 알려줄 수 있어?”


“헤헤. 그러면 이 상자 열어봐.”


LRL은 넓고 낮은 상자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상자도 예쁘게 리본이 포장되어 있었다.


너무나도 알기 쉬운 포장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것을 참으며 나는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LRL이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종이 위에는 빽빽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전부 다른 사람들이었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이지만 하나하나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전부 내가 아는 사람들. 전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에는 나와 LRL이 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액자에서 시선을 돌려 LRL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LRL의 천진난만한, 그 오랜 세월에도 때가 묻지 않은, 나에 대한 신뢰가 가득한, 애정이 가득한, 행복이 가득한 웃음.


LRL의 웃음은 햇살과도 같아서 나에게도 웃음이 피어나게 했다.


“지난번에 사령관을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오늘 그 준비가 끝났어.”


그때 나는 같이 과자만 먹는 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같이 과자를 나눠 먹었고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LRL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LRL은 나 모르게 열심히 나에게 보답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있지. 나 사령관이랑 등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 드래곤 슬레이어를 처음 봤을 때랑 똑같은 느낌을 받았어. ‘짐의 운명의 지표가 될 이와 마침내 마주쳤노라.’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 예감은 필연이 되었어.


언제나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사령관을 만나고 웃게 되고, 새로운 친구들이랑 만나고, 같이 놀고, 같이 과자를 먹고 그리고 밤에 혼자 읽던 동화책을 누군가와 함께 읽고.


매일 매일이 선물을 받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돌려주고 싶었어.”


어린아이의 감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멸망 전부터 살아왔던 바이오로이드의 감사이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목소리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갈무리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것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사령관이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고, 왜 물어보는지 말하니까 전부 사령관이 좋아하는 것을 줬어.”


그 결과는 놀라웠다. LRL과 내 주위에 있는 상자들이 그 결과물이었다.


“언제나 고마워, 사령관.”


LRL의 웃음으로 피어난 웃음 아래에서,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구쳤다. 세상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모두에 대한 애정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LRL의 말이지만 모두의 말이기도 했다.


눈앞이 살짝 흐려졌다.


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애정을 숨기지 않기 위해 LRL을 끌어안았다.


LRL은 내가 끌어안자 히히 웃으면서 나를 마주 안아주었다.


이 작고 가녀린 소녀가 나에게 준 선물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었다. LRL이 매일 선물을 받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없었다면 나 역시도 이렇게 있을 수가 없었다. 육체는 물론이요, 정신과 영혼까지.


“앞으로도 쭉 곁에 있어 줄 거지?”


LRL의 말에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일 거다.


“응. 언제나 함께할게. 영원히.”


“응. 언제나 함께야. 영원히.”




감동의 포옹 이후에는 흥미진진한 순간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옷!”


타이런트 1:100 원격조작 초합금 모델!


“아, 이거 아우로라가 준 거야.”


특급 파티시에르 아우로라의 특급 간식!


“하하, 이건 알비스가 준거네.”


초코바. 아마도 몰래 빼돌렸을.


“사령관 나도 한 모금 마셔보면 안 돼?”


“좀 더 자라면 마시자. 응?”


키르케와 워울프의 술.


“히히. 이거 아쿠아랑 같이 만들었다?”


아쿠아의 꽃다발과 꽃관 세트.


“…….”


“왜? 사령관?”


“이걸 이렇게 돌리고 분리하면.”


“어? 이거 뭐야?”


“탈론 페더! 이런 물건에도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야 했냐!”


만년필. 몰래카메라가 탑재된.


그리고 이런 물건도 있었다.


데이터가 있어서 패널에 넣어서 보니 아스널이 나왔다. 즉시 LRL의 눈을 가렸지만 다행히 내용은 건전한 감사 인사 영상이었다. 아스널을 위시한 AA캐노니어 전부의.


“이 봉투는 뭐지?”


종이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있길래 들어보니 가벼운 뭔가가 들어있었다. 열어서 보니. 속옷이었다. 여성용.


“그거 리리스가 준 거야.”


즉시 봉투 입구를 싸맸다.


입으라고 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입었던 것일 것이다.


안 되겠네. 나중에 혼내줘야겠다.


무제한 항공권도 있었다. 기체명은 피닉스. 시간은 자유.


플라네타리움도 있었다.


네잎클로버 책갈피도 있었다.


영양제도 있었다.


모모 피규어도 있었다.


향수도 있었다.


손수건도 있었다.


약초도 있었다.


비밀의 엿보기 장소를 기록한 도면도 있었다.


패션용 안경도 있었다.


인형도 있었다.


보석도 있었다.


앨범도 있었다.


오르골도 있었다.


향신료도 있었다.


원두도 있었다.


가득 있었다.


그리고 모든 선물에는 모두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열어보는 것도 일이었고,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LRL이 말했다. 나를 만나고 매일이 선물을 받는 거 같다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LRL을 만나고 매일이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LRL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나에게 선물이나.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분에 넘치는 선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들이 사랑하는 나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니.


나는 그녀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녀들이 소중히 여기는 나를 소중히 여기겠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녀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겠다.


이게 내가 그녀들의 선물에 대한 최고의 보답일 테니.




잘 시간이 되니 LRL은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나는 간략하게 뒷정리를 한 후에 LRL을 등에 업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콘스탄챠가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알고 있었지?”


“네.”


“메이드 실격이네, 주인님을 속이고.”


“죄송해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어요.”


“그러면 LRL 잠옷으로 갈아 입혀줘.”


“알겠습니다.”


그 사이에 나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콘스탄챠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LRL을 업고 왔다. 콘스탄챠는 LRL을 내 옆에 눕혔다.


“좋은 꿈 꾸십시오, 주인님.”


콘스탄챠가 방을 나섰다. 나도 불을 끄고 누우니 LRL이 말했다. 


“으응……사령관.”


“응? 일어났어?


LRL은 내 품으로 파고들면서 물었다.


“행복해?”


“행복해. 엄청.”


“응. 사령관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기뻐.”


LRL의 목소리가 더 가늘어졌다.


“내일도……같이 놀자?”


“응. 내일도 놀자.”


“약속이다?”


“약속.”


“헤헤.”


LRL은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들었다.


나는 나에게 매일이 선물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 소녀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내일도 선물을 받은 것처럼 행복한 하루이기를.



LRL애호 마려워서 쓴, 콘문학으로 쓰려다가 문학으로 급선회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