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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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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대체...”

 

 

 

오르카 호 연구시설 내부, 나는 지금 닥터와 함께 철충 잔해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요정 마을에 침투한 철충. 그 중 95%는 이미 전투 중에 고철 더미가 되어 쓸모 있는 정보를 빼낼 수 없었지만 워낙 많은 놈들이 쳐들어 왔기에 5%만으로도 제법 재미있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철충들의 AGS 개조 기술의 수준이라던가, 놈들의 진화 방향 추론 등 말이다.

 


헌데, 이건 도저히 재미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삑삑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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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게 대체 뭐지?”

 

“... 모스 부호야. 아주 기초적인 신호 체계지.”

 

“철충이 모스 부호를 다룰 수 있다고? 대체 왜?”

 

“철충은 인류가 만든 시스템을 잘 이용했으니까 모스 부호를 사용한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그리고 왜 굳이 이런 짓을 하냐고 한다면...

... ... 그건 나도 모르지.”

 

“... ...”

 

 

 

이 상황이 이상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 철충은 이미 죽은 철충이란 것이다.

철충의 성가대는 내 의식을 변환시키는 이상 파장을 내뿜는 메인 파트와 그것을 보호하는 철충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메인 파트가 사라지면 나머지 철충들은 자동으로 기능을 정지시킨다. 어떠한 에너지 신호도 감지되지 않고, 생체 신경 회로도 활성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닥터의 말에 따르면 이 철충 잔해는 내가 섬에 있는 동안 갑자기 신호가 방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작 잔해일 뿐인 죽은 철충에게서 말이지.

 

둘째, 모스 부호는 철충이 쓰는 언어가 아니란 것이다.

철충들끼리의 의사소통은 그들이 성립한 내부 체계로 인해 진행된다. 지금까지의 교전 기록을 토대로 확인해본 것은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 심지어 내 귀에조차 놈들의 대화는 그저 비명 소리 정도로만 들린다.

주인공은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난 그렇게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일전에 외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만 겨우 알아 들었을 뿐이지.

물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다면 그것을 해석하는 AI를 설계해볼 수도 있겠지만,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고 노이즈도 많다. 그러니 놈들이 인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셋째.

 

 

 

“... 대체 왜 이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가장 큰 문젠데...

... 철충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역사에 한해서는 말이지.

혹시 아직 살아있는 걸까? 살아서 다른 철충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너무 급해서 그냥 모스 부호를 쓰는 걸 지도 몰라. 모스 부호는 엄청 단순하니까.”

 

“저 꼴을 보고 살아 있는 거라 할 수 있을까...? 생체 신호고 에너지 흐름이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고철 덩어린데?

게다가 다른 철충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는 거라면 모스 부호가 아니라 매번 들렸던 그 비명 소리 같은 걸 내뱉었겠지. 당연히 이렇게 반복하는 신호를 내뱉지도 않았을 테고.

...

대체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어쩌면... 오빠한테 말을 걸려고 하는 거 아닐까?

오빠가 오르카 호로 돌아오기 십 몇 분 전부터 이 신호가 감지됐거든.”

 

“그럼 놈들이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섬에 남아 있는 철충은 하나도 없다는 거 몇 번이나 확인했잖아.”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만...”

 

“... ...”

 

 

 

철충에게선 늘 들리던 비명 소리가 아니라 또-또-또—거리는 신호음이 연구 시설에 맴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 일이지만, 아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저 모스 부호의 뜻.

 

 

 

“Alaska Anchorage.”

 

“앵커리지... 이건 알래스카의 주 이름인데...”

 

 

 

모스부호를 영어로 해석하면 나오는 뜻. 알래스카 앵커리지.

닥터는 뜬금없이 지역 이름이 나오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눈치였지만 적어도 난 그럴 수 없었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 철의 왕자.’

 

 

 

8지역 가장 마지막을 장식했던 그 놈이 있던 곳. 그 연구시설이 있던 곳이 바로 알래스카 앵커리지다.

놈이 설마 벌써 깨어난 걸까? 그럼 설마 이 섬에서 발생한 모든 철충의 원인이 그 놈일까? 게임 속에서는 오메가와 싸울 때가 되어서야 깨어난 놈이?

 

... 아니, 그건 너무 커다란 비약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시간 흐름이 그렇게까지 뒤바뀌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철충 성가대는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나타난 놈들. 그 애들 뒤에 철의 왕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을 가능성보단 틀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오메가를 잡기는커녕 만난 적도 없는데 철의 왕자가 깨어난다? 생각해본 적 없던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그 놈이 뭐가 좋다고 살덩이가 가득한 이곳에 자기 보러 오라고 이렇게 버젓이 초대장을 보내겠나?

허파에 숨만 가득 차서 신세계의 신이니 뭐니 하던 새끼가 이렇게 친절하게 자기 위치를 대답해줄 거란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럼 누가 이 모스부호를 보낸 거지? 오메가? 아니면 앵커리지 연구 시설에서 자동으로 수신되는 메시지인가?

하지만 그럼 그 메시지를 어떻게 철충이 가지고 있는 거지? 말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도 내 옆에 있는 닥터처럼 머리만 싸매고 있는 상황.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앵커리지... 앵커리지... 왠지 익숙한데...

...

... 아! 맞다!”

 

“응? 왜?”

 

“라비아타 언니가 돌아왔거든! 

그래서 배틀 메이드 전원 집합하고 막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때 언니 손에 들려 있던 보고서 같은 거에 이게 적혀 있었던 거 같아!

알래스카 앵커리지 연구 시설이라고!”

 

 

 

... 라비아타? 그러고 보니 에바를 찾으라는 개인 임무를 주긴 했는데 설마 알래스카까지 갔다 온 건가?

그 초월적인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다만...

...

... 아니지, 지금은 일단 눈 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자. 그 신체 능력은 상상만 해도 머리 속이 막 어질어질해진다.

 

 

 

“라비아타가 들고 있던 보고서, 혹시 받아 왔어?”

 

“흐음... 아니. 언니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숨기더라고.

그 안에는 막 읽기만 해도 정신이 오염되는 무시무시한 것들이 적혀 있다나 봐.

나뿐만 아니라 배틀 메이드 언니들한테도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더라고.”

 

“정신... 오염...?”

 

 

 

확실히 앵커리지 쪽의 연구 시설에서 뭔가 일이 있었다는 떡밥이 있긴 했지만 게임 속에선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게 엄청 폭력적이거나 하는 내용은 아니었을 텐데?

기껏해야 철의 왕자가 자기 협력자를 모조리 죽인 뒤에 철충 연구를 하던 것 정도의 내용일 텐데, 좆간 새끼가 애들 가죽으로 비밀의 방 만들던 거까지 경험한 애들한테 정신 오염이라고?

 

... 그냥 과장인 걸까?

 

 

 

“흐흐흐, 우리 오빠는 그거 읽어야 할 텐데 어쩌나? 쿠흐흐”

 

“... 겁주는 거야? 막 손까지 위로 쫙 벌리고.”

 

“흐흐흐, 무섭지 않은 척 해도 소용 없어!”

 

 

 

손바닥을 쫙 펼친 채, 닥터는 나를 향해 귀엽게 달려들었다.

일부로 당해주는 척, 으어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자 닥터도 만족스러웠다는 듯이 내 목덜미를 꽉 껴안았다.

 

 

 

“으으... 너무 무섭다. 무서워.”

 

“흐흐, 그래도 너무 무서워하지마!

이 닥터가 다 고쳐줄 테니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내 등을 토닥거리는 닥터. 정말로 자기가 다 고쳐줄 수 있는 거라 생각하나 보다.

하긴, 적어도 내가 걸릴 만한 질병 중에 이제 닥터가 못 고칠 질병은 없으니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라비아타가 그런 얘기를 할 정도라면 확실히 예삿일은 아닌 듯하다. 

 

나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게 조심이 침을 삼켰다.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그래, 그래. 우리 닥터만 믿으면 뭐든 다 해결할 수 있지.

근데 일단 지금은 라비아타보다 이걸 우선하자. 알래스카 앵커리지라면 나도 확인해봐야 할 게 있거든.

알파랑 먼저 얘기를 나눠봐야겠어. 자세한 건 그 다음에 얘기할 게.”

 

 

 

앵커리지. 오메가와 연관된 곳이라면 알파가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일단 게임에서 알파가 나온 것이 앵커리지 그 구역이었으니까.

 

패널에 손을 뻗어 알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너머로 알파의 목소리가 들리는 데까지는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았다.

 

 

 

“알파입니다. 사령관님.”

 

“그래,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네가 오메가랑 같이 있을 때에 알래스카 쪽에서 뭐 일이 일어나거나 한 적 있어? 팩스랑 관련된 일이면 더더욱.”

 

“알래스카라면...

... 글쎄요. 애초에 2년에서 1년 전까지면 해도 오메가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팩스 기반 시설을 점령하느라 바빴던 터라 알래스카 쪽까지 손을 댔을 리는... 

...

... 글쎄, 확언은 못하겠군요. 그 여자가 뒤로 또 무슨 꿍꿍이를 벌여놓았을 지 모르니까..

혹시 뭔가 캥기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원하신다면 제가 팩스 쪽 전산망을 해킹해보도록 하죠.”

 

“아니, 오메가의 캐스토스 히마스가 건재한 이상 괜히 도박을 할 생각은 없어.

게다가 이미 넌 그쪽에 배신자로 낙인 찍힌 상황일 거 아냐. 네가 해킹 시도하는 건 벌집을 쑤시는 거나 마찬가지지.”

 

“벌집도 몇 번 쑤셔 봐야 여왕벌이 기어 나오겠죠.”

 

“여왕벌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너를 들어내는 건 손해 보는 장사야. 알파, 

네가 팩스 쪽과 연을 끊긴 했어도 정확히 어느 세력과 손을 잡은 건진 모르는 일이니까 숨길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숨겨야지.”

 

“흐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이시라면 다 뜻이 있으시겠죠.”

 

“큰 뜻은 아니지만 돌다리 두들겨보는 것 정도는 하려고.

그리고 넌 나중에 오메가를 잡으면 깜짝 서프라이즈로 보여줄 생각이라서 말이야.”

 

“... 후훗.”

 

 

내 제안을 들은 알파가 잠시 침묵으로 답하더니, 이내 쿡쿡 거리는 웃음을 내뱉었다.

여기서 성욕 이외의 감정 표현은 최대한 절제하던 알파가 저리 웃다니, 제법 마음에 드는가 보다.

 

하긴, 복수도 그만한 복수가 어디 있겠나. 팔 다리 꽁꽁 묶여 있는 오메가가 사지 멀쩡한 알파를 무력하게 쳐다만 봐야 하는 꼴이라니.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물론 이는 알파의 복수심을 채워주려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됐을 때 오메가가 어떤 표정을 지을 지에 대한 내 개인적인 호기심이기도 하다.

게임에선 그냥 떡 하니 오메가랑 알파가 대면하는 바람에 좀 김 빠진 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서프라이즈라, 사령관님도 참 낭만적인 분이시네요.

다른 분들의 눈치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주인님이라 부르고 싶은데...”

 

“뭐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불러.”

 

“어머, 그럼 지금부터 주인님으로 모셔도 될까요?”

 

“이미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었어?”

 

“저는 제 나름대로 아주 열심히 참고 있었답니다. 닥터 양을 제외한 다른 분과는 제대로 교류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주인님께선 저를 믿어주셨지만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들에 대해 경계심이 아주 대단하더군요. 특히나 팩스 같은 거대 세력에서 온 인원에 대해 말이죠.”

 

“네가 좀 이해해줘. 그게 다 우리 애들이 나를 아껴줘서 그러는 거니까.

내가 옛날에 뿌려 놓은 업보가 오죽 많잖니?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애들이 의심병이 좀 강해.

집착은 더 강하고.”

 

“하아... 주인님께서도 참 인복이 좋으시네요. 그렇게 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그것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도 잘만 버틴 애들이니까.”

 

 

 

좆간. 그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악마와도 같은 인간 밑에서 자란 애들이다.

그러니 그 기간을 함께 버틴 자매들, 또 그걸 치료해준 나에 대해서는 끈끈하다 못해 끈적일 정도로 애정과 신뢰가 두텁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외의 세력에 대해선 아주 치를 떤다는 뜻이다.

 

물론 제조 캡슐로 만들어진 신규 대원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 애들은 전력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애들이고, 무엇보다 내가 원해서 만든 애들이었으니까.

 

아무튼, 라비타아처럼 태생적으로 포용력이 뛰어난 개체가 아니라면 대부분이 신입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걸 거부한다.

물론 그냥 그런 인간 관계를 맺는 것에 지친 나머지 그러는 것이지만, 그 중 적지 않는 아이들이 지친 것을 넘어 거부 반응을 보인다. 억지로 웃는다던가, 아니면 아예 무시한다던가.

 

이게 다 그 좆간 새끼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텨서 주인님을 만났는데 왜 니들은 운 좋게 주인님께 발견되어서 주인님의 사랑을 받느냐... 뭐 그런 거다. 

하물며 굴러온 돌이 동침표에까지 들어갈 상황이었으니 평소 동침권을 화폐처럼 쓰는 애들에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지. 

 

 

 

“... 잠깐,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알파랑 잤던 적이 있던가?”

 

“아뇨. 같이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던 적은 없네요.

그래도 후회할 수는 없어요. 저 같이 운 좋게 들어온 년이 그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이 함선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잖아요. 여기서 더 욕심을 내면 돌팔매질 당해도 변명 거리가 없죠.”

 

“... 하아, 너도 그랬단 말이지...

그래도 알파 정도면 오르카 호를 위해 많이 헌신한 편일 텐데.”

 

“고작 그 정도로 이 분들과 주인님의 사랑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주인님께서 기쁘게도 제 성욕을 몇 번 처리해주신 적이 있으시니까... 후훗.”

 

“... ...”

 

 

 

당연한 얘기지만 알파도 성욕이란 것이 있고, 그게 거진 백 년을 쌓여 있는 상태다. 

아니, 성욕의 화신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알파는 다른 일반 바이오로이드에 비해 몇 배는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일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그걸 해소시켜주는 건 사령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도 알파는 대부분의 시간을 닥터와 연구 시설에서 보냈다.

그 덕에 닥터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몰래 복도에서 삽입을 한다던가, 대형 AGS 제작을 할 때면 그 뒤에 숨어 피스톤질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성욕을 처리해주고 있다.

 

물이 다른 애들에 비해 두 배, 아니, 세 배는 많았기에 흔적을 좀 많이 남기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먹구구식 해결이라도 하지 않으면 애가 점점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물론, 그것도 언젠가 한계가 올 것이다.

 

 

 

“... 그걸로 충분해?”

 

“물론 아니죠. 덕분에 탈론 허브 이용자 순위 중에 유료 서비스 누적 이용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네요.

참, 어제 밤 올라온 세레스티아 씨와의 영상은 걸작이었어요. 입으로 하얀 우유를 마시면서 자지로 하얀 우유를 주입하시는 모습은 정말 칭찬해드리고 싶었답니다. 쉽지 않은 테크닉이셨을 텐데.”

 

“그래, 나도 그렇게 모유가 많이 나오는 애는 처음...

...

... 아니, 그 얘기 하던 게 아니었잖아...!”

 

“후훗.”

 

 

 

알파랑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음담패설은 꼭 한 번이 거치고 가야 한다. 애가 괜히 성욕이란 칠죄종을 달고 온 게 아니란 거겠지...

 

 

하여튼, 내가 우리 애들에게 텃세 부리지 말라고 경고를 줬음에도 이러는 걸 해결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알파랑 섹스를 하려고 해도 동침표에 이름 석자 적는 게 그리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니 말이다.

 

한 번은 거제도 쪽에 남아 있던 바이오로이드 몇 명을 거두어 줬는데 이 애들이 리리스의 눈빛 때문에 무섭다고 나에게 오지 말라 부탁했던 적도 있다.

한 번만 더 오면 리리스가 진짜 자기들을 죽여버릴 것 같다면서. 리리스는 그냥 쳐다봤을 뿐이라 했지만 그 애들 눈엔 그렇게 안 보였던 모양이지.

 

 

 

‘그 애들이랑도 섹스를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그 중 절반은 삽입만 하고 상담해주는 거였지.

...

... 그것도 참 특이한 플레이긴 했어.’

 

 

 

아무래도 이 애들, 인간 관계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버린 듯하다. 자기들 동생이나 원래 있던 다른 사람들을 빼고는.

 

 

 

“... 아무튼, 애들 텃세 부리는 건 내가 좀 조심하라고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줘.

그러는 동안에 앵커리지 쪽에서 팩스가 뭐 한 거 없나 자료 조사만 좀 해주고. 들키지 않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게요.

... 

아, 참. 주인님?”

 

 

 

야한 얘기에 한창 즐거워하던 알파가 순간 목소리를 낮춰 진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응?”

 

“주인님께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긴 하겠지만, 절대 팩스와 정면 승부를 하지 마세요.

절대로.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싸우면 필패에요. 필패.”

 

“알아, 우리 쪽 쪽수가 얼마나 딸리는 지는 나도 잘...

...

... 잠깐,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전이라면 어떻게 게릴라 작전을 하든, 아니면 특수 부대로 직접 타격을 하든 방법이 없진 않았을 테죠.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라요. 기술의 격차가 차원이 달라졌거든요.”

 

“기술의 격차?”

 

 

 

우리도 닥터가 둘이나 되는데 기술 격차가 생길 일이... 있나?

 

아니, 그보다도 대체 어떤 기술을 만들어냈길래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우리 함선에 닥터 둘이란 거 알파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우리도 닥터는 둘이나 있어. 애들 열 명만 모아도 특이점을 만들 수 있다는데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릴 숫자는 아니지 않아?”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로 기술적 특이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냥 만들어낸 닥터로는 불가능해요.

이들도 사람과 닮은 바이오로이드라면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야 하죠.”

 

“경험?”

 

“이를 테면 AGS에 대한 경험이나 기반 기술이 있겠네요.

저 아이들, 둘이나 됐으면서도 아직까지 타이런트 이상의 AGS를 만들지 못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팩스에선 최근에 기어코 새로운 AGS를 하나 만들어냈어요. 

단순한 AGS가 아니에요. 아니, 어쩌면 이미 AGS의 개념을 초월해버린 걸 지도...”

 

“... 뭐?”

 

 

 

새로운 AGS라고? 9지역에서 나온 팩스의 AGS만 해도 우리랑 비교도 못할 만큼 성능이 좋았는데, 거기서 더?

 

 

 

“제가 하이재킹한 자료에 따르면 오메가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한 명의 닥터를 찾아냈어요. 팩스 기술의 정수가 담긴, 멸망 전의 닥터 말이죠.

닥터 모델의 성능을 알고 계시다면 이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얘기가 아니란 걸 아시겠죠? 심지어 한 기업의 정수가 담긴, 경험으로는 비할 데가 없는 닥터이니까.”

 

“... ... 닥터...”

 

“멸망 이후 시간이 꽤나 흐른 타에 닥터의 모듈이 조금 손상이 가긴 했지만,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으로 금새 복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한 때 세계 최강 AGS 기술을 가졌던 팩스와 그 기술의 정수가 담긴 닥터... 오메가가 그 기회를 그냥 넘겼을 리가 없겠죠.”

 

“그래, 그랬겠지...”

 

“단순히 그랬겠지 수준이 아니었어요. 정말 쥐어 짜내듯이 이용을 했다고 하더군요.

고문까지 해가면서 밀어 붙인 덕에 오메가, 그 년이 결국 어떤 AGS 하나를 만들었어요. 일종의 나노머신이라 하더군요.”

 

 

 

뭐? 나노머신...?

 

 

 

“그건 물체를 분자 단위로 분해하고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AGS에요. 

아니, 철충이 감염시킬 내부 회로조차 존재하지 않으니 AGS라 부를 수도 없겠네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에요.

어쩌면 멸망하기 전에 팩스 기업에서 관련된 청사진을 가지고 있던 것일 수도 있죠.”

 

“물질 재구성이라면...”

 

“... 네, 함대고 뭐고 그 나노머신 앞에선 손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거란 뜻이죠.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이 기술 개발 초기 상태라 명령 프롬프트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것, 그 탓에 제어 모듈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 창작물에서 온갖 치트키로 쓰이던 나노머신. 이쪽 세계관에서는 기술 개발 방향성이 달라 등장할 거라곤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는데...

게다가 물질 재구성. 내가 본 그 어떤 능력보다도 강력한 능력이다. 어떤 게임 속에선 통제를 벗어난 나노머신이 아예 도시 하나를 집어 삼킨 적도 있었다.

 

심한 경우, 보이는 모든 걸 갈아버리거나 기생해서 기계 좀비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기술이 나노머신이다.

아무리 기술 개발 초기 단계라 하지만 알파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그 위험성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란 뜻일 것이다.

 

 

 

“제어 기술의 문제점 때문에 해당 나노머신으로 만든 AGS의 신장은 1.5 m를 넘길 수 없어요.

안전성 때문에 형태도 어느 정도 일정한데, 많은 수의 촉수나 케이블 같은 것이 얽힌 형태로 만들어진다 하는군요. 

그렇게 얽힌 케이블들이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데, 대충 4개에서 5개 정도 되는 다리로 움직여요.

그 대신, 케이블의 이동 반경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동 속도도 최대 초속 60 m까지 움직일 수 있고, 내구성도 총 몇 번 맞는 걸로 표시도 안 난다 적혀 있네요.

다리 자체도 살상력이 있고, 나노머신으로 제작되어 신체 유동성도 뛰어나가 하니 말 그대로 죽이기 위해 태어난 살인 병기인 셈이죠.”

 

“다른 특이점은 없어? 뭐... 나노머신으로 만들어서 수명이 좀 짧다던가 아니면...”

 

“아뇨, 오히려 철충처럼 대상 AGS를 감염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나노머신으로 모듈을 아예 재구성시키는 방식으로 말이죠. 절대 저희 AGS를 출격시키면 안 되겠죠.

게다가 주변 유기물, 무기물을 해석, 흡수해서 약점 분석 및 해킹, 자가 생성을 하기까지 해요. 철충과 싸우면 제법 볼 만 하겠네요.

아마 팩스가 멸망하기 직전, 철충과 싸워볼 생각으로 개발하던 기술인 것 같아요. 이런 기술이면 철충 본대와 싸워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는 있었을 테니까요.”

 

“... 끔찍하네.”

 

 

 

누가 인간은 모방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인간 과학자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철충의 AGS 감염 방식을 따라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창조물이니 오메가가 그런 짓을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되려 인간이 다 망하고 지금까지 안 그랬던 게 이상할 노릇이지.

 

 

 

“일단은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겠다만, 만약 만나게 된다면...?”

 

“... 적어도 그게 스틸라인 대원 분들은 아니길 빌어야겠죠.

이런 AGS를 양산형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는데 몇 개만 있어도 스틸라인 대대 하나는 아예 쓸려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네오딤 양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겠지만 말했다시피 양산형으로 설계된 AGS인 터라 팩스가 양으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겠죠.

축복 받은 북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나오는 자원양을 상상해본다면...”

 

“... 나오는 양도 심상치 않겠군.”

 

 

 

네오딤의 능력도 한계가 있다. 익스큐셔너 하나와 싸우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는데 만약 저런 AGS 수천 개가 몰려오기라도 한다면 그 땐 네오딤 하나론 절대 싸울 수 없을 것이다.

... 그래, 생각해보면 이게 정상이지. 자기 회장 살리겠다고 태평양 건너 괌까지 가는 년인데 기술 개발을 안 할 리가 없잖은가. 

 

어쩌면 지금껏 오메가 년이 잠잠했던 것이 이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오르카 호 자체를 모르는 것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다른 경우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다. 이거 개발하느라 바빴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면 이 좆간 새끼가 하는 꼬리지를 보고 견제할 건던지도 느끼지 못해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게임 속에선 프로젝트 오르카로 주인공이 한 번에 전세를 역전시키지 않았나? 이 전쟁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이 좆간 새끼가 무서웠을 리는 없으니, 오메가가 이 새끼를 무시하고 기술 개발을 했을 것이란 가설도 충분히 새워볼 수 있다.

 

 

 

‘하아... 좆 같은 새끼...’

 

 

 

우리 애들 괴롭히느라 도끼 자루 썩는 줄도 몰랐던 병신이 오메가나 북아메리카 바이오로이드 연합까지 생각했을 리가 없지.

우리의 AGS 기술력은 이제 막 타이런트를 만들 수 있는 수준. 대륙급으로 노는 팩스와 싸우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기술 격차가 벌어졌다고 한다면 솔직히 따라 잡을 엄두도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 ... 오르카 호를 해결하고 나니 이젠 밖이 문제다. 

철충은 성가대 같은 이상한 놈들을 보내지 않나, 오메가는 또 뭔 병신 같은 AGS를 만들지 않나.

 

적어도 델타나 감마는 그 정도 위인이 아닐 테니 다행이지.

다른 레모네이드들도 회장을 위해 움직일 성격은 아니니까 마찬가지일 거고.

괜히 거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후우... 그 자료는 확실한 거지?”

 

“제가 팩스 내부 서버를 직접 해킹해서 얻어낸 정보니까 틀린 건 아닐 거에요.

들키지 않게 빼내느라 고생을 좀 했죠.”

 

“... 그 닥터는 어떻게 됐어? 만약 찾아낸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미 과로로 쓰러진 모양이더군요.

오메가가 강제로 일으켜 세우긴 하겠지만 아마 저희가 그 아이를 구하러 갈 때쯤엔...”

 

“... 죽겠군.”

 

 

 

돌겠네. 왜 이 빌어먹을 행성에는 사람을 못 괴롭혀서 안달 난 개새끼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게다가 왜 그 개새끼들은 하나 같이 존나 높은 자리에 있는 걸까? 한 새끼는 오르카 호 수장이었고, 나머지 새끼는 다른 레모네이드 세력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강한 세력을 가진 년이고.

 

어쩌면 그냥 이 행성 자체가 바이오로이드를 고통 받게 만들려고 시험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튼 알래스카라 하셔서 이런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최근 오메가가 이 AGS 부대를 이끌고 알래스카 내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왜 그런 건지는 보고서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주인님께서 여쭤보시는 것과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요...?”

 

“그건...

...

... 후우, 아마 아닐 거야.”

 

 

 

오메가가 알래스카를 뒤지는 건 철의 왕자 때문일 거고, 내가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가려는 건 이 철충에서 나온 기묘한 모스 부호 때문이다.

 

이 부호를 철의 왕자가 내보내는 것일 리는 없을 테니 오메가와 내 목적은 당장은 다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도움이 되는 정보였던 건 확실하네.

조금만 더 노력해줘. 알파. 나도 너 동침표에 올라올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볼 테니까.”

 

“그런 과분한 상을 주지 않으셔도 저는 언제나 주인님을 위해 노력할 거에요.

저희는 이미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잖아요? 팩스의 전멸이란 목표를 향해.”

 

“그렇긴 한데 이왕 뜻을 함께 섞은 거, 몸도 같이 섞는 관계가 되는 게 서로 더 끈끈해지는 지름길 아니겠어?”

 

“끈끈해지는 게 아니라 끈적해지겠네요. 후훗.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알려드릴 만한 내용이 생기면 다시 연락 드리죠.

오늘 통화, 너무 즐거웠어요. 주인님.”

 

“그... 그래....”

 

 

 

알파는 일부로 마지막 단어를 조금 늘어지게 발음했다. 패널 너머로 침이 끈적하게 늘어지며 은빛 실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렇게 조금 길었던 통화는 끝이 났고, 옆에서는 닥터가 나를 보고 입을 벌린 채 경악을 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왜?”

 

“오... 오빠, 설마 그 언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심지어 우리랑 같이 연구하고 있을 때도...?”

 

“... 아.”

 

“... 아, 어쩐지 타이런트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을 때 그 언니가 자꾸만 사라지더니...

...

... 으아아아아아아...!!!! 나도 그냥 그 언니들처럼 빵빵한 몸매였어야 했는데에!!”

 

“하... 하하...”

 

“맨날! 맨날 그 언니들하고만 놀아주고 나는 어린 애 몸이라고 놀아주지도 않고, 콘챠 언니도 동침표에 껴주지도 않고!!

내가 지금까지 오빠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솔직히 오빠를 위해 헌신한 거로 동침표 순위를 짤 거면 내가 제일 1순위에 가야 하는 거 아냐?!!”

 

“그... 그래,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야...”

 

 

 

전화하면서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던 건지, 나도 모르게 알파와의 비밀을 닥터 앞에서 말해버리고 말았다...

 

 

 

“우이씨... 나도 이제 연구 안 할 거야!”

 

“다... 닥터...! 그러면 우리 함선 망하는데...”

 

“망하라고 하지! 나도 딴 거 연구할 시간에 성장약이나 개발할 거야!

그거 개발해서 일주일 내내 오빠랑 물고 빨고 다 할 거라... 으엑!!!”

 

 

 

짝!

 

나를 향해 씩씩대며 불만을 토로하던 닥터의 등을 누군가 상쾌한 스냅으로 후려 갈겼다.

익숙한 솜씨, 찰진 타격음. 그게 누군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야, 닥쳐.

이 인간... 아니, 오빠 앞에서 뭐 하는 추태야?”

 

 

 

최근 들어 나를 인간이 아니라 오빠라 부르기로 시작한 닥터였다. 아직은 그게 부끄러운 모양인지, 오빠라고 할 때마다 자꾸 내 눈치를 보며 볼을 붉힌다.

 

이젠 다크 서클도 조금 옅어진 덕에 누가 누군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나마 이렇게 시니컬한 말투가 나로 하여금 두 명의 닥터를 분류할 수 있게 해준다.

 

 

 

“... ... 우이씨...”

 

“하아... 또 성장약이니 뭐니 어쩌구 저쩌구 했지?

뻔하다, 뻔해.”

 

“하지만 언니들이 동침표에 우릴 넣어주지도 않는 걸...!”

 

“그럼 니가 이 인간... 아니, 오빠 대가리에 최음제라도 꽂아 넣어보던가 해야지. 그럼 어린 애 체형이라도 알아서 박으러 올 텐데.”

 

“아, 아무리 그래도 나도 그 정도 분류는 하ㅈ...”

 

“어이, 오빠 나으리? 그런 말 하기엔 어제 탈론 허브 올라간 영상 보니까 아주 좋다고 물고 빨고 다 하지 않았어? 

세레스티아 모델이 그렇게 좋았어? 모유 빠느라 그 언니 젖꼭지가 아주 새빨개지던데.”

 

“... 닥터야? 그걸 네가 어떻게 봐...?”

 

“왜, 내가 몸은 이따위여도 대가리에 든 건 어지간한 언니들보다 어른일 걸?

언니들 낙태 시술도 했던 내가 남들 섹스 하는 거 좀 보는 게 어땠다고?”

 

“그건... 그렇긴 한데...”

 

 

 

저 말이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걸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어린아이 같은 체형의 닥터가 그런 말을 하니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닥터는 그러든 말든, 다른 닥터를 때린 손을 툭툭 털어내면서 주제를 환기시켰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알래스카 앵커리지. 저 철충에게서 나온 저 말이 문제잖아.”

 

“... 그래. 그렇지.”

 

“어떻게 해, 가 볼 거야? 아님 말 거야?

오빠가 앞으로의 행선지를 좀 정해봐. 여기 괌도 당신... 아니, 오빠가 오자고 해서 온 건데.”

 

“굳이 힘들면 오빠라고 안 불러도 돼...”

 

“몰라, 노력하면 괜찮아지겠지.

아무튼 말 해봐.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할 거야?”

 

 

 

닥터는 팔짱을 낀 채로 내 대답을 종용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닥터도 자기 머리를 감싼 채 나를 슬며시 올려다 봤다.

 

다음 행선지라. 원래대로의 계획은 요정 마을 이벤트를 끝낸 후 흐린 기억 이벤트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게 원래 흐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티가드 서버실이 아직 멀쩡할 때 리앤을 보러 가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에 놓인 철충 잔해, 요정 마을에서 나를 위협했던 철충의 몸 속에서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가라는 신호가 녹음되어 있었다.

앵커리지. 그 넓은 알래스카 중에서 하필 철의 왕자가 있는 앵커리지. 이 철충 잔해가 그곳으로 오라 말하는 것이 절대 우연일 리가 없다.

 

심지어 최근 들어 팩스 쪽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곳이 알래스카 지역이다. 운이 나쁘면 그 놈들을 만날 수도 있는 상황.

철충, 팩스, 그리고 우리까지. 총 세 개의 세력이 그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 결국 흐린 기억으로 리앤을 빼내느냐, 아니면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가서 철의 왕자 문제를 해결하느냐, 그 싸움인데...”

 

 

 

리앤. 리앤. 리앤...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캐릭터기도 했지만 그런 걸 둘째 치고서라도 리앤의 능력은 오르카 호에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리앤을 구할 수 없다면?

 

 

 

‘분명... 흐린 기억 마지막에서도 닥터가 운이 좋아서 겨우 복원해낸 게 리앤이었지...?

오메가가 해킹으로 방해를 했던 탓에 리앤은 반쯤 죽을 뻔 했었고?’

 

 

 

닥터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리앤을 복원하는 것. 그건 게임 속에서도 말 그대로 천운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억지로 리앤을 찾으러 갔다가 만약 오메가의 해킹을 받기라도 한다면...

 

 

 

‘... 못 찾을 수도 있다.’

 

 

 

최악이다. 막을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막지 못하는 거,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는 기적에 리앤의 목숨을 거는 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경험은 리제만으로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악몽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확실하게 구할 수 있다면, 확실하게 구해야 한다. 그게 내 행동 강령이다.

 

그러니, 잡을 수만 있다면 오메가를 먼저 잡는 것이 최선이다. 알래스카에서 잡는다면 가장 최선일 테고.

다만...

 

 

 

“... 닥터야, 연구실 문 좀 열어봐.

내가 직접 저 잔해를 봐야겠어.”

 

“응? 오빠가 직접?

이미 죽은 거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안전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어...?”

 

“그래, 오빠, 당신이 직접 가는 건 위험해.

차라리 우리가 내려가서 확인해보던가 하는 게 더 안전하지. 우린 이미 몇 번이나 부검 작업을 했었으니까.”

 

“...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저 모스 부호. 아까부터 계속 뭔가 거슬린다 했더니 그 뒤로 처음 들리는 여자 목소리 같은 게 잔잔하게 깔려 있었다.

 

애들에겐 안 들리는, 나에게만 들리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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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라. 직접 다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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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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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나고 2부 들어왔다고 뭐 연중하고 그런 건 없스빈다 

댓글, 개추 뽕맛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추 좀 꼬박꼬바 해줘오. 200 넘기면 얼마나 좋아

솔직히 200개 넘기고 싶어오...


빠방하게 터지는 떡밥들, 소설의 세계관들에 대한 설명이 이제 서서히 밝혀질 것 같스빈다

좆간 새끼가 만든 나비 효과를 기대해주세오


그리고 지난 화에 나온 정체불명의 여자 같은 걸 발키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 거 같은데 이건 확실하게 해야 할 거 같아서 사족 붙임

그거 발키리 아니고 아예 새로운 오리지널 캐릭임... 누가 그거 발키리라고 하는 거 같아서 놀랐음

팬픽에 이런 거 넣으면 안 좋아할 사람도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 테니까 조금만 참고 봐주세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