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약간 그로테스크 할 수 있음, ㅈ간 주의)



작은 키, 마른 몸.


그러면서도 인간 남성못지않은 힘과 손재주를 지닌 존재…더치걸.


바로 나다.


나…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모두 똑같다.


<더치걸 ~호기, 장비를 지급받고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도록.>


누가 쓰던건지 짐작조차 안가는 낡은 장비들과 해질대로 해진데다 사이즈도 대충 계산한건지 헐렁한 광부 옷.


그것들을 가지고 광산에 출근하면, 우리들은 곳곳에 구멍이 나고 턱끈조차 제대로 안잠겨 머리에 걸치는게 전부인 헬멧을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하로 빠르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끼이익거리며 소름끼치게 하는 쇠 긁히는 소리들.


두렵지 않아야 할 발파소리와 착암기소리.


그것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내는것을 잠시 멈추면 그 이후 좁은 공동에서 여러번 반사되고 울린 뒤 메아리쳐서 돌아오면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들과, 빛 한점 없는 어둡고 컴컴한 갱도보다 더 두려운것은 전출이었다.


이 갱도에서 가장 편한 죽음 베스트 3이 있다.


1위는 갱도 붕괴로 고통없이 암반과 파편에 깔려 죽는것.


2위는 그런 사고에 휘말려 현장에서 눈물흘리다가 이제 쉴 수 있다며 고통속에 미소지으며 죽는것.


3위는 채굴량이 부족하다고 화내는 인간들의 체벌에 얻어맞다가 죽는것.


그리고 그렇게 죽는것들보다 무서운것이 바로 테마파크로의 전출이었다.


종종 몇몇 인간들이 사고로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체력적으로 지친 자매들 몇을 '사망'처리하고 어디론가 데려가는것을 봤다.


인간들은 그걸 근무여건이 더 나은곳으로의 '전출'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들은 암암리에 그것이 전출이 아니라 팔려가는것이란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 받은 돈으로 차를 새로 샀는데~


-다음번에는 셋정도 더 데려가서 주식 손해를 메워봐야~


그렇게 자매들을 데려간 인간들이 자랑스럽게 돈을 얼마 받았다느니, 다음에는 물량을 더 늘려줘야될것 같다느니하며 떠드는것을 들었으니까.


-그러고보니 B구역을 한번…뭘 밍기적대고 있어? 빨리 뛰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거기 관리인은 돈 좀 줘보면 해볼 수 있다던데~


감출 생각도 없었는지, 그 인간들은 우리들이 지나가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며 그런 얘기를 떠들어댔다.


아니, 어차피 팔려갈 운명을 알아도 반항할 수 없다는걸 알고 그러는거였겠지.


나는 수많은 더치걸들 중 하나로써, 그리고 광산의 일꾼으로써 계속해서 채굴을 하고 하루하루를 피곤과 고통으로 찌든 상태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늘 여유롭고 불평만 해대던 인간들이 우리들에게 웃어보였다.


-자! 지하에 추가광맥이 있다는게 판별됐다! 이제부터는 효율좋은 토미워커들로 작업할테니, 더치걸 모델들은 다 팔아넘기래!


생각지도 못했던, 전원 전출.


우리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전부 공포에 빠졌고, 몇몇은 도망가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모두 소모품이자 도구.


바이오로이드인 우리들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에 모두 홀린듯이 따라가야했다.


탄광의 엘리베이터보다 더 붐비고 갑갑한 컨테이너 트럭에 석탄을 싣듯 꽉꽉 채워넣어진 우리들은 어디론가 이동됐다.


우리의 뒤에 실려 중고로 팔려나가는 채굴 장비들은 모두 서로 부딪히지 않게 끈으로 묶어놓고 적재중량도 맞췄지만, 우리는 그런것 없이 실려갔다.


그저…움직일 공간마저 없어서 어딘가에 부딪힐 염려만이 없다는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몇시간동안의 운송끝에, 우리가 도착한곳은 더 지옥같은 탄광이나 중노동장소가 아니라 꿈의 나라같은 곳이었다.


[테마파크-내부 시설 정비로 인한 임시 휴장(4일 후 영업재개)]


화려하고 예쁜 그림들과 장식이 가득한 건물들.


곳곳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


신기하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라는 기계들과 이름밖에 못들어본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 잘 다듬어진 나무들까지.


우리들은 그곳에서 중장비를 이용한 건설업무나 다른것을 맡게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했던것은 몸에 잔뜩 찌들어버린 돌가루와 먼지를 씻어내고, 허름하고 크기가 안맞는 광부복 대신 다른 옷을 입는것.


우리같은 도구들에게 왜 이런 대우를 해주는지는 몰랐지만, 자매들은 그것에 기뻐했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서,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겨우 끼니만 때울 수 있을정도로 적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 대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배급되는 양에도 제한이 없었다.


과식으로 인해 자매 중 몇이 쓰러진 이후에는 양을 제한했지만, 그래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8시간이상 보장되는 잠과,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일과와, 비록 전부 같은 차림에 특징없는 민무늬 바지와 옷이었지만 새로운 옷까지.


처음에는 약간씩 경계하던 우리들도 3일이 지나자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느샌가 편안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탄광으로 돌아가는 대신 여기서 죽고싶다고 말하는 자매들까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자매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짓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지 4일째 되는 날.


우리를 통제하고 관리해주던 인간님-아니, 인간이 우리들을 불러 예쁜 옷으로 갈아입힌 뒤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를 비롯한 자매들은 처음에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로 간다는 것에 흥미가 샘솟고 기뻤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곳은 지옥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에는 호의가 담겨있었지만 그 호의는 우리들을 위한게 아닌 본인들을 위한 호의였다.


-어머나, 이번에는 더치걸들이 잔뜩이네?


-오오, 이정도면 한명이 둘이나 셋씩 챙겨도 되겠는데?


-지금까지는 수가 모자라서 못했는데, 더치걸들이 저만큼 많으니 생각해뒀던걸 할 수 있겠어.


뜻밖의 행운을 맞이하였으니, 자신에게 상을 줘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스스로에게 베푸는 호의.


-그럼, 오늘의 C구역 영업을~시작하겠습니다!


우리를 데려온 인간이 마이크를 들고 그렇게 소리쳤고, 그의 말이 떨어지자 수많은 인간들이 손을 들며 열성적으로 소리쳤다.


-여기 더치걸 둘!


-여기도 둘!


-나는 하나만 주게! 하지만 제일 건강한 녀석으로.


수많은 인간들은 우리를 마치 물건 주문하듯 갯수를 불러댔고, 그 주문에 우리들은 둘씩, 또는 셋이나 넷씩 마구잡이로 붙잡혀 끌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가장 건강한 녀석을 원한다는 인간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으음, 확실히 머리에도 나름 윤기가 있고 몸에도 힘이 들어가있군?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한…광산의 공사를 시작할때 봤던 높은 인간들의 복장과도 같았다.


"저어… 가장 건강한 바이오로이드를 찾으셨는데…무슨 일을 시키실건가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배웠듯, 인간앞에서 먼저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미소지었다.


-이제부터 일 할 필요는 없단다. 물론 뭔가는 해야겠지만, 무거운걸 들거나 몇시간씩 일할 필요는 없어.


높은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나름 잘 대해준다고 들었고, 그 말이 사실인지 남자 주변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도 고생하는 모습같은건 없이 깔끔하고 단정해보였다.


지금까지 중노동을 해왔지만 테마파크에 도착해서는 잘 대접받았고, 조금 나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때도 희망을 품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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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 흐으윽…어윽. 흑."


눈물과 침, 피가 한데 어우러져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더치걸의 앞에서, 높은 단상 위에 의자와 식탁을 두고 앉아 스테이크를 써는 남자가 있었다.


"흐음…조금 모자라군. 발톱 아래에 바늘을 찔러넣어."


남자의 명령에 두 눈동자가 이리저리 떨리던 또다른 더치걸이 바닥에 쓰러진 더치걸에게 다가가 발톱 아래에 톱니가 곳곳에 달려있는 쐐기와도 같은 바늘을 찔러넣었다.


"흐악, 흐아아악! 끼야아아아악!"


발톱에 바늘이 찔린 더치걸은 물 밖으로 건져낸 물고기처럼 피웅덩이 위를 날뛰며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그 소리를 듣자 흡족하게 웃으며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좋아, 아주 좋아!"


더치걸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남자가 서있는 단상이 모든 피와 분비물들을 막아주었다.


마치,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닿을 수 없다는듯이.


남자는 더치걸의 비명을 마치 관현악단의 노래를 듣듯이, 식사의 분위기 조성에 사용했다.


그리고 식사 이후, 남자는 쓰러진 더치걸의 발 아래에 바늘을 찔러넣었던 더치걸…나를 데려다가 침대가 있는곳으로 데려갔다.


침대에는 수갑과 사슬들이 묶여 있었고, 남자는 나를 거기에 묶고는 아까 쓰러진 더치걸을 데려와 내 옆에 두었다.


"자, 아까 네 친구에게 당할만큼 당했지? 너도 똑같이 갚아주거라."


남자는 비틀리고 욕망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 다른 더치걸을 쳐다보았다.


"아, 안돼…안돼…명령이었잖아…너도 알잖아…"


나는 공포에 빠져 또다른 더치걸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명령이라서.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만 나를 향해 쇠붙이를 들어올리는 더치걸의 입가에는, 남자의 것과도 같은 희미하고도 뒤틀린 웃음이 새겨져있었다.


푸욱.


팔에 느껴지는 뜨겁고도 짜릿한 감각.


푹, 푸욱, 촤악!


불타는듯한 고통에 이어 팔을 찢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정도의 격통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


나는 내가 어떤 비명을 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팔이 찔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팠고, 나와 같은 더치걸이 나를 찌르며 인간처럼 웃는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고, 웃음을 짓던 인간이 옷을 벗고 나한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껴 기억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반신의 흉측한 물건에 가시가 박힌 끈같은것을 덧대어 묶고 있었고, 아무리 경험이 없는 나라도 저 인간이 저것으로 나를 괴롭힐 것이란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콰앙!


천장이 부숴지며 무언가가 떨어졌다.


"…?"


"뭐지? 시설에 하자가 있나?"


내 팔을 찌르고 발톱마저 찌르려하던 더치걸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움직임을 멈추고, 인간도 뜻밖의 상황에 움직임을 멈췄을 때, 바닥에서 무언가가 잽싸게 튀어올라 인간의 몸에 달라붙었다.


"뭐, 뭐야?!"


인간의 몸에 들러붙은것은 뱀과도 같은 무언가였지만, 나는 그것을 알방법이 없었다.


"으, 으아아아악!"


찌익, 촤아악!


인간의 가슴팍과 목부분이, 순식간에 찢겨나가며 피를 뿜어대고 있었으니까.


그 피는 나의 눈에 튀어 내 시야를 가렸고, 그 이후로 내가 알 수 있었던것은 아주 단편적인 정보들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더치걸의 비명과, 벽이 부숴지는 소리.


그리고 침대의 다리가 무너지며 거기에 묶여있던 나의 구속구가 풀어지는 소리와 자유를 찾은 팔까지.


내가 눈을 떴을때는 인간의 시신도, 더치걸의 시신도 없었지만 바닥의 피웅덩이만이 결말을 알게해주었다.


그 이후, 나는 몸에 아무 옷가지나 대충 걸치고는 바깥으로 도망쳤지만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곳곳에 널부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인간들의 시체와, 곳곳에서 기괴하게 변한채 폭주하듯 인간을 죽이는 AGS들.


그리고 무너진 건물 사이로 보이는 더치걸들의…자매들의 시체였다.


나는 건물들을 뒤지며 살아있는 자매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 누구 하나도 제대로 살아있지 않았다.


작업도중 튄 돌에 귀가 찢어져 귀가 하나 없는데다 뒤통수에 땜빵이 생긴 8446호.


그녀는 광산의 행사때 쓰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 드레스를 모두 피로 물들인 채 반대편 귀와 복부가 찢어져 내용물을 전부 쏟아내고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손가락이 하나 없어졌던 4882호.


그녀는 모든 손가락과 발가락, 얼굴의 살점들이 잘려나가있었고, 유일하게 아물어 있던 오래된 상처만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들 중 유일하게 머리를 풀어서 생머리로 다녔던 8338호.


머리를 잡고 그대로 뜯어내기라도 한듯 머리가죽이 벗겨져있었고, 하반신의…성기부분이 난자되어있었다.


발파작업때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던 상당한 고참 1047호.


그녀는 몸을 절반으로 나누는 선을 긋기라도 한듯, 좌반신에 무수한 칼자국과 함께 멍이 들어있었다.


그 외에도 다리가 잘리거나, 뭔가 넣어선 안될것을 넣은듯 하복부가 찢겨나가 죽은 더치걸들까지.


드레스를 입거나 다른 예쁜 옷을 입은 더치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쁜 옷을 입었을수록 더욱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 아아…으, 으아아아!"


나는 인간이고 바이오로이드고 가리지 않고 죽어나간 그 모든 지옥도에서 눈을 돌리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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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보고서-작성자: 레프리콘-3022, 노움-2442, 이프리트-552, 더치걸.]


-탐색을 나갔을 때 작업을 정지한듯한 광산을 발견하고 그곳을 탐색함.


-내부에서는 아직도 작동중인 기계들과 켜져있는 전력을 발견했고, 바이오로이드나 AGS가 아직 일을 하고 있는거라 추정되어 내부를 탐색.


-갱도의 내부에는 암석을 깎아만든듯한 석상들이 가득했고, 거기에 헬멧들을 씌워놓고 여러가지 번호를 적어둔 이상한 광경이 있었음.


-그 갱도의 가장 안쪽에서 혼자 채광작업을 하는 더치걸을 발견 후 이송함.


-해당 더치걸은 이송하는 도중 이상한 석상들에게 말을 걸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대답을 들은듯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행위를 보임. (아마 자매들이 갱도에서 죽었을거야. 그리고 혼자 살아남은 외로움에 돌로 인형을 만들어 거기에 헬멧을 씌우고 살아있을때의 자매처럼 대한거겠지.-더치걸)


-더치걸은 이곳으로 온 후 멍하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음.  그리고 이송도중 더치걸 모델에게서 고의적으로 시선을 피하는듯한 반응을 보였음. 트라우마가 있는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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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오늘 올라온 탐색 보고서를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또 더치걸인가. 혼자 끝까지 고생하고 있네. 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된건지. 뭐…그래도 테마파크에는 없었으니, 우리 더치걸처럼 조금만 신경써주면 금방 회복되겠지?"


그는 보고서의 내용에 야생에서 살던 더치걸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오르카호의 더치걸을 불렀다.


"…사령관, 나 불렀어? 드레스는 왜 입고 오라고 한거야?"


"응, 오늘 탐색에서 구조한 더치걸이 있잖아? 안심시키고 적응시켜주려고. 네가 이렇게 잘 지낸다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잘 지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지 않을까 해서."


오늘 새롭게 찾아서 구조한 더치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같은 더치걸이지만 잘 지내고 있는 오르카호의 더치걸을 보여주는게 나을거란 생각에서 불러온 것이다.


"으음…내 시선을 피하거나 탄광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모습을 보니 자매들이 죽어서 그렇게 된것같기는 한데. 과연 잘 될까?"


"잘 되겠지. 내가 진심으로 널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말이야."


그렇게 사령관은 더치걸에게 보여주고 안심시켜주기 위해 맛있는 간식거리들과 식사까지 준비하여 수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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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구조라며 끌려나온 뒤, 나는 자매들을 찾았다.


"어디로 간거야, 8446, 4882, 8338, 1047…!"


나의, 나의 소중했던 자매들.


비록 차갑고 대답도 달라지지 않고 말을 걸어도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주는 무뚝뚝한 친구들이지만 갱도에서 함께 즐겁게 일하던 가족들을 두고 와버렸다.


두고왔어? 아니, 두고온게 아니야. 나는 끌려온거야. 끌려왔…끌려간게 아니야 난 끌려가지 않았어 누군가가 부른거야 부른거라고 불러서 간거야! 끌려가는게 아니야! 끌려가지 않을거야!


…내 가족들은 내가 불려갈때 관심을 가지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으음? 아니, 도와주지 못했던 거겠지?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반항해보려고해도 상대방은 군용모델이었으니까.


으음, 하긴 그쪽은 나만 데려가려고 했는데 내 가족들이 그걸 도우려고 했으면 일을 안한다고 혼났겠지.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물어본 말에는 대답해줬었지. 친절했어.


눈치껏 행동할 줄 알다니 역시 내 가족들은 무뚝뚝하고 말재주가 없어도 좋은 가족이야. 아주 똑똑해. 딱딱하기도 하지만, 똑똑하기도 하지! 아, 이런 웃음이 나올것 같아.


"흐흐, 후히히."


…그런데, 여기는 어디일까?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 공기중에 떠도는 약품냄새? 침대 주변에 쳐진 커튼?


아, 알겠다. 병원이구나? 가끔 하는 신체상태 확인용 검사를 하려고 데려온거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가끔 공개 행사같은걸 하기 전에 이런거 했었지.


가장 건강한 개체들만…건강…건,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난 건강하지 않아! 나는 건강하지않아, 건강하지 않다고! 나는 약해요, 네, 저는 약해요…!


…그때는 갱도로 기계를 가져와서 했지만, 오늘은 기계를 가져올 수 없었나보네? 하긴, 우리 갱도가 조금 좁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커튼을 걷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깨어났네요? 몸 상태는, 괜찮은것 같은데."


…상대방은 바이오로이드. 내가 본적 없는 모델이다. 그래도 간호사복을 입고 있는거로 봐서는 여기가 진짜 병원이 맞는것 같네.


매일 갱도에서 작업을 하는데도 내 몸상태가 괜찮은것 같다니, 역시 튼튼하게 만들어져서일까?


하지만 작업도중에 말대꾸를 함부로 하는것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매…가족들의 앞이 아닌이상 퇴근시간인 밤 12시까지 입을 열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없군요. 알겠어요. 나중에 다시 보죠."


긴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던 간호사는 곧바로 바깥으로 나갔고, 나는 다시 혼자 남았지만 내 마음대로 나갈수도 없었다.


퇴근시간 전까지는, 갱도에.


이건 규칙이었으니까.


나는 갱도에 있어. 나는 갱도에 있는거야. 나는, 나는 지금 갱도야. 지금 나는 근무중에 불려온거야. 장소가 다르다고 해도 퇴근 전까지는 규칙을 지켜야해. 나는 갱도에서 일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에 있어요."


간호사의 목소리.


"…내가 먼저 가볼게."


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대화를 나눈 가족들과, 나의 목소리와 똑같은…


비명 지르지마, 비명 지르지마, 나도 명령받아서 한거야 나도 명령이었다고…! 날보고웃지마날보고웃지마 똑같은얼굴로웃지말란말이야 웃지마웃지마웃지마 찌르지말아줘찌르지말아줘…!


…나의 것과 똑같은 목소리.


더치걸 모델들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커튼을 슬쩍 들추고 안으로 들어온 더치걸 자매는…예쁜 드레스 차림이었다.


우리가 행사에 나갈때 입는, 그런 흰색에 아름답고 장식이 달린…


피로 물들고 장기가 묻어나오고 형편없이 찢어지고…피와 장기와 붉은색과 찢어지고 죽은자매들죽은자매들죽은자매들죽은자매들죽은자매들


…그런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저기, 괜찮아? 이제 넌 안전하니까 걱정마."


안전이라니? 물론 내가 하는 일이 위험하긴 하지만 규정만 지키면 별 문제 없다고.


"안전이라니, 나는 처음부터 안전했어. 규율과 안전수칙을 준수해서 공사를 했다고."


물론 그 규정을 안지키고 무리하게 할 때도 있지만, 요 근래에는 대부분 규정을 준수해서 깔끔하게 작업했어.


요 근래 백년…백년백년백년백년 외로워외로워외로워 다들어디로간거야 나만두고가지마 아니야 나는 저렇게 죽기싫어 죽고싶지않아살려줘살려줘살려줘


…무사고 일지를 작성하지 않아서 얼마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일단 9999일 이상 사고가 없었다고.


"…으음, 아무래도…"


내 눈앞의 자매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그 동작에 의문을 품었다.


왜 나를 보고 의문을 품는거지?


그리고 그 때, 커튼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잘 안되겠어?"


우리들의 목소리와 달리 굵고 낮은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아아아니에요 아니에요 명령하지말이주세요 제발제발제발제발 찌르지말아주세요 그런 흉악한걸 나한테 들이밀지마 저리치워저리치워저리치워저리치워


…인간의 목소리를 들어본건 정말 오랜만이긴 하지만, 나는 마음속 한구석에서 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솟아나고 있었다.


업무중에 이렇게 나온건데 혼나지 않을까? 회사에서 시킨 일을 한다고 해도 생산량이 줄었다고 우리한테 발길질을 하는 인간들이 있었는데?


"반가워, 네가 이번에 새로 발견된 더치걸이구나? 여긴 안전하니까 괜찮아. 더이상 일 할 필요도 없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눈앞의 인간은 친절하게 웃으며 나에게 일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일 할 필요가 없다고…? 안돼, 안돼. 나는 일을 해야해. 갱도로 돌아가야해. 일할게요일할게요일할게요일할게요 저를 돌려보내줘요 갱도로갱도로갱도로갱도로갱도로!


"이렇게 예쁜 옷도 입을수 있고, 거기다가…다프네? 여기 식사랑 간식좀."


"네, 주인님."


커튼이 걷히고, 카트에 이런저런 음식들이 담겨 침대쪽으로 다가왔다.


"자, 스테이크야. 특별히 준비했어. 처음엔 죽같은 다른 음식으로 하려고 했는데 검사결과 영양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준비한건데, 어때? 먹어도 돼! 아니면 여기서 내가 같이 먹어도 되고. 아니지, 더치걸 네가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나을지도 몰라."


카트 위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두꺼운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가 둘 있었다.


"그런가…?"


"같은 자매기가 먹는 모습을 보면 경계도 풀겠지?"


"으응, 그럴지도…"


남자와 더치걸은 서로 깊은 신뢰를 가진 눈빛을 주고받았고, 이내 드레스를 입은 자매는 내 옆에 앉아 스테이크를 천천히 썰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고 미소지었고,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남자는 인자한 눈빛으로 자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맛있어."


"맛있어? 더 줄까?"


"아니, 괜찮아…봤지? 먹어도 돼. 나랑 같이 먹자. 이걸 다 먹으면 달콤한 간식도 먹을 수 있어. 더 편한 잠자리도 있고…친구들도 있고…나도 너처럼 탄광에서 일하다가 구출됐어. 이제 다 괜찮아. 너랑 나랑은 같은 더치걸이니까, 나처럼 지낼 수 있어."


자매는 나에게 스테이크를 썰어 한조각을 건네주며 미소지었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그걸 지켜보며 자신도 미소지었다.


"그래, 그래. 나는 너희가 행복하기를 바래."


뒤틀리거나 욕망이 가득한 웃음이 아니라, 과거 자매들과 지낼때 서로에게 보였던 기쁨의 미소.


진심이 우러나는…그런 미소.


그런 미소를 왜…나는?


나는 왜 그런 미소를 못 받은거야? 어째서?


같은 더치걸이잖아. 똑같이 광산과 지하에서 일했잖아.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행복한거야?


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거야?


나는 지난 백년동안 자매들과 지내면서 일만해왔는데 넌 그동안 이렇게 잘먹고 잘살면서 지낸거야? 나랑 다르게?


같은 더치걸, 다른 생활.


같은 더치걸, 다른 생활.같은 더치걸다른 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같은더치걸다른생활…!


나는 너랑 똑같지 않아, 똑같을 수 없어.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안남았어.


자매들은 모두 너같은 흰 드레스가 아니라 붉은색붉은색붉은색붉은색붉은색붉은색


아무도없어아무도없어아무도없어아무도없어아무도없어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없었는데 왜 너만…!"


나는 주위를 더듬어 손에 잡히는 물건 중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잡아들고 눈앞의 자매에게 달려들었고, 그 결과 드레스를 원래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


흰색이 아닌, 붉은색과 여기저기 찢어진 모습…나의 자매들이 입었던 그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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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실에서의 사고 경위서-작성자 다프네]


[치료를 받고 회복중이던 더치걸 개체가 갑작스럽게 스테이크를 썰때 쓰는 칼을 집어들고 사령관님과 함께 온 더치걸을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함.]


[더치걸은 공격받고 곳곳에 자상과 열상이 생겼지만,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 하지만 옷은 피로 물들고 찢어졌기에 오드리님이 보고 충격받음.]


[사령관님께서는 이번 더치걸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구출된 인원들에 대해서는 면밀한 심리상담과 조사를 거친 후 받아들이기로 결정.]


[현재 공격을 가했던 더치걸 개체는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거울 또는 같은 더치걸이 보일 경우 극도의 공격성과 포악성을 보여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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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갑자기 소재 보고 삘 와서 썼습니다.)


소재 출처


(사실 다프네 보고서 전까지만 썼지만 그대로 끝내면 똥싸다 끊은것 같을느낌이라서 조금 더 써둠)


(쓰다보니까 여기저기 다른방향으로 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디어 제공자의 초안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트라우마랑 다른 장소에 대한 공포때문에 탄광에 틀어박혀 100년간 작업만 반복하며 석상을 죽었던 자매로 생각하고 마음속의 무의식에서 테마파크에 관한 기억을 없애는 설정으로 썼습니다.)


(사실 테마파크 씬을 좀 더 자세하고 길게 쓸려고 했는데 못쓰겠음. 나는 아무래도 펙첩까지는 가능해도 ㅈ간은 아닌모양이야…)


(이렇게 단편을 쓰게 됐으니 오늘치 기존 소설은 서비스 종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