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난민들을 이끌고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다.

다들 아침도 점심도 거른지라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한들 오메가 밑에서 밥도 못먹으며 일한 애들이니 하나같이 약체화된 상태다.


그나마 나는 걷는 대신 애니의 바이크에 타고 있는지라 다리는 안아팠다. 애니가 이걸 자동운전모드로 돌린 뒤 나한테 자리를 양보해줬는데 힘들어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난 그냥 내 방에 누워서 폰으로 라오나 하던 라붕이었다고... 이렇게 굶으면서 계속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지가 않다고... 근데 보아하니 이 바이크 연료가 얼마 안남았다, 조만간 다시 걸어야 할 것 같다.


"그대여, 뒤쪽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맨 뒤에서 후방을 경계하던 히루메가 소리치자 난민 전원의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냉큼 바이크에서 내려 뒤에있는 행렬을 헤쳐가며 달려가 히루메 옆에 섰다.


"펙스의 추격대야?"


"음... 뭔가 이상하구나.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차량 한 대 뿐이니라."


"차량 한 대? 그것 뿐이야?"


"그렇다. 첩이 보기에는 트럭 같구나."


확실히 이상하다. 리리스의 말로는 추격대는 대군이라고 했다, 트럭 한 대만 달랑 보낼리가 없다.

게다가 오메가의 본진에 있던 트럭은 전부 훔쳐서 국경선 쪽으로 보냈을텐데? 저건 어디서 온 거지?


내 눈에도 트럭 한 대 우릴 향해 달려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앞부분이 좀 찌그러지긴 했지만 우리가 펙스에서 훔친, 흔히 두돈반이라 부르는 그 수송 트럭과 같은 기종으로 보인다. 유미 쪽에서 일이 잘 안풀려서 걔도 도망친 건가?


"저것이 우리에게 도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게 어떻겠느냐?"


"기다려봐. 애니도 이런 식으로 만났잖아, 우리 편일 지도 몰라. 운전석에 누가 앉아있다거나 않아?"


히루메가 자세히 보려 눈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누군가 운전석에 앉아있는 게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보나마나 바이오로이드겠지."


"헌데... 세상에 남자 바이오로이드도 있더냐?"


"...뭐?"


우릴 향해 전력질주하던 트럭이 점점 가까이 오더니 몇 미터 앞에서 급제동으로 멈춰섰다. 이윽고 운전석 문이 덜컹 열리면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가 나한테 걸어오기 시작하자 히루메가 가로막으려는 걸 제지하고 나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로 1M 남짓한 거리에 서자 그 자리에서 멈췄다.


"형님, 저... 그게..."


먼저 입을 연 건 상대방이었으나 거기서 말을 이어가진 못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보고싶었다며 와락 끌어안고 난리쳐야 정상인데.

마치 뭔가 잘못한 아이처럼, 어깨도 움츠러든 데다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있었다.

대체 뭘 잘못했길래? 마지막으로 막말하고 뛰쳐나가 버려서? 독단행동으로 나를 혼자로 만들어버려서? 오메가한테 붙잡혀버려서? 그래서 내가 꾸중할까봐 두려워하는 건가?


이제와서?


별 수 있나, 이래뵈도 명색이 형인데 내가 나서줘야지.

쓸데없이 거리를 유지하고 있길래 한 발자국 앞으로 더 가서 씩 웃으며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툭 쳤다.


"보고싶었다, 우리 동생. 이렇게 형을 걱정시켜서야 되겠어?"


그제야 트레저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형님!!"



"저도 정말 보고싶었슴다 형님!!"


...냅다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아 들어올리며 난리치기 시작했다. 키 차이가 있다보니 내 발이 땅에서 들렸다.


"하하하! 그래, 나도 보고싶었... ㄷ... 숨막혀 이 새끼야...!"


몇 초 정도 힘껏 베어허그를 선보인 뒤 나를 땅에 내려줬다. 어우 어지러워 씹


"그래서, 니 선글라스는 어디갔냐? 잘 어울리던데. 이제보니 내가 준 자켓도 없어졌네 요놈새끼."


"헤헤, 어쩌다보니 거지꼴이 됐네요. 형님도 그 헬멧이랑 망토 잃어버리셨슴까?"


"야, 난 잃어버린 거 아냐 임마. 다 계획적으로 놔두고 온 거라고."


"그대여, 이 자가 바로 그대가 말한...?"


"맞아. 인사해, 내 의동생인 트레저야.

트레저. 이쪽은 히루메, 애니, 그리고... 펙스에서 데리고 나온 난민들. 그 때 혼자가 된 후로 새로 생긴 동료들이지."


"음, 그래... 그이에게서 네 얘기는 들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나는 보안관 애니, 만나서 반가워!"


"내가 없는 동안 형님을 보필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이건 명심해둬, 형님의 첫번째 부하는 항상 내 자리였어! 너흰 아무리 용써봤자 셋쩨랑 넷째밖에 안돼!"


"옘병하고 자빠졌네. 뭔 서열을 따지고 있어 임마."


"에이, 그냥 군기 좀 잡고 시작하자고요."


쓸데없는 소리를 시작한 트레저의 등짝을 후려치자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한편 히루메는 대번에 마음에 안든건지 저거 봤냐는 듯이 손가락으로 트레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대여, 이 불한당은 대체 어디서 찾은 것이냐!?"


"캐나다의 블랙리버 군사 연구소에서."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느냐!"


"뭐... 트레저가 모지리긴 해도 엄연히 우리 팀의 창립맴버이자 내 의형제이며 또한 내 생명의 은인이거든."


"거기다 형님 전용 빵셔틀이기까지 하지!"


"...그런 놈이니까 귀엽게 봐줘."


원체 경계심 넘치는 애인데 첫인상부터 미운털이 박혔으니 히루메가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걸 애니가 진정시키고 있었다. 반면 트레저는 신경쓰지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형님, 리디아는 못만난겁니까?"


"응. 그 날 이후로 한번도 못봤어."


"그... 제가 오기전에 그 녀석이랑 헤어졌던 장소에 가보니 시체가 없더라고요. 걔도 분명 살아있을 겁니다."


"알아. 지금 오르카호에 있다더라."


"오르카? 형님을 쫓아낸 그 썩을 놈들!? 걔가 거길 왜간답니까?"


"에헤이 인상 피라니까. 오르카는 현재 우리랑 협력관계야, 지금 걔내들한테 가는 길이니까 자세한 건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그보다 넌 그동안 어디있었던 거야? 우린 어떻게 찾은거고? 저 트럭은 또 어디서 났어?"


"그게요,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 날 제가 형님의 말을 무시하고 뛰쳐나간 뒤에..."


"가능한 짧게."


"최대한 간추려서 말하자면, 그 날 오메가의 함정에 빠져서 그 년 본거지에 끌려갔다가 유미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탈출했슴다."


유미가... 그 애한테 신세를 많이 지는군.


"그 뒤로 어딜 가야 형님을 찾을 수 있나 생각하다가 헬멧 얻었으니 미국 떠야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더라고요. 그래서 국경선에 가서 형님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 날 난 오메가의 공격을 피해 바다쪽으로 갔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국경선으로 갈 엄두도 못냈었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국경선에 트럭이 잔뜩 몰려왔었슴다. 그게 형님인가 싶었는데 차가 벽에 쳐박혀 멈춘 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아니었지 뭡니까. 다 비어있더라고요."


오메가의 추격대를 속이기 위해 미끼로 쓴 트럭, 그 년을 효과적으로 속이기 위해 국경선으로 보낸건데 운 좋게도 거기있던 트레저에게 발견됐었던 거군.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경비 AGS가 누군가랑, 아마 오메가랑, 통신하는 걸 엿들었슴다. 형님이 서쪽으로 갔다고."


"...아."


"그래서 몰래 후열에 있는 트럭 하나 훔쳐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오메가 그 년의 본진 근처로 돌아온 뒤 무작정 서쪽을 향해 밟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서로 길이 엇갈렸었는데도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됐네, 고생했다. ...근데 운전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


"그동안 옆에서 형님이 하는 걸 보고 기억했죠. 브레이크랑 악셀은 헷갈렸지만 직접 운전해보면서 대충 배웠슴다!"


"저기, 보스? 둘 사이에 밀린 얘기가 많은 건 이해하는 데 우리 갈 길 바쁘거든?"


한창 얘기를 나누던 중 옆에서 가만히 듣고있던 애니가 끼어들었다.


"응? 아..."


"아 맞다.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AGS 군대가 이쪽으로 오는 걸 봤는데, 그거 적입니까?"


"그래, 펙스에서 보낸 추격대다. ...설마 시비 걸고 온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님다! 속도도 느린 거 그냥 지나쳐서 왔는걸요!"


"그럼 됐어. 트레저? 오자마자 미안하지만 너한테 심부름 좀 시켜야겠다."


"뭐든 시켜만 주십쇼! 이러려고 제가 온 거 아니겠슴까!"


수송 트럭의 뒤로 돌아가 텅 비어있는 짐칸을 보니 얼추 10명, 12명은 실을 수 있어보였다, 옹기종기 모여앉으면 20명까지도 가능할지도. 안그래도 수많은 난민들 이끌고 가느라 속도가 잘 안났는데 마침 잘됐다.


"애니, 난민 중에서 다친 애들이랑 어린 애들 스무명 정도만 추려내줄래? 트럭도 생겼으니 걔내들부터 먼저 항구로 보내야겠다."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줘!"


애니가 난민 무리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트레저한테 내 소방도끼를 건네줬다.


"트레저, 이거 받아."


"이건... 제 선물임까!?"


"빌려주는거야 임마. 서쪽으로 계속 가면 항구가 나올텐데 거기서 오르카 저항군이랑 만날 수 있을거야. 걔들이 너더러 누구냐고 물으면 이 도끼 보여주면서 내가 보내서 온 거라고 말해."


"신분증 같은 검까?"


"그런 셈이지. 가서 사고치지 말고 예의바르게 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애니가 상태가 안좋은 난민들을 데리고와서 수송 트럭에 한명한명 앉혔다.


"걸음걸이 느린 애들부터 보냈으니 이제 행군속도 조금 빨라지려나..."


"형님은 옆자리에 타십쇼, 이번에야말로 제가 모시겠슴다!"


"난 안갈건데?"


...말 한마디 했더니 또 침묵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거  같은데.


"뭐 임마, 내가 총대매고 모아왔는데 이래놓고 나만 달랑 튀어버리면 되겠냐. 니들과 같이 끝까지 남아있을 테니까 안심해라."


"아니 보스 안전이 확보돼야 남은 사람들도 안심하고 가지, 왜 여기서 고집을 부려?"


"첩 또한 이 아이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이제 그대의 몸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


애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하자 히루메가 그녀의 의견에 힘을 실었지만 나도 물릴 생각은 없었다.


"아 시끄러 시끄러, 얘들 다 무사히 도망치기 전까지는 나도 안가. 더이상 반박 안받아."


"형님, 조수석에 자리 남았는데요?"


"야 자리 남았댄다! 거기 더치걸, 너도 타라!"


"아니... 전 형님을 두고 가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 걱정되면 빨리 갔다가 돌아오면 되겠네, 어여 출발해. 안전운전하고." 


내 말을 듣자 트레저는 뭔가 말하려다 꾹 참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슴다!"


트레저는 호기롭게 외친 뒤 냅다 악셀을 밟아 트럭을 출발시켰다.

...나중에 쟤한테 급발진이랑 급제동 안하는 법 좀 가르쳐줘야겠네.


"이제 남은 수는 어떻게 되지?"


"우리 셋 제외하고 정확히 100명이야."


"헌데 그대여, 그 때 리리스만 먼저 보낸 것도 그렇고. 자꾸 그대 곁의 사람들을 떠나보냈다간 나중에 그대가 위험에 처할 때 도와줄 이들이 부족할 지도 모르니라."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뭐 희생정신 충만한 성인군자라서 이러는 줄 알아?

오메가를 엿먹이기 위한 작전은 이제 반이야. 설령 나 혼자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여기서 난민들이 지쳐 쓰러지거나 추격대에 붙잡혀 죽기라도 하면 영락없는 작전 실패라고. 곧 죽을 사람 한명의 목숨보다... 저 난민들 모두 살 가능성을 높이는 게 게 훨씬 더 중요한 수 밖에 없어."


*


미국 북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는 시애틀 항구, 본래는 인류 멸망 후 누구도 찾아오지 않던 버려진 장소였으나 오늘은 왠일로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적 함대의 호위와 함께 항구에 정박한 오르카호에서 스틸라인의 장병들이 하선해 내륙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신으로 달려온 블랙 리리스의 전언에 의해 그들은 기다리기만 하는 대신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갑작스런 작전 변경 요청이었으나 사령관이 상정한 범위 내였기에 큰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스틸라인 지휘관인 불굴의 마리 또한 현장지휘를 향해 오르카호에서 내리려던 참이었다. 어째 뒤쪽이 소란스럽기에 고개를 돌리니 다프네와 옥신각신 하고있던 리디아를 볼 수 있었다.


"환자분, 지금 어딜 가려는 거에요!? 아직 움직이면 안된다고요!"


"다 나았어, 나았다고! 니가 치료를 아주 잘 해줘서, 순식간에 완치됐어! 알았으면 더이상 방해하지 마!" 


아직 병상에 누워있어야할 리디아가 어느새 무장을 마친 채 억지로 나가려는 걸 다프네가 겨우 붙잡고 있었다.

두번째 인간과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출전한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간 결과였다. 상태가 호전되긴 했으나 아직도 기관총을 지팡이삼아 걷는 모습은 그녀가 전선에 나갈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보다못한 마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그제야 몸부림을 멈췄다.


"리디아, 진정하게."


"비키십시오, 마리 대장. 형님은 제가 모시고 옵니다."


"이번엔 나도 출전할 예정일세. 자네가 형님이라 부르는 그 사람은 내가 책임지고 모셔올테니 안심하게."


"하, 당신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지나간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하는 사람은 사령관 각하 한 분 만이 아닐세.

무엇보다도, 부상병에 한해서는 나보단 군의관의 판단이 우선시되네. 다프네 양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자네를 보내줄 수 없네. 다 자네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부디 들어주게나."


마리가 단호하면서도 진실된 태도로 막아서자 리디아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둘 다 말을 멈추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오르카호 바깥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게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마리가 패널을 들고 연락하려던 차에 바깥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마리 대장님, 긴급보고입니다. 수송 트럭을 타고 온 신원 미상의 남자가 난민들을 데리고 왔다며 들여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자?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두번째 인간인가!?"


[아닙니다. 바이오로이드, T-1 고블린입니다.]


"뭐라고!?"


[소방도끼를 보여주며 형님이라는 자가 보냈다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형님에... 소방도끼... 두번째 인간 말하는건가!"


"트레저...?"


"리디아? 왜 그러는가? 혹시 누군지 짐작이 가나?"


"제 동료가 분명합니다, 이 세상에 고블린이 둘이나 있을 리도 없으니까요."


"...바꿔주게나."


마리가 패널에 대고 말하자 잠시 후 패널 너머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댁이 여기 책임자요? 빨리 문 좀 여십쇼, 얼른 난민들 내려주고 형님한테 가봐야 한단 말임다!]


"신원 확인이 먼저다. 먼저 본인의 신원을 밝혀..."


"야, 트레저! 너 트레저 맞지?"


[...리디아? 정말 너야?]


리디아가 통화에 난입하자 아까까지만 해도 불만 가득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오르카호에 갔다더니 진짜네, 너 거기서 뭐하는 거냐?]


"형님 도와주려고 머리 좀 굴리다보니 이렇게 됐네. 그러는 너야말로 그 날 죽은 줄 알았는데."


[얘기하자면 긴데, 시간 없으니까 안부는 나중에 물으면 안되냐? 언제 형님한테 추격대가 따라붙을지 모른다고!]


"그래, 형님만 찾는 꼴 보니 너 맞네. 마리 대장, 문 열어주죠?"


"트레저라고 했나? 트럭엔 무얼 싣고있지?"


[형님이 난민들 중에서 부상자랑 꼬맹이들 실어서 먼저 보낸검다. 옆에 더치걸 타고 있는데, 바꿔줄까요?]


"괜찮네. 들여보내도록 하지. 옆에 있는 병사에게 바꿔주게나."


트레저는 마리의 허락을 받고나서야 검문소를 거쳐 항구로 들어올 수 있었다. 스틸라인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차를 주차시키고 난민들이 차례대로 내리는 한편 스틸라인은 어느덧 출격 준비를 마쳤었다.


"트레저, 자네도 몸 상태가 안좋아보이는데 쉬어야 하지 않겠나? 방금 사령관 각하로부터 수복실 사용 허가도 받았네."


"그럴 시간 없슴다. 형님은 제가 모시고 올겁니다. 리디아! 돌아올때까지 이 도끼는 니가 갖고있어."


"리디아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고블린이나 브라우니나 거기서 거기죠. 그건 그렇고, 니가 가준다면 나도 안심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마리와 리디아는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지내며 전쟁터에 나선 병사들을 관찰해왔다, 그렇기에 트레저를 가까이서 보게 되자 단번에 그가 피로와 공복에 찌들어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제 몸은 신경도 안쓰고 충성심만 앞서서 뛰쳐나가려는 게 들은대로 브라우니와 판박이였다.


"리디아에게도 말했지만, 자네의 형님은 내가 직접 모셔올테니 안심하고 쉬게나. 누가 이 자를 난민들과 같이 수복실에 데려다주게나!"


"뭐? 야, 누구 맘대로...!"


오르카호 수비를 위해 남은 병사들 중 몇명이 달려와 트레저를 붙잡고 억지로 수복실로 끌고가는 사이 마리는 자신이 이끄는 두번째 인간 지원부대에 출전을 명했다. 리디아는 누구 편을 들지 고민하며 끌려가는 트레저를 지켜보다가 이내 오르카호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분 뒤, 수송 트럭 한대가 항구를 빠져나가 앞서 나간 지원부대를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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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지원군과 펙스 추격대 중 누가 먼저 라붕이에게 도착할까


생각해보면 작중 배경이 미래니까 무슨 떠다니는 미래트럭 그런게 나와야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우리가 아는 그 두돈반이 익숙할 거 같아서 그걸로 정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