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로 만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에밀리가 내 방에 찾아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저기...에밀리?


 

응?


 

무슨 일 있어?


 

응.


 

그래?


 

......


 

......


 

......


 

저기...에밀리?


 

응?


 

제녹스...어디 갔어?


 

정기...정비...


 

그래서 안 보였던 거구나.


 

......그래서 갑자기 찾아와서 내 무릎 위에 앉은 거야?


 

싫어?


 

아냐, 괜찮아. 


 

(평소 감정 표현이 미약한 에밀리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확연하게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는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밀리는 나에게 기댔지만 기분이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에밀리?


 

응?


 

산책 갈까?


 

......


 

응.


 

손 잡아도 될까?


 

응.


 

(에밀리의 손을 잡고 오르카 호를 거닐었다.)


 

(오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건넸지만 에밀리의 상태를 보고 금방 물러났다.)


 

(결국 우리는 오르카 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공기가 신선하네.


 

응.


 

이제 날씨도 많이 풀렸다. 그치?


 

응.


 

겨울이더라도 꽃은 피는구나. 나비가 있으면 더 좋을텐데.


 

응.


 

......


 

......


 

오늘 아침 뭐 먹었어?


 

빵이랑 계란이랑... 베이컨이랑 콩.


 

(이런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는 것을 보면 내 말을 듣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단지...심각하게 의기소침해 있을 뿐이다.)


 

저기에 앉을까?


 

응.


 

(커다란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어 앉으니 에밀리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나는 에밀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녹스가 없으니 외로워?


 

......모르겠어.


 

그런데 제녹스가...없으니까...마음이 힘이 안나.


 

......공허해?


 

공허한 게...뭐야?


 

마음이 빈 것처럼 느껴져?


 

음...그런 거 같아.


 

걱정 돼? 제녹스를 다시 못 만날 까봐?


 

닥터랑...아자즈랑...포츈이 잘 정비해준다고 했어. 다시 만날... 수 있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걸 알아도 힘이 안나?


 

응.


 

......제녹스가 없으니 불안해?


 

......모르겠어.


 

그러면 반대로 제녹스랑 같이 있으면 편안해? 뭔가 부족한 느낌이 없어?


 

그런 거 같아.


 

에밀리는 언제부터 제녹스랑 함께 였어?


 

......


 

내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제녹스가 옆에 있었어.


 

(에밀리는 제녹스를 제어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고 했지?)


 

(그러면...에밀리가 제녹스에게 애착을 가지도록 처음부터 계획했을 수도 있겠구나.)


 

(지금 에밀리는 좋아하는 인형을 빼앗긴 아이와 마찬가지다.

아이랑 다른 점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약해서 울부짖는 대신에 의기소침해 하는 것 뿐이고.)


 

에밀리.


 

응.


 

먹고 싶은 거 있어?


 

......모르겠어.


 

하고 싶은 건?


 

......모르겠어.


그냥...마음이 힘이 안 나...


 

그러면 그냥 이렇게 있을까?


 

......응.


 

(우리는 단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단지 그 뿐.)


 

(에밀리는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소녀를 병기에 마음을 의존하게 만들어 버린 구 인류의 잔혹함에 대해서.)


 

(병기가 없으면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소녀를 보고 구 인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에밀리.


 

응?


 

제녹스가 정비를 받는 동안에 왜 나를 찾아온 거야?


 

......


 

모르겠어?


 

......사령관이랑 같이 있으면...


 

제녹스랑 같이 있을...때 처럼...


 

음....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좋아.


 

......


 

제녹스랑 떨어졌을 때...안 좋았어.



지금은...괜찮아.


 

사령관이 있으니까.


 

......


 

제녹스도 있으면...더 좋았는데...


 

응...그러네.


 

(에밀리는 부족한 말솜씨로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말솜씨의 부족은 그 어느 말보다 진심을 더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에밀리의 안에 나의 존재는 잔뜩 커져있었다. 구 인류가 인의로 만들어낸 애착을 침범할 정도로.)


 

사령관...


 

응?


 

제녹스가...정비 마칠 때까지...사령관이랑 같이 있어도 돼?


 

물론이지.


 

밥도 같이 먹고...잠도 같이 자고?


 

응. 응.


 

그리고...


 

같이...씻고?


 

응....


 

아. 아니. 아니. 그건 비스트 헌터 부르자. 제발.


 

응...


 

대신에 목욕탕 밖에서 기다려 줄게.


 

응.


 

에밀리.


 

응?


 

노래 부를까?


 

......


 

응.


 

뭐 부를까?


 

외로운 별의... 노래.


 

...평소랑 선곡이 다르네? 러버러버가 아니라?


 

지금은...그거 부르고 싶어.


 

싫어?


 

아냐, 그냥 평소랑 달라서.


 

불러?


 

부르자. 하나 둘.


 

올려다 본... 저 밤하늘 늘 반짝이던... 별무리


 

멀기만하던 저 별이 내 곁에 내려왔죠


.

.

.


 

하루하루 커져만 가는 내 마음 햇살처럼 따뜻해져


 

자꾸자꾸 커져만 가는 이 말...


너를 사랑해



 

(우리는 나무 아래에서 한참 노래를 불렀다.)


 

(어두워지기 전에 오르카 호로 돌아온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끌어 안은 채 노래를 부르고 )


 

(목욕은...따로 했지만. 그것 외에는 1분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도 같이 잤다. 당연한 말이지만 건전하게 손만 잡고.)


 

(그리고 다음 날. 아자즈에게서 제녹스의 정비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자 에밀리는 쏜 살같이 정비창으로 달려갔다.)


 

(내가 뒤늦게 그 뒤를 따라가니 언제나처럼 제녹스 위에 올라탄 에밀리가 있었다.)


 

러버러버...러버.


 

하하, 이제는 괜찮아?


 

응.


 

(구 인류가 그녀에게 각인해버린 제녹스에 대한 애착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다면

어린아이가 애착 인형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제녹스에게서 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에밀리를 탄생시킨 자들은 제녹스가 없는 에밀리는 무가치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별 건가. 이미 그 작자들은 전부 죽어 없어졌고.)


 

(에밀리는 에밀리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존재이니까.)


 

사령관.


 

응?


 

같이 노래...부르자.


 

응.


 

러버러버...밤하늘 별처럼...


 

날 향해 비춰줘


 

당신과 함께 해피엔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