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전전전전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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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눈을 떴다. 이번에도 하얀색 라일락 꽃들이 무성하게 자란 들판 위에 서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보았던 들판과는 달랐다. 들판의 절반은 하얀색의 라일락 꽃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검은색의 꽃들로 가득했다.


아름답고도 진기한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들이 가지고있는 향을 들판에 퍼뜨렸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독한 향이 들판 전체를 가득 매웠다.


난 어지로운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은 꽃 한 송이를 꺾어 확인해보았다. 검은 꽃의 정체는 '페튜니아'였다. 

여러가지의 색의 페튜니아는 많이 본 적이 있지만 검은색의 페튜니아는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검은색의 꽃은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다.


누군가가 유전자를 조작하고 편집하지않는 이상. 자연적으로는 나올 수 없는 색상이었다.


"오셨군요..얼마나 기다렸는데요..다음부턴..제 눈을 벗어나지 말아주세요.."


검은색의 페튜니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각에 잠길려던 찰나,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전에 들판에서 보았던 검은 형체였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처음엔 보았을 땐 물컹물컹한 액체와 같은 형태였지만 지금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의 형체였다.


"착하게 기다리고있었어요.."


"뭐..?"


그것은 하얀색 라일락 꽃들을 검은색 페튜니아 꽃으로 바꾸며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난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뒷걸음질 친 것을 본 그것은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후후..아직 그런 사이라는건가요..."


"무슨 소릴하는거야..대체..."


"필요하다면..말만하세요..우릴 방해하는건 모두 부술테니깐...당신도..그걸 바라지 않나요?"


"뭐..? 잠깐...! 기다려..!"


그것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천천히 땅 속으로 사라질려고했다.

어떻게든 그것을 붙잡아보려했지만 이미 그것은 땅 속으로 사라졌다. 독한 향만이 그윽한 들판 위에 혼자 남은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라일락 꽃잎 하나와 검은색 페튜니아 꽃잎 하나가 손 위에 살포시 얹어져있었다. 


"대체 뭐야..."


꽃잎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을 정리해보려고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일어나세요..."


"아아악..!"


또 다른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목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꽃잎들이 휘날리고 들판이 흔들렸다. 


"도련님. 일어나세요.."


휘날리는 곷잎들이 하늘 위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도련님? 일어나세요."


"우왓..!"


이터니티의 부름에 심장이 철렁했다. 어제보단 소리가 덜 크게 들렸지만 그래도 크게 들려왔다.

집과 밖에서 들리는 소음 하나하나가 전부 민감하게 들려왔다. 어제 괜찮았던건 슈트 덕분이었는가보다.


"괜찮으신가요? 안색이 안 좋으신거 같은데요..땀도 많이 흘리신거같고.."


"그래요..?"


내 몸을 만져보았다.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몸은 물론이고 옷과 침대시트, 그리고 이불까지 땀으로 흥건했다.

여름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땀을 흘린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괜찮으신가요?"


"괘..괜찮아요...조금...피곤해서 그런가봐요.."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녀와 말을 길게 해봤자 더 피곤해질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오늘은 편히 푹 쉬세요..죽이라도 끓여야겠네요.."


"고..고마워요.."


그녀는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녀의 발소리가 점점 내 방에서 멀어지는 것을 들은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처음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모든게 민감하게 느껴지고 크게 들려왔다.


날카로운 신경을 자극시키지 않게하기 위해 까치발로 방을 거닐었다.

발가락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마치 탄창에 총알을 삽탄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소리 마저 크게 들려오는 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방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다크서클은 줄넘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내려와있었고, 안색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하아..."


어두운 얼굴을 비비며 어제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어제 슈트를 얻기 위해 연구소에 몰래 잠입을 했고 적합수술을 받았고 슈트를 얻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인 블랙 웜 일당을 잡는 것만 남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난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도시 외곽에 있는 난민 수용소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곳으로 가 그녀와 그 일당들을 잡아족칠 수 있었지만 난 그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마음 한켠에서 그것을 거부하고있는 것만 같았다. 터질 것만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를 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이제 힘이 생겼잖아..지금 당장 그 곳으로가서 그 년을 잡는거야..'


'바로 잡는건 재미없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여서 죽여야지..'


'뭐..?'


'그 년이 거기서 말 한거 못 들었어? 다른 계획이 있다고했잖아.'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수용소에서 그녀를 처음 목도했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그들의 다음 목적은 지휘관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혼란하는 사이 도시에 있는 대원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했다.


'뭘 어쩌고싶은건데...'


'우리가 그 년의 계획을 방해하는거야..자신의 계획이 점점 틀어지는 걸 들으며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어떻게 막을건데..'


'그건 너가 잘 알지않아..?'


그 순간, 침대 밑에서 호박색의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을 본 난 홀린 듯 침대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천천히 몸을 숙여 침대 밑에 있는 반짝이고있는 것을 꺼냈다. 어제 연구소에서 탈취한 슈트의 헬멧이었다.


슈트의 헬멧에 머리를 맞대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근데 누굴 먼저 칠 생각이지..?'


이마를 타고 전해져오는 차가운 감각을 느끼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저항군에는 6명의 지휘관이 있다. 스틸라인의 불굴의 마리, AA 캐노니어의 로열 아스널, 앵거 오브 호드의 신속의 칸, 호라이즌의 무적의 용,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철혈의 레오나, 그리고 둠 브링어의 멸망의 메이.


이 외에도 많은 지휘관들이 있지만 아버지는 이 6명을 주축으로 회의를 하고 작전을 짜셨다.

그들은 전투와 지휘에 있어서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들 보다도 경험과 지식이 많았다. 그런 그녀들이 쉽게 당할리가 없었지만 상황은 언제 급변할지 알 수 없었다. 


도시에 있는 블랙 웜의 대원들이 만약 그들이 있는 대원으로 위장해있다면 제아무리 그녀들이라고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 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게 분명했다.


헬멧을 잡은 손을 더 꽉 쥐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 년이라면 불굴의 마리부터 칠거야..'


'어째서지..?'


'그녀는 대들보같은 존재야. 기둥 중에서도 가장 큰 기둥이지.'


맞는 말이었다. 이모는 아버지가 어머니 다음으로 제일 신뢰하는 분 이었다.

나 또한 어머니 다음으로 이모를 믿고 따랐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선생님과 제자처럼 믿고 따랐다.


'그런 그녀가 죽는다면..?'


'도시 전체가 멈추겠지...'


사실 도시가 금방 돌아 올 수 있는 것도 마리 이모 덕분이었다.

그녀가 모두에게 용기를 복돋아 준 덕분에 다들 슬픔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그런 그녀가 죽는다면 도시는 그야말로 어둠에 잠길게 분명했다.


'맞아. 그렇기에 아마 그녀부터 칠게 분명해.'


'...만약 아니라면..?'


만약 이런 추측과는 반대로 다른 지휘관이 공격을 받는다면 그 다음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또 누군가를 잃고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잃는 것이라면 어머니와 아버지만으로도 충분했다.


'날 믿어.'


그 말에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헬멧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침대 밑에있는 모든 것을 꺼낸 다음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블랙 맘바 두 정과 탄창 8개, 로자 아줄 2개,  스노우 페더 누나가 쓰는 것과 똑같은 수리검 6개, 그리고 전투 자극제 6개가 있었다.

이외에도 슈트에 내장이 되어있는 단분자 클로와 발끝에 달려있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었다.


무기의 탄약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걸로 블랙 웜 일당을 이길 수 있을지. 그것은 미지수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에게서 전략을 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지형과 상황을 잘 이용만 할 수 있다면 무기를 쓰지않고도 적들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되뇌이며 블랙 맘바에 들어있는 탄을 확인하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금방이라도 뭐가 떨어질 것마냥 우중충한 날씨였다. 빠르면 오후, 늦어도 밤에는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저거다..'




중간에 나온 삽화는 본인 작품입니다.


하얀색 라일락의 꽃말은 '아름다운 인연', '맹세', '순진.'

패튜니아의 꽃말은 '당신과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랑의 방해.' 라고 하네요. 


여튼 뇌절에 재미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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