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시리즈 1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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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지나치게 짙게 내달리는 날이었다. 우악스럽게 으적거리는 소리가 폐건물의 기둥 사이사이를 흝었다. 무거운 것으로 무언가를 깨 부수는 듯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둔기로 뼈를 으스러트릴 때의 둔탁함이었다. 피가 바스라진 뼈 사이사이에서 새어나와 바닥과 머리카락 그리고 갈색 개머리판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철퍽거리며 짓이겨지는 살점들과 골수가 뼛조각을 머금고 튀어나갔다. 


저격수라는 본분을 잊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장발에 지방이 가득 엉겨 붙은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 쓴 발키리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서로 다른, 탁한 다크서클을 잔뜩 드리운 공허한 두 눈으로 시체 사이들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 뱉었다. 순식간에 얼어버린 물방울의 입자들이 순식간에 얼어 뿌옇게 보였다. 발 밑에 있는 고깃덩어리가 사후경직이라도 일어난 듯 움찔거렸을 때, 180도 돌려진 개머리판이 어깨에 가까히 닿았다. 그리고 총구에서 불이 일었다. V자로 짓이겨진 머리를 잃은 몸은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았다. 모두 10구. 발키리가 만든 시체의 갯수였다.


날은 지독하게 추웠다. 순식간에 모든것이 얼어붙기 시작해, 지방과 물로 나누어지는 검붉은 혼합물들은 흐르다 못해 선지처럼 서서히 굳어갔다. 발키리는 그것을 보며 역겹다거나 혐오 같은 거짓투성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넘기며 코트의 품에서 담배를 찾아 뒤적거렸다. 대충 우겨 넣어 찌그러진 담뱃갑에서 하나 남은 라이터와 담배가 손짓 한 번에 톡하고 튀어나왔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것을 입에 물고 불을 붙힌다. 하지만 틱틱 거리며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도구가 말썽이었다. 스파크도 일어나지 않는, 쓸모 없어진 라이터가 허공을 날았다. 툭 하고 떨어진 곳에는 가장 먼저 죽어버린 이의 입으로 턱하니 들어갔다. 그것 밖에 남지 않은 살점 덩어리었지만 쓰레기통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발키리는 여전히 물고 있는 하얀색 담배를 까딱거렸다. 무언가 불쾌한 듯 마감도 하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 천장을 올려다 보기도하고 끈적한 액체와 눈이 섞여 사각거리는 조금 하얘진 붉은 액체를 머금은 바닥을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막대가 위 아래로 움직임을 멈췄을 때, 발키리의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깔렸다.


"씨발."


청초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듣는 이는 없었다. 이미 그녀가 다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가벼운 한 숨이 담배에 막혀 뿌옇게 두 갈래로 갈라졌다. 개머리판에 붙어 응고된 피가 몽글몽글 해질때 쯤이었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가장 가까히 있는, 방금 머리를 날려버린 시체의 품을 뒤적거렸다. 스코프 너머로 보았던 유일한 흡연자. 마지막 한 모금을 채 내 뱉지 못하고 가슴이 뜷려 버린 여자였다. 발키리는 그녀의 품에서 간신히 찾아낸 라이터의 부싯돌을 칙칙 거렸다.


간신히 붙은 불에 담배의 앞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숨보다 더 연한 연기를 내는 매캐함이었다. 발키리는 자연스럽게 고깃덩어리의 위에 주저 앉아 한 모금씩 들이마시고 내 쉬었다. 그녀는 한 번 들이 마실 때 마다 자신이 뭔가 단단히 뒤틀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뱉을 때엔 정 반대의 생각이었다. 박살난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어느쪽이던지 아이러니였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여자였기에.


타 들어가 서로를 의지한 채 간신히 붙어 있는 담뱃재들이 서서히 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터까지 몸을 휘청거린 필사적인 발악들이었지만, 발키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 거의 꺼져가는 담배를 입에서 때내어 시체의 손에 비볐다.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응축된 담뱃재의 향. 그리고 조금이나마 따뜻해진 피부. 마지막으로 내 뱉어진 담배 연기가 숨과 섞여 뿌옇게 흘려 퍼졌다.


"좆같네요."


단단히 망가진, 여자의 한 마디였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신경써야할 것은 뒷목부터 찌릿하고 느껴지는 감각들이었다. 척수를 타고 등에서부터 퍼지는 불쾌한 쾌락. 몸을 갉아 먹고는 전신을 집어 삼켜 주도권을 빼앗는 불합리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금단 증상이라고 불렀다. 특히나 발키리는 정도가 매우 심한 여자였다. 약을 언제부터 팔뚝에 꽃아 넣었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합 전쟁때였던가? 아니면 사령관을 발견했을 때 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레모네이드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할 때 였던가. 이제는 언제인지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약에 취한 저격수라는 웃음거리도 안되는 여자였다.


“그렇게 생각하죠. 언니?”


의문문으로 내 뱉어진 문장이 향한 곳은 여전히 눈보라가 치는 바깥이었다. 당연스럽게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뒤에서 발걸음이 자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와 지나치게 닮은 여자였다. 군용 코트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밤빛 머리카락. 그리고 생기가 넘치지만 슬픈, 서로 색이 다른 두 눈. ‘언니’라고 불린 발키리는 자신의 허리보다 조금 더 큰 라이플의 총구를 아래로 향하며 말했다.


“카누잉은 보스께서 금지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다음부턴 대검으로 딸게요.”


분명 장난이 섞인 진심이었다. ‘언니’ 발키리는 그것을 도통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해야 한다고 끊임 없이 되뇌였다. 닥터의 말마따나, 약의 쾌락에 젖어 짓이겨진 이성을 되찾는 것은 바닷물에 무너진 모래성을 원래대로 쌓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었다. 질척해진 모래를 손에 쥐어 보아도 남는 것은 엉겨 붙어 찐득거리는 덩어리였기에.


“담배 있어요?”


말 한마디와 함께 검붉은 피가 얼룩덜룩 뭍은 가죽 장갑의 손가락이 방금 짓이겨진 머리처럼 V자를 그리며 까딱거렸다. 언니 발키리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저어대었다.


“정말요?”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이 깔고 앉고 있는, 사후 경직 때문에 딱딱히 굳어 착석감이 좋지 않은 시체의 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머지 않아 가죽 장갑에는 바늘이 달린 간이 주사 여러개가 집혔다. 언니 발키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우악스럽게 죽어간 마리오네트들의 안정제이자 각성제. 보스가 그토록 증오하던 마약의 시제품 중 하나라는 것을.


“내려놓으세요.”


하지만 발키리는 자연스럽게 코트의 소매 사이에서 희끄무리하게 보이는 무수히 많은 자상과 바늘 자국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팔목에 바늘을 들이 밀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이의 마음을 저당잡아 간단히 행해지는 악덕이자 협박이었다.


“그럼 담배. 어서.”


그 다음은 자연스러운 서순이었다. 언니 발키리는 품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힐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발키리는 그것을 입에 물고 옅은 미소와 함께 연기를 들이 마실 것이 분명했다.


새하얀 눈이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타들어가는 끄트머리와 음미를 하듯 지그시 감은 탁한 눈과 동정을 담은 눈. 발키리는 천천히 눈을 뜨며 풍경을 시선에 담았다. 순백색의 하늘. 망가져버리지 않은, 자신의 언니같은 세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요? 약쟁이라서 불쌍해보여요? 그런 눈은 보스 아래에 깔려서 앙앙거릴때 뜨세요. 뭐, 뒤져버린 여자만 생각하는 남자니까 덮치지도 않겠지만...”


“그만.”


“그래요. 그 눈. 저를 그런 눈으로 보세요. 동정하지 마세요. 난 그럴 자격이 있어요. 나도 그때 사로잡혀서 그년들의 캔버스가 되서 약으로 칠해자고 칼로 붓질 당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니 이정도는 말할 자격 있어요. 라고 덧붙히며 발키리는 천천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이미 바닥에 쩍하고 달라 붙은 핏자국들 위로 서서히 불을 잃어가는 꽁초 하나가 구르다가 턱하니 멈췄다. 생기를 잃은 눈과 애증이 섞인 눈이 서로를 담았다.


“전, 보스가 싫어요.”


그녀는 한 손으로 총을 들어 시체를 향해 가져다 대었다. 얼어 붙은 방아쇠가 손가락에 의해 천천히 움직이며 삐걱거렸다. 그리고 격발. 총성이 눈보라를 뜷지 못하고 울려 퍼졌다. 한 번 약하게 튀어오른 시체의 밑에서 얼어 붙기 직전의 사각거리는 피가 천천히 새어나왔다.


‘언니’ 발키리는 놀람의 기색 없이 그저 바라만보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망가진 여자가 할 말을 예측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발키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복수. 망가지고 무언가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죠. 물론 보스는 감정을 잃은 척하고 있고 저는 미래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요. 하. 씨발. 수지타산이 안 맞네요. 언니.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요?”


맞은 편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벼운 한 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무언의 동의였다.


“지금은 참고 있지만, 언젠가 저도 저렇게 될거에요. 약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언젠가는 마리오네트와 비슷하게 무너질테니. 그러니...”


발키리는 손으로 총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올려 놓고 퓩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녀는 처음 보이는 슬픈 눈을 하면서 말했다.


“그때는 언니가 날 죽여주세요. 망가졌어도, 사람으로 죽고 싶으니까.”


“... 약속하겠습니다.”


여전히 눈보라는 거세게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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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문학에 쓴 소재를 다시 단편으로 돌려 봄. 발키리가 그냥 보면 약간 퇴폐미 비슷한게 느껴져서 한 번 써보고 싶었음


약에 쩔은 시한부 인생. 이게 느와르지. 아니면... 쩔수 없고.


이걸 2부의 시작이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해서 일단 외전으로 치기로 했음


이젠 수습 불가로 장편이 된 느와르 시리즈.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