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우리집 브닐라 모음집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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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거 참, 눈 뜨자마자 군침이 돌게 할 정도로 맛있는 향기다. 다 바스러져 가는 이 낡은 문짝 바깥에서 탁탁탁, 달그락달그락,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들려왔다.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정답기도 한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모처럼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자는 이비가 보인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지. 깨우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나는 그녀가 깰세라 조심스레 이불을 걷어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때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잘 주무셨사온지요, 손님. 아침상 준비가 거의 끝나가옵니다.”

 

“우으...흐아암...”

 

소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는 이비. 나도 한번 크게 하품을 내보내고 문밖의 셰프에게 대답했다. 어째 목소리가 잠긴 게 티가 팍 나더라.

 

“으어어....고마워. 금방 나갈게.”

 

“간밤에 기력을 많이 소진하셨을 터, 먼 길을 가기 전에 든든히 속을 채우시옵소서.”

 

이런 씹-

 

아니, 문자 그대로 씹이구나.

 

어젯밤의 부끄러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필이면 그렇고 그런 모습을 들켜버렸으니.... 제발 바니가 H 녀석에게 떠벌리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꺼흐흑, 지금은 놀림 받을 기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런 일로다가요.

 

“...오, 뭔가 맛있는 냄새임다.”

 

내 옆에서 몸을 일으킨 이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킁킁거린다. 맹한 표정과 해맑은 목소리. 지금 내 옆에 계신 분은 4077번 소위가 아니라 언제나의 그 브닐라인 모양이다. 

 

어느쪽이 되었든 내가 사랑하는 이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한테 좀 더 익숙한 건 이 덜렁이 친구다.

 

“헤헹. 일어나셨슴까, 주인님? 전 일어났더니 배가 좀 고픔다. 주인님은 배 안 고프심까?”

 




앙증맞게 올라간 눈과 활짝 벌어진 입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미소.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 온다. 

.....그 환한 미소에, 나 또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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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완이 농가에서 찾은 재료로 차린 밥상. 별것 없는 구성이었지만 묘하게 맛이 좋았다.

 

노부부와 우리는 식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노부부 손에 자란 금지옥엽 같은 손녀. 그 하나뿐인 손녀가 삼안산업 제2 특별자치행정구(이 지역에서 꽤나 먼 곳이다)에 살고 있는데, 이 난리통이 되면서 그 애가 도와달라는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제대로 빠져나오기도 전에 도시가 포위되면서, 꼼짝없이 갇혀서는 나올 수가 없었다나. 사태가 워낙에 빠르게 진행된 탓에, 군대나 경찰도 도저히 그 친구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대피소로 가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며 손녀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길을 나서다가 어젯밤 우리와 만나게 된 거고.

 

...

...

...

 

 

“아니, 어르신....아무리 그래도 바깥이 저렇게 위험한데....”

 

“허허허, 나는 우리 하치코를 믿네. 용감하고 강한 아이야.”

 

H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노인. 태도를 보아하니 지금껏 철충과 직접 접촉해본 적은 없는 모양새였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일들로 미뤄보건대, 앞으로는 더 위험한 녀석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도시 근처로 갈수록 더 위험해 질테고, 군용 AGS 따위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바니가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리 컴패니언의 자매라곤 해도, 고작 바이오로이드 하나만으로는 그대로 비명횡ㅅ....아니, 손녀분에게까지 가시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식탁 위의 빈 그릇을 치우던 바니도 H를 거들고 나섰다. 사실 그 점은 내 생각도 동일하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메이드 둘에다가 초인적인 칼잡이까지 붙었는데도 위태로운 여정인데, 그걸 평소의 이비만큼이나 맹한 저 강아지 메이드 하나로 뚫고 간다? 그것도 철충들로 바글거릴 대도시를 향해서? 그건 사실상 자살이지.

 

우리는 노부부에게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쳤던 철충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들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진다. 자기들이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훨씬 나쁘다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그건 하치코도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의 귀와 꼬리가 푹 내려앉은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모두가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기를 잠시, 누군가가 노부부에게 말을 건넸다. 

 

“아! 구뤔 우뤼랑 가치 가쉬면 어뛈꽈?”

 

입안에 밥을 한가득 욱여넣은 이비의 목소리였다. 밥알은 물론, 그것들과 합체한 반찬 부스러기가 녀석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바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사이, 입안에 든 것을 꿀떡 삼킨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가는 곳이랑 인간님들이 가시는 곳이랑 가는 길이 겹치지 않슴까? 그럼 그동안만이라도 우리랑 같이 가시면, 화력도 늘고 해서 서로한테 좋을 검다! 일행이 많아지면 더 즐겁기도 하고 말임다!”

 

...어째 ‘진지 모드’의 이비라면 하지 않았을 제안인데. 그녀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금세 화색이 되었다. 

 

“오, 그래, 자네들은 그것들과 싸워보기도 했다지! 정말 동행해도 되겠나?”

 

“당근임다! 가족을 구하시려는 그 마음, 저도 잘 알지 말임다!”

 

히히, 하고 그녀가 방긋 미소지었다. 그 해맑은 웃음엔 티끌만큼의 계산이나 흉계는 보이지 않았다. 노부부 또한 뜻밖의 반가운 제안에 얼굴이 조금은 밝아진 느낌이다.

 

그러더니, 이비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뭔가 중요한 걸 뒤늦게야 떠올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그....물론 주인님하고 다른 분들께서 허락하시면 말임다.”

 

“음, 나는 찬성. 말씀하는 거 들어보니까 좋으신 분들 같아. 하치코 씨가 주인님이라고 안 부르고 할아버지 할머니 하는 거 보니 더 그렇고. 게다가, ‘성벽의 하치코’ 모델들이 경호용으로는 상당히 믿음직하다고 듣기도 했거든. 같이 모시고 가면 손해는 안 볼 거야.”

 

H가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 바이오로이드에 관심이 꽤 있던 그의 말이니, 아주 근거 없는 평가는 아닐 것이다. 이어서 바니도 손을 들며 거들었다.

 

“저도 서방님 말씀에 찬성입니다. 같은 삼안의 자매라면 신뢰할 수 있지요.” 

 

“헤헤, ‘사랑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라더니. 그쪽 언니도 나쁜 분은 아니네용.”

 

하치코도 눈웃음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댄다. 어젯밤까지 우리를 그렇게나 경계하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다.

 

“아이고, 우리야 같이 가주면 당연히 고맙지요. 우리 하치도 좋아할 거예요.”

 

손을 들어 올리며 찬성표를 던진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를 바라보는 이비와 하치코의 눈이 특히 초롱초롱했다.

 

그래, 뭐, 길이 겹치기도 하고....게다가 둘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니 도저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뭐, 저야....당연히 찬성이죠.”

 

 

...

...

...

 

 


 

 


그렇게 만장일치로 노부부와 하치코까지 –일시적이긴 해도- 우리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반대표를 내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비 언니, 같이 가용!”

 

“헤헤, 천천히 오십쇼. 그런 거 들고 뛰다가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슴다.”

 

앞장서는 바니와 이비, 그리고 도도도 달려가며 그 둘을 뒤따르는 하치코. H와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뒤에서는 어르신들을 조심스레 모시며 따라오는 유미와 소완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싹싹한 유미야 말할 것도 없지만, 여러모로 안 좋은 사연이 있던 소완 역시 노부부의 거동을 나름대로 친절히 돕고 있었다. 같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모습을 확인해서일까.

 

“...분위기 좋다, 은근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뱉었더니, H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이대로 별일 없이 쭉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빽빽한 숲길 사이로 몇 걸음을 더 내딛고 있었더니 이비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맞다! 여러분! 이제 이쪽 길로 쭉 가셔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목적지까진 금방임다! 그쪽을 타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빠르게 손녀분한테 가실 수 있을 검다!”

 

한 손에 든 홀로그램 지도를 흔들어보이며 미소짓는 이비. 

 

드디어 이 지루한 도보 여행도 끝이 날 기미가 보이는 듯해서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다소 들뜨기도 한다. 도망쳐 나온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되긴 했지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하나같이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이젠 거의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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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ㅆ-

 

.....망했다. 아니, 망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뭐라고 해야 맞을까? 새됐다? 엿먹었다? 좆됐다?

 

그 어떤 표현도 지금 내 기분을 정확하게 묘사할 순 없을 것이다. 왜냐, 지금 우리 계획은 제대로 작살이 났으니까.

 


 

 

 

“.....씨발. 되는 게 하나 없네.”

 

지금 우리 눈 앞엔 파괴된 도로가 있다. 깊은 계곡 사이에 지어진 고가도로. 이 근방에서는 저 살벌한 계곡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런데 그게 지금....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G...GPS랑 지도정보는 이상 없을텐데....지형 데이터 마지막 갱신일이...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위성 신호를 잡아가며 길 안내를 보조하던 유미가 말끝을 흐렸다. 

 

“...세상이 이 꼴 나기 전이겠지.”

 

당연한 결론이었지만, 막상 직접 내뱉고 나니 온몸에 힘이 싹 빠져버렸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린 다리. 그 사이는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 보였다. 우리 능력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건널 수가 없을 견적이다.

 

“유미씨, 혹시 다른 길은 없는 검까?”

 

이비의 물음에 복잡한 표정을 짓는 유미. 곧바로 땅바닥에 앉아서는 안테나를 펼쳐두고 심각한 얼굴로 태블릿을 만지작대기를 한참. 꽤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녀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있기는 한데...그나마 안전해보이는 경로는 여기서 상당히 멀리 돌아가야 해요. 지금까지 왔던 속도대로 이동한다고 해도....족히 며칠은 더 걸릴 거예요. 4-5일 정도요. 어쩌면 더....”

 

그녀가 태블릿 단말에 경로가 표시된 지도 화면을 띄워주었다. 확실히....엄청나게 굽이굽이 우회하는 루트다. 아니, 뭘 하면 이정도로 거리가 늘어나는 거지?

 

“더 빠른 길은 없어?”

 

내가 물어보았지만,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없는 건 아닌데, 전부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을 여러 번 거쳐 가야 해서요.”

 

인구 밀도가 높다는 건 산업 로봇과 AGS가 많다는 것, 바꿔말하자면 곧 철충들로 득시글댈 확률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말이다. 우리 상황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식량과 식수는 충분한가? 지금 우리가 가진 건 많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끼어든다. 그러자 고개를 젓는 바니.

 

“우리가 가진 것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애초부터 이럴 생각으로 짐을 꾸린 게 아니었으니까요.”

 

“...가다가 마트나 편의점이라도 털어야겠네. 남아있는 게 있기는 할지 모르겠지만.”

 

“...”

 

“...”

 

H의 혼잣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무너진 다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모두가 미동조차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 

 

몸짓으로 퀴즈하는 가족 오락쇼 같은 데서 제시어로 ‘망연자실’이 나왔다면, 아마 지금 우리 모습이 짱 먹지 않았을까. 

 

...이대로 있다간 해가 저물 때까지 여기 계속 서 있겠다. 아무리 얼척이 없어도 갈 길은 빨리 가야지.

 

“....에라이! 일단 가자. 가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뭐.”

 

나는 과장된 동작으로 힘차게 배낭을 고쳐메고, 성큼성큼 길을 앞장섰다. 유미가 제시했던 경로. 멀리 돌아가야 하지만, 생존 가능성은 최단루트보다 조금 더 나은 곳.

 

이제 우리가 희망을 걸 곳은 그곳 뿐이다.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애써 활기찬 척 다리를 놀리고 있으려니, 이비가 후다닥 내게 뛰어온다. 

 

아, 우리 이비는 내 마음을 알아준 건가. 그래, 활기찬 네가 모범을 보이면- 

 

“어어, 주인님! 그 방향 아니지 말임다!”

 

....아. 

 

슈밤 쪽팔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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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와 숲 사이를 힘들게 걸어가길 몇 시간, 우리는 비포장 도로 옆에 앉아 있었다. 흙길 바로 옆에 버려진 컨테이너와 차양까지 있어서 잠깐 쉬어가기 딱 좋은 자리였거든.

 

잠깐 숨을 돌린 후, 우리는 하치코가 짐가방에 잔뜩 쟁여놓은 미트파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건만, 그 파이는 상당히 맛이 좋았다. 내가 먹어본 파이류 중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오죽하면 더 이상 미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소완조차도 파이 크러스트의 질감을 칭찬할 정도였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맛있는 파이였다.

 

...그런데 그 가방, 안에 든 거라곤 비닐팩에 곱게 포장된 미트파이 뿐이었다. 이런 건 상온에서 금방 상하지 않을까 생각했더니, 하치코 말로는 조리해놓고 진공포장하면 생각보다 오래 간단다. 지금은 마침 날씨가 쌀쌀하기도 하고. 

 

아하, 그렇구만. 다행이네. 당분간 먹을 건 조금 확보했-

 

....아니 잠깐 그보다.

 

“아니, 어르신. 아까는 먹을 거 별로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내 옆에 앉아 계신 노부부에게 문득 떠오른 의문을 던졌다.

 

“어어, 그래. 없지. ‘먹을 거’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이여 기린이여.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으려니,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당장은 저 파이가 반가울 게야. 맛도 좋고 배도 부르니까. 하지만....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걸세.”

 

모두가 하치코의 맛난 미트파이를 즐기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비가 건네준 옥수수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어째 느낌이 쎄하다.

 

 

...

...

...

 

 

“그럼 다녀오겠슴다, 주인님!”

 

유미의 제안으로, 우리가 여기서 쉬고 있는 동안 유미와 메이드들이 앞으로 갈 길을 한발 앞서서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아까처럼 열심히 갔더니 길이 끊어져 있다거나 막혀 있다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 제안을 들은 이비는 “오오, 위력정찰임무임까? 맡겨만 두시지 말임다!”라며 눈에 띄게 신나하더니, 배낭에 넣어두었던 총기 부품들을 꺼내 AK 소총을 재빠르게 손보았다. 뭐, 새로 덕지덕지 붙여놓은게 야간전용 장비랑 레인지 파인더인가 뭔가라던데, 난 그런 거 잘 몰라서 말이야.

 

이어서 소총을 둘러메고 이비를 따라가려던 바니가 H에게 고개를 돌렸다.

 

“서방님은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아이구 우리 서방님 착하다, 그 정돈 할 수 있죠?”

 

뭔가 묘한 목소리로 그에게 당부하는 바니. 어딘가 익숙한 톤이다 했더니....

 

“.....바니야...그게 뭐야. 내가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아니셨습니까? 자, 착하지. 손.”

 

바니의 시답잖은 장난에 얼굴을 웃기는 모양으로 구기는 H. 그 와중에 바니가 내민 손에 누군가가 손을 턱 얹는다. 

 

그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하치코. 그녀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바니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하치코의 손을 털어낸다. 

 

“.....당신은 어서 가서 방패랑 총부터 챙기세요.”

 

“저한테도 착하지- 해주세용!”

 

“싫습니다.”

 

“...엥, 언니 완전 쫌솅이네요.”

 

“....그쯤들 하시고, 서둘러 다녀오시옵소서. 갈 길이 멀지 않사옵니까.”

 

 

...

...

...

 

 

우여곡절 끝에 길을 둘러보러 출발한 바이오로이드들. 백업받은 지형 데이터를 가진 유미를 중심으로, 이비와 바니, 그리고 하치코 -그녀는 노부부가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가 한 조로 편성되어 나섰다.

 

그렇게해서, 이 오솔길 옆의 컨테이너에 남은건 나와 H, 노부부, 그리고 최소한의 경호랍시고 남겨진 소완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말이지.

 

메이드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무료하게 앉아있으려니, 갑자기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소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불청객이 오고 있사옵니다.”

 

무슨 말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H가 용수철마냥 벌떡 일어나서는 길 뒤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오! 여기예요! 여기요! 야! 자동차 온다, 자동차!”

 

“정말인가?”

 

노부부까지 벌떡 일어나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다가간다. 과연, 저쪽에서부터 타이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낡은 승합차 한 대가 작은 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합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우리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차종을 보아하니 자율 주행차가 아니라, 구형 수동 운전차 같았다. 

 

와, 반갑네. 이 바깥에서 멀쩡히 차까지 굴리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얼른 다시 와 보라고 유미에게 연락을 하려던 찰나,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돌려보니 내 옆에 앉아있던 소완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왜 그래? 괜찮아?”

 

“이.....이 뇌파는...소첩이 그곳에서 느꼈던 것과-”

 

 

 

 

 

 

“안녕하십니까-”

 

승합차 문이 열리며 어떤 남자 하나- 아니,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칼과 총기류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각각 허리춤에 색색의 실 다발 같은 것을 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내린 남자, 방진 마스크와 정글도를 든 사람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따, 안색이 다들 초췌하신 게 고생 많이 하셨는가 봅니다? 어디서들 오셨습니까잉?”

 

“아...그게-”

 

“잠깐만.”

 

나는 H의 말을 끊었다. 그들의 허리춤에 매인 것들- 일반적인 실이나 끈이라기엔 묘하게 찰랑이며, 이상하리만치 매끈한 광택을 가진 그 실타래들이 아무래도 신경 쓰였으니까. 어떤 건 검은색, 어떤 건 갈색, 어떤 건 빨강에 금색.....심지어 파란색과 초록색까지도 있었거든.

 

바니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초록색 말이다.

 

“허리에 그거. 뭡니까?”

 

“아? 아아- 이거요? 터럭입니다, 터럭. 머리털이요.”

 

.....뭐?

 

“아따 표정들 푸셔요잉. 우리가 뭐 살인자 집단도 아니고. 이거 사람들 머리털 아니여라.”

 

“히히, 그 죄악의 산물들 머리카락이다, 이 말이예요. 바이오로이든지 뭔지.”

 

....반 바이오로이드 테러범들이었던건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발작하듯 온 몸을 떨어대는 소완을 내 몸으로 가려주기 위함이었다. 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정체를 물었다.

 

“....뭐하는 분들이십니까, 그쪽은.”

 

“아, 우리는...”

 

정글도를 든 남자가 조끼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팸플릿 몇 장을 꺼내주었다. ‘겨레의 성전 학회’라는 고색창연한 글씨가 시선을 끌었다. 촌스럽기 짝이 없네.

 

“‘겨레의 성전학회 청년 신도회’ 되겠습니다.”

 

팜플렛을 넘겨 보았더니, 바이오로이드(그들의 표현으론 인조 마귀)가 어째서 악마의 산물이며, 그들이 어떻게 ‘우리 민족의 얼’을 좀먹고 있는지에 대한 개소리가 줄줄이 쓰여 있었다. 그 와중에 가독성까지 정말 끔찍하다.

 

그리고 그 끝부분, 볼드체로 강조까지 된 마지막 구절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얼님의 친자이자 화신, ‘천제’님의 영도에 따라 모든 인조 마귀가 지상에서 박멸될 때까지 기도하고 회개하며 정진해야 합니다.]

 

....이거, 마주치면 안 되는 놈들하고 마주친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팸플릿을 받고 읽어보던 H의 표정도 점차 썩어들어간다.

 

“저기....그....우리가 지갑이나 통장도 다 놓고 와서 돈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어따, 이 양반 말씀 한 번 서운하게 하시네. 아니 우리가 무슨 강도라도 되는 줄 아시요? 같은 민족이 되어서, 고생하는 겨레를 돕겠다는 게 그렇게 수상한 일입니까?”

 

정글도 남자의 곁에 선, 어딘가 야비하게 생긴 하관을 가진 남자가 덧붙인다.

 

“천제님과 한얼님의 인도를 받아서다가, 잉? 이렇게 우리랑 딱! 마주쳤으니 천제님의 제자된 도리로써 안 도와드릴 수가 없지요. 우리랑 같이 가시면 정부 대피소보다 훨씬 안전한 곳에서 편히 지내실 수 있습니다.”

 

“어잉? 아야, 잠깐만. 저 뒤에 저분은 많이 다치셨네?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정글도 맨이 몸을 옆으로 기울이더니, 내 뒤에서 떨고 있던 소완을 보았다. 소완의 얼굴을 본 그의 눈이 조금 커진다. 

 

“.....어따 저분...아니 저거, 생긴 것이 참말로 요상한 게....마귀 아니당가?”

 

“엥? 그런가? 그래 보이긴 하네?”

 

그들이 슬금슬금 나와 소완 쪽으로 다가왔다. 노부부는 물론, H까지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마 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댁들, 마귀 오너들이었수?”

 

“마귀는 보이는 대로 싸그리다가....”

 

바이오로이드들을 잡아 족치는 게 존재 의의 그 자체인 놈들이다. 이대로 뒀다간 소완이 죽게 될 것은 자명한 일. 모두가 얼어있는 사이, 나는 일단 급한 대로 아무 소리나 지껄여 보기로 했다.

 

“아니, 지금 이 양반들이 누구보고 마귀니 뭐니... 당신들 지금 내 동생한테 마귀라고 한 거야? 허, 참, 살다 살다 별 이상한 놈들을 다 보겠네?”

 

내가 언성을 높이자 그놈들이 주춤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시방....저것이 그라믄....슨생님 여동생이라고....”

 

“왜요, 못 믿겠어요?”

 

자고로 쫄릴수록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법.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대들었다.

 

“그래, 얘가 내 동생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뭐?”

 

놈들이 “이상하네잉...”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곧 그들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정글도 맨이 노부부와 H를 가리켰다.

 

“그라믄 저분들은 슨생님으-”

 

“아이고, 우리 손자가 좀 성질이 사나워서 그래요. 동생을 워낙 아껴서 그런 거니까 청년들이 좀 참아줘요.”

 

어느새 달려와 내 팔을 부여잡은 할머니. 자연스럽게 ‘처음 뵙는 분들한테 말투가 그게 뭐야!’ 하면서 가볍게 내 등을 때려댄다.

 

“아....조부모 되셨구나잉....그라믄 저짝은...”

 

H를 가리키는 정글도 맨. H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저는 저 녀석 쌍ㄷ-”

 

“아, 삼촌이시구나!”

 

야비한 하관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네. 삼촌입니다.”

 

똥씹은 얼굴로 자신이 노안임을 인정하는 H.

 

“그러십니까잉. 아따, 그러시겄지요. 그른데....”

 

정글도 남이 미간을 구기며 소완을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그라믄 저년은 왜 혼자 생긴 게 다르답니까?” 

 

그러자 다른 두 명까지 총을 들어올려 우리를 향해 겨누었다. 노부부와 H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고, 소완은 어느새 내 옷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그...우리 손녀가 원체 요란하게 꾸미고 다니는 걸 좋아해서....”

 

할아버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둘러댄다. 거기에 H까지 가세하려는 듯, 손을 내리고 다가온 그가 내 얼굴을 딱 잡고 그들에게 들이밀었다.

 

“그것도 그런데, 우리 조카 얼굴 좀 보세요. 약간 외국 느낌 나죠? 얘네 둘 다 혼혈이라 얼굴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그래요.”

 

둘의 변호에도 정글도 맨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제가 슨생님들 말씀을 안 믿겠다는 건 아닌디.....혹시 모릉께 쪼까, 테스트를 해봐야 쓰겄습니다. 아야, 그 뭐냐, 채혈키트 갖고 있냐?”

 

...테스트라고? 채혈이라면 혈중 오리진 더스트 검사인가...좆됐다. 씨발.

 

“아, 형님. 그거 다 떨어진 지가 언젠데.”

 

“아. 그라냐....”

 

“뭐, 문제 없잖아요, 형님? 그냥 말로 해보면 되지. 그 에머슨 테스튼가 뭐시긴가 있잖수”

 

말? 무슨 말? 그리고 에머슨 테스트? 그게 뭐지?

 

의문을 입 밖으로 낼 틈도 없이, 정글도 맨이 헛기침을 한 두번 하더니 소완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한다.

 

“자, 범용코드 E-11. 명령이다잉. 일어나서, 손을 들고 네 뺨을 힘껏 때려라.”

 

....어 슈발.

 

이비와는 다르게, 태생적으로 입력된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완. 그녀가 바들대는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듯한 모양이었다. 소완은 체념한 듯 하나 남은 눈을 꾹 감았다. 그녀의 손이 놈의 지시대로 움직이려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면 소완은 자기 뺨을 때리게 될 거고, 

 

그 순간, 나는 마치 본능처럼 또라이 같은 짓을 저질러버렸다.

 

 

 

 

 


내 뺨에서 울리는 철썩 소리에 모두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소완까지도 당황했는지, 손을 멈추고는 내 쪽만 휘둥그레한 눈으로 바라 볼 뿐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있다.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도 기반은 인간. 걔들도 상식 밖의 무언가를 보면 하던 일이 뭐였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이다.

 

.....구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소완을 저지한 대가로 잔뜩 욱신거리는 뺨을 만지고 있으려니, 정글도 맨과 일행들이 눈에 띄게 당황한 게 보인다.

 

“...아니 그, 슨생님 보고 그란게 아닌디...”

 

“아....아니었어요? 총까지 겨누시길래 아까 일 땜에 화나셔서 그런 줄 알았지.”

 

내 천역덕스러운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놈들.

 

“....”

 

“아니, 뭐....어쨌든 쟤 가만히 있던 거 보셨죠? 당신네들 말대로 바이오로이드였으면 나보다 먼저 자기 싸대기를 쳤겠지. 이제 됐습니까?”

 

뭔가 미심쩍다는 얼굴이었지만, 정글도 맨과 일행들은 그럭저럭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정글도 맨은 잠시 후 나에게 한 가지를 더 물어왔다.

 

“근데, 슨상님, 동생분 옷차림은-”

 

“애가 코스프레 매니아라서요. 저 나이 먹고도 아직도 애들 만화나 보고 다니덥니다.”

 

“아....그라요?”

 

H의 설명에 마치 ‘이제야 설명이 되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선, 딱하다는 듯 소완을 바라보는 정글도맨과 일행들. ‘손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하는 말에, 노부부는 어색한 웃음으로 답했다.

 

이내 정글도맨과 사이비 일행들이 우리에게 손짓했다. 승합차에 타라는 듯한 제스쳐다.

 

“그라믄 이제 가십시다잉.”

 

“...가다니, 어딜 가자는 말인가?”

 

“어따, ‘성전’으로 모셔야 안 쓰겄습니까. 거긴 안전하당께요, 어르신.”

 

“저기...말씀 중에 죄송한데 우린 따로 갈 곳이-”

 

“따라오시라고 안혔소.”

 

그들이 우리에게 재차 총을 겨누었다.

 

“기왕 여까지 오셨는데 천제님은 뵙고 가야지.”

 

....산 넘어 산이구만.

 

 

...

...

...

 

 

놈들에게 떠밀려 승합차에 타기 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노트북 가방과 아까받은 팜플렛을 컨테이너 근처에 놓아두었다. 내가 짐을 두고 왔다고 지적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놈들은 아직까지도 소완을 쳐다보며 숙덕거리느라 바빴다.

 

“너네들은 이분들 모시고 먼저 가 있으라. 나는 여그서 다른 조들 기다려 볼랑께.”

 

다른 두 놈에게 지시하는 정글도 맨. 이제 와서 보니 이 버려진 컨테이너가 놈들의 이정표 역할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틈을 놓치지 않은 나는 힌트로 남겨 둔 팜플렛을 뒤로 하고 승합차에 올랐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내부로 들어가자, 옆자리에 있던 소완이 속삭였다.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뭘. 일단은 조심하자.”

 

곧 정글도 맨을 남겨둔 나머지 둘이 차에 올랐고, 이 낡은 승합차는 차체 곳곳을 덜덜덜 떨어대며 거친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 우리 이비가 보고 싶다. 

 

불길한 사이비 소굴로 끌려가면서, 나는 이비와 메이드들이 우릴 찾아내주기만을 빌고 또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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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길은 멀쩡했슴다. 철충도 전혀 보이지 않았슴다! 그러게 유미씨 보고 괜한 걱정이라고 말씀드렸지 말임다.

 

우리는 서둘러 주인님께 돌아갔슴다. 하치코는 벌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립다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었슴다. 바니 언니도 따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서방인 H님이 보고 싶으실 검다.

 

헤헤, 저도 얼른 주인님을 다시 보고 싶었지 말임다. 

 

좋은 소식을 전할 생각에 들떠 있었더니 벌써 다 왔슴다. 저는 큰 소리로 “주인니이이이임-!!!”하고 외치며 달려나갔슴다. 하치코도 제 뒤를 바짝 쫓아 달려오고 있었슴다.

 

이제 다 왔슴다, 여기 모서리만 돌면 주인님 얼굴이 보일 검다.

 

근데....아까까지 주인님이랑 다른 분들이 계시던 그 장소엔 전혀 다른 사람들만 있었지 말임다. 분명 아까까진 없던 트럭이랑 승용차도 있슴다. 게다가 몇몇 분들은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슴다. 그들이 우리 쪽을 멀뚱히 쳐다봤슴다.

 

“뭐여 시방.”

 

저분들은 누굼까? 

 

“흐미, 저거 마귀들 아니여? 저것들이 왜 여깄당가! 쏴! 쏘라고!”

 

얼굴에 마스크를 끼고 머리띠를 둘러멘 남자가 일어서서는 우리한테 산탄총을 겨눴슴다. 

 

“다치면 안돼요!”

 

그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하치코 씨가 앞으로 나서서 방패로 저를 가려줬슴다. 그 덕에 부상은 면했지 말임다.

 

그러자 남자는 산탄총 펌프를 당기면서 이렇게 말했슴다. 

 

“이런 쒸부럴, 아까 그놈들 마귀 오너들이 맞았으야!”

 

아까 그놈들? 

 

제 옆의 하치코는 이빨을 드러내며 놈들에게 으르렁 거리고 있슴다. 

 

“아저씨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뭐여, 너 그 노인네들 소유였냐! 새끼들이 구라를 깠구마잉!”

 

...어?

...어어?

  

......

 

 ...당신들, 주인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그 자가 재차 총구를 저와 하치코에게 겨누었습니다.

 

주인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그건 분명 저놈들의 소행이겠죠. 

 

머리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저는 눈을 돌려 놈들의 위치를 쫓았습니다. 네 명. 모두 무장하긴 했지만, 제 앞의 한 놈을 제외하면 모두 노닥거리다가 무기를 손에서 놓은 상태입니다.


좆같은 새끼들.

 





저는 몸을 낮추고 저 씨발놈의 다리에 7.62mm 탄 두 발을 박아주었습니다. 놈이 “끄아아악!”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고꾸라집니다. 

 

그러자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게 먼저 사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 한순간 어버버거리던 남은 놈들이 뒤늦게 무기를 집어 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죠. 제가 더 빨랐으니까요.

 

꼴에 머리를 굴려 자동차를 엄폐물로 삼으려던 두 놈은 그대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었습니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꼴을 보니 훈련조차 받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남은 한 놈은 급하게 장전 손잡이를 당기다가 기능 고장이 생겨 당황한 탓인지, 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어설픈 데다 의미도 없는 그 공격을 피한 저는, 백팩에 묶어 두었던 손도끼를 쥐고 놈의 머리를 쪼개 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구멍난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에서 꾸물대는 저 새끼 하나뿐이군요. 

 

순식간에 동료들이 죽어 나간 꼴을 본 녀석의 눈이 공포로 물들어갑니다. 

 

제 뒤에서는 총성을 들은 유미와 바니 언니가 황급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이비 언니....”

 

하치코도 있었군요. 땅바닥에 죽어 널브러진 쓰레기들과 저를 번갈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도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죽은 인간을 본 건 처음인가요? 아니면 사람을 죽인 자매를 본 게 처음이라서일까요?

 

하지만 당장은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주인님의 행방부터 알아내야 하니까요.

 

현장을 둘러보던 중, 시야 한구석에 주인님이 평소 들고 다니시던 랩탑 가방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혹시 모른다며 고집스레 챙기시던 물건이었죠.

 

가방 밑에는 무슨 전단지 같은 것이 깔려 있었습니다. ‘겨레의 성전 학회.’ 내용을 대강 훑어보니 바이오로이드에 반대하는 인간들의 조직인 것 같습니다. 

 

이로써 확실해졌습니다. 놈들이 주인님께 무슨 짓을 한 겁니다.

 

홀로 남아 부상을 입은 채 뒤로 기어가던 남자에게 다가가자,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너....너 뭐하는 년이야. 어떻게 사람을-”

 

 



“입 닫고 귀만 열어.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저는 놈에게로 총구를 향했습니다. 아까 다른 놈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을 보아 이 중에서는 우두머리 같으니, 분명 아는 것도 조금 있겠죠.

 

그러자 제 얼굴을 올려다 보던 놈의 시선이 제 손에 들린 손도끼로 옮겨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 이 새끼는 할 말을 신중히 골라야 할 겁니다. 토해내는 정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편하게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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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지요.


삽화 재탕이 좀 많기는 했지만, 힘겹게 써서 올려봅니당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진행이 느리네요 흑흑


그리고 이쁜 팬아트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많이 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