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일단 부사령관직을 맡긴 했는데 여전히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사령관이나 다른 오르카호 간부들이 맡고 있고 난 사소한 서류 업무나 소원수리같은 일만 담당하고 있다.


이유는 대충 짐작 간다. 사령관이 워커홀릭이여서 인 것도 있지만, 사실 난 공적때문에 이 직위 얻은거지 사령관처럼 능력이 있는 게 아니란 말씀. 그리고 겸사겸사 내가 사령관 자리에 못오르게 못 박으려는 거겠지.


뭐 나한테 일 안시켜주면 나야 땡큐지.

놀면서 밥값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의외로 꿀보직이었네 이거.


 

생각해보니 나랑 같은 계급인 라비아타도 일을 잘 안하는 편이지.

명령 떨어지면 군말없이 최전선으로 튀어나가긴 하는데 최근들어 라비아타를 출전시킬 정도의 전투가 없다보니 계속 자가격리중이다.


100년간 저항군을 이끈 짬밥이 있으니 나보다 실질적인 발언권이 높긴 한데, 정작 본인은 의견을 내는 일이 없고 사령관 말에 복종하기만 해서 나랑 라비아타는 미묘하게 비슷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데 난 오늘 간만에 사령관실로 소환됐다. 신년 행사 이벤트도 잘 마쳤는데 무슨 일이지.

설마 발렌타인이랑 날짜 겹치는거 알렸다고 핀잔 주려는 건 아니겠지...


(똑똑)

사령관아 나왔다.


사도 왔구나. 거기 앉아줘.


...사도? 뭔 소리냐?


아, 실수. 코헤이 교단에서 너한테 붙인 별명이야 그거.


코헤이에서?



*



아자젤님! 사령관 각하가 유일무이한 빛 아니었슴까? 두번째 인간인 부사령관님은 뭡니까?


그 분은 사도이십니다. 빛이 내린 시련을 훌륭히 이겨내어, 저 바깥에서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이끌고 빛의 품으로 돌아온 자이지요.



*



-라고 하더라.


시련이라.


...미안, 내가 그 내용 수정해볼까?


그냥 냅둬, 지들 경전에 설정출동하지 않게 알아서 재해석하는 걸로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그 종이뭉치는 뭐냐? 무슨 티켓같은데.


이건 그... 밀린 동침권이야.


 

엌ㅋㅋㅋㅋ 동침권이란 게 진짜로 있었구나. 대체 몇 장이나 쌓였길래 상자 하나를 다 채운거냐. 사령관 고생좀 해야겠네.


니 앞으로 온 거야.


 

...왜?


왜냐니, 널 따르는 애들이 100명이 넘는데. 니가 펙스에서 데려온 애들은 물론이고 오르카호 인원 중에서도 있고...


전자는 그렇다쳐도 후자는 뭔데.


네 업적 덕에 너도 나쁘지 않은 인간이라 보고 동침 희망하는 애들이 좀 생겼어. 뭣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오르카호 인원 전원의 성욕을 상대해주진 못해.


허.


어디... 익스프레스, 켈베로스, 엘븐, 바바리아나, 포츈... 


여기까진 다 펙스 애들이고, 나머지는...

브라우니, 브라우니, 레프리콘, 브라우니, 브라우니... 아스널? 얜 또 뭐야, 니 여자 아니냐?


서약은 안했어. 아스널 본인만 괜찮다면야...


내가 사양한다. 얘 동침권은 환불하던가 니가 담당하던가 해.


그 소문 때문에 그래?


무슨 소문? 평범한 남자가 밤에 천하의 아스널을 상대했다간 다음날 아침 미라로 발견된다는 얘기 말이냐?


그거야 뭐 당연히 과장된 소문 아니겠...




 

과장된 소문 맞지?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고.

이 참에 못박아두겠는데 오르카호 맴버 중에서 니 손이 잘 안닿는 애들은 그렇다쳐도 지휘관급 같은 고위개체는 니가 꽉 잡아둬라. 난 여기서 더 클 생각 없다.


...응. 유의해둘게.


그나저나 이 많은 동침권을 보니 기분이 참... 그동안 내쪽 애들 3명하고만 했는데 결국 이 날이 오고야 말았군.

나 좋다고 따라와주는 애들이 많은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것 같네.


나도 그 기분 알지.


이거 보여주려고 부른거야?


그것도 그렇지만, 용건이 하나 더 있어.

이번주부턴 너도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줘.


...내가? 왜?


왜냐니, 너 여기 부사령관이잖아. 지휘관들보다 높은 직급인데 당연히 회의에 와야지.


뭐 그렇긴 한데 굳이? 난 아무래도 백수가 적성에 맞는 거 같던데.


부사령관. 주인님의 면전에선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지키시죠?


에이 아냐아냐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봐줘.

그리고 격식 차리는 것보단 이렇게 말 놓는 게 더 좋기도 하고.


ㅋㅋ이 저항군 안에서 사령관한테 막말해도 되는 건 나밖에 없을겨


후우... 주인님한테 저 천박한 말투가 옮을까봐 걱정이네요.


니 천박한 성벽 옮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지 그러냐.


잠깐, 당신이 제 성벽을 어떻게 알고 있다는 겁니까?


니 취향이 변태마조인건 애저녁에 눈치깠어 이 여자야.

심지어 하치코도 알고있더라.


주인님. 저 인간 죽여도 되요?


에베벱ㅂ베ㅔ벱ㅂ


아하하... 리리스 니가 참아. 부사령관 너도 애 좀 그만 놀리고.


그러지 뭐. 리리스랑 투닥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할 일은 해야지.

나도 참석할테니 다음 회의 언제 열리는지나 알려줘.


30분 뒤에.


아니 이새끼가요?




(회의실)


그런 관계로 이제부터 부사령관도 지휘관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어.


그래 뭐 군사적 지식이나 식견은 쥐뿔도 없지만 계급이 계급인지라 일단 얼굴이나 비추러 와봤다.

그냥 얌전히 듣고만 있을게.


그럼 다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할게.


잠시만요 조또마떼

라비아타가 안 온거 같은데.


라비아타 통령은 왠만해선 군사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결과만 전해듣죠.


뭐야 그럼 나도 쨀래요. 니들끼리 알아서 진행하세요 빠셍


가긴 어딜가, 언젠가 너도 지휘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경험을 쌓아둬야지 부사령관.


여기 신들린 천재 지휘관이 있는데 내가 지휘를 왜 해


사실 그런 이유보단 네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고 있어.


?


뭘 잘못먹었나본데, 난 지휘관도 아니고 책략가는 더더욱 아니거든?


바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오메가를 두번이나 속이고 난민들을 구출해온 네 지혜를 빌리고싶어.


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잔머리 굴린 거 뿐이지 책략가가 아니에요 이 미친 인간아


아무튼 오메가 밑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조해서 우리에게 합류시키려는 작전을 짜는 중이야


무시하기냐.


아직 첩보부대를 보내지 않아 저쪽의 자세한 내부사정은 모르지만, 부사령관이 데려온 자들의 말에 의하면 오메가 휘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우리에게 합류하는 데 긍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건 그래. 오메가의 폭정에 억지로 따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대부분'이라는 건?


 

들리는 말로는 레모네이드 이외에도 진심으로 일곱 회장들을 따르는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 역겨운 인간들이 뭐가 좋다고 따르는거래?


 

정보통제와 역사왜곡의 결과물이겠지. 펙스에선 아미나 존스의 이름을 감추고 일곱 회장이 최후까지 인류를 위해 철충과 맞서 싸운 영웅이라고 포장해놨다던데?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그동안 계속 전역에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는 통신을 날렸는데, 그만한 정보통제를 하고있었다면 북미대륙 내엔 우리의 통신도 닿지 않았었겠군.


그러니 선전전으로 우리 존재를 저들에게 알리는 게 먼저야. 펙스의 수뇌부 외엔 우리를 아예 모르고 있을테니까.


이전과 같은 방법으론 안될테니, 실력있는 해킹 능력자가 북미 대륙 내에 침투해서 오메가의 전산망을 해킹한 뒤 우리를 알리는 통신을 퍼뜨려야 돼. 스카디를 보내면 될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스카디는 오메가가 해킹 걸어올 경우에 대비해 여길 지키고 있어야 되니 장기간 외근은 무리야.


스카디가 없는 동안 알파가 지키고 있는 건?


저도 전자전에는 자신있으니 주인님께서 시켜주신다면야 하겠지만, 행정업무와 전자전 대비를 병행하기에는...


그렇다고 알파를 보낼 수도 없지. 쟨 현장타입이 아니잖아.


아, 그렇지. 제 조수중에 이 임무에 제격인 아이가 있어요. 아직 오르카호에 합류하진 않았지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답니다.


그래? 누군지 나중에 알려줘. 그리고, 통신으론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을까. 전과 같이 오르카 저항군에 살아있는 인간이 있으니 합류하라-는 메시지면 될까?


 

인간이 있다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오메가한테 학대받으며 시달린 애들이니 여기 오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도 있어야지. 여긴 웃으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인식해야 확실하게 귀순할 마음이 들 거다.


메시지에 한줄 더 적으라고?


그런 거 말고, 이 오르카호에서 찍은 영상을 송출해. 말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냐.


그렇군. 어떤 영상이 좋을까?


얼마전의 신년 행사 기간동안 찍은 영상은 어떻습니까? 다들 즐거워했으니 말이죠. 영상 안에 각하의 건강한 모습과 저희들의 웃는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건 좀 심심하잖아. 뭔가 확 이목을 끌만한 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탈론허브에서 엄선한 영상을 보내도록 하지.


그런 종류의 이목 말고! 춤과 노래 같은 거!



춤과... 노래? 부사령관, 그게 무슨 뜬금없는...


(그 때 회의실 문이 덜컹 열리며 누군가 난입한다.)


사령관! 나 아이돌 할래!



...


아... 바빴어? 나 나중에 다시 올까?


슬레이프니르, 지금 중요한 회ㅇ-


저거면 되겠네.


...응?


어? 뭐야? 무슨 얘기야?


 

스카이나이츠, 오르카의 아이돌이 되어라!

프로젝트 오르카 이끼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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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끝


이걸로 1부는 완전히 끝났고, 아직 준비중이긴 한데 준비 끝나면 2부로 뇌절하겠음

2부는 이벤트 다 생략하고 9지역에서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