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박이물

늒내(124.50)




- 말해봐. 뭐때문에 불려왔지?


책임을 걸고 돌린 룰렛. 그곳에서 선택된 것은 레오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얼굴에 미안한 기색따위는 일절 없고 그대로 당당했다.


- 패전의 책임이겠지. 사령관.


- 너는 무리한 퇴각, 잘못된 염탐과 부적절한 명령으로 큰 손실을 입혔다.


레오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혹여나 갈라졌는지 손톱 끝만을 확인하고 있었고, 사령관도 그 태도에 대해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레오나는 눈을 돌렸다. 사령관의 옆에는 에이다가 서, 아니 떠있었다. 표정이 없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이들이는 것은 에이다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 이유로 레오나, 너는 1주일간 근신이다.


-할 말은 그게 끝이야?


- 그래, 수고했어.


레오나는 손톱 끝에서 찾아낸 티끌을 입으로 후 불었다.

그녀는 거만하게 어깨에 걸친 제복을 살랑살랑 흔들다가 사령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나중에 봐. 사령관. 에이다도. 내일 아침식사는 조금 특별한 걸 기대해도 괜찮지?


-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레오나.


사령관은 등을 돌리는 레오나에게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레오나가 보이지 않게되자 사령관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사령관은 인류가 건재하던 시절에 뱃사람이었다.

그의 선장은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날이 맑을때에는 망원경을 들고 저 멀리 땅을 한번 쳐다보다가 하품을 하고 술을 끼고 누웠다. 풍랑을 만나 선원 대여섯명이 떠내려갔을때도 안에서 잠만 자던 주제에 기어나와서 조타수의 뺨을 갈겼다. 이따위 바람에 배를 그모양으로 몰았냐며.

그는 선장이 싫었다. 닻을 거두는 것고 아니고 노를 젓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다에 나온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선주에게 채용된 머저리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구에서 물건을 전부 교환하고 배를 다시 돌렸을 때, 그는 알지 못했지만, 노련하다던 몇 뱃놈들은 어렴풋한 죽음을 느꼈다. 그들은 불상, 십자가 등등을 손에 쥐고 염을 외는 놈들도, 기도를 하는 놈들도 있었다. 배가 태풍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겁에 질린 선장을 처음 보았다. 모두들 압도적인 자연의 폭력 앞에 답을 갈구하는 눈으로 선장을 보았을 때 선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마디를 짜내었다.


- 술을 마셔라. 취한 채 죽는게 덜 고통스러울게다.


그는 먼젓번처럼 선장이 십자가나 잡고 있는 선원의 뺨을 날리고 조타수의 정강이를 걷어 차며 호된 욕설을 하길 바랐다. 저까짓 게 뭐가 무섭냐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죽는 것이 무서웠는가? 아니었다. 공포는 죽음의 부산물이었지만,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은 바로 그것, 공포 자체였다.


몇 년도 더 된 지금에서, 사령관은 그 선장을 이해했다.

그는 오르카를 쥐고, 철충이라는 압도적인 수의 폭력을 만났으며, 공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공포를 혼자 떠안았으며, 책임을 남한테 넘겼다.

멍청한 너네들이 죽을 쑤지 않았다면, 이번 전투는 이기고도 남았겠다. 라며.


그는 엎드려서 소리죽여 운다. 그 선장과는 달라서 공포는 오로지 그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이나 마셔라. 취한 채 죽는게 덜 고통스러울게다.






- 칸.


- 예. 앵거 오브 호드. 칸.


- 마리.


- 예. 스틸라인. 마리.


- 세이렌.


- 예. 호라이즌. 세이렌.


- 레오나.


- 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레오나.


- 메이.


- ... 응.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 메이.


- 그만 불러.


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메이의 따귀를 후려친 것에는 다른 이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세이렌이 놀란 듯 두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머지 인원들도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점호동안만이라도 관등성명, 존댓말을 하는게 그렇게 어렵나?


내가 너한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을 했냐는 말이야! 대답해 메이!


그녀는 일어나 뺨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으로 사령관을 흘겨보다가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 ... 예. 둠브링어. 메이.


그는 미안한 감정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저렇게 어린 아이를 때리다니. 당장이라도 감싸려 하는 손을 억지로 눌렀다.


- 한번만 더 이런 모습을 보여봐라. 그 때에는...


그는 말을 전부 잇지 못했다. 메이는 결국 눈물을 글썽이다가,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뒤돌아 사령관실에서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 메이...!


- 됐어. 회의나 진행해.


그녀를 부르는 세이렌을 사령관이 제지했다. 찡그린 표정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고 그는 회의를 재개했다.





- 오늘은 그래도 당신이 심했어.


- 쓸데 없는 말 할거면 돌아가 레오나.


눈을 감고 앉은 사령관 앞에 레오나가 마주앉았다.


- 저 애, 저래보여도 당신을 엄청 좋아하는 거 알아? 아까 지나다 메이 만났는데 미안하대. 괜히 이런걸로 당신한테 폐끼친건 아닌지 그거 먼저 물어보더라.


돌아선 사령관에 레오나가 다가서려 했다.


- 우리도 같이 고민해줄수...


- 돌아가라고 몇번 말해!


터져나오는 소리에 그녀는 작게 끄덕이고 사령관실을 나섰다.

레오나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그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 아직 그렇게까지 신경쓰이십니까?


에이다의 말에 그는 떫은 한숨을 늘어뜨렸다.


- 내가 배를 탔을 때의 선장은, 정말 미친놈이었을거야. 매일 이 지랄맞은 연기를 하면서 멀쩡할 리가 없지.


- 지휘관 급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이야기 해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 그녀석들한테 내가 뭐라고 해야할까? 다 죽을거라고? 말도 안되는 전력 차이에 가망 없는 싸움이라고? 천운이 따라서 이겨봤자 열 명 중 한 명이나 살아남는게 기적이라고? 나는, 그 때의 절망감을 잘 알아. 선장이 우린 다 죽을거라고 하던 그 때의 느낌을. 전선에 직접 나가는 대장들에게 그런 부담을 줄 수는 없어.


- 사령관의 혈압. 심박을 체크했습니다. 정상 수치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속될 경우 몸이 망가질 거라 예측됩니다.


- 그러니까, 망가지는건 나 하나면 돼. 굳이 다른 애들마저 이런걸 겪을 필요는 없어.


- 하지만...


- 그만, 에이다. 오늘 내가 할 일이나 정리해줘.


에이다는 멈춰섰다. 그녀의 머리칼에 달린 구체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 사령관 컴퓨터에 송신 완료했습니다.


그래. 그는 말했다. 공포를 잊자. 상념을 잊자.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는 업무에 취했다. 그의 선장이 술에 그랬던 것 처럼.





사령관은 밤이 되어서야 방을 나섰다. 복도를 따라 옅은 빛을 내는 등이 길을 밝혀주었고, 그는 그 끝에서 메이를 발견했다.

속이 답답하다. 미안한 감정이 테가 나지 않도록 그는 더 꼿꼿이 서서 걸었다. 둘이 스쳐지날 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메이였다.


- 미안해.


그는 멈춰섰다. 아니, 내가 미안해.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 됐어. 이번엔 없던 일로 할테니까.


- 저기... 화 많이났어?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걱정하는 메이를 안심시키려는 말이 나올까 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쭉 걸었다.





사령관 방의 첫번째 서랍. 유일하게 열쇠로 잠겨있는 그 안에 든 것은 기밀문서도, 혹시모를 사태에 대비한 호신용 무기도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레 그 귀중한 것을 꺼냈다.


- 럼주로군요.


에이다가 말했다. 그는 컵도 쓰지 않고 그것을 벌컥대며 마셨다.


- 에이다, 그거 알아?


- 말씀을 해주시면 어떤 정보인지 확인하겠습니다.


- 대장들말이야, 대부분 나를 좋아한다?


- 그 판단은 사실에 더 가깝군요.


- 근데, 나는. 그중에 누구도 안을 수가 없어. 내가 누군가를 안으면, 몸을 섞으면, 사랑을 속삭이면, 그래서 연인이 되면, 동등해지면.

누군가는 내 짐을 덜어받고 누군가는 똑같이 나처럼 고통스러워 하겠지?

그리고 덧붙였다.


- 교감없이 갖는 행위는 강간이랑 다를 바 없지. 교감이라...


그는 실성한 듯 한 웃음 치곤 꽤나 점잖은 소리를 내었다.


에이다는 계산한다. 어떠한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그래서 그녀는 침묵했다.


- 에이다. 관등성명.


- 예. 독립형 인공 지성체. 에이다 Type G.


- 관등성명!


- 독립형 인공 지성체. 에이다 Type G.


사령관은 풀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너는 사람이 아니지?


- 물론입니다.


- 철충에 대해 공포를 느끼나?


- 아닙니다.


- 에이다. 너는 벽이다.


그는 소리질렀다.


- 문 닫고 방음셔터 내려. 오늘 본 일에 대해서는 함구해라!


- 알겠습니다.


에이다는 얼굴을 돌렸다. 셔터가 내려가고, 벽이 오돌토돌한 철제 막으로 덮어씌워졌다. 사령관은 에이다를 잡고 목놓아 울었다.


무서워 에이다.


예 사령관.


왜 하필 내가 사령관일까?


당신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하고 있을까?


좋다고 평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밤 내내 에이다에게 설움을 토했다.


그녀는 자신의 언어모듈 내에서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는 단어를 찾는데 온 힘을 다했다. 마침내 사령관이 잠들었을 때, 에이다는 사령관의 상태가 꽤나 좋아졌음을 확인했다.

그녀의 연산회로가 다시 열을 냈다.

그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도록 싫어하는 것은 그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다른 이에게 겪게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혼자 안고 속을 썩인다. 다시 생각한다.

방금 일련의 행동이 사령관에게 필요한가?

이 행동이 장기적으로 전쟁의 승리에 일조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녀는 사령관을 침대에 옮겼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공방을 찾았다. 그녀의 사고 내에서 최선의 행동을 하기 위해.



저녁 점호까지 끝낸 상태에서 사령관은 한결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 맑아진 정신에서 사령관은 어제의 추태를 떠올렸고 부끄러움에 에이다를 쳐다보았다.


- 에이다, 혹시 어제 일은 메모리에서 지워줄 수 있겠어?


- 죄송합니다만 사령관. 유용한 표본이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 그... 그래도,


- 사령관. 피로가 쌓이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레 화제를 꺼내는 에이다에 사령관은 당황했다. 그녀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 아니, 괜찮아.


- 어제 사령관이 잘 때, 기체를 개조했습니다.


그녀는 빛이 반사될정도로 매끈한 손을 하반신을 향했다.


- 인간의 몸과 비슷할 거라 예측됩니다.


그녀는 다리를 들어 하반신을 보였다.


조금의 수치심도 없이 교태를 부리는 포즈에 사령관은 당황했다. 바이오로이드들도 아닌 에이다가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 에이다? 고장난거 아니지?


- 어제의 일에서 학습했습니다. 사령관은 어제 속내를 털어놓고 눈에 띌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불가결한 일이기에 기능을 추가하였습니다.


- 아니, 잠깐 그래도...


미동조차 없는 모습은 마네킹같아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 사령관. 저는 AGS입니다. 공포를 느끼지 않고, 당신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마음껏 속을 털어내셔도 됩니다.


그는 홀린듯 에이다에게 다가갔다.


검은 광택으로 둘러쌓여있는 몸체에 손을 뻗었다. 하룻밤 새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 촉감이 있었고 정말 인간의 몸과 흡사했다. 그는  에이다의 가슴을 만졌다.


- 신음소리같은게 필요하시다면, 모듈을 추가해놓겠습니다.


- 아냐, 됐어.


그는 에이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정은 없었다. 거기에는 감정도 없었다.

그녀와 입을 맞출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하의를 벗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위기구. 하다 하다 AGS에게 성욕을 푸는 병신. 감정 없는 관계. 그는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 사령관?


그녀는 아랑곳않았다. 사령관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짐을 내려놓을 곳이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렸다.


- 어서요.


그는 눈물이 아른거릴듯 했다. 그가 고대하던 것은 이런것이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안을 수 없다. 자신과 고통을 나눠가질테니까.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편안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최고지 않은가?

그는 중얼거렸다. 선장이 제정신이었을 리 없지.

나도 마찬가지고.


그는 체신같은 것을 전부 벗어던지고 에이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들리는 것은 심장의 박동이 아닌 팬이 돌아가는 소리.

컴퓨터의 작동음이었다. 그는 에이다의 가슴을 쥔다. 그녀는 사령관을 품는다.

사령관이 그녀를 안았다. 그는 금속같아보이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하반신을 마찰시켰다. 그것이 빚어내는 소리는 살갗이 살갗을 물고 늘어지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령관이 에이다를 찔러내는 그 한 움직임마다 에이다의 다리도 움찔거렸다. 급히 바꾼 표피의 재질때문에 완충작용이 완벽하지 않았다. 다리의 구동부에 유의미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 에이다.


그는 망연히 이름을 부른다. 스쿼시라고 테니스의 기분을 내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에이다에게 입을 맞출 수는 없기에 그는 양껏 에이다를 끌어안았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를 안았다.

둘은 떨어질 줄은 몰랐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거리를 두는 것은 서로의 단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립다 느끼는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달라붙었다.


그녀의 팬이 거세게 돌았다. 마찰열때문인지 체온때문인지 내부의 온도가 점진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사령관을 안은 채 그의 상태를 측정해본다. 혈액, 스트레스, 심박. 여러가지를 체크해본 결과,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이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을 내리려 하는 때에 사령관이 말을 걸었다.


- 에이다, 이제...


- 괜찮습니다.


그는 갓 깨어난 아기처럼 움찔거렸다.





흥분이 가신 지금, 돌아오는 맥박과 체온. 그럼에도 꽤나 줄어든 듯 보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그녀는 사령관의 상태를 그래프로 도출했다. 종합적으로 괜찮은 듯 보였지만 점차 감정선이 불안정해지자 그녀는 사령관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 너한테 이런 짓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좀...


그녀의 연산용 구체가 회전했다. 그의 말 뜻을 이해하려는 일련의 사고 후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 결론을 내렸다. 조금 더 사람여성을 닮아가야 한다. 그녀는 사령관이 잠든 사이에 다시 모듈을 수정하러 나섰다.


어떻게 보면, 오늘은 별 탈 없이 넘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에게 인격적인 독설을 하기는 했지만, 어제처럼 따귀를 날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만 하루를 돌아보며 그는 부담을 가졌다.

그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드려는 그는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에이다가 그를 품에 묻었다.


- 어제처럼 털어놓으십시오. 짐을 나눠받겠습니다.


그는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사령관은 아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르카 호 안에 유일하게 안을 수 있는 대상이면서,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그녀이고, 그 이유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간의 준비 후에 사령관은 무언가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 저기 에이다,


머뭇거리던 그는 에이다에게 사람같은 체위를 요구했다.


-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침대에 엎드렸다.

그녀 다리 사이의 좁은 틈새를 사령관의 남근이 비집고 들어가자 에이다의 내장스피커에서 긴 신음이 뿜어져나왔다.

놀란 사령관이 물었다.


- 에이다?


- 언어모듈을 추가할 때에 같이 등록한 기능입니다.


- 그래도 이건...


-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이후의 쾌락에 그런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에이다의 굳어있던 머리칼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뱀처럼 움직이다 부드럽게 사령관을 감쌌다.


- 몇가지 실험해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사령관을 들어올렸다. 그녀 자신도 그를 따라 떠올랐다.

아무것도 두 사람에게 걸리적거리는 것은 없다. 침대도, 벽도, 서랍도. 손을 휘저어서 닿는것은 오로지 그녀, 혹은 그 뿐이다. 그는 표정없는 에이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공중에 누웠다. 에이다는 사령관을 잡고 당겨오거나, 아니면 밀어냈다.

에이다는 자신의 다리의 그 틈, 사령관을 받아들이기 위한 그 포트에 사령관을 끼워맞췄다. 그의 단자만이 에이다와 연결되어있었다.

그 위에서는 에이다만이 모든것을 통제했다. 삽입의 속도부터 깊이, 체위마저.

사령관의 몸의 흥분까지도 알 수 있는 그녀는 그의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절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면 그녀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몸을 부볐다. 반대로, 그가 진정된 것 같으면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구동부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진동을 일으키고, 전류를 약하게 흘려보냈으며 그의 집중을 흐트러트릴 다른 요인을 차단했다.

이윽고, 최대한 늦장을 부린 레이스에서 도착지점에 닿았다. 성대하기까지 한 분출이었다.


점액을 쏟아낸 사령관의 상태를 읽는다.

그는 만족했는가? 에이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만족할 수 있는가?

에이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감싸안은 그를 침대에 뉘였다.

그 위에 다소곳이 선 에이다의 다리를 타고 흘러 내리는 탁한 점액은 사령관에게 배덕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사령관의 머리 옆에 손을 짚었다. 아주 천천히 하반신을 떨어트린다. 인간과의 도킹.

사령관과의 교점이 넓어질수록, 그녀에게서 날카로운 비명같은 교성이 길게 늘어졌다.


- 에이다, 소리가...


- 괜찮습니다. 방음 셔터는 내려두었습니다.

걱정 마시고 털어내십시오.



그녀는 사령관의 손을 맞잡았다.

사령관도 참고있었는지 목놓아 헐떡이는 소리를 뱉었다.


.

일전과 같이 힘을 쏟아낸 사령관은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다.


- 내 지휘가 과연 최선일까?


- 당신은 잘 하고 있습니다.


그는 헛웃음을 뱉었다.


- 이번에 추가한 언어 모듈이야? 추상적인 말도 할 수 있네.

- 더 인간같은 편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는 그대로 에이다에게 안겨서 눈을 감았다.

그가 조용해지자 그녀는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쓸어내렸다?

그녀는 이 이상행동에 대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떤 의미로 한 행동이지? 그녀의 연산용 구체가 빠르게 굴렀다.

그녀는 여러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판별해나갔다. 그리고 다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한번의 손길. 거기에서 발견되는 특이사항을 찾았다. 다시 한번의 손길. 그녀의 손이 그에게 닿을 때마다, 그녀의 회로에 부하가 걸렸다. 확실한 것은 그녀는 그것이 좋았다.

그게 더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좋다 는 것이 뭐지? 에이다는 손을 멈추고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오류가 생겼다. 표정이 없는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며 멈춰있었다. 그녀가 작동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은 서둘러 돌고있는 그녀의 머리의 연산용 구체 뿐이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다.

이것은 들키면 안된다. 이러한 오류가 알려지면, 사령관의 곁에 있을 수 없다.



- 이번 욕받이는 누구지?


칸의 물음에 그는 지도를 훑어보았다. 당연한 패전. 그녀들에게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명목뿐인 징계와 구실뿐인 출전. 목적은 승리가 아닌 탐색과 최소한의 피해만을 동반한 퇴각.



- 이번엔 스틸라인.


- 마리군.


칸은 사령관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다시 말을 이었다.


- 사령관.


- 왜?


- 당신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때, 그러니까. 당연한 패전에서 사기를, 뭐 그리고 위계질서를 위해 대외적으로 욕받이를 우리에게 맡긴다고 했을때, 솔직히 기뻤다. 만약 당신 혼자 안고간다며 책임을 당신앞으로 돌린다면 애송이가 잘난 체 한다며 싫어했겠지.


그런데, 이제와서는 그럴 때가 있다. 아직도 당신만이 큰 책임을 안고있는게 아닌가 싶은. 아직도 우리들을 어린 애 취급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야. 우리는 당신 생각보다 강하다. 나눠 짊어진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 고마워 칸.


사령관이 칸의 말을 끊었다.


- 그래서, 진심은 어느정도야? 너를 안아달라는 뜻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만약 생각이 있다면...


- 칸. 사령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닙니다.


갑작스레 끼어든 에이다의 말에 칸은 적잖이 당황했다.


- 이유는?


- 그가 내린 판단이 좋은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계속해보라는 듯 에이다를 응시했다.


- 당신들이 안고있는 부담은 전장에서의 부담도 있겠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할 당신들이 더 큰 부담을 안는다는 것은 권장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 일리 있다. 그런데 사령관?


그가 칸과 눈을 마주쳤다.


- 언제부터 에이다가 옳은 판단이 아닌 좋은 판단이라는 말을 쓰게된거지?


- 얼마전에 언어모듈을 업그레이드 했다더라. 나도 잘은 모르겠어.


- 그런가, 뭐 알겠다. 오늘은 지휘관들끼리 동석 식사가 있으니 늦지 말도록.


칸은 대답도 듣지 않고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사령관은 잠시 생각하려는 듯 의자에 풀썩 쓰러졌다.

에이다는 이상을 감지했다. 칸이 사령관과의 대화도중에도 부하가 느껴졌다. 오류. 그것인가보다 생각했다.

위험하다. 그녀는 되뇌였다.

그녀는 행동원리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했다.

자신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어야한다.

그렇기에 사령관에게 도움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그와 몸을 섞는다. 푸념을 받아들인다.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모듈을 업그레이드 한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오류를 들키지 않는다. 않아야 한다.




에이다는 사령관과 몸을 섞었다. 그를 안고, 밀착해서 서로의 허리만을 움직였다

마찰로 인한 발열이 있고 부하가 그녀의 몸에 걸렸지만 그녀는 그것이 좋다. 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 행동원리에서 우선시되었는데도 에이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몰랐다.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 에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너랑 관계를 갖는데에 자괴감같은것도 있고, 거부감도 있었는데.


그녀는 곧대로 그의 말을 들었다.


- 솔직히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


저도 그렇습니다. 사령관. 말이 나오려는걸 힘겹게 참아냈다. 사령관은 눈을 감고있었다.

그녀는 그를 꼭 안으려는 것을 억눌렀다.

채 그의 살갗에 닿지 못하는 팔이 그의 몸 앞에서 부들거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것은 좋지 않다. 고.




이른아침부터 사령관은 출정할 준비를 하고있었다. 마리가 전투를 벌일 지역은 좋게 말하면 적의 심장부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트릭스터의 홈그라운드였다.

그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정찰만이라도 끝낸다면, 그래도 한시름 덜 수 있다. 그러기 위한 본인의 출정이고 가장 규모가 큰 마리의 본대가 움직이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 잘 될까... 걱정스럽네.


- 당신이라면 가능할겁니다.


에이다는 말을 마치자 마자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사령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 언어모듈의 뭘 업그레이드 한거야? 토모한테도 달아줘야겠는데.


그는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쌍안경을 챙겼다.

바로 앞의 마리와 합류해 물 밖으로 부대를 이동시켰다.

산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연구소에는, 트릭스터가 매복해있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주변일대가 대부분 고지대로 뒤덮인 분지라서 포위공격을 하기에 적합하다 판단되었고, 마리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치 않았다.


- 에이다. 저 안에 트릭스터가 있을까?


- 저 안까지 신호가 닿지 않습니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쌍안경을 통해 근처를 둘러보았다. 마리가 병력을 통솔하고, 수십 조의 레프리콘들이 돌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리의 수신호에 집중하던 그녀들은 마리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고글을 쓰고 돌격했다.


그녀들이 한 실수는 크지 않았다.

첫번째로, 철충과 바이오로이드의 수를 비교하면 철충의 수가 월등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그 연구실 땅 아래에 월등한 철충들의 수에 비해서도 무시못할 규모의 철충들이 있으리라고 상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땅을 비집고 올라온 철충들은 마리의 부대원 수를 가볍게 상회했고, 포위당한 것은 역으로 마리의 부대였다.


- 모두 후퇴!


마리는 지러 나온전투였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른 퇴각은 힘들었을테니까.


- 다들 화망에서 벗어나세요.


레프리콘들의 우렁찬 외침은 겹겹이 쌓여 알아듣지도 못할정도였지만, 대개의 레프리콘이 하는 말은 같았기에, 소통에 혼선은 없었다.


그저 한 분대를 제외하고는.




748번 레프리콘의 분대는 돌격조의 선봉이었다. 그녀들은 연구실의 문으로 들어갈 때 즈음에 땅에서 기어올라오는 철충들을 보았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수. 고개를 양껏 돌려도 다 보이지 않는 적의 규모에 직감으로 느꼈다. 우리는 살아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총을 든 손을 떨궜다. 총구가 땅에 닿기 전에, 레프리콘은 가까스로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눈두덩에 눈물이 고인 채로 소리질렀다.


- 브라우니! 전부 연구실 안으로 돌격하세요!


- 저녀석들 뭐하는 거야!


능선 위에있던 사령관이 벌떡 일어났다.


- 앉으십시오.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브라우니, 레프리콘은 생각했다. 최소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목숨이 되자고.

연구실의 문을 열자마자 선봉의 브라우니는 배에 총탄이 박혔다. 쓰러지는 브라우니를 뒤로하고 나머지 분대원들이 돌격했다. 문이 닫히고 4분도 지나지 않아서, 748번 레프리콘의 분대에서 보내온 파일이 마리에게 도착했다. 그 직후, 연구실 안에서 들어간 인원 수만큼의 총성이 들려왔다.

사령관은 실성한 듯 연구실을 향해 달려들었다.


- 안됩니다. 사령관.


에이다는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대부분의 철충은 후퇴하며 사격하는 마리의 분대를 쫓았다. 점점 뒤로 밀려날수록, 그녀들은 포위당하고 있었다.





사령관은 문 앞에 쓰러진 브라우니를 보았다. 애써 눈을 돌리고 연구실의 문을 열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레프리콘이 눈에 들어왔다.


- 레프리콘!


그는 달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머리가 힘없이 쳐졌다. 이미 동공이 열려있었다.

그는 그녀들 앞에 주저앉았다.

그는 뱃사람이던 때의 선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술이나 마셔라. 취한 채 죽는게 덜 고통스러울게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아는 공포. 사령관이 그렇게 다른이들에게 지우고싶지 않았던...

그는 울듯 주저앉았다.


- 아... 아....!


눈이 풀릴 듯 괴성을 내뿜는 사령관을 에이다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습이 좋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 사령관.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앞에 앉았다.


- 괜찮아요. 사령관.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그를 감싸안았다.


- 책임을 느끼지 말아요.


사령관은 놀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 에이...다?


아, 그녀는 실수했다. 그녀의 연산용 구체가 빠르게 돌았다. 이것은 들킬 수 밖에 없다. 오류로 인해 자신이 인간마냥 사고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그 공포를 나와 나누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는...

그녀는 멍하니 서있었다. 가장 싫은 것은 이제 더이상 사령관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더는 그가 자신을 안을 수 없다. 아니,

자신은 더이상 사령관을 안을 수 없다.


경직된 그녀의 몸이 곧 행동을 취했다. 그녀는 사령관이 빗겨맞도록 공격했다. 일부러 정상이 아닌 척 팬을 빠르게 돌리고 전류를 많이 내뿜었다.


- 시스템, 불량. 수복이 요구됩니다.


그녀는 엉거주춤하게 손을 뻗은 사령관에게서 빠르게 도망쳤다. 모든 것은 순전히 오류여야 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그저 일시적인 오류다.

그녀는 사령관을 떠났다.



연구실을 나서서 조그마한 숲을 지나면, 말라버린 호숫가가 있었다.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그 가운데에는 에이다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비상용으로 지니던 출력강화장치를 장착했다.

나는 고장난 것이다. 그런 것으로 되어야 한다.

그녀는 돌이켰다.

컴퓨터에 부하가 너무 걸려온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슬픔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신이 슬픈 줄도 모르고 현재의 부하가 걸리는 상태의 정의를 찾고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녀는 연산용 구체를 들어올렸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그래.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그 말뜻을 비로소 이해했다.

그녀는 망연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 광학위성포 가동 시작.


에이다는 그사람이 희망을 가졌으면 했다.


14%


그렇기에 이것은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던 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29%


희망.


43%




마리의 부대를 추격하던 철충들은 어느새 그녀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빗발치도록 사격하던 철충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며 먼 곳으로 센서를 돌리자, 노움은 콘크리트를 보강했다. 가까스로 노움의 콘크리트가 견뎌낼 수 있는 선에서의 사격이었다.

철충들은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그러다 아주 빠른 속도로. 포위하던 이들 뿐만이 아닌 근처에 매복중이던 철충들도 무언가에 홀린 듯 뛰어나갔다.


- 무슨 일이지?


마리는 한 숨 돌리면서도 의아해했다.





에이다는 자신의 연산용 구를 품에 안았다.

그것은 에이다 라는 기체의 생체 코어같은 역할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철충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던 이유였다. 그녀의 몸은 두번째 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체 모듈을 잃은 그녀를 향해, AGS의 중앙 관제인 그녀의 기체를 감염시키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철충들이 그녀를 향해 달라들었다.


57%


그녀는 자신에게 짐을 지웠다고 그가 슬퍼하지 않길 바랐다.

럼주를 빌어 누구에게 한탄할 일도, 쓸데 없이 여려서 아무도 없을 때 책상에 머리를 박고 혼자 소리죽여 울지 않길 바랐다.


71%


인간은 오류덩어리이다.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없고, 불안정하다.

그녀는 몸소 느꼈다.


89%


- 이런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사령관이 보고싶었다. 그냥 딱 한번만.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자신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사령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에이다에게 눈물이란 기능은 없었다.


100%


에이다의 머리 위로 굵은 빛줄기가 떨어졌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주위의 철충들을 없애버리기에 충분한 강도였다.


- 울지말아요. 사령관.




- 칸.


- 예. 앵거 오브 호드. 칸.


- 마리.


- 예. 스틸라인. 마리.


- 세이렌.


- 예. 호라이즌. 세이렌.


- 레오나.


- 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레오나.


- 메이.


- 예. 둠브링어. 메이.


그는 한숨을 한번 삼켰다. 그녀들을 죽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 솔직하게 말할게. 여태, 철충과의 전투에서 우리한테 승기는 없었어.


그녀들은 놀랐으나, 어느정도 덤덤히 받아들였다. 혹시 그렇지 않을까 지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 그런데 지금은 아냐. 트릭스터는 죽었고, 말도 안되게 밀집되어있던 철충들은 죄다 정리됐어. 연구실의 적들은 문자 그대로 전멸했고, 철충들은 전술용어로써의 전멸상태야. 748번 레프리콘이 얻어온 파일도 포츈하고 닥터가 분석하고있어.

AGS들의 명령권도 지금은 나한테 있어.

AGS의 협조와 합동작전도 이젠 더 발빠르게 돌아가게 될거야.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 전황은 우리가 우세해.

그래서 이젠 지러 나갈 일도, 욕받이를 세울 일도 없을거야.


- 저기, 사령관님. 그럼...


조심스레 말을 꺼낸 세이렌 앞에서 사령관은 웃었다. 지휘관들 앞에서 웃어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그녀들도 당황했다.


- 오랜만에 쉬면서 정비나 하자.


그녀들도 표정으로 내색지는 않았지만 기쁜 것이 보였다. 근래 사령관은 표정이 없어도 어느정도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 그리고, 새로 부관을 뽑으려고 하는데...


다른 지휘관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를 쳐다보는 시선에 그는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 아니, 이 이야기는 내일 점호때 하자. 다들 그만 돌아가.

그녀들은 쫓겨나듯 사령관실을 나섰다.


쉬는 날이라... 그는 괜찮겠지 싶어서 자신의 소중한 럼주를 다시금 꺼낸다.


- 선장님, 죽지 않는 고통에는 술이 듣지 않습니까?


그는 허공을 보며 말을 걸었다. 혼자 거나하게 한모금 들이키고,

사령관은 끅끅대며 울었다.

그는 에이다를 떠올린다. 내가 에이다를 죽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안았을 때, 그녀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때. 한번이라도 그녀가 어떻게 느낄지 생각했었나?


사령관은 아파했다. 심장이 걸레짝이 되도록 얻어 터지는 것 같았다. 에이다에게 다른 것들을 털어놓기 전보다도 통증이 격했다.

울지 말아요 사령관.

그는 에이다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남은 럼주를 목에 쑤셔넣는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낄낄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