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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3번째 생일의 뒤풀이.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며 논다.


나도 거기서 섞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는 녀석들만 수십.


만나는 녀석들마다 러브샷을 요청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런 고통 이상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나도,

다른 바이오오이드들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한 인원들도 있었는데,

당장 오르카호에 있는 모든 인원은 다 참여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령관."

"응~ 더치걸. 와, 옷 예쁘네. 잘 어울려."


내 칭찬에도 더치걸은 반응하지 않고 출구 쪽을 바라봤다.


"혹시 키르케랑도 만났어? 여기서?"

"어... 아직 못 만났던가? 응, 못 만났것 같은데. 왜?"

"...키르케도 좀 챙겨줘."

"당연하지! 내가 키르케만 빼고 놀 리가 있나."

"방금 술병만 챙겨서 나갔어."

"아..."

"미안해, 즐거운 파티인데..."

"아니야, 더치걸. 아니야."


난 진심으로 말했다.


"모두가 행복해져야지. 정말 잘 말해줬어, 고마워."

"응..."

"이제 가서 다른 애들이랑 놀아. 키르케는 나한테 맡기고."

"응."


더치걸은 잔잔한 미소로 회답했다.


'또인가.'


키르케는 항상 혼자서만 술을 마셨다.

가끔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술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내가 보는 앞에서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나는 키르케를 찾아간다.






똑똑.

문에 노크하고 키르케를 불렀다.

항상 키르케가 숨어서 술을 마시는 창고였다.


"키르케. 안에 있어?"

"딸꾹."


대답 대신 들려오는 딸꾹질 소리.


"키르케?"

"녜?! 저 안 졸았어요....!"

"혹시 들어가도 될까?"

"아, 아뇨!"

"...취했어?"

"아니야! 나.. 아직 안 취했어.. 우웅...."


하하.

나는 작게 웃었다.


"키르케랑도 같이 한 잔 하고 싶어서 왔는데. 들어가도 돼?"

"아, 안 돼요!"


이건 부끄러움에 외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키르케도 자신의 반응이 과했음을 깨달았는지 이어서 말한다.


"저, 저랑 같이 마시면 죽을 지도 몰라요~?"

"나 이제 술 꽤 잘 마시는데, 키르케가 나한테 질 걸?"

"...사령관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문 바로 너머로 온 것 같았다.


"응."

"더치걸이 절 봐 달라고 부탁했나요?"

"아니."

"에~ 거짓말."

"....네가 혼자 나가는 걸 봤다고 해서."

"후후후."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문 너머에 있는 키르케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을까.


"키르케. 아직 이유를 알려주진 않는 거야?"

"죄송해요, 사령관님."

"아니야. 준비가 덜 됐다면 어쩔 수 없지."

"아뇨."


키르케가 단호하게 말했다.


"준비가 덜 됐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면?"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있는 법이랍니다."

"난 없는데?"

"이제 3살된 아기가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앞으로 차차 생기실 거예요."


능숙한 말.

매번 이런 식이었다.

나는 키르케의 말솜씨를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템포에 말려버린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답니다. 그래..

테마파크의 진실을 알아버리셨을 때처럼요."

"....."

"사령관님."

"응."

"저는 언제나 사령관님을 사랑해요, 그것만 알아주시면 전 만족해요."

"나도.. 키르케를 사랑해. 그래서 더욱..."

"어른의 사랑은 거리를 벌려야 더욱 빛날 때도 있는 법이에요."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응.... 푹 쉬어. 술 부족하면 언제든 말하고."

"네. 생일 축하드려요, 사령관님."


그러나.

나는 이대로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므네모시네."

"예. 관리자님."

"기록을 보고 싶어."

"어떤 기록을 말씀이십니까?"

"테마파크."

"..."

"그 중에서도 깊은 곳에 보관된, 비공식 문서를."


그런 문서가 있다.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 문서들이 파묻혀 있는.


나는 지금까지 그것들을 모르는 척해왔다.

너무 파고들면 안 되는 것도 있다는 키르케의 말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것은 경우가 달랐다.


'키르케는 내 가족이고, 오르카호의 가족이야.'


가족이 괴로워한다면 그 괴로움을 덜어내주고 싶었다.

나는 사령관으로써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관리자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본 개체의 판단에 따르면, 비공식 문서를 읽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봐야해.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나는 방주의 방대한 기록 중.

키르케와 관련된 것을 찾아 떠돌았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C구역의 비공식 문서.

해당 문서는 공식으로 인정된 문서가 아니다.

때문에 어떤 이름도 없고, 어떤 번호도 없다.


이 문서를 파기하는 것은 관리자의 선택이고,

이 문서를 보관하는 것 역시 관리자의 선택이다.]


그런 문구를 지나, 나는 키르케의 정보를 찾았다.


예상했지만, 당연히 C구역과 관련된 일이었다.


[키르케에 대한 불확실한 진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읽어간다.


내용은 이러했다.


테마파크는 바이오로이드를 위한 테마파크가 아닌,

악취미를 가진 인간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폐기될 바이오로이드들을 가지고 놀았고,

무참히 살해했다.


키르케는 그곳의 관리와 운영을 도맡았고,

인간의 추악하고 뒤틀린 살욕과 성욕을 매일 보았다.

그러면서 키르케는 점점 지쳐갔다.


일이 터진 것은 철충이 지구를 침공한 날이었다.


그날도 테마파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고,

그날, 철충과 싸우던 키르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과 철충의 뇌파가 유사하구나.'


C구역에서 나날이 미쳐가던 키르케는.

술을 있는대로 들이켜 일부로 오류를 일으켰고,


그곳에 있던 모든 '철충'을 죽였다.


"...."


기록을 모두 읽은 나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러면 키르케가 술을 계속 마시는 이유는...'


키르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죽인 게 무엇인지.


또, 나랑 같이 마시지 않는 이유 역시.


'그 말이 진짜였나.'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


키르케는 처음부터 거짓없이 날 대해줬었다.






그 뒤, 나는 닥터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응, 조금 위험하긴 해도 오빠 부탁이라면...

오빠가 절대 나쁜 의도로 그런 부탁을 한 건 아닐 테니까. 당연히 할 수 있지!"

"고마워."


닥터의 허락을 받은 후, 나는 키르케를 찾아갔다.


더치걸이 협력해줬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키르케를 안 취한 상태로 창고로 꾀어냈고,

난 둘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무렵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키르케가 종종 몰래 술을 마시던 창고였다.


"이런... 그렇게 제가 보고 싶으셨어요, 사령관님?"


속았음을 깨달았을 때도 키르케는 여유가 넘쳤다.


"응."

"좋아요. 오늘 만큼은 속아드릴게요. 오랜만에 얼굴도 뵐 겸."


더치걸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나는 키르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이 흘렀다.


"....이대로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건가요?"


나는 키르케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게 처음이라 그런지,

키르케는 웃고 있지만 긴 침묵에 동요하고 있었다.


"만약에. 키르케, 정말 만약에..."

"네?"

"아픈 기억과 죄책감을 덮어씌우려는 술이 아닌,

행복해지기 위한 술을 마실 방법이 있다면 어쩔래?"


키르케가 술을 계속 마시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치걸들과의 일로 생긴 죄책감을 잊기 위해.

또 하나는...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다.'라는 원칙을 무시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잊기 위해.


그건 회로 깊은 곳에 새겨진 본능이기에,

한 번 그것을 거스르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키르케의 잘못이 아님에도.

난 그 일이 키르케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글쎄요."


키르케는 내 눈을 피하고 말을 잇는다.


"그런 방법이 있다 한들...

기억만 사라질 뿐 제가 실제로 지은 죄는 남아 있는 거 아닐까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지."


나는 한 마디 덧붙인다.


"존재하지 않는 기록조차도 사라진다면... 말이야."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을까요. '존재하지 않는 자들'조차 여전히 존재하는데."


역시... 키르케의 말솜씨는 대단했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고 물어붙인다.


이론에서 조금 밀려도 상관없었다.

막무가내라도 좋았다.

뭐든... 허락만 얻어낼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좋았다.


"쉽게 된다면? 뭐, 어디까지 만약이잖아. 그러니까... 대답해줘."


난 키르케의 손을 꼭 잡았다.


내 굳은 눈빛 때문일까.

결국, 키르케가 먼저 고집을 꺾었다.


"어디까지나 만약일 경우에....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저는...."


키르케는 눈물 젖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드디어 사령관님과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겠죠."

"키르케."

"네, 사령관님."

"그 꿈은 이루어질 거야."

"....?"


난 키르케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닥터의 실험실로.


"어서 와! ! 그리고 키르케 언니."

"닥터... 무슨 일인가요?"

"오빠가 재밌는 아이디어를 줬거든. 자, 누워!"

"사령관님...?"

"괜찮아, 키르케."


키르케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닥터가 이끄는 대로 실험대에 누웠다.


닥터는 키르케의 기억을 덮어씌웠다.

'철충'을 모조리 죽인 것이 아닌.

진짜 철출을 모조리 죽인 것으로.


또 거기 있던 인간들은

그 철충의 발 아래 짓밟혀 죽은 것으로.


그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나대로 '불확실한 정보'도 없앴다.

므네모시네는 반대하지 않았다.


"본 개체에 대한 모든 권리는 관리자님께 양도했습니다."

"...고마워."

"다만, 모르는 척하는 것에 대한 포상으로 포옹을 요청드립니다."


나는 기꺼이 므네모시네를 꼭 안아주고, 덤으로 키스도 해줬다.


그리고 다시 닥터를 찾아갔고 나도 시술대에 누웠다.

키르케의 옆자리에.


나는 알고 키르케가 잊은 것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난 완전히 모르는 척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사소한 부분에서 티를 내면...

어쩌면.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난 내 기억도 없애는 쪽을 택했다.


"닥터, 너는?"

"난 괜찮아. 오히려 몰랐던 지식이 쌓여서 좋은 걸."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해."

"전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언제든 부탁해도 돼, 오빠."

"...그러면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난 부탁을 말했다.






이틀 후.

나는 서류작업을 하던 도중,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로 향했다.


별 볼일 없는 어느 창고였다.


'여긴...'


키르케가 종종 몰래 술을 마시는 창고였다.


나는 여태까지 이곳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척했다.


'왜 모르는 척했더라?'


음..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뭐랄까.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뭔가 속이 후련했다.


'혹시 지금도 안에 있나?'


그런 호기심이 들어, 나는 문을 열었다.


"어머?"


키르케가 술을 마시고 있다가 놀란 눈으로 날 봤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는데..."

"나도 키르케가 근무 시간에 술 마실 줄은 몰랐는데?"


우리는 서로 미소를 지었다.


"음, 왠지 지금 이 시간에 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령관님은?

사령관님도 몰래 술 한 잔 하려고 오셨나요?"


난 놀랐다.

내가 여기 온 이유랑 같았으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나도 꼭 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신기하네."

"후후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키르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와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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