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편지.. 설마 당신이 대신 써준거에요?"


"아."


엿됐다.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였다. 설마 들킨건가..? 역시 너무 티가 났나..? 어떻게 알아낸거야..?라고 생각하며 오른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여기서 눈을 피하면 안됀다. 눈을 피하는 순간 그가 눈치를 챌 것이 분명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야한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거죠?"


그는 '음.'하고 남아있는 카페라떼를 한모금 들이키고 입가에 묻은 잔여물을 손가락으로 훑은 다음 냅킨에 닦으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과 저 분의 행동이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말로 저 분이 쓴게 맞나? 싶을 정도라고요."


"하...하하..걔가 저래보여도 심성은 착한 아이에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메이 녀석...아까 니가 한 무례한 행동때문에 전부 들키게 생겼잖아. 돌아오기만해봐라. 가슴에 달라붙어있는 그 지방덩어리를 기필코 찢어발겨주마.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 웃음에 그도 웃음으로 맞받아쳐주며 남아있는 카페라떼를 전부 입으로 넣었다.어떻게든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농담은 이쯤 해두고. 말씀해주시죠. 그 편지. 당신이 쓴겁니까?"


카페라떼가 담겨있었던 컵을 내려놓고 한손으로 턱을 괴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대답은 네. 아니오. 로만 말씀해주시죠."


아까 지었던 표정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내 두눈을 바라고보있었다. 추리소설에서 보았던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고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에 다리가 아까보다 더 떨리기 시작했다. 문장으로 봤을 때도 심장이 쫄리고 땀이 비오듯 흘렀는데 지금 내가 그 상황을 겪어보니 심장이 쫄리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아니오.라고 말을 해봤자 그가 어떤 식으로든 늘고늘어질 것만 같았다. 그 때를 대비하여 마땅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느라 그의 질문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나랑 비슷한 굵기와 부드러움을 가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콩콩.'하고 두드렸다. 그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컵에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고 대답을 하고싶었지만 커피는 이미 바닥을 보인지 오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껴 마시는 거였는데··. 아쉬운대로 입에 남아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천천히 뗐다. 나는 분명 머리로는 '아니오.'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내 입모양은 '니은'으로 시작되는 단어를 말하고있었다. 


이상했다. 아니 이런건 말도 안된다. 머리와 입이 따로 놀다니.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입을 벌어졌고 목구멍에 나온 단어를 다시 주워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엿됐다.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ㄴ..."


"푸흡..!"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웃음이 터지고나서 한 2초동안 미친사람처럼 웃어댔다.

예상을 할 수 없는 그의 기행에 점점 짜증이 몰려왔을 때 쯤에 그는 웃는 것을 멈추고 손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워낙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장난 좀 쳐봤습니다..푸흡..! 푸하하하!"


"하..하...하..."


그는 배꼽을 부여잡고 카페가 떠나라 크게 웃어댔다. 어깨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수명이 한 10년 쯤 늙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이어이. 그런 장난을 메이한테 했다간 아마 뼈도 못 추릴거라고..라고 생각하며 그의 웃음을 받아주었다. 화도 조금 났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뭔가모르게 재밌었다. 나중에 그와 이런 이야기를 다시 나누고싶었다.라는 생각이 들락말락했을 때 쯤 메이가 돌아왔다. 한껏 후련한 표정을 짓고는 손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으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녀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메이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앞으로 당겨 그녀가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자리로 돌아온 메이는 아까 미처 못 마신 코코아를 빨대로 쭉 들이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느낌에 그녀의 입꼬리는 귀에 걸쳐지는 듯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똑같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러고보니 의논을 하고싶다고.."


"맞아. 그랬지."


그의 말에 메이는 마시고있던 코코아를 내려놓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말괄량이에 사고뭉치이기는 해도 진지할 때는 진지했다.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그도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아까 나를 바라보았을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저 자세를 하는데 얼마나 많이 혼났을까.라고 생각하고는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납작..나앤? 어디가게?"


"슬슬 집에 갈려고."


"벌써말입니까?"


"뭐..저녁먹을 시간이기도하고...애초에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랑은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저 둘의 문제였지. 내 문제는 아니였다.

내 대답에 메이는 얼굴을 찌푸리는가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랑은 전혀 관계없는 일이긴하지..그럼 다음주에 보자. 주말 잘 보내."


"그래. 너도 주말 잘 보내."


"살펴가십시오."


"네..."


메이에게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그에게는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커피숍을 나왔다.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지하게 자신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있는 듯 보였다. 고등학생 답지않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정략결혼도 고등학생답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이가 웃자, 그 또한 웃었다. 그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까 보건실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마음 한켠에서 피어오를 때 쯤에 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신호등의 녹색불이 깜빡였다.




"다녀왔어요..."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정리를 한 다음 현관을 향해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일로 바쁘셨다. 신발장에 짜증나기만하는 지방덩어리인 언니의 신발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분명 포장마차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바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남은 나는 손을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교복을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주방으로 내려왔다. 시리얼을 대충 말아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아 '후룩후룩.'하고 시리얼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하지만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라는 가치관을 가진 나에겐 음식의 맛따윈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시리얼을 비우고 설거지를 하고있을 때 쯤 누군가 내 목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햣..?!"


갑작스러운 감각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흠칫했다.이런 장난을 할 사람은 이 집구석에서 한명 뿐이었다.

나의 두살 터울인 언니. 스엔 언니였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째서 저 여자는 우월한 지방덩어리를 가지고있는 것인지 의문투성이에다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신경쓰지않기로 했다. 이제와서 반품이라던가 교환,환불은 불가능했다.


"언니.."


"오늘도 고생했어. 나앤. 자. 이거 마셔."


보나마나 서비스로 받은 음료수를 내게 짬처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라면 짜쯩나는 지방덩어리!라고 하면서 언니의 가슴을 때려겠지만 마침 우유로 인해 텁텁한 입 안을 상쾌하고도 시원한 무언가로 덧칠하고싶었기에 그냥 받기로했다.


"어머. 오늘은 안 때리는거야?"


"시끄러. 때리든 말든 내 맘 아냐."


"하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랐다. 컵에 물이 따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도 손에 들려있는 음료수의 캔을 따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캔을 전부 비워갈 때 쯤 언니가 나를 불렀다.


"맞다. 나앤."


입에 음료수가 있었기에 나는 턱짓으로 말을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까 퇴근하고오면서 봤는데 메이 옆에 남자가 있더라?"


메이 옆에 남자라..아마 철충남. 그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응.하고 대답하자 언니는 물을 한모금 홀짝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메이 요새 남자친구 생겼는가봐? 보니깐 좀 잘생겼던데. 메이랑 좀 잘 어울리는거 같기도하구."


"그래.."


나도 모르게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해버렸다. 내 대답에 언니는 걱정스러웠는지 내 이마에 손을 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프진 않았다. 다만 마음 한 구석이 날카로운 무언가에게 공격을 받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을텐데. 어째서인지 그들의 일에 관심을 보이고있는 것인가. 참으로 이상했다. 내 오랜 절친인 메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나보다 먼저 인생의 짝을 찾은 것이 부러워서 질투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그 남자의 곁에 메이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아니..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봐.."


"그래? 그럼 빨리 씻고 쉬어. 내일은 주말이니깐."


"응.."


나를 걱정하는 언니의 말을 대충 받아주고 나는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내 몸을 타고 흐는 것을 느끼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했다. 화장실은 안은 어느새 따뜻한 물에서 피어오로는 수증기로 가득했다. 마치 춤을 추듯 유유히 허공을 돌아다니는 수증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 느꼈던 감정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해보아도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 했다.

 

머리를 박박 문지르며 다시 생각에 잠길려고했을 때 쯤 언니가 화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나앤? 아직 멀었니? 20분 넘게 뭘하고있는거야?"


"좀만 기다려줘."


언니는 응.하고 대답을 하고 물러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20분 동안이나 있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지구가 분명 나를 원망할 것이 분명했다. 대충 샴푸로 머리를 감고 바디워시로 몸을 대충 문지른 다음 거품들을 흘려보낸 다은 몸에 묻은 물기를 꼼꼼히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 모든 것을 하는데 있어서 걸린 시간은 고작 4분이었다.


"후...."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까지 말리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침대의 푹신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대로 잠이 들것만 같았다. 오늘 많이 걷고 많이 생각을 했던 탓에 피곤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렇게 몸을 말고 말아 이불을 대충 두르고 잠에 빠질려고했을 때 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이 '우우웅.'하고 울렸다.


그 진동소리에 잠이 싹 다 달아났다.


"뭐야...."


짜증이 몰려왔다. 이대로 행복하게 잠에 들 수 있었는데 저 진동소리가 내 달콤한 잠을 방해했다.

나는 이불 속에 묻어둔 오른쪽 팔을 간신히 꺼내 휴대폰을 집었다. 만약 광고라던가 게임 초대 문자같은 시시껄렁하고 쓸데없는 것이라면 그걸 보낸 사람이 대통령이라고할지라도 따질 생각이었다. 휴대폰의 전원을 키자 눈에 들어온 것은 누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하아...."


광고라고 생각한 나는 한숨을 내쉬고 전원을 끄고 다시 잠에 들려고했다. 그렇게 휴대폰의 전원을 끌려는 순간,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문자였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광고라던가 게임 초대 문자같은 시시껄렁하고 하찮은 문자가 아니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문자였다. 


문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까 커피숍에서 만난 철충남입니다. 아까 커피숍에서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조금 흥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약혼녀(?)의 친구인 당신에게 무례하고 짖궃은 장난을 했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당신의 번호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흔쾌히 알려주더군요. 


실례가 안됀다면 사과의 선물을 좀 하고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마침 내일 주말이기도하고..) 저는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거절의 의사라도 좋으니 문자에 꼭 답변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싶군요..




허리 아파서 여기까지만 씀.

여튼 재미에 감동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딸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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