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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네오딤이야.


오늘은 내 얘기를 해볼까 해.


내가 승무원이 된 과정.


명령 때문에 연구소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가

소소하게나마 행복이라는 걸 배우게 된 과정을.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어.

내 얘기를 남들에게 하는 건..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니까.

난 남을 대하는 게 서툴거든.


하지만 사령관.

내가 사령관이랑 이렇게 길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그 남자 덕이야.


내 첫 번째 친구, 라붕이.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해.







내가 실험체였다는 건 알지?


난 밖으로 나가는 게 금지되어 있었어.

내가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라는데...

잘은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건, 내게 내려진 명령 뿐이었어.

연구소를 벗어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철충의 침입으로 난리가 난 시점에서도 그러더라.

그래서 난 세상이 멸망한 다음에도 연구소에 있었어.

버려졌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니면 날 데리고 나가기 전에 전부 죽었거나.


안 갑갑했냐고?


많이 갑갑했지.

하지만 폭격으로 연구소 문이 박살 나서 조금 숨통이 트였어.


그날도 난 시설 상공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어.

거대한 구에 감싸져서 하늘에 떠 있으면

먼 곳까지 구경할 수 있었거든.


응? 뭐? 연구소를 벗어난 게 아니냐고?


바보.


땅에만 안 닿으면 연구소를 벗어난 게 아니잖아.

그런 것도 모르고, 사령관은 바보구나.



아무튼, 난 바깥에 있는 그 시간이 좋았어.

가끔은 새들이랑 대화도 했지.

물론, 난 아는 게 없어서 새들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날도 참새들이랑 어울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참새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버렸어.


난 살짝 화가 났어.

내 유일한 친구들이었거든.

그런데 뭔가가 내쫓아버린 거야.


그리고 그 뭔가는, 옛날에 가끔 하늘에서 보던 거였어.


쿠우우우우-


이름이 뭐더라, 작은 비행기였는데....

경비행기?

그래, 그게 맞는 것 같아.


그 비행기는 불길을 그리면서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어.


그 뒤에는 날아다니는 철충들이 몇 마리 있더라.


"으아아아! 조심해!! 도망쳐!!"


경비행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어.

기계음이 섞였어.

실험실 방에 울려 퍼지던 그 목소리처럼 말이야.



하지만 난 피할 수 없었어.

연구소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비행기를 공중에서 멈춰 세웠어.


"무, 무슨...."


얇은 창문 너머에 인간 남자가 있더라.

비행기가 멈춘 게 놀라웠나봐.

눈이 동그래져 있었어.


"응? 인간과 만난다니… 이상한 일이네."


내가 본 인간은 연구원들이 전부였어.

그래서 그 남자가 입고 있는 옷과,

고글, 모자, 모든 게 낯설었어.


꼭 괴물처럼 보일 정도로.


"...."

"...."

"저, 저기, 가만히 보고 있지만 무슨 말이라도..."


남자가 뒤쪽을 봤어.


"철충들이 오고 있어! 내, 내려줘, 아니면 거기서 비켜 서.

앞을 막고 있으면 위험하잖아. 너도 어디로 숨어 빨리."


"철충... 싸우러... 나가야 해...?"

"...? 싸울 수 있어?"

"누굴 공격할까."

"저, 저 철충들을 막아줘!"


난 비행기를 조종해서 살짝 옆으로 치우고

몰려오는 철충들을 봤다.


"전자기장 가동 준비, 완료."


나는 저 아래, 섬에서 금속 조각을 끌어 모았어.

심심할 때마다 모았거든.


전쟁으로 박살난 전투기나 배의 파편들이

파도를 타고 섬으로 떠밀려오곤 했으니까.


그 파편들로 철충을 감싸 공으로 만들었고,

멀리멀리 던졌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야.

공 던지기.

그렇게 아주 멀리 던지면...


연구소 밖으로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우, 우와아아..."


남자는 입이 떡 벌어졌어.


나는 철충이 멀리 날아가는 걸 보고 있었어.


"....."

"....."

"...저기 이제 좀 내려주지 않을래?"

"내려가고 싶어..?"

"부탁할게."


난 아쉬웠어.

아직 내려갈 때가 아니었거든.

몇 시간은 더 있어야 기분이 풀리는데.


하지만 그 인간은 어딘가 다친 것 같았어.

어쩔 수 없이 땅으로 내려줬지.






"....아파?"

"음, 조금? 별 거 아니야."


남자는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구급키트를 찾았어.

그걸로 자기가 알아서 상처를 꿰매더라.


"생존자... 야?"

"맞아."

"살아 있는 인간은... 처음 봐."


"나도. 살아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정말 오랜만이야.

그 지긋지긋한 철충들도. 이제 좀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사라진 게 아니라 잠잠해졌을 뿐이었더라고."


남자는 웃으면서 일어났어.


"아까는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름이 뭐야?"

"네오딤."

"네오딤? 처음 듣는 이름이네. 어떤 일을 해?"

"기밀이야."

"그렇구나."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어.


"난 라붕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응."


난 손을 내민 게 무슨 행동인지 몰랐고

가만히 지켜만 봤어.


"음, 혹시 내가 싫어?"

"딱히."

"아, 손이 닿는 게 싫은 거야? 악수가 싫어?"

"악수?"

"....?"

"....?"


그제야 라붕은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어.


"저기, 혹시 너 여기에서만 지냈어?"

"응."

"음, 저기. 네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

"내 얘기?"


난 살짝 두근거렸어.


종종 있었거든.

연구원들이 내 얘기를 들어줄 때가.


모든 연구원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착한 연구원은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곤 했어.

그때가 생각나니까 기분이 살짝 묘했지.


난 내가 뭘 하고 있었고,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했어.


그 얘기를 들은 라붕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라.

연구원들의 반응과는 달라서 조금 겁이 났어.


오랜만에 만난 인간인데 날 싫어하면 어쩌나...


가끔, 연구원들 중에는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어.

안 좋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날 보면....


여기, 가슴 사이가 아프거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음... 잘 알겠어. 그러면 네오딤, 넌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나가...?

"응."


난 내가 던진 공들이 멀리, 저 멀리 날아가는 걸 생각했어.


"....가끔 생각은 해. 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 그럼 나가자."

"안 돼."

"아니, 오해가 있었네. 연구소를 벗어나는 게 아니야."


라붕이 다시 밝아진 표정으로 말해.

그 미소를 보고, 난 라붕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너 상공에 떠 있는 건 괜찮은 거잖아, 그치?"

"응."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연구소를 벗어나는 게 아니야.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잖아? 그렇지?"


난 놀랐어.

연구소 위쪽에만 떠 있어야 하는 건 줄 알았거든.

그런데 라붕이 말하길, 아니라더라.


땅에만 안 닿으면 된대.

그러면 연구소를 벗어난 게 아니라,

아직 연구소 안에 있는 거라고 했어.


"나랑 같이 돌아다니자.

난 어딜 돌아다녀도 괜찮거든.

내가 세상을 구경 시켜 줄게. 단."


라붕이 머리를 긁적였어.


"내 비행기 좀 고친 다음에.

엔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려서...

여긴 연구소니까, 쓸 만한 부품들이 있을 거야."



라붕은 혼자서 척척 해냈어.

여기저기서 부품을 뜯고,

엔진을 개조하고,

가끔은 내가 금속을 조종해서 도와주기도 했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비행기는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어.


"참. 가기 전에, 이걸 입어야 해."


라붕에 내게 어떤 제복을 내밀었어.


"이게 뭐야."

"승무원 제복."

"...?"

"음... 이걸 입어야만 그...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허용돼."

"그럼 입을게."


난 승무원 제복을 받아서 입었어.


옷을 갈아입은 날 보고 라붕이 침을 꿀꺽 삼키더라.


"넌 오늘부터 내 승무원이야."

"승무원."

"응. 그게 그... 절차야..."


라붕은 뭔가 거짓말을 하는 눈치였어.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어.


"자, 옆에 딱 붙어서 와."

"응."


라붕이 비행기를 출발했고,

나는 옆에서 함께 날아갔어.


저 멀리.

아주 먼 곳까지.





그때부터 우리는 세상을 여행했어.

나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도시에 가봤고,

가끔 떠밀려온 전단지에 있던 여러 음식들을 맛봤고,

상상으로만 맡았던 꽃들의 냄새를 맡아봤어.


라붕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어.

말을 길게 하는 법도 배웠고,

승무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배웠어.


결국 고백하더라.


"그... 그걸 입어야만 한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왜 거짓말을 했어?"

"그... 음...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패티쉬라는 거야?"


난 19 숫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책을 보고 물었어.

그 책에서 패티쉬가 어쩌고 저쩌고 했었거든.


"그, 어.., 음, 다음은 어디로 갈까?"


라붕은 대답을 피했어.

뭐, 딱히 상관 없었어.

나도 이 옷이 마음에 들었거든.


어쨋든, 우리는 다시 돌아다녔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연구소에서 나가면 안 되니까 땅에 발이 닿지 않게 조심했지.

명령을 어기면... 난 존재할 수 없어질 테니까.


그래서 다행이야. 이렇게 사령관을 만날 수 있어서.

사령관이...

내게 다시 명령해줬잖아.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고.


내가 지금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사령관의 그 한 마디 덕분이야.





"그렇구나... 즐거운 여행이었겠네."


사령관이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은 시간이 나지 않아서 못 했던 대화를.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풀었다.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그런데 네오딤. 그 라붕이라는 남자는 어떻게 됐어?

내가 듣기로, 처음 발견했을 때 넌 혼자였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야 사령관. 아까부터 옆에 있잖아."

"응...? 옆에?"


사령관이 되물었다.


난 옆을 봤다.

사령관도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봤다.

사령관의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내 옆에, 라붕이 서 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라붕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고,

머리칼도 하얗게 변해 있다.


어떤 책에서 본 표현을 빌리자면,

부드러운 인상의 미중년 신사가 되어 있었다.


"조금 반투명해지기는 했지만."

"...."

"라붕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줬어."


우리는 친구니까. 그렇지?


그날도.

라붕은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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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는 내가 지금까지 쓴 것들


내 라오 창작글 모음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