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마치고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침대 위에 벌렁 누워 단말기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나도 그의 옆에 눕고싶었지만 꾀죄죄한 몰골로 그의 곁에 눕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사령관. 나 샤워하러갈거야. 내 옷 좀..."


"저기 있어."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무심하게 손가락 질로 책상 위를 가리켰다. 책상 위에는 내가 편할 때 입는 옷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그의 방에 있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대원들이 공용으로 쓰는 목욕탕과는 달리 그 혼자만 쓰는 샤워실을 나 혼자만 사용한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에 왠지 모를 우월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그와 같이 잠자리를 가진 대원들 모두가 그의 샤워실에서 그와 함께 샤워를 하거나 혼자서 샤워를 했다고 생각을 하니 그 우월감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금방 스러져버렸다.


"후..."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이 내 몸에 흐르는 것을 느끼며 몸에 묻은 땀과 흙먼지 냄새를 깨끗이 지웠다. 

그렇게 따뜻한 물을 맞으며 멍하니 샤워실 찬장에 올려져있는 다양한 향기의 샴푸와 바디워시 통들을 바라바보았다. 그의 방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왔다갔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방명록인 셈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딸기향을 내는 샴푸를 한번 누른 다음 거품을 적당히 만들어내고 머리를 감았다. 내 머리칼과 똑같은 연한 분홍빛의 거품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흥..흥흐흥...흥..."


나는 내심 내 콧노래가 그에게 닿기를 원했지만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샤워실에 내 콧노래는 그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대충 머리를 감고 다시 따뜻한 물로 거품들을 씻어내렸다. 분홍빛의 거품들은 물을 타고 배수구로 흘러내려갔다. 머리의 모든 거품을 배수구로 흘려보낸 다음, 샤워실에 있는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모두 닦아냈다. 원래라면 바디워시로 몸까지 깨끗하게 닦아야하지만 지금 나는 피곤했기에 그냥 머리만 감기로 했다. 그렇게 대충 샤워를 마친 나는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샤워실로 나왔다.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벌렁 누워 단말기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내가 왔는데 단말기나 들여다보고있다니..솔직히 말해서 짜증이 조금 났다.


"사령관~!"


내가 그의 품으로 다이빙을 하자 그는 '옥!'하는 짧은 단말마를 내뱉고는 단말기를 침대 머리맡에다 놓았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처박고 얼굴을 비벼댔다. 그의 품에서는 연한 바닐라향이 올라왔다. 아까 샤워실에서 보았던 수많은 바디워시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우악스러운 손으로 젖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는 안 말려?"


"귀찮아..그냥 이대로 잘래.."


내 말에 그는 리모컨으로 방의 불을 껐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만이 방 안을 밝게 빛내고있었다.


"정말로? 그냥 이대로 잘거야?"


"으응..."


"정말로?"


"그냥..사령관 품에서 자고싶어..가끔 그러고싶을 때가 있거든.."


그는 하긴.하고 말하고는 나를 받아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와 장난을 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내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냥 이대로..그의 품에 안긴채로 그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 빠져들고싶었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미호."


"응...?"


"잘 자요 뽀뽀는 해주고 자야지."


"정말...바보라니깐..."


그의 품에 처박았던 머리를 꺼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도 그를 따라 눈을 지그시 감고 그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을 포개었다.


"........."


방 안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됐지..?"


"응...잘자..."


"응..사령관도.."


입술에 미미하게 느껴지는 따뜻하고도 축축한 감각을 느끼며 그의 품에 다시 머리를 처박았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까 내가 불렀던 콧노래와 똑같았다.


딴지를 걸고싶었지만, 그냥 방음이 잘 안됐나보다..라고 생각하기로했다.



요새 미호가 좋아서 끄적여봤습니다.

재미에 감동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때까지 쓴 글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