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찾아온 여유시간을 맞이해 아스날은 철충사냥을 나왔다.

"흠.....흠흠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코프를 통해 표적을 조준 후 격발.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소형 철충 한 기가 쓰러진다.

실전에서 사격을 할 일은 사실상 없다시피 한 그녀였지만, 가끔은 기분전환 겸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물저격총을 이용해 사격을 하는 것이 그녀의 취미였다.

"슬슬 떠야겠군"

자리를 잡고 철충들을 저격한지 벌써 2시간째, 이쯤되면 철충들의 지원병력이 올 시간이었기에 슬슬 기지로 복귀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밑에 깔아둔 자리를 챙기고 벗어두었던 부츠를 신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었던 그때,

'까가가가가가각'

풀숲을 가르고 철충 한마리가 아스날이 있는 곳을 향해 맹렬히 달려온다.

저격총을 꺼내 대응할 시간은 부족하다.
권총으로 녀석의 두꺼운 외피를 뚫는건 더더욱 불가.

고민하던 차에 아스날은 언덕 아래쪽 우거진 풀숲 사이로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준의 구멍을 발견했고 그 곳을 향해 지체없이 몸을 던졌다.

'쿠우웅'

구멍을 향해 몸을 던지기가 무섭게 아스날이 있던 방향으로 철충은 몸을 부딪혔고, 그 진동으로 구멍에 이어진 튜브형 터널이 흔들렸다.

"우오오오오오오!!!"

방금전 충격으로 인해 구불구불했던 터널의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고 아스날은 엉덩이가 다 쓸리더니 그대로 밑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으으응......이래서야 사령관은 당분간 못보겠군"

새빨갛게 벗겨진 엉덩이를 보며 아스날은 중얼거렸다. 지상에서부터 이곳까지 거의 내동댕이 쳐진 그녀였디만 바닥에 구비된 메트리스더미들로 인해 엉덩이에 입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찰과상 외엔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재밌군, 재밌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은 이곳이 오래된 벙커임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곳곳에 남아있는 생활의 흔적들은 여러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아이의 그림으로 보이는 낙서들과 구석에 쌓인 통조림캔들로 미루어보아 이 곳에서 지내기엔 꽤나 어린 나이의 거주인으로 짐작된다.

'쿠구구구구구'

또 다시 지상에서부터 울려오는 진동.
 
자신을 쫒아온 철충이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좀 쉬었다가야겠군"

명색이 로얄아스날이 모양빠지게 이런 일로 구조요청을 보내기도 싫을 뿐더러, 통신조차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우선은 이 곳에 머물며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선택을 했고, 눈이라도 붙일 곳을 찾던 중 이 곳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실례합니다. 염치불구하지만 잠시 머물다 가겠습니다"

아스날이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를 한 주인은 말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직 한창 자랄 나이였을것으로 추정되는 주인의 백골은 유난히도 작아 안타까움마저 느껴지게 만들었다.

멸망전 피해자들의 특징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채 그대로 생을 마감한 듯 이미 색이 바라고 헤진 잠옷과 이불을 덮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바이오로이드 개발 과도기 시절 나왔던 바이오봇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과 흡사하지만 바이오로이드에 비하면 어설픈 인형이나 마찬가지였던 바이오봇.

오리진더스트가 본격적으로 상용되기 직전의 제품이었던 탓에 겉만 인간의 모습일뿐 내부는 ags나 다름없는 제품군이었지만, 그 당시 기술력으론 상당한 제품이었기에 널리 보급되긴 힘들었던 녀석이다.

"우선 수습을 해줘야겠군"

아스날은 유골을 수습할 생각으로 침대에 다가갔고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유골을 감싸려던 순간,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활동이 정지된줄만 알았던 바이오봇의 전원이 켜지며 아스날의 손을 덥썩 잡더니 자신을 향해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히이이익!!"

놀란 나머지 괴상한 소리까지 내며 손을 뿌리친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뒷걸음질 치자, 녀석은 눈을 번쩍이며 아스날을 향해 빠른 속도로 기어갔다.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오지마!!!!!"

이게 말로만 들었던 귀신이란 말인가.
아스날은 멸망 전 인류가 즐겨봤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구석에 쭈그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귀신한테 잡혀먹힐거란 생각에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뒤로도 해볼걸'

각종 방식으로 사령관과 즐거운 한때를 떠올리던 그녀의 마지막 후회가 떠오른 순간, 녀석은 갑자기 멈추더니 또 다시 아스날의 손을 잡고는 자신쪽을 향해 당겼다.

"가....가가가가가"

기괴하게 입을 벌린채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던 녀석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하더니 마치 자신을 수복하듯 빠져버린 턱을 교정시키고는 다시 한번 더 말을 이어나갔다.

"가슴 만질래?????"


하마터면 오1줌까지 지릴뻔한 상황에서 아스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은 아스날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포갠 뒤 말을 이어나갔다.

"어때, 안심되지? 내 이름은 뽀삐야. 인간님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헝크러진 머리 사이로 분홍빛 브릿지가 보이자 아스날은 이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인간님, 기뻐?? 가슴 만지는게 그렇게 좋아??"

"아니, 아닐세....미안하지만 그런 취향은 없네. 단지, 내가 온 곳에서 자네와 닮은 친구를 봐서말일세"

"친구?? 인간님은 친구가 있구나....."

"문제있나??"

"친구는 한명만 만들수 있다고 배웠어. 뽀삐는 친구가 많으면 좋겠는데......"

확실친 않았지만, 뽀삐라 불리는 이 바이오봇이 말하는 내용은 귀속장치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상용화 된 이후에도 인간친화적인 성격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 주인들은 다른 인간들과 섞이지 못하게 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장치들을 적용시켰는데, 바이오로이드의 경우 이런 장치들은 선택에 의한 것 옵션인 반면, 바이오봇의 경우엔 로봇과 중간에 낀 형태로 개발되어 출시된 그녀들에겐 선택권이란게 없었다.

"음....애석하지만 난 인간이 아니어서 말이지. 친구라면 충분히 되어줄 수 있을거같다만"

"정말???그럼....친구 할 수 있는거네????"

"하하, 뭐 그렇지"

뽀삐의 말에 아스날은 기분이 묘해졌지만, 이런식으로밖에 친해질 방법이 없는 바이오봇의 운명이 어땠을지 생각한다면 바이오로이드는 그나마 나았을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이제 가슴 만지는건 안되는거야???"

"그건 이쪽에서 사양하지. 그보다 알고 싶은게 있다만"

"응!! 뭐든 물어봐!! 뽀삐는 친구한테 숨길게 없어!!"

"이 곳에 계시던 주인에 관해 알고 싶군"

아스날의 말에 시종일관 해맑았던 뽀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주인님....못일어났어. 그래서 슬퍼서....계속계속계속계속 일어나라고 부르다가 힘이 들어서 그냥 주인님 곁에서 잠들어버렸어"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는가??"

"음.....잠깐만"

뽀삐는 미세한 기계음을 내며 멈췄고 잠시 뒤 뽀삐와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20xx년 3월....며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3월일거다. 지난 몇달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악몽속에 헤메이던 중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그건 분명 꿈이었지만, 예고된 죽음이다. 난 그 꿈에서 깨지 못할 것이고, 결국 뽀삐는 혼자 남겠지....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나를 평생동안 돌봐 준 그녀에겐 감사하단 말만으론 부족하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알아버린게 슬프지만, 홀로 남겨진 그녀가 어떻게 지낼지를 알기에 마지막으로 부탁을 남긴다.

이 곳을 발견한 이가 있다면 인간이든 바이오로이든 누구라도 좋으니 그녀를 거둬주길 바란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구형로봇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부모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슬슬 눈이 감겨온다. 이런 말을 12살짜리 꼬맹이가 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삐-----20xx년 3월 3일 녹음된 마지막 메세지입니다"

메세지가 종료되자 뽀삐는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괜찮나???"

"응....갑자기 힘을 썼더니 피곤하네, 오랜만에 만든 친구인데.....같이 놀고 싶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같이 산책이라도 나갑세"

"헤헤, 그럴까? 근데....있잖아. 친구는 이름이 뭐야??"

"아스날, 로얄 아스날"


"이름 이상해...."

뽀삐는 방금전까지 활기차게 떠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스날의 품 안에 안긴채로 몸이 추욱 늘어졌다.

"일어나면 한 소리 해야겠군"


아스날은 뽀삐를 잠시 눕혀둔 뒤 주인의 유골을 수습한 후 지상이 잠잠해진 틈을 타 본부에 지원요청을 보냈다.


오르카호로 복귀한 아스날은 뽀삐를 봐줄만한 닥터를 찾아갔지만, 기계에 가까운 그녀를 보기엔 아자즈가 적합하다며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썩 좋지않았다.

"힘들것같네요. 부품이 전부 구형인데다 이런 정교한 소형화작업은 공정이 까다로워요. 이건 어떻게보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예품에 가까운데......"

"그런가. 그럼 주인곁에 묻어줘야겠군"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묻어주려하자 아자즈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게 또 도전욕구를 자극하거든요. 부품 하나하나 만드는게 완전 생노가다긴한데 이런건 또 저 아니면 못할걸요??? 시간은 좀 걸릴거같으니 언제가 될진 묻지말아요~"

마치 새로운 프라모델을 건내받은 아이처럼 뽀삐가 실린 수레를 끌고간지가 벌써 5달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아스날의 마음 한구석엔 무거운 돌이 올려진것처럼 뽀삐에 대한 생각이 버티고 있을 즈음,


"아! 이름 이상한 친구!!!"


양갈래 머리에 분홍브릿지를 넣은 괴상한 머리,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렸던 친구.


"누가 할 소릴. 동네 개이름도 그렇게 짓진않는다구, 뽀삐"

아스날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친구에게 달려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