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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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제발 열려!!!"


문을 내려치기를 수 차례.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 수록

티아멧의 손은 피로 물들어갔다.


"으아아아! 제발!! 더 이상은 싫어!!!"


벌써 수십 년.

그녀는 연구소에 혼자 갇혀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도 몇 번이나 미쳐서 날뛰었다.

그럼에도 저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려! 열려! 열려! 열리라고!!!!"


티아멧은 격분과 광기에 휩싸여 검을 휘둘렀다.

그럴 수록 몸이 망가지는 데도.


수십, 수백 번 휘두른 검에,

그녀의 몸은 내부부터 파괴되기 시작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무렵.


그녀는 말 그대로 혼심의 힘을 다한 일격을 가한다.


쾅!!!


문이 박살나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바깥으로 난 폭발이 아니었다.


안으로 터졌다.

그녀의 힘이 아니다.

철충이 문을 박살내며 들어온 것이었다.


퍽.


철충이 휘두른 금속 채찍이 티아멧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그 순간.

지금까지 티아멧을 억제하던 무언가가 깨졌다.


"아아아악! 아아악! 대체 왜애애애!!"


그녀는 이를 악물고 분노를 토하며 돌진한다.


연구소의 입구 앞은 수백의 철충이 틀어막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모여든 것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녀는 분노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드디어 기적이 따라준 걸까.

아니면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인 걸까.


티아멧은 포위망을 뚫고 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멀리, 그리고 저 높이.


"아...! 아아...! 드디어...!"


생전 처음 보는 파란 하늘에 그녀는 넋이 나갔고,

온몸이 엉망진창인 지경임에도 하늘 높이 날았다.


"아하하..! 드디어!! 드디어 밖으로 나왔어..!!"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너무 높이 날아오른 천사는.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한다.








"당신. 주무세요?"


어떤 낡은 바이오로이드가 물었다.


드넓은 모래사장.

파라솔의 그늘 아래, 어떤 부부가 쉬고 있었다.

그녀는 옆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깨웠다.


"이보세요, 여보?"


그녀는 남자를 흔들어본다.

툭.

팔이 힘없이 축 늘어져 모래에 닿았다.


"이런.. 조금만 더 참다가 같이 죽을 것이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앗 뜨거."


남자가 바닥에서 손을 떼며 눈을 떴다.


"아직 안 죽으셨네요."

"응?"


남자가 그녀를 본다.

화려했던 초록 머리가 닳고 닳아 누렇게 변한 그녀.

짧았던 단발은 이제 허리보다도 길어졌다.


"그러는 당신도, 아직 안 죽었소?"

"제가 먼저 죽을까 봐요. 당신보다는 늦게 죽지."

"난 횝노스 병도 이겨낸 무적의 인간이야. 죽음? 하! 어림도 없지."

"반쪽짜리 주제에 말은."


둘 사이에 험한 말이 오고 가지만 둘은 피식 웃었다.


철충이 침입하고 수십 년 후.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어느 무인도에는,

너무 오랜 세월을 둘만이 함께 보내어서

서로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그러나 그만큼 각별한 사이인.


어느 부부가 있었다.






"에구구, 더워라. 날이 뭐 이리 무더운지."


남자가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몸의 절반을 침식한 철충의 피부가 보였다.


아주 오래전.

철충이 막 쳐들어왔을 당시,

두 사람은 가까스로 이 무인도로 도망쳐 왔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남자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을 몰랐으나,

남자가 지속적으로 꾸는 악몽에 대해 들으며

철충, 혹은 그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는 멀쩡했기 때문에.


'왜 난 멀쩡하고 그이만....?'


고민하던 그녀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내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라면....'


그녀는 남편을 깨우기 위해 철충의 파편을 이식했다.


이곳은 철충도 없는 오지였으나,

전에 딱 한 번.

죽은 철충 하나가 파도에 밀려왔었기에,

그 시체를 이용했던 것이었다.


'영영 깨어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그런 생각으로 행한 도박이었고 성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생존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수십 년이 지나도 팔팔하고 건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위기를 이겨낸 후에 찾아온 평화에서,

하나씩 하나씩 모든 것을 만족했고.


이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 뭐 할 게 남았지요?"

"음, 자식 기르기."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혼혈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나약한 인간과 너무 강한 바이오로이드가 합쳐져,

아이는 더스트 골격에 짓눌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꾸준한 수술을 통해 골격을 바꿔 나가야 하는데,

둘 만이 있는 이곳에서는 불가능했다.


아니,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종말이 왔으니까.


"그럼 없어."

"그럼 이제 죽을 까요?"

"음, 그 전에 뭐 하고 싶은 거 없소?"

"저요?"


아내는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하지만 없었다.

이미 수천 수만 번을 되풀이했다.


그 모든 과정과 결과, 감정과 행복은 전부.

그녀의 머릿속에 이미 존재했기에,

더 즐길 필요가 없어졌다.


"없네요. 당신은?"

"나도."

"그럼.... 이제 가볼까요?"

"음. 가지."


둘은 절벽으로 향한다.


자살이기는 했지만,

둘 다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둘은 손을 꼭 맞잡았고,

절벽 끝에 서서 서로 얼굴을 보았다.


"신기하구먼. 죽음을 앞뒀는데도 그저 평온하니."

"그러게요. 뭔가 더 원하는 게 생각날 줄 알았는데."

"이제 정말로 죽음이 준비가 된 모양이오."

"네."

"음.. 어, 마지막으로 어디 보자.. 당신 이름이나 불러볼까."


남자는 말을 뱉어 놓고 미간을 좁혔다.


"이름이 뭐더라...? 버터? 아니, 두 글자는 아니었는데..."

"으음... 뭔가 맛있는 이름이었던 건 기억하는데... 무슨.. 아이스크림...?"


그건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 쪽도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뭐, 어때요. 항상 당신이나 여보로 불렀는데."

"하긴, 그렇지. 당신도 여전해."

"후후후."


둘은 마지막 입맞춤을 나누었다.

쪽.


"그럼 같이 셋을 세고 출발할까?"

"음, 저승길도 함께 걸었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손을 꼭 맞잡고."

"음, 나도."

""셋. 둘....""


그때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어머나."

"잠깐 저거..."


둘은 화염에 휩싸인 사람을 보았다.


그건 아이.

푸른 머리의 어떤 소녀였다.


기절했는지 전혀 미동도 않고 추락하고 있었으며,

풍덩.

결국에는 바다에 빠졌다.


"구해야 해!"


두 사람은 당장 바닷가로 달려갔다.

수십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몸이 팔팔한 남자가 헤엄쳐 소녀를 구했다.


빠른 속도 때문에 몸에 불이 붙었지만

다행히 화상은 심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 아이는 괜찮나요?"

"음, 기절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대하고, 떨려하고 있었다.


아이를 오두막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부부의 옆 방.

수십 년 간, 빈 자리로 있었던 침대였다.


"오늘을 위한 침대였나 봐요."

"역시, 수십년 전에 준비해두길 잘했어."


그 침대를 사용하기까지 수십 년.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티아멧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으음...."


티아멧이 눈을 떴다.


"정신이 드니?"


옆에는 아주 긴 머리의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머릿결은 고우나 그 색은 오랜 세월이 지나 닳아 있었다.


"누.. 누구.. 누구..."

"진정하렴. 넌 괜찮아."

"아..."


티아멧은 주위를 둘러본다.


"바, 바이오로이드 맞나요?"

"그래."

"아아.... 으흑.. 으흑흑..."


티아멧은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린다.


"어머나."


늙은 여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때 그녀의 남편이 들어왔다.


"여보, 물 가져왔... 깨어났구나!"


티아멧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실험실에서 봤던 인간들이 떠올랐다.


"으아!! 으아아!! 아아아!!"

"왜, 왜 그러니? 아이야? 아이야?"


티아멧은 이성을 잃었다.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자신의 검을 쥐었다.


철충에게 머리를 맞은 그 순간.

그녀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박살 났다.


"더는...! 더는 실험체로 살지 않을 거야! 죽어!!"

"안 돼!!"


늙은 여인이 앞으로 뛰어든다.

검은..


퍼석!


검은 중간에 궤적을 바꿔 바닥에 꽂혔다.


".하아.. 하아...."

"당신은 밖에 나가 있어요."

"...그래."


남자는 챙겨온 물을 내려놓고 나간다.


"얘야. 이름이 뭐니?"

"티... 티아멧..."

"티아멧."

"..."


늙은 여인이 소녀를 꼭 안아준다.


"이제 괜찮단다, 티아멧. 내 말을 믿으렴."

"으흑....."







"아이는?"

"잠들었어요."

"후... 식겁했구먼."

"후후후."

"당신도 성격 많이 죽었군. 예전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아마 죽었을 거예요."

"응?"

"그 아이가 손을 도중에 틀지 않았으면, 저희 둘 다."

"...."


그는 자신의 아내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른다.


"걱정 돼?"

"당연히 걱정이에요. 만약 저희가 죽었으면...

저 아이는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하긴, 둘 다 이미 삶에 미련은 없었다.

이제 곧 생긴 것 같긴 했어도.


"...그렇겠지. 이름은 들었어?"

"티아멧."

"들어본 적 있는 바이오로이드야?"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비밀리에 진행된 실험체겠죠. 우리에겐 흔한 일이니까.."


쪽.

남자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참, 제 이름이 기억났어요."

"나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보니까 바로 기억나더라."

"후후후."


둘은 살짝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저 아이가 우리의 딸이 됐으면 좋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바닐라?"


"저도요, 주인님. 저의 라붕 주인님.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네요. 이런 호칭이."


"그래도 여전히 잘 어울려."


둘은 잠시나마, 서로에게서 서로 젊은 시절을 보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저 아이는 어떻게 하지? 트라우마가 심한 것 같은데."

"기다려야죠."

"기다린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지금까지 수십 년을 기다렸어요. 고작 몇 년 쯤이야.

가뿐하잖아요. 이제 평범한 인간도 아닌데."


둘은 미소를 교환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선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보여주세요.

다행히 침대는 창가에 위치해 있으니.

아주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면 되는 거예요."


"그래. 내 몫까지 옆에서 저 아이를 챙겨줘."

"그럼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술을 맞춘다.

그 다음날부터 예비 딸과 친해지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선 첫 단계.

바닐라는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저는... 저는...."


티아멧이라는 아이는 말수가 많았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던 것 같기에,

수십 년을 갇혀 있었다던 그 말이 더욱 슬프게 와 닿았다.


"이제 괜찮아. 여기에서 넌 갇힌 신세가 아니야.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단다."


바닐라는 부드러운 투로 그녀를 달래어주었다.

티아멧은 울었고 또 울었다.


바닐라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티아멧을 달래는 데 썼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자신의 남편과 이야기했다.


"그렇게, 저희보다 더 긴 시간을 연구소에서 보냈다고 해요."

"저런...."

"....저희와는 정반대였어요. 전... 한 번도 갇혔단 생각을 못했는데."


그건 둘이었기 때문이다.

티아멧도 마음을 터 놓을 상대가 있었다면 달랐을 터.


라붕은 그 생각을 말하며 덧붙였다.


"이제부터 그런 생각이 안 들게 해주면 돼. 그렇지?"

"...가끔은 옳은 말을 하네요. 당신도. 후후후."







두 번째 단계는 인지였다.

바닐라는 티아멧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녀가 창밖을 응시하게 했다.


"앗, 저길 보렴, 갈매기가 모여드는구나."

"갈매기..?"


티아멧이 창밖을 본다.

갈매기 여러 마리가 오두막 옆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우와...."

"저런 건 처음 보니?"

"네.... 앗.."


티아멧은 하늘 아래,

갈매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남자, 라붕을 보았다.


바닐라는 그런 티아멧을 유심히 관찰했다.


티아멧은 떨고 있지 않았다.


'혹시...?'


"전...."


그때 티아멧이 입을 연다.

티아멧은 말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속에 담아둔 것들이 많았다.


"전 새들이 부러워요. 하늘 높이... 높이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요."

"....."

"하지만.. 전 이제 날 수 없어요. 제 날개는...."


티아멧의 날개는 바다에 추락할 때 박살 났다.

두 사람에게는 그걸 고칠 기술이 없었다.


"으흐흑..."

"....."


바닐라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날개....'


그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날개.






"여보."

"응."

"연을 날릴 줄 아시죠?"

"그럼, 알지. 내 조국의 놀이였는데."

"한.... 백 개쯤."

"오...."

"부탁 드려요."


갑작스러운 대량주문에 라붕은 바빠졌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라붕은 한 달 간 티아멧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티아멧은 가끔 창밖을 바라보고는 했다.

부러진 다리가 아직 완치되지 않아 그녀는 나갈 수 없었기에,

하염 없이 창밖을 보며, 무언가를 기다렸다.


"갈매기가 보고 싶니?"

"....."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면 돼. 어려워하지 마렴."

".....네... 보.. 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


티아멧은 말을 멈췄다.

차마 그 남자도 함께 보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티아멧은 궁금했다.

그 남자는 달라 보였기 때문에.

실험실의 그 인간들과는... 다를 지도...


바닐라와 함께 수십 년을 지낸 인간이라니 더 그런 기대가 생겼다.


그러나 직접 말로 표현하는 건....

아직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그러면 잠시 이걸 쓰고 있을래?"


바닐라는 안대를 건넸다.

티아멧은 움찔했다.

안대.

실험실에서 몇 번이나 썼던....


그녀는 움찔했지만...

바닐라라면 믿을 수 있었다.

아마도.


'같은 바이오로이드니까.. 괜찮을 거야. 제발... 제발 괜찮을 거야.'


사실 믿을 수 있다는 말은 틀렸다.

티아멧은 그녀를 믿고 싶었다.

못된 사람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말할 때까지 벗으면 안 된단다."

"......"


안대를 쓰자 어둠이 내렸다.

쿵.

문이 닫힌 것으로 보아 바닐라가 나간 듯했다.


티아멧은....


'살짝.. 살짝만....'


안대를 살짝 들췄다.

그러자 보였다.


라붕이라는 인간 남자가.

바닐라와 함께 해변에 무언가를 설치한다.


각자 다 다르게 생긴,

꼭 가오리처럼 생긴 무언가를 오와 열을 맞춰 늘어놓았다.


'뭐지?'


티아멧은 홀린 듯이 그것을 구경한다.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날개 같기도 하고.....


"어? 부러졌다."


바닐라가 어떤 것을 실수로 밟아 부러뜨렸다.


"아이고 이 사람아."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고, 바닐라도 하하 호호 웃는다.


'즐거워 보여.'


그들의 웃음소리는 연구원들의 것과는 달랐다.

소름 끼치는 것이 아닌,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


티아멧은 다시 안대를 쓴다.







"오래 기다렸지?"


바닐라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벗어도 되요?"

"아직 아니란다. 후후후."


즐거운 듯한 목소리.

바닐라는 흥분해 있었다.


"잠시, 휠체어로 옴겨줄게."

"...?"


바닐라는 그녀를 번쩍 들어서 휠체어로 옮겼다.


"갈매기가 놀랄 수 있으니까 조용히 해야 한단다."

"네."


바닐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건 갈매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갈매기보다 훨씬...


'훨씬 재밌어 보였어.'


티아멧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고통으로 두근거릴 때와는 전혀 다른...

애뜻하면서도 급한 마음이었다.


"추우니까 담요 덮고."


집에서 나가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준비 됐니?"

"네...!"

"자....!"


바닐라가 안대를 벗겨주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티아멧은 소리를 질렀다.


"와-!"


수십 마리의 가오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오리들은 양쪽으로 날개를 활짝 펼친 채였으며,

팔랑거리는 꼬리도 가지고 있었다.


"우와-!"


티아멧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어머나, 얘는."


바닐라는 걱정이 됐지만, 티아멧은 꿋꿋했다.

아직 다리가 다 낫지 않긴 했어도,

부목이 워낙 튼튼한 덕에 고통은 없었다.


"와아.. 우와..."


티아멧은 홀린 듯 앞으로 걸어나갔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날아다니는 가오리 천지였다.


"조심하렴!"


바닐라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티아멧은 하늘에 치솟은 연들을 훑으며 한 바퀴 돈다.

그러다 부목이 불편해 넘어지고 말았다.


텁.


쓰러질 뻔한 티아멧을 라붕이 품에 안으며 잡아줬다.


"괜찮니?"

"아......"


티아멧은 놀랐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몸을 기댔다.


"설 수 있겠니?"

"네...."


남자가 티아멧을 일으켜주었다.


티아멧은 두 발로 서고 남자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저기.. 저건...."

"연이라는 거란다."

"연...."


가오리가 아니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티아멧은 하늘을 우러러본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을.


그러나 무수히 많은 연들을 보며,

그녀도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허전함을 채우지 못했던 둘과

수십 년을 외로움에 시달리던 하나는

이제야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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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프리퀄(?)은 아래 링크

바닐라와 달달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이 아래 링크는 지금까지 내가 쓴 것들

라오 창작글 모음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