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좋아, 수리 끝! 이제 둘 다 언제든지 출전 가능하거든!"


오르카호의 AGS 격납고. 포츈이 막 수리가 끝난 트레저와 포트리스의 장갑을 손바닥으로 퉁 소리나게 쳤다. 아직 사령관이나 부사령관을 찾았단 연락이 오지 않았기에 포츈은 남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지 않으면 사령관 걱정에 쉴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슴다, 근데 추가로 요청할 게 있지 말임다."


트레저가 셀주크 몸체의 수리가 끝났는데도 아직 볼 일이 남아있다는 듯 말하자 포츈의 흥미를 끌었다. 


"어떤건데? 혹시... 손 달고싶은 마음이 드디어 생겼어?"


이전에 트레저가 새로운 몸에 손이 없어 불편하다며 손을 달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닥터와 포츈이 어디다 손을 붙여야 할 지 생각해보다 사소하면서도 중대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셀주크는 등에 포대를 짊어진 거북이 형태의 로봇이다. 그렇기에 처음엔 아래쪽의 거북이 부분에 손을 추가해보려했으나 견적을 짜보니 티라노 앞발 수준의 쓸모를 자랑했기에 이 아이디어는 기각됐었다. 


그 다음엔 위의 포대 부분에 손을 추가하면 어떨까 했지만 또다른 문제에 직면했었다. 포대에 팔이 추가된 모습을 상상해보니 자연스레 포대 부분이 상체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셀주크의 머리가 마치 고간에 달린 것 같은 해괴망측한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견적을 본 리디아가 배꼽 빠지게 웃고 부사령관이 심히 뻘쭘해하자 결국 이 아이디어도 기각됐었으나...


"그렇슴다. 제대로 싸우기 위해 손이 필요해 질 것 같으니 포대쪽에 달아주십쇼. 그리고 한가지 더."


"응?"


"전에 형님이 제 느린 기동성이 문제라며 따라가는걸 허락해주지 않았지 말임다. 이 몸으로 더 빠르게 움직일 방법은 없는검까?"


셀주크는 보행병기이긴 해도 그 무게와 구조때문에 뛰기는 커녕 느릿느릿 걷기밖에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계속 이동하며 싸우는 게 아닌 위치를 잡아 원거리에서 적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되었기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을 넣을 필요조차 없었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가 셀주크의 한계였을 테지만, 오르카호의 천재 공순이들에겐 문제가 아니었다. 셀주크의 기동성 문제 따위 이미 건너온 강이었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걱정 안해도 되거든? 이미 오르카호에선 그 부분을 개선해 업그레이드한 셀주크도 있거든!"


"정말임까? 근데 여기서 바퀴 달린 셀주크는 한번도 못봤는뎁쇼."


"바퀴가 아니라 로켓 추진기를 달아서 날아다니면 되는 거거든!"


"...잘못들었슴다?"


비행 가능한 대형 AGS인 로크가 10t을 넘기지 못하는데 무게가 100t이 넘는 셀주크가 날아다닌다니, 트레저가 이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하고 이해를 못하자 포츈이 설명을 덧붙여줬다.


"물론 새나 비행기처럼 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정확히 표현하자면 로켓 추진으로 높게, 멀리 점프해서 뛰어다닐 수 있다는 뜻이거든."


"아, 그런검까. 당장 개조할 수 있는검까?"


"으음, 여기 남은 자원이... 아니지, 부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너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은 마음 잘 알거든! 닥터는 바쁘고, 대신 아자즈 불러올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



리디아와 유미는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야 그들을 인도한 연기의 근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고로 보이는 왠 허름한 건물의 지붕이 박살나있었고 그 안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나 건물에 가까이 가도 인간의 뇌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기대했던 만남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만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건물에 다가가던 중 뜬금없이 문 너머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놀란 리디아가 문으로 뛰어가 문고리에 손을 대려는 순간 안에서 누군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안에서 나온 여성 바이오로이드는 리디아가 문에 부딪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기침을 하며 혼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콜록! 옘병 또 실패네! 환기나 좀 해야지."


"어... 저기..."


"응? 뭐야? 누구?"


그녀는 그제서야 눈 앞에 서있는 정장 차림의 방문객을 바라봤다. 유미는 그 야성미 넘치는 더벅머리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오 씨... 어떤 개년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


빨갛게 부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고있던 리디아가 열려있는 문 옆으로 나와 누군지 확인하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유미에겐 초면인 상대였으나 리디아에겐 아니었다. 그리고 뜻밖의 손님에 놀랐던 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 설마 하이에나 008이냐?"


"우와!? 브라우니 007? 너 죽은거 아니었냐?"


그녀는 바로 T-40 하이에나, 앵거 오브 호드에 소속된 척탄병이자 폭탄마로도 악명높은 바이오로이드였다.


"어...? 리디아 씨, 저 분이랑 아는 사이세요?"


당장이라도 멱살 잡을 것처럼 인상 쓰고있던 리디아가 하이에나를 본 순간 태도가 돌변했다. 유미가 어떻게 된 건가 묻자 리디아가 들뜬 기세로 대답해줬다.


"그럼. 하이에나랑 나는 옛날에 같은 부대 동기였거든."


"캬하하! 함께 겪은 일이 한 두개가 아니지! 야, 멀뚱히 서있지 말고 안에 들어와, 거기 안경 너도! 안이 좀 난장판이긴 한데 신경쓰지 말고!"


하이에나가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그녀가 씩 웃자 상어이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실내엔 온갖 고철더미와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쌓여있는 게 사람 사는 집이라기보단 외관 그대로 창고에 가까웠고, 집 안 한가운데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폭발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리디아가 적당히 물건들을 옆으로 치워 앉을 공간을 만드는 한편 유미는 어색한 분위기를 버리지 못하고 선 채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 같은 부대라고요? 하지만 리디아 씨는 스틸라인 소속이고, 저 분은..."


"라비아타가 저항군을 막 설립하고 싸울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있는대로 긁어모았을 때 얘기야, 내가 평범한 단발 브라우니였을 시절이었지. 그 당시엔 칸 대장이 합류하기 전이여서 대충 모여서 부대를 꾸렸거든. 그 때 얘랑 같은 부대에 속해있었어.

나중에 칸 대장이 온 뒤로 나는 제대로 스틸라인으로 분류되는 한편 여기있는 하이에나는 호드로 옮겨졌지."


"그랬지. 그러다가 네가 속해있던 분대가 작전 중 전멸했다고 들었는데 어찌저찌 살아남았나보네? 맨날 같이 다니던 레프리콘은 잘 있냐?"


"그 때 죽었어, 나 혼자 살아남았지. 너야말로 니 단짝이던 워울프는 어디갔어? 나한테 007이란 번호 추천해준 것도 걔였는데."


"이미 죽은 지 몇십년 됐어..."


"펙스야 철충이야?"


"철충."


오랜만에 재회한 전우에 신난 것도 잠시, 전사자들 얘기에 분위기가 침울해지기 시작하자 유미가 화재를 돌렸다, 아직 묻고싶은 게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기, 그럼 하이에나 씨는 저항군 소속인 건가요? 여기엔 인간님들을 찾기 위해 파견됐던 거고요?"


"캬핫! 내 꼴 좀 봐, 완전 거지꼴인데 어디 속해있겠어? 난 그냥 낙오병이야, 임무 실패하고 고립돼서 못돌아가는 사이 배가 떠나버렸었지 뭐야. 야 브라우니, 너도 그렇지?"


"난 아니거든, 도로 저항군에 들어갔다고. 그리고 리디아라고 불러, 형님이 지어준 이름이야."


"형님? 왠 형님?"


"너 지금 저항군에 살아있는 인간 두 명이나 있는 거 모르지?"


"뭐? 뻥 치지마!"


"진짜야 임마."


유미는 이후로도 이어진 둘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정보를 정리했다. 하이에나는 혼자서 생존해온 기간동안 자신의 총이나 바퀴 달린 부츠가 고장날 때마다 스스로 고쳐가며 야매 공순이 기질이 생겼고, 총알이나 폭탄도 보급받을 수단이 사라지자 직접 만들게 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야매라 자신이 고친 기계가 또 고장나거나 폭탄 제조에 실패해서 멋대로 터져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오기 전에 봤던 까만 연기 또한 폭탄 제조 실패로 생긴 부산물이었다. 


한편으로는 하이에나 또한 리디아로부터 두번째 인간의 이야기를 신기하단 듯이 경청했다.


"그럼 너도 계속 캐나다에 있었다는 거네? 몇십년동안 코빼기도 안비추더니만 그 연기보고 찾아오냐! 진짜 별일이네, 캬하핫!"


"됐고 너도 따라와라. 안그래도 형님 찾아야했는데 한명이라도 더 거들면 좀 낫겠네."


"콜! 인간이 있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내가 명색이 척탄병인데도 철충한테 폭탄 던져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답답해 뒤지는 줄 알았거든, 이제야 좀 일이 풀리겠네. 그동안 인간 명령없이 철충 잡느라 시한폭탄이나 지뢰같은 것만 만들었어야 했단 말이지."


"새끼 시원시원해서 좋네. 예전이랑 똑같구만."


"반면 넌 엄청 달라졌네. 옛날에 슴다체 쓸 때가 더 귀여웠어."


"시끄러."


"그, 우리 팀이 늘어난 건 좋은데, 가장 중요한 부사령관님을 찾을 방법은 여전히 없다고요."


"야야 그거말인데! 나한테 기막힌 작전이 있거든, 한번 들어봐봐!"


하이에나가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대자 유미는 기겁해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리디아는 하이에나가 저리 신나한다는 부분에서 영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말해보라고 하자 하이에나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저쪽을 찾을 수 없다면, 저쪽에서 우릴 찾아오게 만들면 되지! 니들 저 연기 보고 온거잖아? 그 방법 또 쓰자!"


"또 폭발 일으키겠다고? 여기 있는 거 다 긁어모아서 태워도 그렇게 큰 연기는 안날텐데. 둠 브링어가 쓰는 핵폭탄이라도 갖고있냐?"


"물론 내 화력만으론 부족하니 남의 것 좀 빌려써야지! 펙스가 세운 폭파물이나 인화성 물질로 꽉 채운 창고에 찾아가서 거기 있는 거 한꺼번에 터뜨리면 돼! 존나 큰 폭발! 연기도 존나 크겠지! 캬하하핫, 생각만 해도 신나네!"


"...그거 그냥 니 소망 아냐? 그러고보니 니 버킷리스트 중에 화약고 통째로 터뜨리기가 있었지?"


"야 왜그래, 솔직히 좋은 생각이잖아! 아냐? 게다가 전부터 펙스놈들 마음에 안들었어! 그놈들이 캐나다까지 진출하는 통에 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작업장 옮겨다녀야 했다고! 덕분에 작업 효율도 크게 떨어졌고!"


"그러면, 펙스의 폭파물 창고 위치는 알고?"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이런 답없는 새끼를 봤나, 어느 세월에 그걸 찾는다는-"


"제가 알고 있어요."


"뭐? 진짜?"


작전대로 된다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커다란 연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테지만, 정작 그 목표인 펙스의 군수 창고 위치를 알지 못하는 이상 원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사이엔 펙스의 기밀정보를 줄줄이 꿰고있는 오메가의 전 비서가 있었다. 하이에나가 구석에 파묻혀있던 종이 지도를 꺼내 보여주자 유미는 가장 가까이있는 군수창고의 위치를 콕 집어줬다.


"오오, 안경 너 제법이잖아! 좋아, 내일 동 트는 데로 바로 출발하자!"


"제 이름은 유미에요... ...저기 하이에나 씨,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나요?"


"응? 어떤거?"


"007은 알겠는데, 하이에나 씨가 008이란 번호를 선택한 이유라도 있나요? 혹시 080기관과 연관이..."


"그야 내가 폭8을 좋아하니까 그렇지!"


"...아, 예."



*



춥다. 춥고 배고프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같은 건 자신없었지만 리리스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는 데 도가 텄었기에 나라는 짐짝이 하나 추가됐음에도 철충과 펙스의 눈에 띄지 않고 격전지를 벗어나 강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해가 떨어지니 허기와 추위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바람에 아쉬운대로 강물로 빈속을 채웠다. 


밤눈이 밝은 리리스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바람을 피할 곳을 찾던 중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발견했다. 이 근처의 도시는 작은 마을이었는데다 대다수의 건물들이 파괴된 폐허였지만 강 건너편의 도시는 비교적 멀쩡해보였다. 


다리가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었기에 우리들은 더 지치기 전에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 다리까지 갔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려던 찰나 무언가 발견한 리리스가 잽싸게 내 팔을 잡고선 다리 밑까지 끌고왔다.


"뭐야? 뭔..."


"쉿! 적입니다!"


리리스가 작은 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안오는 것 같았지만 몇 분 기다리니 다리 위에서 묵직한 발소리와 바퀴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사람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사람이 걷는 거라면 다리 밑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머리를 슬쩍 내밀어 다리 위를 보니 다수의 AGS로 이루어진 행렬이 강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8지역이 아닌 9지역에서 본 적들, 레모네이드 감마의 병력이다.


"뭐하는 거에요! 들키고 싶어요?"


"아니 그냥 뭔지 확인만 해보자는 거지..."


"아 그러세요? 그럼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요?"


"...펙스 군대인거 같다."


"와 그거 참 놀라운 정보네요.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아군인 줄 알고 반갑게 손이라도 흔들 뻔 했어요."


"야 그만 좀 꼽주라..."


리리스가 부르자 도로 다리 밑으로 숨었다. 내가 직접 감마의 군대를 본 적이 없는 이상 저게 어떻게 감마 군대인지 아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으니 이 부분은 모른척 했다. 다리 끄트머리 너머로만 본 거긴 했지만 인터셉터 종류는 없고, 다 지상 병력이었다. 전부 앞만 보며 걷고 있었기에 우린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바퀴 소리도 들리는 데 보이지는 않네."


"차량은 다리 중앙을 지나고 있고 양 옆을 AGS가 호위하고 있는가보죠."


"차라면 누군가 타고있는 걸까?"


"바이오로이드의 생체 신호는 전혀 안느껴집니다. 인간이나 철충의 뇌파 또한 마찬가지고요. 저 무리 사이에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면 당신 뇌파를 감지했을걸요."


"그러면 전부 군용 기갑차량인가?"


"글쎄요...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적들이 다리를 다 건너고 나서야 리리스가 다리 밑에서 나와 눈을 찌푸리며 적들의 등을 노려봤다, 후열의 차량 몇 개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체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트럭 종류군요. 대량의 건축 자재를 싣고 있습니다. 방향으로 봐선 미국으로 옮기는 중인 것 같군요."


"건축 자재에... 미국이라..."


평범하게 생각해본다면 뭐 건물이라도 지으려는 건가 생각하겠지만 이상한 점은 저걸 옮기고 있는게 감마의 군대란 거다. 감마나 뭐하러 자기 세력도 아닌 오메가의 땅 위에 건물을 짓는다는 말인가.


아니, 감마의 본진이 어느 대륙이든 간에 호라이즌과 싸우면서 어나이얼레이터를 포함해 포세이돈 함대가 타노스됐으니 본진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일 거다.


그렇다면... 짓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게 목적인가? 반파되서 멀리 못나가는 어나이얼레이터를 수리하기 위해서?


"부사령관, 이제 어쩔 겁니까?"


"응?"


"다리를 건널겁니까 말겁니까? 좀 전의 AGS 행렬로 봐서 미국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거일수도 있고, 혹은 저 강 건너편에 더 많은 AGS들이 아직 회수가 안끝난 자재를 모으러 남아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디로 갈 겁니까? 아님 다리를 무시하고 강을 따라서 이동하겠습니까?"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좀 전까지만 해도 무작정 강 건너편의 도시가 멀쩡해보이니 저쪽으로 가자는 단순한 이유로 다리로 왔었다. 그러나 방금 적들을 눈으로 확인한 이상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원작에선 9지역 이후의 감마의 행적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제일 아끼는 기함인 어나이얼레이터가 망가져버렸으니 그것부터 먼저 수리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 정박하겠지. 미국 서해안이나 캐나다 서해안, 아님 그 사이 쯤에.


그리고 감마 본인은 어나이얼레이터 수리를 감독하기 위해 아마 그 근처 항구에 머물 거다. 방해전파 밖으로 나가기위해선 바다 쪽으로 가야하지만 그 근처 해안가는 사실상 봉쇄된 상태. 따라서 오메가와 감마 둘 다 마주치지 않은 채 돌아가려면...


"다리를 건너자. 좀 더 북상한 뒤 바다로 가서 오르카호와 연락을 시도해보자고."


리디아 일행과 재회하는 게 더 늦어질지도 모르는 선택지지만 그녀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단이 없는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수라고 생각한다.


결정을 내리자 리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원래 차로 건너야 하는 다리라서 지친 걸음걸이로 강 건너편에 도달하기까지 어림잡아 30분 넘게 걸린 것 같았다. 밤이 깊어서야 우린 도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가동을 멈춘 폐공장이 즐비해있는 공업단지였다.


밤도 깊었고 몸도 피로한 만큼 먼저 잠을 잘만한 곳을 찾아야만 했었다. 공장 인부들이 쓰던 숙소 같은 게 없을까 했지만 리리스가 이런 건 보통 다 무인공장이라 인부를 위한 건물따윈 없다고 했다. 공장을 감독하는 간부급 사람들이야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집에서 출퇴근하기에 공장 근처에 숙소를 두지 않는다. 빌어먹을 자동화 시대.


아쉬운대로 가장 가까이 있는 공장 건물로 걸어갔다. 문에 쇠로 된 자물쇠가 걸려있었으나 리리스가 맨손으로 자물쇠를 짓뭉개서 떼어낸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최상급 바이오로이드의 신체능력이 굉장하긴 하구나.


난방이 전혀 없었긴 해도 밤바람을 막을 수 있었기에 바깥보단 나았다. 리리스는 바닥에 눕는 대신 문 근처 벽에 기대어 쪼그려앉아 잘 준비를 했고, 나는 정지된 기계들 위에 덮여있는 천을 한장 가져와 스스로 멍석말이 하듯 내 몸을 둘둘 만 뒤 대충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배고프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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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올려서 재업


비춰야할 캐릭들이 각각 떨어져있어서 계속 시점 바꿔가며 진행해야하는데 잘될랑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