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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령관은 굶주린 늑대로부터 숨어 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주에 성공했던 적은 0번이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그때 하얀 장갑을 낀 손에 어깨를 잡았다.


"사령관. 긴히 할 얘기가 있다."

"히, 히익!!"


사령관은 발작을 일으키며 가드를 올렸다.


"제, 제발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

"....."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빌었다.

그런데...


"훗,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지."


아스널은 그냥 돌아서서 가버렸다.


".....?"


의외의 전개에 사령관은 슬며시 눈을 떴다.

혹시 연기가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연기를 했던 적이...


그런데 아스널은 벌써 복도 저 멀리 떠났다.


'아스널이....'


저렇게 쓸쓸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아스널은 생각한다.


'내가...'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 심란했다.


'너무 들이대기만 했나?'


요 근래, 사령관은 그녀만 만나면 발작했다.

그녀로써는 단지 사랑을 표현했을 뿐인데...


그 반응을 보면 조금 과했던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아스널 씨가 고민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요."


아자즈였다.


그녀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 피아노 잔해에요."

"피아노?"

"창고에 박혀 있던 것을 제가 찾아서요. 가지고 놀아보려고요."

"흠...."


자루를 보며 고민하는 아스널.

그런 그녀에게 아자즈가 묻는다.


"어떤 고민이 있으시죠?"

"사령관이 물어보라고 하던가?"

"아뇨? 개인적인 호기심이에요."

"기계 말고도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군."


"기계에 가장 관심이 많지만,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사색에 잠긴 모습을 보니 관심이 가네요."


아스널은 훗 하고 웃는다.


"음, 들이대기만 하는 여자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아자즈는 자신이 기계들을 쫓을 때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걸 잡아서, 그대로 개조하는 것도

나름의 묘미거든요. 굴복시키는 맛이 있달까."


"...."


"이런 대답을 원하신 게 아니었나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아스널은 미간을 오므린다.


"아니, 그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무는 법.

시작은 장난이었다고 해도,

정도가 심해지면 진심으로 겁에 질리게 되지."


지금 사령관이 딱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었다.

너무 몰아쳐서...

여유가 없어진 것일 지도.


'차분히 생각해보니 전적으로 내 잘못이군.'


"사령관님 얘기였군요."

"지금까지 무슨 얘기인 줄 알았지?"

"기계요. 다루시는 무기나 컨테이너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어요."


아자즈는 당당했다.


"전 기계가 가장 좋으니까."

"훗. 그거, 피아노라고 했던가?"

"예."

"같이 어울리고 싶군, 흥미가 생겼다."

"같은 흥미가 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가요."


두 사람은 함께 아자즈의 방으로 향했다.



아자즈는 순식간에 피아노를 조립했다.


"칠 줄도 아는가?"

"제가 못 다루는 기계는 없어요."


그렇게 말한 아자즈는, 몇 번 건반을 누르더니

능숙한 솜씨로 한 곡을 연주했다.


"훌륭하군."

"감사해요. 한 곡 더 칠까요?"

"그래주면 고맙겠군."

"그럼 옆에서 노래라도 한 곡 불러주시겠어요?"

"노래?"

"네. 피아노에는 노래죠."

"노래라...."


아스널은 살짝 미소 지었다.


"좋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연습했다.


아자즈는 같이 어울려 달라는 아스널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로써는 기계를 다루는 것이 즐거웠고,

나중에 컨테이너를 개조하게 해준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수 일이 지난 어느 날.

지나가던 페로가 그 둘의 합주를 들었다.


'저건.... 아스널 준장님...?'


아스널의 노래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감미로웠다.

아자즈의 피아노 실력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세상에...'


페로는 그 노래에 크게 감명 받았다.


'나도.. 나도 저렇게 노래하면 사령관님이 예뻐해주실 지도 몰라.'


사령관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어느 바이오로이드도 다 똑같을 거다.


그러나 고민이었다.


'난 목소리가 저런 노래랑은 안 어울리는데..'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면 될 터.


가사를 어떻게 할까?


페로는 방에 틀어박혀서 수십 시간을 고민했고,

퍼뜩 떠오른 한 단어를 공책에 적었다.


'사랑은.... 사랑은 파르페처럼... 이거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페로는 그 뒤로도 종종 몰래 아스널과 아자즈를 관찰했고,

둘이 뭔가를 꾸민다는 것,

그리고 그 계획에 끼려면 바니걸 복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바니걸....'


그래서 페로는 오드리에게 부탁해서 바니걸을 제작했다.

아직은 용기가 나지 않아서 끼어달라고 말을 못했지만.

반드시 두 사람이 하는 일을 같이 하고 싶었다.


그 둘의 꾸미는 일이라면,

분명 사령관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페로야, 요새 뭘 그렇게 숨기고 다녀?"


페로가 오드리에게 부탁한 옷을 받고 돌아갈 때였다.


사령관과 만났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리리스, 잡아!!"

"리릿!!"


리리스가 순식간에 페로를 앞질렀다.

페로는 도망치려고 했으나...

결국 제압 당했다.


"뭘 그렇게 몰래몰래 들고 가는 거야?"


사령관이 페로가 떨어뜨린 봉지를 줍는다.


"아.. 안 돼요!! 제발..! 사령관님 제발!!"

"....알았어, 안 볼게."


사령관은 순순히 봉투를 페로의 앞에 내려두었다.


"대신 대답해줘. 아스널은 뭘 하고 있는 거야?"

"....."

"아, 알려드릴 수 없어요...."


페로도 그 둘에게 허락 받지 않고 멋대로 따라한 거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거 하나만 말해줘.

아스널은 괜찮은 거지?

저번부터 풀 죽어 있던 것 같은데...

벌써 2주가 넘게 얼굴도 못 봐서 많이 걱정돼."


"네. 괜찮으세요. 그건.. 그건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요."

"그러면 됐어. 리리스, 놔줘."


리리스가 페로를 놓기 전에 말한다.


"이 언니한테도 비밀로 하다니, 살짝 삐쳤어요."

"죄송해요..."

"후훗, 괜찮아요. 다만, 건강은 챙기세요. 아셨죠?"

"네."

"사령관님~ 같이 가요~~!!"






그리고 오르카호의 주말. 선내 방송이 울렸다.


-네~ 오늘은 아스널 준장님이 개최한 카페 공연이 시작되는 날!

모두 귀속까지 빡빡 닦고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요~!

저 오렌지에이드도 과연 아스널 준장님, 그리고 해체자 아자즈 씨가

대체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지~~ 무척이나 기다가 되는 부분이에요!!

오늘 오후 9시! 카페 아모르에 오신다면~~(중략)


며칠 전, 아스날이 공고를 올렸다.

카페를 개장할 테니 모두 놀라오라고.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지금 준비실에 있었다.


"이런 복장은 처음이네요. 살짝.. 부끄럽네요."

"그런가? 평소 입는 쫄쫄이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네요.

그런데 굳이 이런 옷을 준비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희 노래 스타일은 좀 더... 차분한 복장이 어울렸을 텐데."


"사령관이 좋아할 것 같았지.

또, 너무 거창한 것은 오드리에게도 실례일 테고.

우리가 몰래 부탁한 것이니까."


"음, 확실히 그러네요."


둘은 바니걸 옷을 입었다.

사령관 몰래 준비한 옷이었다.


빨간 바니와 하얀 바니였다.


"그럼 이제 시작을.."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페로가 들어왔다.


"저, 저도 껴주세요! 오, 옷이랑 노래도 다 준비해왔어요."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환영한다."


검은 바니도 합류했다.







무대를 앞두고 자리에 앉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웅성거린다.

사령관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그 아스널님이 노래를...?"

"아자즈도 있다던데."


"아, 아."


빨간 바니걸을 입은 아스널이 무대에 나타났다.


"카페 아모르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짝짝짝짝짝.


긴 박수가 이어진다.


"오늘 이렇게 부른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그저 와서.. 노래 몇 곡 들으며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오..."

"세상에, 아스널님이 저런... 의외네요."


"음, 진행을 맡은 것이 처음이라 어색하군.

내 성격 상, 질질 끄는 것을 싫어하니,

바로 공연을 시작하겠다.

첫 무대는 페로다. 박수로 맞이해주도록."


짝짝짝짝짝


박수를 맞으며 제1 바니걸, 페로가 나타났다.


"페로야 힘내!!"


리리스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응원한다.


"주책인 아줌마가 하나 껴 있네요. 해충해충."

"아, 아줌마!? 이 아다 년이!!"

"무례하게 굴지 말고 술 맛을 느끼세요. 바텐더의 솜씨가 대단하군요."


"모두 정숙하고 즐기도록. 곡명은... '사랑은 파르페처럼.'이다."


곧바로 노래가 시작됐다.


빨개진 얼굴로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가,

그 자리에 앉은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자.. 잘 들으셨나요... 뀨뀨.,.."


노래가 끝나자, 세찬 환호가 쏟아졌다.


"우리 페로 최고다!!"


사령관이 외쳤고,

페로는 혼미해질 것 같은 정신에 비틀거리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정말 귀여운 무대였군. 다음은 아자즈다. '이별의 끝.'"


아자즈의 노래는 페로와는 정 반대였다.

부드러우면서 선명한 피아노의 선율,

평소의 살짝 풀린 듯한 성격과는 달리

애절하고 애타는 목소리.


그녀의 노래는 웃음과 행복을 준 페로와는 반대로,

순식간에 무대를 장악하며 모두의 눈을 감게 만들었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침묵 속에 박수 소리만 울려 퍼졌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그만큼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었다.


"여태 함께 연습하며 수십 번을 들었지만,

오늘만큼 애절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은... 내 차례로군."


빨간 바니, 아스널이 앞으로 나섰다.


"사실 오늘 이 무대는.

나로 인해 여러모로 마음에 여유를 잃었을,

사령관을 위해 준비한 자리였다."


"오...."


"이 곡의 이름은  gray clouds.

회색빛 구름이라는,

사령관에게 해를 입힌 내 죄책감을 담은 노래다."


"아스널..."


사령관은 감동했다.


"부디, 나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빌며,

그대에게 이 노래를 바치겠다."


선율이 깔리며 노래가 시작된다.


아스널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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