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눈 돌리지 말고 내 말에 대답해."


"잠시만요! 저희ㄴ.."


[탕]


"아직 질문한 적 없다. 다음부턴 머리를 거치고 입을 놀리는 걸 추천하지."


"네..."


"다른 동료가 있나."


 

"저 혼자ㅇ.."


[탕]


"대답하라고 했지, 거짓말을 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예쁘장한 얼굴이 토마토 퓨레가 되길 원하나?"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내 생각에 니가 말한 '저희' 중 한명이 저기 상공에서 널 찾는 것처럼 보이는 금발머리같은데."


"...죄송해요. 해가 될 것 같아 거짓말을 했어요."


"영리한 여자군. 동료를 살리고 자신이 죽는 건 꽤 로맨틱하지. 하지만 다음은 없어."


"네.. 알겠습니다."


"좋아, 대답할 준비가 된 것 같군. 밖에 있는 검은 놈들과 동료인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아니에요. 오히려 적이에요."


"지금 당장 머리를 쏠 일이 없어 다행이군. 터진 호박을 보는 건 취미가 아니라서 말이야."


"이름과 소속은."


"제 이름은 콘스탄챠 S2이고, 현재는 라비아타 언니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이름들이군. 여기엔 뭐하러 왔지. 약탈, 아니면 정찰?"


"저희는 인간님을 찾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집에 거울이 없는 모양인데. 니 뒤에 철판이라도 주워서 보는 건 어때."


"저희는 인간이 아닌 바이오로이드이기 때문에.."


"콘스탄챠? 거기서 뭐해?"


"멈춰. 금발머리."


"누구야!"


[탕]


"오늘이 내 생일이었나? 서프라이즈도 정도껏 했으면 좋겠는데."


"그리폰! 진정해! 먼저 자극하지만 않으면 공격하시지 않아!"


"사람을 짐승취급하는 게 좀 걸리지만, 대부분 맞는 얘기다. 내려와."



[슈우우욱]


"진짜지?"


"그래, 난 말을 잘 듣는 아이를 좋아한다. 묻는 말에 진실만 대답하면 몸무게가 느는 일은 없어."


"뭣, 그렇게 살 안 쪘거든!"


"금발에 거유.. 옛날 말이 틀린 게 없군. 콘스탄챠, 하던 얘길 계속하지."


"야! 무시ㅎ."


"그리폰, 잠시만.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이기 때문에 인간님의 명령이 없으면 싸울 수 없어요. 지금까지는 자율적인 방어로 철충들을 막아왔지만, 방어 이상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이대로라면 괴멸당할 가능성이 너무 커요. 그래서 저희들에게 명령을 내려주실 인간님을 찾기 위해 정찰을 하고 있었어요."


"그럼 날 데려가겠다는 얘기같은데, 맞나?"


"가능하다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얘기지만 거절한다. 너희들이랑 같이 있어서 나에게 무슨 메리트가 있겠나. 대신 여유분의 음식을 좀 주지. 빔보 옆에 창고 열어서 가져가."

* 빔보: 외모는 매력적인데 머리에 든 게 없다는 뜻의 비속어. 보통 금발+거유인 캐릭터에 많이 붙는 속성


"야! 누가 빔보야!"


"그리고 저 시끄러운 것 좀 빨리 데리고 나가. 주변 검은 놈들을 다 불러모을... 시발."


[위이이잉]


"둘 다 기계 뒤에 숨어!"


"그리폰!"


"알아!"


 

[위이잉 위이잉]


'나이트 칙 런쳐 둘, 인간님이 계신다면 문제는 안되지만 등록 절차가 아직인데... 지금 바로 한다고 해도 어디 계신지를 모르니까.. 여기선 아까처럼 그리폰이 철충들을 유인하는 게..."


[탕]


[위이이.. 쿵]


[! 위이잉 드르륵 철컥]


[탕]


[드르ㄹ.. 쿵]


"애미씨발! 콘, 빔보! 뒷문으로 달려!"


"..네! 가자, 그리폰!"


"인간! 너 자꾸!"



...


  

[위이잉 위이잉] [위잉 드르륵] [부우웅]



"..당분간 산책도 못 나가겠어. 이봐, 콘. 당장 돌아가야 하나?"


"아니요, 정해진 귀환 시간은 없어요."



"그쪽 아버지한테 샷건 맞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군. 거기 주변에 앉든 눕든 알아서 쉬어 둬. 어차피 하루 이틀은 못 나가. 밥은 부엌 찬장에서 꺼내먹던가 해."


"야, 인간"



"아, 깜빡했어. 화장실은 참아. 밖에서 털 하나라도 흘렸다간 셋이서 사이좋게 묻히게 될테니."


"왜 여기서 혼자 사는 거야?"



"...멋대로 남의 기지에 들어와서 그 시끄러운 주둥이로 주인 허락도 안 받고 검은 깡통들까지 초대하신 주제에 이젠 호구조사까지? 갈수록 가관이군."


"그건!.."


"미안..."



"하아..."


"나도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딴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 눈 앞에 있는 건 총이었고, 다가오는 건 저 불길한 깡통들이었어. 그 상황에서 한가롭게 자아탐색이나 할 수 있었을 것 같나?"


"..."



"이젠 나도 쉬고 싶으니까 더 할 얘기 없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렴, 아가야. 이 나이먹고 뜀박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오늘은 일이 너무 많았어. 나가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가능하면 혼자 묻히도록 해."


"저.. 주인님?"



"주인님? 나 말하는건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트로피는 필요없는데."

*트로피 와이프: 늙은 남편 + 젊은 아내 조합


"아니요. 저희는, 하다못해 저는 인간님께서 저희들의 주인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얼굴을 보니 달콤한 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슈가 대디: 달콤한 아빠, 원조교제나 파파카츠 생각하면 될 듯.


"인간님은 장비만 있으면 철충과 전투가 가능하실 정도로 강하시고 경험도 많으세요. 거기에다 아까 저희를 대하셨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능한 한 폭력을 피하시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제 말이 맞나요?"



"그럴리가. 내 집이 더러워지는 게 싫었을 뿐이야."


"..그리고 실례가 될 수 있지만 현재 계시는 곳과 남아있는 장비 모두 이미 낙후된 상태로 보여요. 하지만 저희쪽에는 편하게 지내실 시설과 넉넉하진 않지만 여기보단 나은 보급상태에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인간님이 계시지 않아 방어로만 버텨왔지만, 직접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인간님이 내실 수 있는 파괴력의 수십 수백배를 넘는 힘으로 인간님을 보호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 저희를 이끌어주신다면 적어도 돌아가시는 날까지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드릴게요."



"허어..."


"어떠신가요?"



"하"


[딸깍 화륵]



"후우... 콘. 아까 멍청하다고 했던 말 취소하지. 영리하군. 영리하고 영악해. 마음에 들어."


"..."



"하지만 대답은 같아. 거절한다."


"..이유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낙후됐다곤 하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는 멀쩡히 지낼 수 있어. 젊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어차피 오래 못 살 몸이야. 그리고 니들이 날 지킨다고? 웃기는 소리.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실버타운은 사양이다."


"그럼 저희들이 명령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로 힘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시면 들어주실 건가요?"



"흠.. 그 정도 부탁정도야. 명령이다. 밖에 있는 나는 놈 한 놈이랑 걷는 놈 두 놈을 쓸어버려."


"아직 사령관 등록 절차가 끝나지 않아서 불가능해요. 그전에 먼저 이름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름? 불러줄 사람도 없는 이름같은 건.."


..


'이제부터 아저씨 이름은 저비스예요!'

*저비스 펜들턴: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등장인물인 키다리 아저씨의 이름



'저비스? 너무 로봇같은데.. 다른 거 없어?'

*자비스: 아이언맨에 토니스타크가 만든 인공지능. 


'아저씬 책도 안 읽어요? 암튼 아저씨는 키가 크니까 저비스! 알겠죠?'



'알았다, 알았어. 앞으로 내 이름은..'


..


"..."


"인간님?"



"저비스, 저비스다."


"그럼 저비스 주인님, 아까 내린 파괴 명령을 다시 한 번 부탁드릴게요."



"나는 놈 하나, 걷는 놈 둘, 고철 수거업체도 무시할 정도로 부수고 와."



...



"..솔직히 기대도 안 해서 계속 저격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유능하군. 특히 빔보."


"야! 내 이름은 그리폰이야. 자꾸 빔보라고 하지마!"



"이 정도면 자신있을 만도 하군. 좋아. 따라가지."


"야!"



"그래서 어디로 가지, 콘?"


"우선은 터널을 따라서 등대 쪽으로 가야 해요."


"..등대?"



..


'저비스! 저건 뭐야?'



'저건 등대야,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잘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켜놓는 거지.'



'그래? 그럼 원래 저렇게 불을 깜빡여?'



'그럴리가 없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옛날에 모스 부호 정리했던 게..'


..


'그래서 무슨 뜻인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고장났나 봐.'



'그렇구나~'



'뭐하는 거야?'



'그냥. 떠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



'그러냐..'


..


"무슨 일 있으신가요? 주인님"



"별 거 아니다. 밖에 있는 놈들이 좀 줄면 출발한다. 쉬어."


----


사령관 콘으로 쓸만할 게 없네요.


어후 후속작은 낼 생각 없었는데 어떡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