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넌 뭐지? 여왕, 아니면 기사인가?"


"둘 다일세.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쪽이 우리들의 주군이신 모양이군?"



"마지막 경고다. 6피트 땅의 토지매매계약서에 납탄으로 사인해주길 원하나."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단편집 중 일부. 땅에 집착하던 농부가 갖게 된 땅은 결국 그가 묻힌 6피트 남짓(약 182cm)의 묫자리 뿐이었다는 이야기. 즉, 총맞아 뒤지고 싶냐는 뜻


"잠시만요! 주인님, 이분은 요안나 씨고 같은 편이에요!"


"물론. 짐은 언제나 그대들과 함께하지."



"쯧, 능글맞은 여왕님이시군. 이름이 뭐라고?"


"아! 짐이 이런 기본적인 예절조차 까먹어서야! 용서하시게 주군. 좀 늦었지만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짐은 동쪽과 남쪽, 바다 건너의 기사. 모든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여왕, 외로이 신앙을 지키는 자들의 보호자, 사제여왕 요안나라고 하네.


이제는 오롯이 홀로 남으신 귀하신 분께 경의를 바치노라."



"...내 살면서 이렇게 거창하고 정신사나운 자기소개는 처음이야. 흑인, 여자 왕, 사제에 기사라.. 취향 한 번 특이하군. 키치도 이런 키치가 없겠어."

*키치: 직역으로는 나쁜 예술이라는 뜻의 독일어. 쓰이는 의미가 다양하지만 저비스는 '잡다한 속성을 짜집기해서 만든 겉만 고급스러운 저급 물품' 정도로 사용했음.


"하하! 취향은 아니지만 말일세. 그리고 겉이나마 좋게 봐주어 고맙네!"



"후우.. 벌써부터 피곤하군. 그래서 여왕께서도 등대로 행차하는 중이셨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겠군. 콘스탄챠에게 들었겠지만.."



"기다려."


"?"



"콘. 티타임 시간이다. 이건 무슨 속셈이지."


"아하하"


"인간! 미쳤어!?"



"대답 여하에 따라 납으로 만든 스콘을 먹게 될 거다. 내가 분명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스콘: 다과회에서 차와 곁들여 먹는 소프트 비스킷. 여기선 총알.


"콘스탄챠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거짓말이든 말을 안 했든 결과는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거지. 콘, 니 입으로 설명해."


"..실은 출발 전에 기지로 연락을 했는데 통신이 닿질 않아서요. 부득이하게 두번째로 안전한 장소인 등대로 모시게 됐어요. 요안나 씨에겐 가는 도중에 연락을 드렸구요."



"그럼 왜 그걸 숨겼지."


"...주인님을 설득할 때 안전한 집과 보급상태를 말씀드렸는데, 기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주인님. 어떤 벌이든 받을게요. 하지만!.."



"됐다. 거기까지. 티타임 시간은 끝이야. 이동한다."


"떠나지.. 않으실건가요?"



"그 말이 진짠지 아닌지는 등대까지 가서 확인한다. 만약 그 변명이 거짓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장담하지. 


그 일대를 폼페이로 만들어주겠다."

*폼페이: 현재 이탈리아 나폴리에 위치"했"던 도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 인구의 10%가량이 화산재에 묻히고 도시가 소멸함.


"..네, 알겠습니다."


"칫, 허세는.."



"빔보, 내가 나이는 좀 먹었어도 귀까지 먹지는 않았다. 묘비에 남길 말을 입으로 지껄이지 않는 걸 추천하지."


"아, 그리폰이라고!"



"그만 떠들고 진짜 출발한다. 콘, 계속 안내해."


"네, 알겠어요. 주인님."


"...콘스탄챠. 주군께서는 꽤나 화끈한 성격이시구려."


"좀.. 그런 면이 있으시죠?"



...



"오래도 걸었군. 이게 니가 말한 등대인가?"


"네, 맞아요. 꽤 근사하죠? 하지만 등대 지하에는 더 근사한 게.."



[번쩍 번쩍]

*인게임에 나오지만 모스부호는 "나는 깊고깊은 심연, 어둠에서 태어난 자... 태고의 어둠 속에서 검은 고독과 싸우며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로 해석됨.


"잠깐. 콘, 등대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등대에 모스부호면... '그 아이' 네요."


"'그 녀석' 밖에 없지."


"'그 소녀' 로군."



"하아... 콘, 부탁이니까 누가 있으면 있다고 미리 말 좀 해주지 않겠나, 일일이 홀스터에서 권총 꺼내다 뒷통수에 겨누는 것도 지치는군. 그쪽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건 젊은 놈한테나 시켰으면 하는데."

*그쪽 취향: M


"아하하.. 죄송해요. 주인님. 아!"



"..또 뭐지."


"그.. 주인님? 요안나 씨만큼은 아니지만 '그 아이' 도 좀 특이한 아이라서요. 가급적이면.."



"아까도 말했던 거 같은데. 판단은 내가 한다. 안내나 해."



..



"여기가 입구군. 콘, 문 열어."


"네."



[끼이익]



[팅! 휙]


"야! 인간! 너 뭐하는.."



[펑]


"으앙! 뭐야!"



"손 들어. 발포하겠다.. 이런 씨발... 비켜!"



"안돼.. 안돼! 이 씨ㅂ.. 미안하다 꼬마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 괜찮아질거야. 다친데 없니? ..다행이야, 파편이 박히지는 않았어. 정말 미안해 꼬마야. 어지럽지는 않니? 정신 차리고 있어.. 그래, 우리 재밌는 얘기할까? 무슨 만화를 좋아하니? 하고싶은 얘기 다 해도 돼. 괜찮아. 다 괜찮아질거야.."


"만화?! 할아버지, 드래곤 슬레이어 알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동료들이랑 힘을 합쳐서.."



"그래, 정말 재밌겠구나. 천천히 얘기해도 괜찮아. 다음에 꼭 같이 만화를 보자꾸나. 그러니까..."


"저.. 주인님. 진정하시고.. LRL도 기본적으로 바이오로이드인지라 섬광탄에 다치지는 않아요. 그리고 등대빛을 내기 때문에 웬만한 빛에는 눈이 부시지도 않구요."



"..정말이니, 꼬마야?"


"이씨 자꾸 꼬마라고 하지마! 이 몸은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야!"



"후우... 콘, 잠깐 담배 좀 피고오지. 아이 좀 돌봐주겠나?"


"네, 주인님.."

*섬광탄: FPS 게임에서 묘사되는 섬광탄과 달리 실제 섬광탄은 일시적이고 강렬한 빛 뿐 아니라, 상당한 폭음과 폭압, 고열을 동반하고, 섬광탄 파편까지 날릴 수 있어 잘못 맞으면 사망할 위험성도 다분함. 물론 LRL이 인간보다 근력이 약하게 설계된 바이오로이드긴 하지만 저거 맞는다고 다칠지언정 죽지는 않음.


..



[팅 화륵]



"후우우...."



..


'저비스.. 나 배가 너무 아파... 나 죽어..?'



'죽긴 누가 죽는다 그래! 어린 놈이 그런 말하는 거 아니야. 지금 주사 놓을테니까 정신이나 똑바로 차려!'

*노르에피네프린 주사: 피의 양이 충분할 때도 저혈압 쇼크가 나타날 시 사용함. 위처럼 혈량이 부족할 시 수혈을 해가면서 사용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로 주사를 놓으면 상처부위로 계속 피가 빠져나가서 오히려 출혈량이 늘어남. 주사를 놓든 안 놓든 아이는 죽었을 것.



'아니야.. 저비스... 주사 놓지마... 약.. 별로 없잖아... 그거 저비스 써...'



'입 다물어! 이런 망할.. 손이 떨려서 바늘이..'



'저비스.. 울지 마... 저비스가 울면 나도 울고 싶어...'



'젠장.. 젠장!'



'괜찮아.. 저비스... 다 괜찮아질거야. 다 괜차ㄴ....'



..



"씨발.."


"괜찮으신가, 주군?"



"..뭣하러 왔나."


"아까 주군의 행동이 남일같지 않더군."



"! 니까짓게 뭘 안다고!.."


"인류의 멸망 전부터 지금까지, 나 또한 기사로서, 그리고 여왕으로서 많은 이들을 내 품에서 보내주었네. 이걸론 부족한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우선 주군이 겪었던 불행한 일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를 표하겠네."



"그건 됐다. 본론부터 얘기해."


"..콘스탄챠에게 들어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바이오로이드. 인간을 흉내내었을 뿐인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적극적인 공격이 불가능해 사상자가 나오기 일쑤였다네. 하지만 주군이 있다면 다르네. 설령 주군이 완벽한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전과는 현저히 피해가 줄어들 터. 그렇게 되면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자가 적어질걸세."



"..."


"부디, 우리의 주군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겠나?"



"..요새는 따로 설득법을 가르치기라도 하는건가? 콘스탄챠나 너나 설득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하하! 인재의 포섭과 등용은 왕의 덕목일세!"



"..알겠다. 내 이름은 저비스다. 아직 치매가 아니라면 통성명이 아직인 거 같은데."


"저비스! 좋은 울림이로군! 프레스터 요안나, 다시 한 번 귀하신 분께 경의를 바치겠노라!"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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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기 전까지 몇 편이나 쓸 수 있을까요.


인게임에서 요안나 만나고 전투가 한 번 있긴 한데, 여기서는 앞뒤가 막히면 나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산길을 통해 이동중이었습니다. 요안나도 콘스탄챠가 저비스 몰래 연락한 걸 받아서 철충이 없는 중간지점에서 대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령관 등록을 할 일이 없었으니까 LRL을 만나고 이름을 듣게 되는 장면이구요. 그전까지는 저비스가 마지막 인간인 걸 요안나가 눈치까고 적당히 주군으로 불렀습니다. 물론 사령관 등록을 안 했으니까 멈추라고 말했을 때 안 멈춰도 타격이 없었죠. 이건 1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을 쏴서 멈춘거지. 멈추라고 해서 멈춘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