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45340823





간신히 아랫도리를 꽉 잡아매어 지리는 걸 참은 나는 그 누런 길거리를 걸어 다시 의회를 향해갔다. 불굴의 마리는 이를 마치 알고 있었다는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보십쇼, 아무리 인간님이 설득한다 하신들, 칸 대장을 설득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전에는 전장을 뛰어다니며 대활약을 하던 사람이, 이제는 복싱장이라니, 거 참… 실력을 썩히고 있군…”


“마리 대장, 말이 심하오. 칸 대장도 극심한 트라우마라는게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소? 칸은 정신적인 상처가 많은 거지 절대 약한 자가 아니오!”


“무적의 용, 제가 지금의 칸을 보고 있자면, 멸망전에 군사 박물관에 어린 아이가 탱크에 올라타 해맑게 웃고 있는게 떠오른다네. 그 탱크는 과거에 엄청난 활약을 하며 다른 탱크들의 성능을 압도하는 녀석이였지. 하지만, 그 어린 아이가 타고 있다면, 과연 그 탱크는 뭘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못해, 움직이는 것도 몇년이 걸릴거야. 지금 칸의 상황이 그렇다네. 정신적 상처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뛰어난 신체와 빠른 스피트, 훌륭한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칸이… 지금은 그저 수많은 복싱장중 하나를 세워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단 말이야!”


“ㄷ, 두분 싸우시지 마시고…”


“라비아타 대령은 조용히 하시오!”

“대령님은 좀 조용히해주십쇼!”


“...!”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응? 마리 자네가 칸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인가? 아니면, 인간의 말 한마디 때문에 구할수 있던 동료들을 눈앞에서 잃은 사람이오. 당신 아래에 칸이 있다는 건 말이 안되지. 지금 다시 가서 칸과 스파링이나 한번 해보겠소? 물론 나는 칸이 이길거라 걸지.”


“...! 겸상을 오래하니 할 말 못할 말 구분도 못하는 겁니까, 무적의 용?”


“명심하시오, 그쪽도 결함이 있고, 그것 때문에 개조형 모델까지 나온 처지라는 걸 말이오.”


“...! 지금 뭐라고-”


“다들 그만!”


더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싸우는 소리는 처음에는 조곤조곤하게, 내 귀를 툭툭 치는 느낌이였고, 인간보다 똑똑한 바이오로이드들이였기에 그 싸움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또렷해지고, 과격해지는 목소리에 여기서 말리지 않는다면 정말 주먹다짐으로 이어갈 것 같아 나는 필히 그 싸움을 말려야 하겠다는 필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약간의 우려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내가 소리를 한번 꽥 지르자 둘은 흠칫 놀라면서 입을 다물었다. 새로운 동료를 만들기도 모자를 판에, 내부 분열이 심하지는 것은 꽤 심각한 상황이다.


“아니, 칸을 우리편으로 만들어야지, 너네들이 칸 가지고 싸우는건 안되는 거잖아, 응?”


“...면목 없습니다…”


“...”


“...뭐, 이번껀 어쩔수 없겠지. 하지만, 몇번씩 이렇게 찾아와서는 부탁하게 되면 저쪽도 고려 정도는 해줄수 있지 않겠어?”


“ㄱ,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 칸 대장님의 심리상태는 위험 그 자체라구요!”


“어쨋든 그 칸이라는 작자도 전에는 우리, 아니 그쪽들 편이였잖아?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


“...오늘은 실패했으니까, 이쯤 하자고. 템포를 빠르게 잡아도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야. 라비아타, 혹시 내가 여기서 지낼 방 하나만 알아봐 줄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주인님, 잠시 이쪽으로… 마리와 용 대장님분들은 먼저 의회로 가주게요. 아직 저희는 할 일이 있으니까…”


““옛!””


우렁찬 두 사람의 기합과 함께 그 둘은 다시 어둑어둑한 골목 사이로 빠져들었고, 나는 라비아타를 따라 그들이 향하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차근차근히 걸어갔다.


“...인간님?”


“...?”


“인간님께서는… 어째서 잠에서 깨어나신 건가요?”


“...잘 모르겠어. 혹시, 일단 팩트 확인부터 해줄래?”


“물론이죠, 인간님.”


“내가 사는- 아니, 내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는 바이오로이드라는게 존재했었지. 그건 맞는거 같은데?”


“인간분들께서는 멸망전 기술인 오리진 더스트로 생체컴퓨터를 만들어 인간 모습의 노동용 생체컴퓨터, 바이오로이드를 제작하였죠.”


“...거기까지는 사실이네. 다행히도 말이야. 어쨋든, 그렇게 바이오로이드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나서… 철충이란 것이 지구를 습격하게 되었어. 혹시 그것도?”


“하늘에서 수많은 개수의 붉은 구멍들이 생겨났고, 기계에 기생하는 기생충, 철충이 지구를 전범적으로 습격하였죠.”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장소를 불문하고 잠에 빠져들고, 악몽을 꾸다 더이상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어. 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그걸 휩노스 병이라 지칭하였지만, 원인은 찾지 못했지.”


“...맞습니다.”


“아직까지는 현실인가보네. 다행히도,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었어서 내부에 있는 섬 내부에만 있는 철충들만 소탕하면 됬지만, 휩노스 병은 피할수가 없었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면서 병은 빠르게 확산되어갔어. 그렇게… 그렇게…”


“...?”


“...기억이… 안나.”


“그럼, 영국에서 철충을 막아내다 잠에 빠져들었다는 건가요?”


“그건 아냐. 마치… 필름이 끊긴것처럼 그 이후로 생각 나는건 없었어. 그치만… 나는 어느순간부터 운좋게 에바의 인류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서, 그녀의 실험실에서 휩노스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어. 물론 내가 약을 만드는건 아니였고, 일방적으로 에바라는 작자가 개발한 약을 나한테 먹이는 정도였지.”


“...”


“그렇게 약을 다들 쳐먹었는데도, 나 빼고 하나둘씩 상태가 안좋아지더라고. 나도 마찬가지로 계속 정신이 멍해져 갔고, 이대로 그냥 잠에 빠져나 했지. 근데… 눈을 감으면 무조건 뜨게 되더라도.”


“휩노스 병에 대해 면역이라는 건가요?”


“모르겠어. 그냥… 에바 말로는 정신적인 저항이 완강해서 약이 먹히질 않는다 하더라고. 내가 휩노스 병에 면역인거 같기도 하고, 에바도 휩노스 병을 고칠 약을 만들었다 해서 기뻐했지. ”


“그 다음은…”


“계속 갇혀있었어. 그 실험실에서 에바한테 수십번 피를 뽑히고, 혹시라도 몰라 약을 먹이고. 나야 좋았지. 밖에는 철충이 있었고, 편하게 안에서 쉴 수가 있었으니까… 근데 그 짓거리도 하루이틀이여야 하지, 거진 30년을 그 새하얀 실험실에서 갇혀있었어! 시간관념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하루종일 밝았었고, 밥으로는 매일 똑같은 단백질 바와 물한모금, 그리고 그 빌어쳐먹을 푸른 약을 내게 내밀었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휩노스 병에 걸리고 싶을 정도로 그곳이 싫어졌고, 차라리 날 죽여달라고 빌 정도였지! 그때마다 에바는 자기는 인간을 죽일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스스로 자살할려고 시도할때마다 그 년은 어떤 개지랄을 해서라도 날 다시 깨워버렸지.”


“...”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어느날은 깊게 잠들었더라고? 눈을 떠보니까… 이상한 지하 비밀창고 안에서 깨어났지. 그렇게 개고생하고 별 지랄을 다 하다가 이제 여기로 온 거야.”


“...현실과 비현실이 매우 치밀하게 섞여있는것 같네요…”


“...?”


“철충의 침공, 휩노스 병의 발명은 사실이고, 모든 사람도 겪언던 일이에요.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에바가 행한 일이였죠.”


“...? 그게 뭔-”


“에바는 바이오로이드이자, 인간이에요. 인간으로 만든 최초이자 최후의 바이오로이드, 왜 더이상 에바 이후로는 인간으로 만든 바이오로이드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정답은, 불안정성 때문이죠. 군사용, 경호용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이상 바이오로이드는 절대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해할수도 없죠. 하지만 에바는 달라요. 근본적으로 그녀는 인간을 죽일 수 없지만, 인간을 죽일 생각은 할 수 있죠.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도구 또한 제작할수 있죠.”


“...”


“에바는 항상 실험실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에바는 세상에서 격리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이용해 실험실에서 철충을 개발해냈어요.”


“?!”


“첫 철충을 만든 다음, 도시 바깥쪽에 위치하고, 당시 누구도 사용하지 않던 무인운영 폐공장을 해킹해 수많은 철충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했죠. 공장 창고를 가득 채울만한 철충이 만들어지고, 그 이후에 에바는 그 철충을 풀어내고서는 지구에 있는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했죠. 에바는 사람을 죽일 수 있도록 철충에게 명령할 코드를 생성시킬수 있었어요. 그덕에 철충은 거리낌 없이 인간들을 죽이고, 철충들은 또다시 공장을 점령해 자신들과 자신들이 침식할 AGS들을 생산해내고, 인간들은 빠르게 진압해나갔죠.”


“이런 미친년…”


“하지만… 에바의 철충들은 철을 재가공시켜 몸을 강화시켰기에, 그로써 큰 문제점도 있었죠. 물에 닿는 순간, 부식이 시작되었기에 섬이나 습한 기후의 지대에서는 제대로된 공격이 불가능했습니다.”


“...?! 야이씨 설마-”


“그 푸른약을 계속 드셨다고 하셨죠?”


“그게 사람 재우는 약이였던거야?”


“처음에는 수면제 역할로 사람을 제우고, 대략 3시간 이후로는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강한 환각작용으로 사람을 사망에 일으키게 만든 겁니다.”


“...”


“반복해서 말했지만, 에바는 사람을 죽일 수 없지만,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는 있죠. 많은 사람들이 수면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으니, 수면제를 만들 수 있었고,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강한 마약도 제조할수 있었죠. 에바는 그 약물을 강, 바다, 호수에 뿌렸고, 심지어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비와도 섞여 하늘에서도 내려왔죠. 그렇게 휩노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에바는 그 환각제를 이제는 각성제로 속여 사람들에게 먹였고, 휩노스 병 또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답니다.”


“그럼, 철충도, 휩노스도 전부 에바가 만들어낸 거라고? 인간을 싹다 없앨려고?”


라비아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삼안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회사가 아닐텐데, 어떻게 회사에 그렇게 허점이 많이 존재했고, 에바라는 바이오로이드 하나를 놓쳐서 이사단을 만들어버리는지 설명이 안돼 한동안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근데, 한가지 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면… 어째서 나는 그 약이 먹히질 않았지?


“...혹시, 그 환각제에 면역력이 있던 사람도 있던가?”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인간님께서 제일 처음으로 약물에서 깨어나신 분이시니까요.”


“...면역을 가질만한 조건은?”


“마약성 성분이 있으니… 마약을 꽤 하신 인간님들이거나… 정신력이 강하신분들… 그런 분들이 약에는 꽤 길게 버티셨던거 같습니다.”


참내, 남자, 여자가 아니라, 뽕쟁이들이 면역일수 있다니… 아, 물론 나는 마약에 마자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내 기억상으로는 말이다. 여하튼 나같은 사람이 깨어나서 망정이지, 뽕쟁이들이 여기서 깨어난 순간… 뭔 일이 일어날지 나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여튼 에바 이 썅년은 나를 죽일려고 작정하고, 전 세계에 뭔짓을 벌인거지? 미친년 하나가 세상을 망하게 만드는군. 이제는 그 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에바는 인류를, 나를 살릴려고 노력한게 아니라, 인류와 나를 죽일려고 노력했다. 에바는 인류를 죽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 그러니… 나는 결심했다. 에바라는 작자를 무조건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자유를 뺏긴것도 서러운데… 죽일려고 했던 거였다니!


“암! 그 씨발년은 꼭 내 손으로 죽이겠어!”


“...!”


고뇌로만 가둘려고 했던 나의 함성이 입 밖으로 터져나와버렸고, 그 골목길 안에 있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랐다. 어정쩡한 분위기에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라비아타는 내 팔을 이끌고는 골목길을 빠르게 헤쳐나갔다.


.

.

.


한참동안 걸어다니면서, 나를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끌고 온 라비아타는 빠르게 걷다가 어느 건물앞에 멈춰섰고, 우뚝 서서는 건물 간판을 빤히 바라봤다.


“...여기는 그래도 믿고 맡길수 있겠죠…?”


그 간판에는 ‘A BAR & HOTEL’이라고 쓰여져 있었고, 그래도 나를 숙소에 묵게 해주는구나 생각하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믿고 맡긴다는 소리는… 주인이 알고 있는 사람인가?


“들어가시죠, 주인님. 피곤하실텐데 한숨 주무시러 가시죠.”


“수십년동안 잠만 잤던 사람한테 한숨 자러 가라니 말이 심하네…”


라비아타는 황토빛 건물의 정문을 열어재꼈고, 그 안에는 널찍한 카운터와, 방번호가 쓰여있는 수많은 열쇠들이 걸린 열쇠걸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이끌고 있던 것은


갈색 머리채를 가지고 우아하게 서있으면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꿈속에서의 이름은 아스널이였던 여인이었다.



1주일마다 쓰는 글이 바뀌니까 월요일이 제일 힘들어;;